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5)
“….”
어떠한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했던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편이라고 여겼던 박정아의 눈빛과 표정은 이제 나를 하찮은 벌레만도 생각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질질질….
그 사이, 이제는 생기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 최 씨와 김 씨를 김지유와 오민주가 한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키는 크지만, 말라깽이인 최 씨는 여자 둘이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김 씨는 달랐다.
“끄응….”
“이잇!”
이리 끌고, 저리 당겨도 쉽지가 않은 모양새.
하긴, 그냥도 힘들 텐데, 축 늘어지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이 돼지 자식!”
“아휴, 그냥 여기다가 묻는 게 빠르지 않을까?”
김지유와 오민주가 투덜거리며, 김 씨의 시신을 내팽개치고는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
순간, 오민주가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급히 박정아를 향해 소리쳤다.
“저, 정아야!”
“으응?”
“걔 좀 잠깐 빌리자.”
“응? 아아… 그래!”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캐치했다.
잠시 잠깐 목숨을 부지했다는 기쁨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더 우울해졌다.
죽을 운명은 바뀌지 않을 테고, 이제 막 숨이 끊긴 시체를 손으로 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중노동이 될 것이 뻔했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지랄 같아졌다.
“야, 뭐 해? 빨리 가 봐!”
박정아가 턱짓으로 내게 명령했다.
뾰족한 화살촉은 여전히 나를 향해 조준되어 있었다.
빠르게 주위를 힐끔거렸다.
당연히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어기적….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더 눈치를 살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스윽….
박정아가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리며, 계속해서 나를 주시했다.
행여, 허튼짓이라도 할라치면, 바로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놔 버릴 거라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쪽 잡아!”
오민주가 김 씨의 두 다리를 가리키며 내게 명령했다.
허리를 구부리고는 힘을 주며 김 씨의 두툼한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김지유와 오민주가 김 씨의 팔을 한 쪽씩 나눠 들었다.
“끄응….”
세 사람이 동원됐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더불어 발까지 푹푹 빠지는 통에 몇 걸음 옮기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미끈!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김지유가 손에 힘이 빠진 듯 실수를 저질렀다.
그에, 오민주와 나도 김 씨의 육중한 몸을 감당할 수 없어, 그대로 놓쳐 버렸다.
질퍽한 바닥으로 떨어진 김 씨의 몸이 물 파편을 사방으로 튀겨댔다.
“아이, 짜증나!”
“아, 그래서 내가 그냥 묻어 버리자고 했잖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그, 그럼… 그렇게 할까?”
그녀들의 대화에 하마터면 ‘그럽시다!’라고 동조할 뻔했다.
제멋대로 벌어지려 한 입술을 꾹 다물고는 얼굴에 튄 물기를 대충 닦아 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박정아가 뒤에서 소리쳤다.
“아, 아니야. 괜찮아!”
김지유가 빠르게 대답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놓쳤던 김 씨의 팔을 다시 붙잡았다.
나와 오민주도 서둘러 김 씨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또다시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는 멈춰 섰다.
“하아… 미치겠네.”
오민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김지유도 짜증과 함께 말을 뱉어 냈다.
“아오! 이걸 그냥 토막을 쳐 버릴 수도 없고!”
참으로 섬뜩한 말이었다.
그러나 오민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짜증이 나긴 했지만, 별생각 없이 말을 뱉어 낸 김지유를 쓱 쳐다본 오민주가 말했다.
“뭐 어때? 하자!”
“응? 뭘?”
“토막 쳐 버리자며? 그럼, 쉽게 옮길 수 있잖아. 아,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 했지?”
오민주의 말에 김지유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만, 이내 나를 쳐다봤다.
거의 동시에 오민주의 시선도 내게 날아들었다.
얼핏 섬뜩한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느꼈던 불길함이 이런 상황으로 이어지다니….
“저, 저요?”
검지로 내 가슴을 콕 찍으며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오민주가 답했다.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아아….”
씨바… 존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버리고 말았다.
“뭐 하냐? 알아들었으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김지유의 재촉이 이어졌다.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가득 찼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는 결론 또한 내려졌다.
“하아….”
낮은 한숨을 작게 뱉어 내고는 몸을 돌렸다.
앉아 있던 자리에 두고 온 검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저벅… 저벅….
김 씨의 시체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때보다 발걸음이 더욱더 무거웠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그리도 크게 저질렀기에 이런 가혹한 시련과 지랄 맞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봤다.
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한숨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후우….”
어느새 앉아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얌전히 놓여 있는 나의 20만 원짜리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다시금 한숨을 흘렸다.
그 뒤 허리를 구부려 검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절호의 찬스가 바로 지금임을 깨달았다.
김지유와 오민주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게 화살을 겨누고 있던 박정아도 정인영과 함께 딴짓을 하는 중이었다.
그랬다.
딱히 내게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는 소리다.
‘도망칠 수 있을까?’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숨거나 피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평지.
뭐, 프록 밭을 벗어나면, 곧장 숲길이 나오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인 스킬로 인해 민첩성이 남달라지는 궁수가 셋에 ‘AIR WIND’를 착용한 레벨 10 이상의 정인영을 따돌릴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래, 이대로면 죽는 건 당연지사잖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스윽….
다시금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내게 관심을 둔 시선은 없었다.
‘검은 포기한다.’
아깝지만, 무게나 걸리적거림을 생각해 검은 버리기로 했다.
구부러진 허리를 그대로 둔 채, 고개를 쳐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꾸우욱….
지면을 딛고 있는 오른쪽 발가락에 힘을 잔뜩 줬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다다다다닷….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떠한 소리도 흘리지 않은 채,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더 빨리! 다리야 힘을 내! 사,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25년을 살면서 이토록 마음이 급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뛰거나 도망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절실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당연할지도….
하지만, 이런 나의 절박함이나 간절함은 금세 수포가 되었다.
쐐애애액!
등 뒤로 들려오는 섬뜩하고, 날카로운 소리.
그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던 그 순간, 지면을 박차던 내 왼쪽 다리를 누군가가 힘껏 붙잡는 느낌이 일었다.
“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며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 버렸다.
“끄으윽….”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 때문에 전해지는지 모를 고통에 신음했다.
절로 찡그려진 미간을 펴지도 못한 채, 힘겹게 눈을 떴다.
물과 흙이 튀어 한쪽 눈은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떠진 다른 쪽 눈으로 사태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흐익!”
왼쪽 종아리에 화살이 하나 박혀 있었다.
지면을 뒹굴며 그렇게 된 것인지, 앞쪽은 반쯤 꺾여 있었고, 뒤쪽은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종아리에 박힌 화살을 온전히 확인하자마자, 강렬한 통증이 진하게 날아들었다.
앞선 이유 모를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격한 통증에 저절로 몸이 뒤틀렸다.
“윽!”
또 다른 극심한 통증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옆구리가 너무나 아팠다.
부러졌든, 금이 갔든, 크게 다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다닷….
그 사이, 정인영과 박정아가 내게로 달려왔다.
전혀 기쁘지 않은 다가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썩을!”
정인영이 날카로운 외침을 토해 냈다.
이어, 분노로 가득 찬 싸커 킥을 내게 날렸다.
그녀의 발끝이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던 내 옆구리에 제대로 꽂혔다.
퍼어억!
“헛….”
비명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눈앞이 번쩍였고, 숨이 턱 막혔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초쯤….
“끄어어어어억!”
목이 메고, 숨이 넘어가는 처절한 비명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게 흘러나왔다.
눈물과 콧물, 침까지 질질 흘러내렸다.
“하, 이 새끼가 감히 도망을 쳐?”
정인영이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한정판 AIR WIND의 밑바닥이 내 몸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짓밟아댔다.
본능적으로 옆구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발길질을 죄다 받아 냈다.
그러다가 한 번 더 문제의 옆구리를 짓밟혔다.
우직….
기분 나쁜 소리와 끔찍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번엔 무조건 부러졌다는 생각도 이어졌다.
고통과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냥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허읏… 끄으윽… 흣….”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사경의 고통과 통증에서 헤매던 그때였다.
[경고! 경고!]
신비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척이나 거슬렸고, 짜증도 났다.
그러나 신비한 목소리는 전혀 아랑곳없이 계속 이어졌다.
[위급 상황 발생!]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의 커다란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황급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가뜩이나 아파 죽겠고, 상황도 지랄 같은데, 이건 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쩝!
도움이라곤 전혀 되지도 않을… 이미 알고 있고, 당연하기만 한 소리를 지껄여대는 신비한 목소리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신비한 목소리가 들릴 리 없는 정인영도 짜증이 가시지 않는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차라리 죽여줘!’
진심에 조금 더 가까운 나의 청에 응하듯 정인영이 뽑아 든 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고통에 신음하며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 까닭이었을까?
왠지 온몸이 나른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잠시 멈췄던 신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분명히 다급함을 담고 있었지만, 어쩐지 아득하고, 아늑하게만 들려왔다.
[경고! 경고!]
[생명 수치가 최하로 떨어졌습니다.]
[특별한 조치가 없을 시, 곧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몸이 나른하고, 마음이 편안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음… 별 것 없잖아?’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정인영의 검에 남은 숨통이 끊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살짝 일기도 했다.
‘뭐가 됐든… 빨리 끝내자….’
해탈의 경지에라도 이른 듯, 살고자 하는 의지는커녕, 빨리 이 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귀로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금 이어졌다.
[서약의 약속으로 인해 대상(오식이)의 봉인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응?
오식이는 갑자기 왜?
의문이 들었다.
이내, 내가 죽음에 이르면서 서약이 깨지고, 오식이가 자유의 몸이 되는가보다 싶었다.
‘그래, 딱히 한 것은 없지만, 고생했다. 앞으로 고기도 많이 먹고, 재미나게 살아라.’
이 와중에 녀석을 신경 쓰는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크아아아아아앙!”
오식이의 우렁찬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헉! 이, 이게 뭐야?”
“꺄악! 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정인영과 박정아의 호들갑도 이어졌다.
조금이나마 기분이 통쾌해졌다.
힘도 없고, 조절도 되지 않아, 얼굴에 미소를 그릴 수 없는 게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런 내 머릿속으로 오식이의 말이 전해졌다.
―서… 누… 아…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