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35)
멈칫!
오식이가 움찔하며, 하려던 짓을 멈췄다.
나와 아처캣을 번갈아 보는 눈빛에 원망과 분노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오식이를 향해 아처캣이 짧게 울어댔다.
“냐앙!”
순간, ‘냐앙!’이란 울음이 ‘흥!’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휙 하니 돌리며 무시하듯 돌아서는 몸짓도 그렇고, 도도한 표정과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도 딱 그래 보였다.
“…?!”
어떤 이질감에 기분이 묘해졌다.
처억!
가까이 다가온 아처캣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처럼 보였다.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해 보자냥!―
“어, 어….”
….
“기분 풀어….”
오식이의 옆에 앉아 녀석을 다독였다.
고기가 익어가는 모닥불을 응시한 채, 녀석은 대꾸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보다 많이 먹지도 않았고, 고기를 보면서도 신나 하지 않았다.
반면, 아처캣은 굉장히 기분이 좋은 듯했다.
“냐아앙!”
작게 뜯어낸 뿔토끼 고기를 오물거리며 잘도 먹어댔다.
‘뿔토끼는 좀 질기지 않냥?’, ‘싱싱한 생선은 없는 거냥?’이라 하며, 툴툴대던 것이 불과 10분 전쯤의 일이었었다.
―아, 잘 먹었다냥! 맛있었다냥!―
뿔토끼 고기를 야무지게 먹은 아처캣이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는 제 수염과 입가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고, 정리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크륵….”
오식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싫다’라는 말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만, 반대편에 앉아 있는 아처캣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듯싶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잘된 일이라 여겼다.
아니었다.
―어이, 덩치! 아직도 삐쳐 있는 거냥?―
곧장,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마도 들린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나한테 얘기한다고 알아듣나?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아처캣은 소리를 내어 ‘야옹’거렸다.
그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말로 전달됐다.
직전, 오식이의 으르렁거림도 소리는 ‘크륵’이었고, 뜻만 내게 전달된 상황이었다.
나라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듯이 괴물들 사이에도 종족별의 언어가 있을 듯싶었다.
그러니 하나는 야옹거리고, 다른 하나는 크륵거리겠지.
해서, 둘 사이의 통역사가 되어 주기로 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냐고 묻는데?”
대놓고 말해 주지 않고, 수위를 조절하는 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크륵?”
내 말에 오식이가 반응을 보였다.
말은 전달되지 않았지만, 느낌상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아처캣도 반응을 드러냈다.
―너 지금 뭐 하냥?―
아처캣의 반응과 물음에 살짝 민망해졌다.
말을 순화시키고, 돌려 한 것을 타박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멋쩍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놨다.
“아, 아니…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아처캣이 내 변명을 다 듣지도 않고는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라냥. 왜 내 말을 저 덩치한테 전하는 거냐고 묻는 거다냥!―
“응? 아아, 토, 통역….”
내 말에 아처캣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한심하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그러고는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통역 같은 건 전혀 필요 없다는 내용의 얘기였다.
그랬다.
괴물들 사이에서는 소리가 달라도 서로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헐… 그런 거였어?”
―뭐, 그렇다냥.―
“난 또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 걸 보고 괜한 오지랖이라고 하지 않냥?―
“헉! 그런 말도 알아?”
―왜 이러냥? 지금 나 무시하냥?―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가 슬쩍 오식이를 쳐다봤다.
아처캣이 다시금 피식하고는 말을 전했다.
―원래 오크 족은 멍청하다냥! 그런 미개한 종족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엄청난 실례다냥!―
아처캣은 정말이지 거침이 없었다.
뭐, 나도 이해가 가는 말이긴 했지만, 면전에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래 보였다.
“크륵!”
역시나 오식이가 발끈했다.
―멍… 청… 안… 하… 다….―
―바보냥? 그럴 땐, 멍청하지 않다냥이라고 하는 거다냥!―
―멍… 청… 하… 지… 안… 하… 다… 냐… 앙….―
―에휴! 역시, 머저리다냥!―
―아… 니… 다….―
티격태격하던 중, 오식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씩씩대는 오식이를 향해 아처캣이 놀려대듯 말을 이었다.
―힘만 믿고 무식한 게 또, 맞고 싶은 거냥?―
―죽… 인… 다….―
오식이가 진짜로 화가 난 듯 크게 으르렁거렸다.
옆에 있으니, 살기가 그대로 전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처캣은 너무나 여유만만이었다.
―그게 가능할 것 같냥?―
―한… 다….―
―바보냥? 네 옆에 있는 인간이 가만히 있겠냥? 제발, 생각이란 것을 좀 해라냥!―
아처캣의 말에 오식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난감했다.
어느 한 쪽 편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었고, 싸움을 계속 지켜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음….”
잠시간 고민 끝에 해답 같지는 않은 결정을 내렸다.
“야! 너는 일단 들어가 있어!”
일단은 아처캣을 카드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 왜 이러냥? 다시 꺼내라냥!―
녀석이 아우성을 쳐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오식이를 향해 명령했다.
“너도 제자리에 앉아!”
“크륵….”
억울한 듯 으르렁거린 오식이가 자리에 풀썩하고 앉았다.
“이제 남은 고기 전부 먹어!”
내 명령에 반항하듯 녀석이 고개를 획 돌렸다.
살짝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다시 말했다.
“얼른 먹어라, 진짜로 화내기 전에.”
“크륵….”
그제야 녀석이 슬쩍 눈치를 보다가 고기를 집어 들었다.
녀석의 큼직한 등을 가만히 토닥여 줬다.
“그래, 착하다. 얼른 먹어.”
“크륵….”
“내가 아무렴 네가 미워서 그랬겠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지,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도 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녀석이 큼직하게 고기를 베어 물고 우적우적 씹어댔다.
―뭐 하냥? 나 좀 꺼내 줘라냥! 그런 무식한 놈이랑 같이 있다가 너도 바보가 된다는 거 모르냥?―
아처캣은 계속해서 징징대고, 난리를 피워댔다.
뭐라고 하든 무시하고 있었지만, 오식이를 향해 무식한 놈이라고 할 때는 사실 좀 뜨끔했다.
해서,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우적우적… 꿀꺽!”
고기를 먹느라 아처캣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오식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아처캣의 말을 듣지 못한 게 아니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흠… 카드에 봉인되어 있을 때는 나한테만 들리나 보군!’
그랬다.
카드에 봉인되었을 때는 야옹거리거나 크륵거리는 소리 없이 바로 내 머릿속에 말이 전달된다.
해서,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둘 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서로의 말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으으, 웬만하면 둘을 한꺼번에 소환하지는 말아야겠어.’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듯싶었다.
….
“하아암… 졸려라….”
나름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계곡 물에 들어가 대충 씻고는 동굴 속 텐트로 들어와 누웠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야아, 제발 좀 꺼내 달라냥!―
아처캣은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징징거렸다.
무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이러다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되게 시끄럽네!”
짜증과 함께 일단 녀석을 밖으로 꺼냈다.
―후아, 갑갑해서 죽을 뻔했다냥!―
아처캣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텐트 중앙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
어이가 없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녀석을 쳐다봤다.
내 시선을 느낀 녀석이 고개를 틀어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그리고 제집이나 자리인 듯이 말했다.
―왜 그러고 있냥? 너도 누워라냥. 엄청 편하다냥!―
“거기 내 자리거든?”
―아, 그러냥?―
녀석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고는 몸을 꿈틀대며 자리를 조금 내줬다.
더욱더 기가 막혀왔다.
“허… 너 다시 들어가고 싶냐?”
―앗! 그건 싫다냥! 그 안은 정말로 갑갑하다냥!―
“야, 오식이는 너보다 더 큰 데도 아무 소리 없거든? 근데, 왜 너만 그래?”
―그거야 걔는 워낙에 둔하니까 모르는 거다냥! 나처럼 우아한….―
“아, 됐고! 저쪽 구석으로 가서 얌전히 자! 아니면, 다시 카드 속으로 들어가든가!”
―아아, 너무한다냥….―
아처캣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구석으로 몸을 굴렸다.
보란 듯이 텐트 중앙에 대짜로 뻗어 누웠다.
놀림의 말도 잊지 않았다.
“으으, 편하다.”
―흥! 칫! 뿡이다냥!―
“예예, 마음대로 하세요.”
조금 더 녀석을 놀려댔다.
삐쳐 있던 녀석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내고는 내 옆으로 빠르게 굴러왔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앞발… 아니, 손으로 툭툭 치고,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온몸으로 덮치며 눌러댔다.
“아악! 이, 이러지 마!”
―복수다냥! 까불지 마라냥!―
“아, 알았어! 그만! 그만해! 하, 항복!”
그제야 녀석이 내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녀석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있는 자세가 만들어져 있었다.
‘앗!’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아니, 녀석이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고, 온몸을 간질거리게 했다.
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쳤다.
“으으으!”
―왜 그러냥?―
“아, 아무것도….”
―흐음… 웃기는 인간이다냥!―
“….”
―아무튼, 생긴 게 내 타입이라 용서해 준 것이니, 앞으로는 알아서 잘 모셔라냥!―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아니, 그보다 생긴 게 내 타입이라는 녀석의 말에 온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이, 이런 미친….’
당장에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참았다.
그러나 그대로 욕을 뱉어 냈어야만 했다는 생각을 곧 하게 됐다.
“냐앙… 낼름낼름… 코오옹….”
녀석이 혀로 내 입술과 코를 핥았다.
그러고는 코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녀석의 코와 내 코가 닿았고, 스치듯이 입술까지 살짝 닿았다.
짜르르르르르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이 저릿해졌고, 이미 돋은 소름 위에 다시금 소름이 돋아났다.
소르으으으으음.
진정, 그대로 닭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으아아악!”
정신이 살짝 돌아옴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팔을 버둥거리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던 녀석이 깜짝 놀라서는 튕기듯 저만치 물러났다.
그런 녀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야아아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죽고 싶어?”
악을 쓴다고 썼는데도 짜증과 화가 풀리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녀석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 격한 반응에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녀석이 주눅이 든 것처럼 작게 울어댔다.
“냐아앙….”
“왜 그러냐고? 지금 몰라서 물어?”
머릿속으로 전달된 녀석의 물음과 반응에 더욱더 화가 나서는 소리쳤다.
그래도 녀석이 전혀 모르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이제는 쌍욕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미친놈아! 어디서 주둥이랑 혀를 마음대로 놀려! 아무리 고양이 새끼라지만, 내가 지랄 같은 수컷이랑 하려고, 여태껏 순결을 지켜 온 줄 알아?”
질러 놓고 나니, 엄청나게 쪽팔리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진심으로 화가 났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처캣이 한참 만에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아, 그런 거였냥? 키키킥!―
“웃어? 진짜로 죽고 싶냐? 앙?”
뱉어 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확인 시키듯 텐트 밖에 놔둔 검을 집어 들려 했다.
그 순간, 아처캣이 여전히 키득거리는 투로 말을 전해 왔다.
―그럼 걱정하지 마라냥! 나는 암컷이니 말이다냥. 크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