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7)
놀란 마음으로 눈을 껌뻑이다가 옆구리를 만져 봤다.
미약한 통증만이 있을 뿐, 누르고 문질러 봐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치료가 된 건가? 왜?”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식이를 쳐다봤다.
“설마… 너야? 너 때문에 치료가 되는 거야?”
내 말에 녀석이 히죽 웃었다.
큼직하고 누런 이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제… 안… 아… 프… 다….―
녀석의 특징이었던 빠른 치유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전 날, 화살에 맞은 녀석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던 장면도 떠올랐다.
‘녀석의 치유 능력이 내게로 옮겨진 건가?’
그것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종아리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다.
약간의 흉터는 남아 있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만큼 회복됐다.
“으드드드! 헛둘! 헛둘!”
기지개와 스트레칭 등으로 몸의 컨디션을 최종 점검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히죽 웃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나름 숨 막히고, 처참했던 상황이 언제 있었냐는 듯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일단 자리를 뜨는 게 좋겠지?’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또, 부리나케 도망친 김지유와 오민주도 마음에 걸렸다.
그녀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 신고라도 해서 사람들을 끌고 오면, 무척이나 난감해질 거야.’
어차피 오식이만 봉인해 놓으면, 조사 과정 등에서 내게 혐의가 내려질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래저래 엮이고, 귀찮은 일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었다.
‘서두르자.’
먼저 오식이를 카드에 봉인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러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도망치느라 두고 온 내 검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처억….
“됐다.”
검을 회수하고는 곧장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오는 뭔가를 보고 말았다.
정인영과 박정아가 챙기던 가방이었다.
‘오오! 저건 가져가야지!’
가방은 세 개나 됐다.
두 개는 프록의 알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마정석이 들어 있었다.
“많이도 모았네. 흐흐!”
프록의 알은 둘째 치고, 마정석의 양이 꽤 되는 것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끙차!”
내 것까지 포함해 가방 네 개를 짊어졌다.
무리였다.
아무래도 프록의 알이 든 가방 하나는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아까운데….”
욕심과 아쉬움에 잠시 고민했다.
오식이를 다시 꺼낼 생각도 해봤다.
‘아니야… 그냥 하나를 포기하는 게 나아!’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면, 더는 오식이를 쓸 수 없게 된다.
괜한 짓을 하기보다는 애초에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결국, 프록의 알이 든 가방 하나를 내려놨다.
또다시 미련을 갖지 않기 위해 과감히 돌아섰다.
그러다가 다시금 눈에 들어오는 뭔가를 발견했다.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최 씨의 검이었다.
‘흠….’
투박하지만, 내 것보다 훨씬 좋은 최 씨의 검이었다.
가져다 팔면 몇십만 원은 족히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들고 갈 수 있겠지?”
고개를 갸웃한 뒤, 가까이 다가가서 검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묵직했지만, 가져가는 것에 무리는 없을 듯했다.
“좋아, 가자!”
앞뒤로 짊어진 세 개의 가방과 손에 든 검까지… 묵직한 만큼의 뿌듯함을 안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곧 또 다른 고민과 갈등, 포기의 순서를 밟아야만 했다.
앞서, 내가 도망을 쳤던 루트는 나름 프록 밭을 벗어나는 최단 거리였다.
해서, 정인영과 박정아가 쓰러져 있는 장소를 다시 지나쳐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는 박정아의 시체를 봐야만 했고, 이번에도 눈에 띄는 뭔가를 발견하면서 고민은 시작됐다.
“흐음… 저게 더 비싸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박정아가 사용하던 활이었다.
뭐, 검보다는 가벼운 활이기에 한쪽 어깨에 그냥 짊어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박정아의 활을 발견하고 난 직후에 떠오른 또 다른 전리품이 문제였다.
최 씨의 검은 비교할 바도 안 되고, 박정아의 활보다 몇 배나 더 비싸고, 값진 정인영의 검.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최 씨의 검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 차라리 내 것을 버릴까?’
그러는 게 가장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 지랄 맞은 장소에 내 것을 두고 간다는 것이 아무래도 찜찜했다.
“어쩔 수 없지….”
끝내 최 씨의 검을 버리기로 하고는 박정아의 활을 챙겼다.
그러고는 정인영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으, 끔찍하네….”
대짜로 뻗어 있는 정인영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온몸이 흙탕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고, 예쁜 얼굴마저도 퉁퉁 부어 본연의 미모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게 마음씨를 곱게 먹었어야지.”
들을 수 없는 충고를 뱉어 내고 정인영의 손에 들린 검을 회수했다.
내친김에 그녀가 신고 있던 AIR WIND도 벗겨냈다.
사이즈가 작아서 신지는 못해도, 팔게 되면 거액을 챙길 수 있을 터였다.
“이크, 너무 지체했다.”
생각보다 길어진 머무름을 깨닫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 * *
“으으, 죽겠네!”
앞뒤로 짊어진 가방이 너무나 무거웠다.
특히나 등에 진 프록의 알이 든 가방은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듯 어깨를 짓이겨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박정아의 활은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고, 옆구리에 동여매듯 착용한 정인영의 검도 내 검과 부딪치며 계속해서 걸리적거렸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죄다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게 다 돈이란 생각에 몇 번이나 이를 악물었다.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고 온 가방과 최 씨의 검이 그것이었다.
‘크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만… 아니야, 아무래도 아까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까웠고, 욕심이 났다.
게다가….
“이왕 하는 거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쩝!”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서둘러 챙긴 것도 마음에 걸렸다.
최 씨나 김 씨는 모르겠지만, 정인영과 박정아는 뭔가를 더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값어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여기게 됐다.
해서, 결심했다.
‘그래, 다시 가자!’
던전의 입구를 몇 미터 남기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
욕심과 미련이 남은 탓에 내린 결정과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프록의 알부터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야 이동과 움직임이 수월할 테니 말이다.
프록의 알을 정식으로 팔려면 A 구역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일.
가격을 덜 받기는 하겠지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노점상을 이용하기로 했다.
바로 노점상을 찾았다.
“저기… 프록의 알도 사시나요?”
“예, 삽니다.”
“이 정도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어이쿠! 많기도 하네요.”
가방 안을 확인한 노점상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고는 한 쪽 허공을 응시하며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음… 이 정도면 300만 원쯤 드릴 수 있겠네요.”
“에? 300만 원이요?”
노점상의 말에 반박하듯 되물었다.
족히 100개는 될 프록의 알을 겨우 300만 원에 후려치는 것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참고로 내가 아는 프록의 알의 가격은 개당 7만 정도였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도 좀 남겨야 하는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도 넘게 후려치는 건 너무 하지 않나요?”
“워낙에 무게가 많이 나가고, 이렇게 많은 양을 사는 곳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노점상의 말도 일리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두고 온 프록의 알이 아까워 빨리 처분할 생각이었지만, 반 이상의 가격으로 후려쳐 버리면, 개고생하면서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째야 하지?’
머리를 굴렸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판이었다.
‘젠장!’
고민 끝에 자잘한 마정석 몇 개만 팔았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노점상의 틀에 박힌 인사에 ‘다시는 볼 일 없다!’라고 속으로 대꾸하고는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가까운 A 구역으로 가 주세요.”
….
A 구역에 도착해서는 바로 모텔로 향했다.
B 구역의 모텔보다 거리도 멀고,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지만, 안전이나 편의성을 생각한 올바른 처사였다.
“후우… 일단은 안전하겠고… 늦지는 않겠지?”
가방과 장비류를 침대 옆에 잘 두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얼추, 2시간가량이 흐른 뒤였다.
“흠… 애매한데?”
살짝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했다.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왔고, 택시에 올랐다.
다시 던전으로 향했다.
….
“헐….”
문제의 장소에 다시 도착해, 처음 뱉어 낸 반응이었다.
여전히 프록 밭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러나 내가 떠나기 직전과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정인영과 박정아의 시체가 없었다.
프록의 알이 든 가방도 사라진 채였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최 씨의 검과 김 씨의 특이하게 생긴 둔기, 그들의 토막 난 시체뿐이었다.
‘다시 왔다 간 건가?’
바로 김지유와 오민주를 떠올렸다.
이런 일을 할 이들은 그녀들밖에 없었다.
‘큰일 날 뻔했군.’
다시 돌아온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했더라면, 또 한 번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챙겨 가야겠다.”
최 씨의 검과 김 씨의 둔기를 챙기고는 바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
다시 A 구역으로 돌아왔다.
모텔로 향하기 전에 무기점에 들렀다.
“이것들 좀 팔려고 하는데요.”
내가 내놓은 최 씨와 김 씨의 무기들을 살핀 무기점 주인이 곧장 가격을 제시했다.
“검은 50만 원이고, 이건 안 삽니다.”
그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검보다 무거운 걸 괜히 들고 나왔다는 후회도 했다.
“그렇게 안 좋은 것인가요?”
“예, 이건 그냥 고물상에 파셔야 합니다.”
단호함을 넘어선 냉정함에 민망함까지 느꼈다.
“그럼, 이것만 계산해 주세요.”
최 씨의 검을 팔았다.
무기점 주인이 돈을 세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나 정인영의 검과 같거나 비슷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똑같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모양새의 검을 하나 찾았다.
“저 검은 얼마쯤 하나요?”
“1500만 원입니다. 여성분들한테 인기죠.”
“아아… 살 때 가격인 거죠?”
“그렇죠.”
“그럼, 팔 때는요?”
“뭐, 상태를 봐야 하겠지만, 1000만 원쯤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걸려 있는 검보다 정인영의 검이 더 좋아 보였다.
그렇다는 건, 일단 1000만 원 이상이란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땡잡았군! 크크크!’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정인영의 검이 천만 원 이상…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진짜 ‘명품’이란 것을 말이다.
게다가 고물상에나 가져다 줘야 한다는 김 씨의 둔기가 의외로 쓸모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아무튼.
50만 원을 받아들고는 무기점을 나왔다.
그 후 모텔로 향했다.
원래는 시장에 들를 생각이었다.
오식이에게 줄 고기를 사야 했으니까.
하지만, 처음 온 동네라 시장이 어디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괜히 찔리고, 불안한 마음에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그래, 돈도 많은데, 오늘은 배달로 때우자!’
….
―서… 누….―
“왜?”
―좋… 다….―
치킨에 족발에 보쌈까지….
제 앞에 한가득 쌓인 갖가지 고기들에 오식이가 행복해했다.
“많이 먹어라, 모자라면 말하고. 오늘은 마음껏 사 줄 테니까!”
충분히 대우를 받아도 될 오식이였다.
목숨도 구해 주고, 돈이 될 전리품들도 잔뜩 얻게 해 줬으니까.
흐뭇하게 녀석을 바라보며, 닭 다리를 하나 잡고 뜯었다.
“바삭! 오물오물… 크으으! B 구역 치킨은 닭이 아니라, 비둘기라는 소리가 있더니만, 정말 그런 거였나?”
바삭하고, 육즙마저 가득한 치킨 맛이 너무나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