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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9화 (19/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절대로 못 할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이제 곧 나도 정인영처럼 해야만 했으니까.

‘흠… 어쩌지?’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내 심정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옆에 있던 박정아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앗!’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머릿속으로는 변명거리를 찾았다.

그때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정인영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우 오빠! 뭐 하고 있어요?”

“네? 저, 저요?”

본능적으로 박정아를 쳐다봤다.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던 박정아가 턱짓으로 정인영 쪽을 가리켰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살짝 당황했고, 의아해했다.

“…??”

다시금 정인영이 소리쳤다.

“오빠!”“…??”

어리바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박정아가 그런 나를 향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언니가 오빠 부르잖아요. 안 가실 거에요?”

그제야 정인영의 외침도 박정아의 턱짓도 이해가 됐다.

이 쉬운 걸 왜 못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찰박찰박….

지면의 질척거림을 느끼고, 이겨 내며 정인영에게 다가갔다.

화가 난 것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미, 미안….”

“됐으니까, 어서 알이나 챙겨요.”

진짜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내 사과도 다 듣지 않는 채 끊어 버렸고, 말투도 차가웠다.

힐끔….

빠르게 눈치를 살폈다,

정인영의 표정에서 뭔가 더 할 말이 있음을 느꼈다.

왠지 그것이 잔소리나 투덜거림일 것 같아서 곧장 프록의 사체로 다가갔다.

너덜너덜해진 혀를 입 밖으로 내민 프록의 대가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코끝을 한 번 찡긋하고는 머리가 잘린 프록의 몸뚱이를 뒤집었다.

놈의 허연 배가 드러났다.

처억!

바로 검을 꺼내 들었다.

검 날을 프록의 허연 배에 가져다 댔다.

원래는 손질하기 쉬운 작은 나이프를 이용해야 했다.

나도 주로 사용하던 것이 있었는데, 옥탑방에 두고 온 터였다.

해서, 조금은 어색하고, 힘겨운 자세로 놈의 배를 갈라야만 했다.

주우욱!

놈의 배가 갈라지며, 투명하고 진득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 액체는 프록의 피였다.

뭐, 색이 투명하다는 이유로 체액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옷이나 손에 닿으면 기름이 묻은 것처럼 얼룩이 지고, 미끈거리며 잘 닦이지 않았다.

액체를 피해 양손으로 놈의 배를 짚고는 번갈아 가면서 눌러댔다.

갈라진 틈으로 놈의 내장들이 삐져나왔다.

꿀럭꿀럭….

비린내가 진동했다.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숨을 멈춘 채, 계속해서 놈의 배를 눌렀다.

꾸욱꾸욱….

참고 있던 호흡이 끝에 달할 즈음.

삐져나오던 내장들과 확연하게 다른 보라색의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록의 알이었다.

색도 그렇지만, 동그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머니 같은 모양새가 흡사 포도송이를 연상케 했다.

“쓰읍!”

지금껏 프록의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손가락에 피를 묻혀야만 했다.

손질용 나이프였다면 그나마 덜 했을 텐데, 기다랗고 무거운 검을 사용했더니 손가락은 물론, 손바닥까지 난리였다.

“여기다가 넣어요.”

정인영이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고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가방 안에는 비닐 팩이 끼워져 있었다.

다분히 프록의 알을 채취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세팅이었다.

뭐, 팀을 이뤄 프록을 사냥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프록의 알은 꽤 비싼 전리품에 속했으며, 확률상 마정석보다 더 많이 얻게 되니 말이다.

프록의 알은 호흡기 질환의 특효약 재료 중 하나였다.

또, 그 약은 지하에서 생활하는 S 구역 사람들이 너도나도 쓰는 필수품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서 잘 팔렸고, 가격도 좋았다.

또한, 앞서 말했던 지형의 지랄 같음이나 솔플의 어려움, 방금 내가 했던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손질 및 채취가 고역스러운 탓에 다들 사냥하기를 꺼리니, 나름 희귀품으로 취급되어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록의 알만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이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있다.

하지만. 많지가 않다.

프록을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7레벨에서 9레벨쯤은 어느 정도 효율이 나오겠지만, 그 이상 레벨이 높아지면, 차라리 다른 괴물을 잡아 마정석을 모으는 게 낫다.

레벨을 올리기에도 더 좋고 말이다.

….

“처리하는 솜씨가 좋은데요?”

정인영이 반색하며 물었다.

화를 내는 것보다 훨씬 보기도, 듣기도 좋기에 씨익 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의문 섞인 혼잣말을 듣고는 얼굴의 웃음기를 바로 지워 버렸다.

“음… 인터넷만 보고도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처음 하면서?”

혼잣말에 담긴 의문의 답을 달라는 듯 정인영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연히 불가능했다.

어찌어찌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나처럼 능숙하게 해낼 수는 없을 터였다.

‘젠장, 큰 실수를 해 버렸군.’

난처함에 일단 시선부터 피했다.

그 뒤 먹힐 만한 변명거리를 고민했다.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초조해하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우에에엑!”

구역질.

처절함과 역겨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리얼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프록의 울음소리를 모두 잠재웠다.

최 씨였다.

놈이 프록의 뒤집힌 몸뚱이를 곁에 두고는 바닥을 네발로 기고 있었다.

이어, 다시금 처절하고 우렁찬 구역질을 거하게 토해 냈다.

“우에에에엑!”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놈의 괴로움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공감… 나 역시 처음엔 그랬었다.

아니, 놈보다 심하면 심했지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었다.

이틀째 물도 못 마실 정도였었으니까.

“으으….”

구겨진 얼굴을 그대로 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정인영을 보게 됐다.

그녀의 고개와 시선도 최 씨를 향해 있었다.

내게 쏠려 있던 그녀의 관심이 놈에게로 완전히 옮겨진 듯했다.

“어휴, 저 오빤 오늘도 그러네?”

사냥 전, 둘씩 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제도 함께 사냥했음을 확인했었다.

뭐, 분위기상 서로 간에 오랜 친분이 있지 않음도 알 수 있었다.

고작해야 정인영과 박정아만이 조금 아는 사이인 듯했고, 김지유나 오민주는 이름 끝에 ‘씨’를 붙인다거나 어색한 존대를 하는 것이 팀을 모으다 만난 사이들 같았다.

딱히 알 필요 없는 남자 둘은 친구…. 약간의 상하 관계가 보이는 그런 사이쯤으로 보였다.

어쨌든.

“어제도 그랬어요?”

“네, 장난 아니었어요. 눈물에 콧물에… 어휴!”

“하하! 남자가 이 정도를 가지고 유난을 떨다니, 웃기네요.”

“풉!”

정인영이 웃음을 뿜었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 그대로 나를 살짝 흘겨봤다.

“지금 복수하신 거예요?”

“뭐, 그냥….”

말을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렇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그에, 정인영이 한 번 더 웃었다.

“후훗! 오빠 참 귀엽네요.”

“제, 제가요?”

“네. 하는 짓이 어린애 같아요.”

“앗! 그건 철이 없다는 소리 아닌가요?”

“그런가?”

“아앗!”

“후훗! 농담이에요.”

분위기가 확 좋아졌다.

어리바리하며 늦장을 부린 것에 화가 난 것도 그렇고, 처음이면서 능숙하게 프록의 알을 채취한 것의 의심도 이미 안중에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자, 그럼 우리도 다시 움직여 볼까요?”

정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가 제멋대로 실룩거리려는 것을 참느라 고생을 좀 해야 했다.

….

정인영과 박정아의 사냥이 이어졌다.

프록의 알 채취는 내가 도맡아 했다.

“우아! 오빠, 완전 잘하시네요?”

내 활약상을 처음 본 박정아가 놀라워했다.

정인영이 맞장구를 치며 거들었다.

“그치?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정말 대단해!”

어깨가 으쓱해졌다.

“뭘, 이까짓 것 가지고. 움하하하!”

뿌듯함에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러다 민망해서는 급히 말을 돌렸다.

“두 사람 실력도 장난이 아닌데요. 그에 비교하면 나는….”

내 말에 박정아가 나섰다.

“아니에요. 진짜로 잘하시는 거예요. 어제는 얼마나 답답했다고요.”

“…??”

“저쪽 오빠들도 어제가 처음이라 인영 언니가 하나씩 다 가르쳐 줬거든요.”

“아아….”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박정아의 말이 조금 더 이어졌다.

“진짜, 어제는 사냥보다 알 꺼내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니까요? 조금 잡다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려요? 뭐를요?”

“뭐라뇨? 알 꺼내는 거 말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잡으면, 오빠들이 와서 알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에? 직접 안 꺼냈어요.”

“에이, 그걸 어찌 여자가 해요.”

“아아….”

이번에도 감이 잡혔다.

‘하긴, 여자가 꺼내기는 좀 그렇지. 더군다나 저렇게 예쁜 애가 그러는 건…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네, 그건.’

이해도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이유를 달아 이해를 끼워 맞췄다.

….

다시 사냥이 이어졌다.

확실히 다른 쪽보다 우리의 진도가 빨랐다.

정인영와 박정아의 완벽한 사냥에 나의 능숙한 서포트가 더해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아, 오빠 완전 짱!”

박정아의 애교 섞인 응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알을 채취했다.

그러다 드디어 때가 왔다.

개망신을 당하기 딱 좋은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이번엔 오빠가 한 번 해 보실래요?”

정인영이 내게 자신이 도맡아 하던 일을 권했다.

방금까지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넘쳐 우쭐했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긴장감에 온몸이 굳어 버렸다.

“오빠, 파이팅!”

박정아의 응원을 받으며, 홀로 노니는 프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관절 마디마디가 녹슨 것처럼 삐걱거려 왔다.

최대한 느릿하게 걸으며 시간을 끌었다.

질척한 지면도 그렇고, 움직임도 뻣뻣해서 빨리 갈 수 없기도 했다.

그래도 놈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두근두근….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을 쳐댔고, 입술은 물론 입안까지 바짝바짝 말라 갔다.

어느새 놈과의 거리가 지척이 됐다.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놈의 등 뒤로 자리를 잡았다.

처억!

검을 꺼내 들었다.

양손보다는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게 움직이기 편할 터.

꽈아악!

긴장감에 축축이 젖은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힘껏 꼬나쥐었다.

‘일단 첫 방은 가볍게….’

정인영은 첫 타에 강렬한 공격을 날렸었다.

그러나 어차피 놈의 주위만 끌면 되는 것이기에 굳이 강력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다음 동작… 나로서는 곧장 뒤로 물러나 놈과의 거리를 벌리는 게 더 중요했다.

힐끔….

뒤를 돌아봤다.

목적은 뒤로 물러날 거리와 위치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광경에 화들짝 놀라서는 ‘엄마야!’를 외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기까지 했다.

예상치도 못한 정인영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내 꼴사나운 모습에 정인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을 껌뻑이고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물었다.

“왜, 왜… 여, 여기 이, 있어요?”

“네? 그럼 어디 있어요?”

“아, 아니, 저, 저보고 해, 해 보라면서요.”

“그랬죠.”

“그, 근데 왜 여, 여기 이, 있어요.”

“아아….”

그제야 내 말을 이해했는지, 정인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반응을 보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혼자 둬요? 얼마나 위험한데.”

맞는 말이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정인영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오빠가 실수하면, 나도 그렇고, 정아도 위험해지잖아요.”

이런….

나를 걱정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감격해서 핑 돌던 눈시울이 바로 말라 버렸다.

“얼른 시작해 보세요.”

정인영의 재촉에 몸을 돌려세웠다.

다시금 검을 힘껏 꼬나쥐고는 심호흡을 두 번쯤 한 뒤에 프록의 매끈한 등짝을 향해 휘둘렀다.

휘익!

파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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