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31)
쿵쿵쿵!
오식이가 뿔토끼를 향해 다가갔다.
이내, 제 영역으로 들어온 오식이에게 놈이 달려들었다.
피잇! 핏!
빠른 동작과 날카로운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상당한 레벨의 격차에 뿔토끼의 공격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짧은 순간, 몇 번이나 이루어진 놈의 공격에도 오식이의 두꺼운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덥썩!
오식이가 이리저리 뛰고, 돌고, 달려들던 뿔토끼의 뒷다리를 잡아챘다.
바둥바둥….
놈이 격렬하게 반항했지만, 오식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오식이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잘했어! 얼른 와!”
녀석이 쿵쾅거리며 내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잘 잡고 있어!”
혀끝으로 입술을 한 번 핥고는 토끼 놈을 잡을 때처럼 신중하게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파각!
기묘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손맛이 전해졌다.
“이, 이런….”
살짝 당황했다.
분명히 제대로 놈의 몸뚱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덩치가 큰 탓에 정확히 적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놈은 멀쩡했다.
약간의 상처와 함께 피도 조금 났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 레벨 3이라 이건가?”
레벨 1짜리 토끼 놈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냥 봐도 털의 광택이나 가죽의 두께 자체가 차이가 날 정도였다.
이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검이 아수라 스워드라는 것과 이 검의 공격력이 30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말이다.
알려진 바로 뿔토끼의 방어력은 내가 입고 있는 전투 타이츠와 비슷한 수준인 5를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 놈을 공격력 30짜리 검으로 후려쳤는데, 약간의 상처만 내고 말았다면, 단순한 수치상의 공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일 터.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감정 머신을 통해 표기된 아수라 스워드의 공격력 30은 검과 검을 사용하는 사람이 낼 수 있는 최고치의 강도와 공격력을 말함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공격력 100짜리 무기를 사용했을 때, 누구나 100만큼의 대미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르다.
힘이 10밖에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공격력이 100인 검을 사용해도 10만큼의 대미지 밖에 줄 수가 없다.
또한, 힘이 100인 사람이 공격력 10짜리 무기를 있는 힘껏 사용했다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가 파손되기도 한다.
무기의 상태에 따라서도 공격력은 좌우된다.
관리와 손질을 하지 못해 날이 무뎌졌다거나 충격으로 무기에 손상이 가해졌다면, 제대로 된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 스킬의 사용 유무와 기타의 플러스마이너스 알파의 계산까지 들어가면, 답도 나오지 않기에 패스하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1레벨이다.
더불어 기본적인 피지컬도 평균 이하에 가깝다.
내가 나에게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는 좀 뭐하지만, 공격력 30의 아수라 스워드는 나로 인해 원래의 효능과 값어치를 못 하고 있다는 소리다.
….
“야! 똑바로 잡아 봐! 양쪽으로 잡고서 이렇게!”
오식이가 내 손짓 발짓을 보며, 뿔토끼를 양손으로 잡고는 가로로 눕혔다.
“좋아! 간다, 이야압!”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검을 내리쳤다.
파앗!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에잇!”
연속해서 검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파앗! 파앗! 팟!
조금씩 잘려 나가던 뿔토끼의 몸뚱이가 마침내 반으로 갈라졌다.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가쁜 숨을 내쉬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헉! 헉! 이런, 젠장….”
운이 좋다고 여겼다.
다음 순서로 적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이나 쑥 치솟아 버린 난이도에 그 모든 것이 지랄이었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서… 누….―
오식이마저도 이런 내가 안타깝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에, 짜증이 났지만, 오기도 생겼다.
“괘, 괜찮아… 할 수 있어!”
“크륵….”
애써 강한 척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을 이었다.
“후우우! 걱정하지 말고, 가서 한 마리 더 잡아 오기나 해!”
잠시 머뭇거리던 오식이가 몸을 돌리고 뿔토끼를 향해 걸어갔다.
….
이후의 사냥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토끼 놈을 잡을 때는 한껏 여유로웠는데, 이제는 한 마리를 잡고 나서 흐트러진 호흡과 떨어진 체력을 빠르게 보충해야 하는 것이 달랐다.
오식이의 노련미(?)도 빛을 발했다.
양손으로 잡은 뿔토끼를 최대한 늘려 잡았고, 그럴수록 내가 검을 내리쳐야 하는 횟수나 강도가 줄어들었다.
찌이익!
“크륵?”
“인마! 그렇게 세게 잡아당기면 어떻게 해?”
이따금, 힘을 주체하지 못해, 내가 내려치기도 전에 뿔토끼를 찢어 버리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시간과 경험이 이어질수록 적당한 선을 찾아갔다.
그렇게 십여 마리쯤 뿔토끼를 잡았을 때였다.
부르르….
살짝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이 떨려왔다.
그때 신비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듯 날아들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어?”
“크륵?”
“드, 드디어 오른 건가?”
바로 상태창을 열어 레벨을 확인했다.
―――――
이름: 나선우
나이: 25세
레벨: 2
클래스: A
직업: 카드 소환사
―――――
레벨이 올라 있었다.
기쁘면서도 얼떨떨한 마음이었다.
“근데, 뭐가 이리 시시하지?”
그랬다.
게임에선 레벨이 오를 때마다 화려한 이펙트나 그에 상응하는 장치들이 터지고, 볶고, 지지며 축하의 쇼를 해 준다.
그런데 이건 뭐… 덜렁, 레벨이 상승했다는 음성지원(?)과 몸이 살짝 떨리는 정도로 끝이었다.
막말로, 그 순간에 잠시 넋을 놓는다던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 레벨이 오르는지 어떤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뭐, 그래도 오르긴 올랐으니까 됐다!”
아직 내가 저주캐임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레벨이 오르기는 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행이었다.
“괜찮은 스킬이 생겼으려나?”
레벨이 오르면 스킬이 생긴다.
검사처럼 흔하디흔한 직업들은 몇 레벨에서 어떤 스킬이 생성되는지도 완전히 밝혀진 상태였다.
스킬은 강함의 척도가 될 수 있었고, 레벨 업의 기쁨에 추가적인 행복과 기대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나댔다.
긴장으로 떨리는 손가락 끝을 스킬이라 적혀 있는 허공에 가져다 댔다.
스르릉….
기묘한 소리와 함께 반투명의 스킬 패널이 떠올랐다.
―――――
[교감]
[소환]
[봉인]
―――――
“….”
변화되거나 새롭게 생성된 스킬은 없었다.
“젠장… 2레벨의 특전은 없는 거냐?”
허무함과 짜증,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사실, 많은 기대를 했었다.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해서, 실망감도 훨씬 컸다.
“씨바… 쓸 만한 공격 스킬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아쉬움에 계속해서 투덜댔다.
이 상태라면, 지금까지 해 왔던 개고생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오른다고 해서 힘이나 민첩성이 올라가는 게 아니었고, 내게는 마땅한 공격 스킬이 여전히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또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더 많은 수의 뿔토끼나 더 강한 괴물을 잡아야만 했다.
보통, 1레벨에서 2레벨로 올리는 시간과 노력의 1.5배쯤이 3레벨까지의 여정이었다.
대놓고 저주캐인 탓에 1.5배 이상일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후우우….”
뭐가 됐든 간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지랄 같은 상황이었다.
“크륵….”
“뭐라고?”
괜히 오식이에게 짜증을 부렸다.
내 눈치를 보던 오식이가 느릿하게 말을 전달해 왔다.
―배… 고… 파….―
까딱했으면 인내심이 폭발할 뻔했다.
그러나 애써 발작 스위치의 누름을 억제했다.
“그래, 네가 뭔 잘못이겠니… 밥이나 먹자.”
지랄 같은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는 싸 들고 온 고기를 꺼냈다.
….
그 자리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냄새를 맡은 뿔토끼들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다가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흠… 괜찮은데?”
어젯밤,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연기에 보금자리의 노출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던전 안에서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듯했다.
입구 앞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다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혹시라도 고기 냄새에 괴물들이 달려들어도 뻥 뚫린 곳이라 대처하기가 쉬울 터였다.
“아예, 집을 짓고 살아 버릴까?”
조금은 과하고, 앞선 생각까지 해 버렸다.
배가 부르니 졸리기도 했다.
여전히 먹방을 찍어대는 오식이를 힐끔 보고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한 몇 분쯤?
깜짝 놀라서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크륵!”
내 반응에 오식이도 놀란 듯이 하던 짓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녀석은 여전히 고기를 뜯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먹고 있어?”
핀잔을 주듯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에? 네 앞에 그게 뭐냐?”
내 물음에 오식이가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고기를 슬쩍 숨겼다.
그런 녀석의 발 앞에는 몇 개나 되는 뿔토끼의 껍데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야, 인마! 너 대체 뭘 먹고 있는 거야?”
기가 막혀서 냅다 소리를 질렀다.
녀석이 움찔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러다가는 조심스럽게 으르렁거렸다.
―배… 고… 파… 고… 기….―
“아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그나저나 이게 가능은 한 일인가?”
프록의 알이 호흡기 관련 특효약으로 사용되듯 일부 괴물들의 고기는 식용으로도 사용됐다.
어떤 것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 불리며 세계 5대 진미에 들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탁월한 자양강장제라 하여 씨가 마를 정도로 잡아대고, 비싼 값에 팔렸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의 고기를 다시 인간이 먹는 아이러니함.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른 두 부류가 얽히고설킨 얘기다.
같은 부류로 놓고 봐야 하는 오식이와 뿔토끼의 사이에서는 왠지 있어서는 안 될 일 같았다.
사람으로 놓고 보자면 ‘식인’을 하는 것이라 봐야 했으니 말이다.
뭐, 따지고 보면 종 자체가 다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그러한 일을 본 적은커녕 들은 적도 없었고, 생각조차도 해 본 적이 없기에 꽤 커다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괘, 괜찮은 거야?”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녀석이 검지로 제 머리통을 긁적이고는 작게 으르렁거렸다.
―서… 누….―
“응?”
―맛… 있… 다….―
“아, 그래?”
―먹… 어….―
오식이가 손에 들린 고기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름 잘 익혀서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바로 손사래를 치고는 뒤로 반 걸음쯤 물러났다.
“아, 아니야. 너나 많이 먹어.”
내 말에 녀석이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이내 고기를 물어뜯었다.
그러고는 진심으로 맛있게 쩝쩝대며 먹었다.
“흐음… 식비가 줄어들 것 같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든 좋게 생각하려 애를 썼다.
….
그렇게 식사를 모두 마치고는 다시 사냥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다.
레벨 업을 했음에도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똑같은 상황의 연속.
지루함이 느껴질 만한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작업.
게다가 배부름에서 오는 식곤증과 누적된 피로까지….
그런 것들이 엮이며 만들어 낸 문제였다.
파다닥!
“크륵?”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