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2)
그녀의 손에 들린 마정석의 개수는 다섯 개였다.
‘5레벨짜리 다섯 개면… 75만 원인가?’
한 번의 사냥으로 75만 원이라니, 이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기뻐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은 짐꾼으로서 사냥에 참여했을 경우의 얘기다.
오늘은 나도 사냥의 주역… 못 해도 조역쯤은 됐다.
‘아, 아닌가?’
뭐, 도맡아 한 일이 프록의 알 채취였고, 그게 짐꾼들이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포지션 자체가 짐꾼이 아닌 팀원이었기에… 흠흠!
‘이런, 씨바… 이거 생각할수록 애매한데?’
나도 모르게 부당함을 이해할 뻔했다.
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냈다.
‘그래, 균등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성과라는 게 있는데 이건 아니지!’
팀으로 사냥을 할 경우, ‘전리품의 분배는 균등!’이라는 게 이 바닥의 정해진 룰이다.
간혹, 기여도에 따라 분배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오늘의 사냥 성과와 비교했을 때, 지금 내가 받은 마정석은 턱없이 부족했다.
더는 괴물이 생성되지 않는 정화 던전이었다.
어제도 사냥을 했다지만, 충분하리만큼… 막말로 눈에 밟힐 정도의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던 프록 밭이었다.
이곳을 일곱 명이 죄다 휩쓸었다.
오랜 짐꾼의 노하우를 통해 계산된 오늘의 사냥 성과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중박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단 소리다.
뭐, 두 개의 배낭을 꽉 채우고도 남는 프록의 알이나 한데 모아 놓은 마정석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일.
더불어, 앞서서 마정석을 받은 김지유나 오민주의 것과 비교해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팀원으로서의 지분이라는 게 있을 텐데… 쓰읍!’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났다.
뭐가 됐든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자, 분배도 끝냈고, 조금만 더 쉬다가 나가도록 할게요.”
분명, 분배를 끝냈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최 씨와 김 씨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다.
‘뭐지?’
너무나 의아했다.
‘설마… 넷이서 한 팀인가? 아니면, 따로 만나기라도 한 건가?’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고서 생각했다.
그런 것이라면 해답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정인영과 박정아가 둘이서 뭔가를 소곤거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희 먼저 가볼게요.”
그녀들이 떠남을 알려 왔다.
얼추 휴식을 취할 만큼 시간을 보냈고, 어차피 던전에서 나가야 했기에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정인영과 박정아가 갑작스럽고, 뜬금없게 떠남을 알린 것도 있겠지만, 그런 그녀들을 빼고는 죄다 장비류를 풀고서 쉬고 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덜렁 검 하나만 챙기면 그만인 나는 충분히 따라나설 수 있었으나, 분위기상 끼기가 뭐해서 가만히 있었다.
‘흐음… 팀도 아닌가 보네? 그럼 뭐지?’
최 씨와 김 씨가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에 관한 의문이 이어졌다.
‘미리 정산을 받은 건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최 씨와 김 씨를 힐끔거렸다.
김 씨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는 김지유를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직 뜯지도 않은 채,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빵을 쳐다보고 있었다.
‘킁….’
한심한 듯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 나를 향한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
무리의 제일 끝에 앉아 있었기에 내 앞을 지나쳐 가야만 할 정인영과 박정아.
그 중, 박정아가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 귀여운 것… 흐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러다 박정아의 옆에 서 있는 정인영을 쳐다보게 됐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휙!
나와 눈빛이 마주친 정인영이 곧장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나 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내가 김 씨를 바라보던 그것과 비슷했었다.
“쩝….”
작게 입맛을 다시며, 최 씨와 김 씨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최 씨는… 뭔가 안절부절못한 반응을 내비치고 있었다.
‘얼라리?’
보자마자, 낌새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잠깐!”
역시….
최 씨가 미련이라고는 1도 없이 자리를 뜨려는 정인영과 박정아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지유의 빵을 노리던 김 씨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최 씨를 향했다.
“네? 뭐죠?”
정인영이 돌아서면서 반응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최 씨가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약속이 틀리잖아?”
그럼, 그렇지.
뭔지는 몰라도 모종의 거래가 있긴 있었나 보다.
급 흥미진진해지려는 상황에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관전 모드에 돌입했다.
팝콘은 아쉽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시죠?”
정인영은 도통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던 최 씨가 난감한 표정과 함께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살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처음과 얘기가 다르잖아.”
“그러니까, 뭐가 다르냐고요?”
정인영의 반응은 일관됐다.
정말로 모르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거나 둘 중 하나같았다.
“치잇… 진짜 이럴 거야?”
답답했다.
뭔가를 숨기듯, 최 씨는 답을 자꾸만 회피했다.
정인영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런 최 씨를 향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말씀을 똑바로 하세요. 그래야 알아듣죠.”
모두의 시선이 최 씨에게로 향했다.
최 씨는 아랫입술을 깨물기만 할 뿐, 끝내 답을 미뤘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궁금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정인영이 살려 줬다.
“처음 팀을 모을 때, 제가 그랬죠? 분배는 마정석으로만, 알은 제가 갖기로 했고요. 맞죠?”
“그, 그래….”
“그때 뭐라고 하셨죠?”
“….”
정인영의 물음에 최 씨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기다리던 정인영이 제 입으로 답을 말했다.
“그때, 분명히 우리는 마정석은 필요 없다. 레벨 업이 목적이니, 프록 사냥에 끼워 주기만 해라. 적극적으로 사냥에 임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가끔 그런 이들이 있긴 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레벨 업만을 목적으로 사냥하고 팀에 합류하는 이들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특별한 경우였다.
팀원들의 레벨이 본인보다 높거나 전투 타입이 아닌 직업의 각성자들이 택하는 선택지랄까?
보통, 자신보다 레벨이 낮거나 비슷한 수준의 괴물을 사냥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했다.
자신보다 강한 괴물과 싸우면 죽을 위험이 커지니까.
하지만, 레벨이 높은 괴물을 잡으면, 그만큼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고, 보상도 크다.
1레벨짜리 괴물을 열 마리 잡는 것보다는 5레벨짜리 괴물에게 어느 정도 대미지를 주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운이 좋아 막타를 날린다면 진짜진짜 베스트.
그런 의미로 엄청난 돈을 주고서 고 레벨의 헌터들을 고용.
일명 ‘버스 타기!’라는 편법으로 빠르게 레벨을 올리는 이들이 있었다.
뭐, 그만한 돈이 없다면, 굽신굽신해서라도 레벨이 높은 팀에 합류.
보상 대신에 경험치만 얻어 가는 이들이 있었고 말이다.
그것을 ‘쫄’ 내지는 ‘쫄을 받는다’ 등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조금 이상했다.
분명, 최 씨와 김 씨는 5레벨이었다.
나는 1레벨, 나머지 여자들은 죄다 3레벨이었다.
쫄을 받아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버스를 태워 줄 입장이란 말이다.
물론, 클래스가 D라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고만고만한 초보 레벨 수준이기에 아직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다고 보는 게 옳았다.
또, 사냥터와 타깃이 프록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프록의 주의를 끌면서 훨씬 더 위험한 위치에 있으니, 오히려 생명 수당을 얹어 받아야 하지 않을까?
뭐, 이런 거 저런 거를 다 떠나서, 애초에 원거리 계열 각성자와 둘이서만 팀을 이뤄 사냥을 했다면, 경험치는 물론이고, 분배도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번 사냥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굳이 여럿이 팀을 이루고, 보상도 정산받지 않는다?
‘이건 뭐, 호구 새끼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도무지 이해 못 할 짓을 한 최 씨를 쳐다봤다.
정인영이 또박또박 뱉어 낸 이 호구 같은 조건이 맞는지, 최 씨는 제대로 반박도 못 한 채, 우물쭈물하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 그건 맞지만….”
“그런데요? 제가 무슨 약속을 어겼다는 거죠?”
정인영이 따지듯이 물었다.
그에, 이 호구 새끼가 또다시 침묵했다.
분명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오! 답답해라!’
복장이 터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할 수만 있다면, 놈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서라도 빨리빨리 하고 싶은 말을 하라며 윽박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인영도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긴 한숨과 함께 그녀가 이 답답한 상황을 그냥 끝내려 했다.
“후우우… 대답하지 않으실 거면 이쯤에서 그냥 끝내도록 해요. 괜히 바쁜 사람 붙잡지 마시고요.”
말을 마친 정인영이 쌩하니 돌아섰다.
‘이, 이런….’
똥을 싸고 나서 밑을 닦지 않은 찝찝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상황이 끝나 버린다면, 왠지 오늘 밤 잠을 제대로 못 잘 것만 같았다.
‘이 등신아! 간다잖아! 아니, 벌써 가잖아! 빨리 말해! 말하라고!’
속으로 놈을 열렬히 응원했다.
놈이 나의 응원에 화답했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말이다.
“여, 연락처!”
최 씨의 커다란 외침에 다들 놀랐다.
이어, 얼굴들이 죄다 물음표로 변해 버렸다.
스윽….
정인영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런 그녀를 향해 최 씨가 다시금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연락처 주기로 했잖아! 사냥이 끝나면 준다고 했잖아!”
뭔가 찌질하면서도 감동(?)스러웠다.
그런 상황은 절대 아니지만, 뭐랄까… 애절한 매달림과 고백의 순간 같은…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소리를 내지른 최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흥분으로 거친 숨을 씩씩대기도 했다.
반면, 정인영은 침착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최 씨를 향해 되물었다.
“제가요? 언제요?”
“네가 그랬잖아! 분명 그랬잖아!”
“글쎄요? 저는 기억이 없는데 어쩌죠?”
“아니야! 그랬다고!”
침착함을 유지하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대하는 정인영과 흥분에 흥분을 더한 채,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최 씨.
도무지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야! 너도 들었지? 말 좀 해 봐!”
최 씨가 김 씨를 향해 소리쳤다.
그에, 김 씨가 눈을 껌뻑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증언 같았다.
친구 사이지만, 약간의 상하 관계가 있어 보이던 터라, 그냥 윽박지름에 고개를 끄덕인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 미치겠네.”
헐….
천사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
그것이 최 씨를 더욱더 흥분시켰다.
“이런, X발! 야, 어디가? 지금 나랑 장난해?”
분위기가 급격하게 살벌함으로 치달았다.
최 씨가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저지를 정도로 말이다.
채앵!
최 씨가 검을 뽑았다.
그러더니 정인영에게 겨누었다.
“내가 만만해 보였냐? 내가 우스워? 어디 한 번 보여 줄까? 내가 어떤 놈인지?”
흥분의 도를 넘어선 최 씨는 정말로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정인영은 여전히 평온했다.
다시금 최 씨를 향해 돌아선 정인영이 피식 웃었다.
“웃어? 이런, 썅! 넌 오늘 뒈졌다!”
최 씨가 검을 다잡고는 정인영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정인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흥분한 최 씨를 더욱더 도발했다.
“하아아… 아무튼, 남자 새끼들은 다 똑같다니까? 우둔하고, 욕심 많고, 주제도 모르고.”
진짜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움찔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향해 박정아가 말했다.
“야, 나서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