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9)
나름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괜찮은 이유라고 여겼다.
아니었다.
“그래요? 흐음….”
무기점 주인이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그러고는 살짝 떨떠름한 투로 물어왔다.
“보증서 가지고 계시죠?”
“네? 보증서요?”
“예, 씨리얼 넘버가 적힌 보증서 말입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당황하자, 무기점 주인이 더욱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이런, 젠장….’
아무래도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나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아, 여자 친구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얘는 그런 걸 안 주고서 심부름을 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하하….”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으며, 앞에 꺼내 놓았던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그런 뒤에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
‘음… 일진이 오락가락하는데?’
그런 날이 있다.
행운과 불운이 동시에 찾아오는 그런 날 말이다.
보통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넘기지만, 신중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각별히 조심을 한다.
나도 그랬어야만 했다.
아니, 평소엔 후자와 비슷한 행보로 대처했다.
신중보다는 예민… 사실, 쫄보에 가까운 터라 그리 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달랐다.
거액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들뜬 마음도 있었고, 의식하거나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알게 모르게 조급함과 안일함을 만든 듯했다.
‘괜찮아, 무기야 나중에 팔아도 되니까… 중요한 건 이놈이지!’
가장 먼저 팔아야 했던… 가장 무거운 짐인 프록의 알을 처리하자는 마음이 컸다.
바로 잡화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배야… 끄으응….’
감정의 변화가 너무 널뛰기를 한 탓일까?
아니면, 당황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것도 아니면, 어제 먹은 기름진 치킨 때문인가?
갑자기 배가 아파 왔다.
진행 속도도 빨랐다.
콕콕 쑤셔대는 찌름과 함께 식은땀도 났다.
“으으, 젠장….”
인상을 한껏 구기며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아, 이, 이것 좀….”
“네?”
일단 프록의 알이 든 가방을 잡화점 주인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가방을 받아 든 그가 걱정을 담아 물어 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아, 아니요. 화, 화장실 좀… 윽!”
“아아! 요, 요, 여, 옆으로 가시면 됩니다.”
상황을 파악한 잡화점 주인이 빠르게 손짓을 해댔다.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가게를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절그럭… 절그럭….
프록의 알이 든 가방만 풀었지, 검 두 자루와 활 한 자루, AIR WIND가 들어 있는 내 가방은 그대도 멘 채였다.
꾸루륵….
“으으으, 나, 나온다아아!”
다급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또 다른 시련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철컥! 철컥!
건물 전체가 쓰는 공용 화장실의 문이 닫혀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그러자 꽤 멀리서 짜증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사람 있어요!”
절망적이었다.
몸을 비틀며 옆을 쳐다봤다.
여자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뭐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끄응….”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저, 저기요….”
고개를 빼꼼히 디밀고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문부터 걸어 잠갔다.
그러고는 바리바리 짊어지고 있던 검과 활을 풀어냈다.
절그럭… 탱그렁….
무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는 물론, 3000만 원이나 하는 검도 안중에 없었다.
“아아… 으으….”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가방도 벗어 던졌다.
그 사이, 신축성 좋은 나의 작은 구멍을 뚫고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무지막지한 놈들의 발악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아, 조, 조금만… 윽!”
엉덩이를 바짝 조였다.
진심,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았다.
‘그, 그래… 조, 조금만….’
입술을 깨물었다.
불안한 심호흡을 이어가며, 옷을 벗었다.
자세를 낮추고 펭귄 같은 걸음걸이로 변기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거, 거의 다 왔어… 이제 이것만 벗으면….’
제일 큰 난항이 될 전투 타이츠만 벗으면 될 일이었다.
지이익….
조심스럽게 지퍼를 내렸다.
워낙에 타이트한 터라, 한 동작 한 동작이 죄다 힘겨웠다.
까딱 잘못하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심… 조심… 읏!’
푸다다다다다다!
진심, 간발의 차이였다.
위기감을 느껴 막판에 스퍼트를 올린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조금만 동작이 느렸더라면, 전투 타이츠를 입은 채로 똥을 지렸을 터였다.
“으으으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내가 느낄 천국의 안락함과 평온, 쾌감을 말이다.
절로 눈이 감겼고,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화장실 전체를 아우르는 똥 냄새마저도 향긋… 음, 이건 아니다.
아무튼.
절체절명의 순간을 무사히 넘겼다.
깨끗이 마무리를 하고는 변기의 반 이상을 채운 분비물을 시원하게 흘려 보냈다.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바닥에 내팽개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때였다.
화장실 밖에서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안에 있는 거 확실하지?”
“네. 확실합니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건물 안이라 울림이 있어서 그렇지, 뭔가 속닥거리는 것처럼 들렸고, 그것이 본능적인 흥미를 끈 까닭이었다.
남자들의 속닥거림이 이어졌다.
“지원팀은?”
“오는 중이랍니다.”
“기다려야 하나?”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잠시 말이 끊겼다가 이내 다시 이어졌다.
“아니야. 어차피 1레벨이라며? 우리끼리 잡자!”
“네? 그, 그래도 될까요?”
“뭐, 어때?”
“하지만….”
“이게 기회일지도 몰라! 뭐 하러 다 된 밥을 여럿이 나눠 먹나? 우리끼리 다 퍼먹으면 되지.”
다시 말이 끊겼다.
대신에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이어졌다.
정확지는 않지만, 합의가 이루어진 듯싶었다.
이내, 요란한 소리와 난장판이 연이어 벌어졌다.
콰아아앙!
쾅쾅!
우당탕탕!
“꼼짝 마!”
“뭐, 뭐야?”
“자, 잡아!”
“으으윽!”
“이 새끼! 감히 우리 물건을 가로채? 넌 이제 뒈졌어!”
“으윽! 놔! 네놈들 뭐야? 나한테 왜 이래?”
“조용히 해, 이 자식아! 다른 물건들은 어딨어? 앙!”
“무, 무슨 물건? 아, 아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니까?”
“검 말이야! 아수라 스워드!”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이다가 깜짝 놀랐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허리에 찬 검으로 향했다.
‘뭐야? 내 얘긴가?’
아무래도 그런 듯싶었다.
확실치 않은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을 빠르게 채웠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젠장….’
그런 걸 깊게 생각하거나 길게 따질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놈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그것도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는 다른 놈들이 당도하기 전에 말이다.
찰칵!
잠갔던 화장실 문을 열고는 밖의 상황을 살폈다.
여전히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남자 화장실 안에서만 들려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줄행랑을 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잡화점에 두고 온 프록의 알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후아! 후아!”
가쁘게 차오르는 호흡도 무시한 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었다.
골목으로 한 번 들어섰다가 큰길로 나와서는 바로 택시를 불러세웠다.
“태, 택시!”
택시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는 뛰어들 듯 올라탔다.
택시 기사가 내 사정도 모른 채, 농담을 던졌다.
“어이쿠, 집에 가스 불이라도 켜고 나오셨나? 뭐가 이리 급하실까?”
“지, 진짜 급해요! 일단 출발!”
“예예, 그럽죠. 갑니다, 가요.”
말로만 서두르는 택시 기사의 여유로움에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나마 나를 따라오는 놈들의 움직임이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당장에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택시는 출발했고, 나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얼마 뒤,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잠시 접어 뒀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무슨 조직이라도 되는 거야?’
난장판 속에서 들려왔던 대화들이 꼭 그런 느낌이었다.
먼저 떠올렸던 가설도 그쪽에 포커스가 맞춰졌었다.
아무래도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참혹하면서도 지랄 같은 앞날의 상황들도 몇 가지 떠올랐다.
‘젠장! B급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 * *
택시를 타고서 한참을 달리다가 내렸다.
이어,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면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멀리만 가는 것이 장땡이란 생각에 그리했다.
버스가 끊기고 나서는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도망치기만 했다.
가득히 차올랐던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됐을 즈음 내가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의 B―033 지역… 대혼란 시대 이전에 강원도라 불리던 곳 어디쯤이었다.
‘이 정도면 따라오거나 찾을 수 없겠지?’
거리도 거리였지만, 거의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나름으로 안심이 됐다.
B―003.
지역 코드가 한 자리다.
이는, 이름만 B 구역일 뿐, 완전히 방치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통제 외 구역이란 말과도 같았다.
“으스스 하구만!”
무척이나 어두웠다.
오래도록 버려진 곳이라 가로등은커녕 작은 불빛조차 하나 없었다.
키를 훌쩍 넘기는 잡풀이 무성했고, 전혀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은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괴물을 신경 써야 하기도 했다.
사람의 발길이 오래도록 끊긴 사이,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는 활성화 던전이 생성됐을 것이고, 게이트를 통해 바깥으로 나온 괴물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닐 테니 말이다.
‘오식이를 꺼내놓는 게 좋겠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오식이를 소환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듬직한 녀석이 곁에 있다는 게 참으로 좋았다.
―배… 고… 파….―
밤새도록 배고프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게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 * *
날이 밝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움직여야 했다.
밤새 생각한 것이 있었다.
당연히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들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곳에서의 ‘정착’이었다.
밤새 세운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나마 안전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기준은 활성화 던전이 근처에 없고, 어느 정도 사방이 트여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는 곳.
더불어 정화 던전이 가까이 있으면 금상첨화라는 정도였다.
그런 곳을 찾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기준으로 세운 곳과 딱 맞아떨어지는 곳을 찾아냈다.
앞으로는 나무숲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뒤로는 가파른 절벽과 계곡이 병풍처럼 막고 있었다.
주위로 보이는 게이트는 덜렁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코어가 파괴된 정화 던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정부에서 일단 코어만 파괴하고 내버려 뒀던가, 활성화 던전만 찾아다니며 득템을 노리는 이들이 들렀다가 갔지 싶었다.
“이쪽 동굴은 집으로 사용하면 되겠고, 저쪽은 화장실로 쓰면 되려나?”
절벽 아래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도 몇 개 있었다.
그나마 볕이 좀 들어서 그리 습하지 않고, 이끼도 별로 없는 곳을 대강 치우고는 자리를 잡았다.
“이거 왠지 뿌듯하구만!”
25년 만에 내 집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동굴 입구 앞에 주저앉아 있는 오식이와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넌 어떠냐? 겁나 좋지 않냐?”
내 들뜬 목소리에 녀석이 나를 스윽 쳐다봤다.
그러더니 으르렁거렸다.
머릿속으로 녀석의 말이 전달됐다.
―배… 고… 파….―
킁!
기쁨의 공유와 만끽은 뒤로 미루고, 다시 몸을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