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34)
“오식아, 그건 뭐냐?”
다가오는 오식이에게 물었다.
손에 들린 것을 힐끔 쳐다본 녀석이 으르렁거렸다.
머릿속으로 녀석의 말이 전해졌다.
―떨… 어… 졌… 다….―
“응?”
―잡… 았… 다….―
“아….”
―먹… 는… 거….―
“킁!”
그래도 될 것 같긴 했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완전히 다가온 녀석의 손에 들린 것을 자세히 살폈다.
일단 그것은 죽은 것인지, 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사지를 쭉 뻗은 채, 축 늘어진 상태였다.
얼핏 보면, 두세 살쯤 되는 아이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털 뭉치에 쫑긋한 삼각형의 귀와 기다란 꼬리가 달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등에 메고 있는 작은 활이었다.
“어라? 이놈은….”
활을 보자마자 놈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괴물이었다.
짐꾼 생활 5년을 통틀어 한 네 번쯤?
그만큼 보기 힘든 희귀종으로 놈의 이름은 ‘아처캣’이었다.
아처캣은 이름처럼 활을 쏘는 고양이 괴물이었다.
네 발로 다니는 고양이가 어찌 활을 쏘냐 하겠지만, 놈들은 이족 보행을 했고, 손도 사람처럼 생겼다.
하물며, 귀도 고양이 같고, 수염도 있고, 이빨도 날카롭지만, 꽤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처캣의 레벨은 12였다.
혼자서 돌아다녔고, 딱히 정해진 서식지가 없었다.
해서, 마주치거나 발견하는 것조차 어려운 놈이었다.
“이걸 어떻게 잡았다고?”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녀석이 눈을 깜빡이다가는 말했다.
―떨… 어… 졌… 다….―
“어디서?”
―나… 무….―
“그냥? 갑자기?”
―쿵… 했… 다….―
“쿵? 나무에? 네가?”
―떨… 어… 졌… 다… 먹… 을… 거….―
잠시 대화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네가 나무에 쿵 하고 부딪쳤는데, 이놈이 뚝 떨어졌다는 거지?”
내 말에 오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나무에는 왜 부딪쳤어? 뿔토끼 잡다가 그런 거야?”
이번에도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흐음…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일세, 왜 하필 그 나무에… 쩝!”
우연들이 겹쳐져서 그런듯했지만, 운이 없긴 더럽게 없었던 모양이었다.
“죽은… 아니, 죽인 거야?”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하지만, 오식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간, 뒷골이 짜릿해질 정도로 놀랐다.
“에? 안 죽었다고?”
큰일이었다.
놈은 레벨이 12나 된다.
지금이야 기절해 있는 상태지만, 만약에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오식이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냥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빠른 것은 물론, 레벨에 걸맞은 뛰어난 활 솜씨를 자랑하는 놈이었으니까.
워낙에 개체 수가 적어 보기조차도 힘든 놈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나무 위나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활까지 날려대는 놈이라 위험하기가 그지없었다.
나처럼 레벨이 낮은 이들은 당연했고, 레벨은 좀 되지만 근접전이 특기인 직업의 헌터들에게는 상당히 골치 아프고, 위협적인 괴물로 꼽히기까지 했다.
“야, 뭐 하고 있어? 당장 죽여!”
“크륵?”
“죽이라고! 찢어 죽이든, 눌러 죽이든 간에 지금 당장 죽여 버려!”
빠르고, 강하게 말을 쏟아 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오식이가 손에 들린 자루를 옆으로 내려놓고는 놈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때였다.
“냐앙….”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놈이 눈을 떴다.
진짜 고양이였거나 다른 상황이었다면 귀엽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야! 놓치지 마! 놓치면 안 돼! 빨리 죽….”
황급히 말을 쏟아 내는 와중에 놈과 눈이 마주쳤다.
뱉어 내던 말이 저절로 멈출 만큼 식겁했다.
“냐… 앙….”
놈이 나를 쳐다보며 울었다.
그러더니 신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특별한 상황에 의해 스킬 ‘교감’이 자동으로 발동합니다.]
“에?”
….
새하얀 공간에 아처캣과 마주하게 됐다.
“….”
놈은 이전의 오식이나 뿔토끼처럼 살기라곤 전혀 없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특별한 상황… 이번에도 공격을 당할 뻔한 건가?’
지금까지 있었던 두 번의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애매했다.
기절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렸고, 나와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딱히 공격을 하려던 움직임 같은 건 없었다.
‘흐음… 특별한 상황이란 것이 내가 위험에 처한 거랑은 다른 건가? 아니지? 뿔토끼 때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라고 봐도 좋지 않나?’
특별한 움직임이나 기미가 없었을 뿐, 상황이 이어졌더라면 확실히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터였다.
그러나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진심,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아 헷갈리기만 했다.
“큰일이네, 이번엔 그냥 넘기면 안 되잖아?”
뭐, 오식이보다 레벨이 낮기에 그냥 걸러도 좋을 놈이긴 했다.
하지만, 이대로 서약을 맺지 못한다면, 곧장 이어질 현실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무조건 놈과 서약을 해야만 했다.
뭐, 12레벨에 원거리 공격을 한다는 장점도 있으니, 데리고 다닌다면 큰 도움이 될 것도 있었고 말이다.
문제라면….
“그나저나 얘는 뭘 좋아하려나?”
서약을 맺기 위해서는 놈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걸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에 희귀한 놈이라 딱히 밝혀진 게 없었다.
그동안 업데이트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 내가 놈에 대해 아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젠장….”
난감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교감이 끝나자마자 소리치면 오식이가 바로 반응하려나?”
현실의 상황으로 돌아가자마자, 오식이에게 명령하여 놈을 바로 죽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지금으로서는 확률적으로도 가장 높은 경우의 수인 듯했다.
“어휴, 이 망할 놈의 자식! 어디서 이런 애물단지를 주워와서는… 상황만 해결돼 봐라, 아주 그냥 두들겨 패 줄 테니까!”
이번 일의 원흉인 오식이를 탓했다.
그때였다.
머릿속으로 간드러진 느낌의 목소리… 아니, 말이 전해졌다.
―네가 그 무식한 놈의 주인이냥?―
깜짝 놀라서는 아처캣을 쳐다봤다.
놈이 가늘게 눈을 뜨고는 다시금 내 머릿속으로 말을 전했다.
―대답해라냥! 네게 그 무식한 놈을 때릴 능력이나 권한이 있는 거냥?―
대답보다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말로 대답도 했다.
“어, 있어!”
잠시 틈을 준 아처캣이 내게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딜을 걸어왔다.
오식이를 한 대만 때리게 해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해 줄 수 있냥?―
처음엔 ‘뭐 이런 거로…’라는 생각에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이해가 될 법도 했고, 못 들어줄 내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그까짓 거로 엄청나게 위험할 수 있는 일을 무마시킬 수 있고, 더불어 제법 괜찮은 놈을 부하로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좋아! 약속할게!”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를 빤히 보던 아처캣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좋다냥! 널 믿어 보겠다냥!―
아처캣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앞의 허공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 후 카드 한 장이 나타났다.
이어,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상(아처캣)과의 ‘서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대상(아처캣)이 당신의 카드에 봉인됩니다.]
휘리리리리릭!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카드가 회전했다.
….
“크륵….”
오식이의 으르렁거림에 눈을 떴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멍해진 정신을 바로 잡느라 잠시 애를 썼다.
오식이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아처캣은 사라진 상태였다.
‘맞아, 그때도 그랬었지….’
오식이와 서약을 맺었을 당시를 떠올렸다.
직전에 한 아처캣과의 약속도 떠올렸다.
“흐음… 안 들어주면 큰일 나겠지?”
오식이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꿈에도 모를 녀석이 제 손에 잡혀있다가 홀연 듯 사라졌을 아처캣의 행방과 나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연신 고개를 갸웃댔다.
“흠흠! 오식아….”
“크륵?”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나조차도 하면서 황당하고, 이해되지 않을 것 같은 얘기를 쏟아 냈다.
오식이로서는 더욱더 이해되지 않는 말일 터였다.
“알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마! 어차피 네가 입을 타격은 그리 없을 테니까!”
그랬다.
아처캣이 내민 딜을 받아들이면서 나름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을 다시금 믿으며, 아처캣을 소환했다.
피잉!
허공에 카드가 뜨고, 빛이 카드를 투과하여 실루엣을 만드는 과정 등, 오식이를 불러낼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실루엣의 크기가 한참이나 다른 것 외에는 말이다.
“냐아옹….”
앙칼진 울음소리와 함께 아처캣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광경을 지켜본 오식이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고, 아처캣의 등장에 움찔하는 게 귀엽(?)기도 하면서 어째 좀 안쓰러웠다.
―해도 되냐옹?―
“어, 말해 뒀어,”
내게 묻고, 답을 들은 아처캣이 오식이를 노려봤다.
오식이가 다시 한 번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식아, 가만히… 얌전히 있어!”
“크륵….”
2미터를 훌쩍 넘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풀고 똑바로 서면 근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오식이와 곧은 자세로 서 있지만, 1미터에 한참이나 모자라는 작은 아처캣의 대립이 어째 좀 웃긴다.
작은 녀석이 더 당당하고, 오히려 큰 놈은 쫄아 있는 게 더 그랬다.
“자세 좀 낮춰 주라 할까?”
아처캣을 향해 물었다.
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아처캣이 전혀 문제없다는 듯 내 머릿속으로 말을 전했다.
―됐다냥!―
그러고는 스프링 내지는 고무공처럼 탄력적이고, 가벼운 몸짓으로 점프해 몸을 허공에 띄었다.
토옹! 토옹! 토옹….
바닥을 두 번 차고 뛰어올라 오식이와의 거리를 좁힌 아처캣이 이내 오식이의 무릎을 박차고는 날아올랐다.
의미 없이 앞으로 내밀고 있는 팔을 한 번 더 차고 올랐다.
“와우….”
날렵하기 그지없는 아처캣의 몸놀림에 감탄사가 나왔다.
오식이도 자그마한 것이 제 무릎과 팔을 밟고는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것을 보며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최고점에 다다른 아처캣의 상체가 반쯤 비틀어졌다.
그 모습에서 문득, 정인영의 회전 베기가 떠올랐다.
이어, 빠르게 몇 바퀴나 회전하던 정인영과는 달리, 아처캣은 정확히 한 바퀴만 몸을 회전시켰다.
그 회전의 반동과 탄력을 이용해 기다란 꼬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순간….
“어, 어….”
아차 싶은 마음이 확 들었다.
레벨 12와 15의 격차는 물론, 키로만 4배 이상, 체구는 그보다 훨씬 더 차이가 나는 터라, 안일하게 여겼던… 아니, 솔직히 안심하고, 믿었던 부분이 잘못 됐음을 깨달았다.
아닌 말로, ‘제까짓 게 뭐를 어쩌겠어?’ 내지는 ‘백날 때려봐라, 힘만 빠지지!’ 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이전 날, 옥탑방을 때려 부수던 오식이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렸다가 손목이 아작 날 뻔했던 경험도 있기에 더욱더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산이고, 오판이며, 오만이었다.
휘리릭!
강렬하게 휘둘린 아처캣의 꼬리가 여전히 놀란 표정인 오식이의 뺨을 사정없이 휘갈겼다.
쫘아아아악!
실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굵직한 목을 가진 오식이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틀어지기도 했다.
“크륵!”
뺨을 맞은 오식이가 곧장 반응했다.
본능적으로 볼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오식이의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바닥으로 착지한 아처캣을 향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녀석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오, 오식아! 참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