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6)
나를 내려다보는 오식이의 표정에서 진심 어린 걱정도 읽을 수 있었다.
‘어, 아파….’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속으로만 말했다.
그런데 오식이가 대답하듯이 내게 말을 전해 왔다.
―나… 도… 아… 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간에 살짝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어, 허공을 향해 고개를 쳐든 오식이가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오식이의 울부짖음에 가슴이 울려왔다.
아니, 뜨거워졌다.
‘…??’
뜨거워짐이 점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특히나 옆구리와 왼쪽 종아리에 열기가 집중됐다.
통증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열기가 더해져서 조금 더 고통스러웠다.
“크으….”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오식이를 쳐다봤다.
“크르르륵!”
오식이가 으르렁거렸다.
정인영과 박정아를 향해서였다.
놀란 마음을 추스른 그녀들이 오식이를 향해 검과 활을 겨누고 있었다.
‘조, 조심해….’
이번에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고, 걱정됐지만,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내 머릿속으로 다시금 오식이의 말이 전달됐다.
―으… 리….―
“…??”
―의… 리….―
“….”
―서… 누… 지… 킨… 다….―
순간, 가슴이 쿵 했고, 먹먹해졌다.
그러나 곧장 감동이 흐려졌다.
―고… 기… 를… 위… 해….―
말을 마친 오식이가 앞으로 돌진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였다.
쿵쿵쿵!
“피, 피햇!”
정인영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피했다.
하지만, 박정아는 당황했는지 꼼짝도 하지 못 했다.
“크르륵!”
낮게 으르렁거린 오식이가 그런 박정아를 빤히 쳐다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정아가 오식이에게 활을 겨누었다.
“이잇!”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박정아의 움직임과 거의 동시에 오식이가 오른쪽 팔을 옆으로 젖혔다가 그대로 휘둘렀다.
부우웅!
퍼어억!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둔탁한 소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오식이의 무식한 주먹에 제대로 맞은 박정아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라도 되듯 길게 늘어졌다.
데굴데굴….
튕기듯 옆으로 몇 미터나 날아간 박정아는 바닥을 구르다가 일말의 꿈틀거림도 없이 그대로 뻗어 일어나지 못했다.
즉사….
단 한 방에 그대로 죽어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이런 미, 미친….”
정인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오식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펴, 평행? 아니, 사, 사선인가?’
정인영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뭐가 됐든, 맞으면 치명상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런 걸 알 턱이 없는 오식이가 정인영을 향해 똑바로 다가섰다.
쿵! 쿵! 쿵!
스으윽….
정인영이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평행 긋기도 아니고, 사선 베기도 아닌, 내려치기!
1레벨부터 익힐 수 있는 검사 계열의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지만, 그만큼 친숙하고, 안정적이며, 빠르다.
10레벨 이상인 정인영이 쓰기에 당연히 강하기도 할 터.
하지만, 살짝 늦은 감이 없잖아 있어 보였다.
오식이의 다가섬이 좀 더 빠른 느낌이랄까?
타이밍상, 오식이의 공격이 먼저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서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두 개의 소리가 들려왔다.
쐐애액!
쐐액!
‘…?!’
익숙한 소리에 그것이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란 것을 깨달았다.
누가 쏜 것인지도 알았고, 피하기가 늦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차례대로 이어진 깨달음이 막 끝났을 즈음, 화살 두 발이 정확히 오식이의 등에 명중했다.
투욱… 픽….
아니, 오식이의 등에 맞는 순간, 하나는 바닥으로 다른 하나는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멀리서 날아온 탓에 명중 직전, 그 힘을 잃은 듯 보였다.
분명, 직전까지는 기세를 잃지 않았었는데도 말이다.
‘레벨 차 때문에 안 통하는 모양이지?’
그랬다.
오식이는 15레벨, 김지유와 오민주는 3레벨… 아니, 스킬 ‘매의 눈’을 사용할 줄 아는 박정아와 같은 레벨이라면 7레벨 이상이겠지만, 어쨌든 간에 레벨 차는 상당했다.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 리가 없음이 당연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오식이의 신경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린 효과는 있었다.
“크르륵….”
낮게 으르렁거린 오식이가 팔을 등으로 뻗고는 긁적거렸다.
그러면서 화살이 날아온 곳을 돌아봤다.
그 사이, 정인영이 내려치기 자세를 마무리 지었고, 곧장 검을 내리쳤다.
“타압!”
곧고, 힘이 실린 기합과 함께 정인영의 검이 수직으로 그어졌다.
순간, ‘정직함’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어, 정직함에서 느껴지는 멋… 아름다움까지 엿볼 수 있었다.
파샷!
하지만, 검 끝이 목표인 오식이에게 닿지 않았다.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만약, 정인영이 조금만 더 앞으로 발을 뻗었더라면… 만약, 김지유와 오민주가 날린 화살이 조금만 더 늦게 오식이에게 명중했더라면, 분명히 검이 닿았을 터였다.
빗나간 정인영의 공격에 오식이의 시선도 돌아왔다.
막 녀석이 낮게 으르렁거리던 순간!
“크르르… 큿!”
오식이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렸다.
영문을 모르는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가슴께에 새겨진 얕고, 가느다란 생채기를 확인했다.
4단계 내려치기에 이은 검풍의 흔적이었다.
“크르르….”
여전히 영문을 알 턱이 없는 오식이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중지로 생채기를 아래에서 위로 훑었다.
그러고는 정인영을 노려봤다.
약간의 분노와 가소로움이 녀석의 얼굴에 깃들어져 있었다.
반면, 정인영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치잇!”
정인영이 혓소리를 내고는 뒤로 껑충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오식이도 몸을 앞으로 돌진시켰다.
그러고는 타이밍에 맞춰 펀치를 날리려는 듯 주먹을 어깨너머로 한껏 젖혔다.
“앗!”
정인영은 오식이의 동물적인 반응과 공격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놀란 반응과 함께, 아직 발이 땅에 닿기도 전인 상태에서 자신에게 날아올 거대한 펀치를 막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웅크렸고, 양팔을 교차해 가드를 굳혔다.
퍼어억….
오식이의 펀치가 정인영의 가드 위를 때렸다.
‘어라?’
뭔가 맥이 좀 빠지는 듯한 타격음에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와 함께 조금은 이상하고, 어째 좀 웃길 수도 있는 광경이 포착됐다.
오식이의 펀치가 정인영의 가드 위를 때린 순간, 그녀의 몸은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에… 녀석의 힘에 의해 그녀의 몸이 붕 하고는 뒤로 조금 더 밀려났다.
마치, 그네를 뒤로 밀어 준 느낌이랄까?
차악….
정인영이 자신의 예상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최악의 상황이 됐을지도 모를 상태에서 어째 좀 밋밋하게 일이 진행된 것이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정인영이 가드를 더욱더 굳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바짝 다가선 오식이가 두 번째 공격을 날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오식이가 첫 번째로 날린 맥 빠지는 공격이 어쩌면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거리 재기였나? 더 강하고, 정확성 높은 두 번째 공격을 위한 속임수?’
피하고, 달려드는 움직임 속에서 상대에게 강한 일격을 날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완벽한 사정거리와 제대로 힘이 실린 공격의 적정 범위를 조절하거나 찬스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 공방 중에 상대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고, 속임 동작은 물론, 공격의 받아침과 흘림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게 아니겠는가.
뭐, 내가 오식이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에이, 설마…’ 내지는 ‘그럴 리가…’라며 그냥 넘겼지만, ‘그래도 혹시…’하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간에….
부웅! 부웅!
오식이가 오른쪽 팔과 어깨를 붕붕 돌려댔다.
만화나 애니에서 볼 법한 과장된 동작이었다.
게다가….
“크르르르!”
빙빙 돌려대던 주먹을 힘껏 뻗으며 외친… 꽤 크고, 절도(?)있는 으르렁거림은 더욱더 만화 내지는 애니의 그것과 같았다.
―울… 트… 라… 펀… 치!―
“….”
아, 아무튼….
오식이의 울트라 펀치가 정인영의 가드 위로 작렬했다.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풍선이 터지기라도 한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오식이와 정인영 사이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이기도 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숨이 멎고, 시간도 멈춘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오식이의 가공할 펀치에 정인영의 몸이 뒤로 튕기듯 날아갔다.
그녀의 찢어지는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철푸덕… 데굴데굴….
저만치 날아간 정인영이 축축한 바닥을 사정없이 굴렀다.
곧 완전히 뻗어 버린 듯 미동조차 없이 널브러졌다.
내 처지를 잊은 채, 안쓰러운 마음이 들며,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크르르….”
오식이가 앞으로 쭉 뻗은 팔을 거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내, 녀석의 말이 머릿속으로 전달됐다.
―끝… 났… 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앗!’
아니다.
아직 남은 게 있다.
김지유와 오민주 말이다.
휙!
급히 시선을 그쪽으로 보냈다.
“….”
걱정할 이유가 이내 사라졌다.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후아아….”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똑바로 누웠다.
몸에 돌던 열기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응?”
옆구리와 종아리의 통증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며 몸 상태를 계속 살폈다.
여전히 내 종아리에는 부러지고, 꺾인 화살이 박혀 있는 상태였다.
쿵! 쿵! 쿵….
오식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고마움이 컸지만, 왠지 뻘쭘한 마음에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아… 파?―
“어, 아직 아파.”
내 말에 오식이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종아리에 박혀 있는 화살을 향해서였다.
―아… 파….―
“그래, 아프다고.”
―이… 거… 아… 파….―
“응? 이거 뭐? 화살?”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오식이가 제 팔을 들어 보였다.
정확히는 팔뚝이었고, 두툼한 검지로 팔뚝의 어딘가를 콕콕 찔러댔다.
얘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한참을 보다가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일전에 녀석이 재수 없는 놈들에게 화살을 맞았던 기억이었다.
“아, 너도 화살 맞아 봤지… 맞아, 아파.”
솔직히 이전만큼 아프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러나 계속해서 엄살(?)을 피웠다.
뭐, 얻어먹을 것도 없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스윽….
한참이나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오식이가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내 다리를 향해서였다.
지레 겁을 먹고는 소리쳤다.
“야, 너 뭐 해?”
하지만, 오식이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
내 다리를 잡은 녀석이 숨도 쉬지 않을 만큼 빠른 동작으로 종아리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촤악!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눈이 뒤집히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어느 정도 가시고, 잠시 잊고 있던 고통과 통증이 몇 배나 강하게 일었다.
“끄으으윽!”
그에, 이를 악물고서 버둥거렸다.
―이… 제… 안… 아… 파….―
녀석이 태연하게… 만족한다는 듯이 말했다.
“아, 씨바! 아파! 아프다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속해서 녀석을 향해 쌍욕과 함께 지랄을 날려댔다.
“이런 개! 썅 @#)%*)#$*[email protected]$_*)$!….”
그러다가 이상함을 느끼고서 욕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라?”
방금 녀석이 화살을 뽑아낸 내 종아리의 구멍이 빠르게 메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