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
앞서가던 이들이 분위기를 깨닫고는 멈춰 섰다.
정인영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상황을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니면 왜 싸우고 그러냐는 건지 모호한 뉘앙스였다.
그에, 최 씨가 얄밉게 어깨를 으쓱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꼬옥….
흔들흔들….
박정아가 내 옷깃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만하자는 의미가 깃들여 있었고, 짧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그러고 정인영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만 가시죠.”
“아, 아니에요.”
정인영이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
박정아는 내 옆에 여전히 붙어 있었다.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여긴 것인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풀이 죽어 있는 듯했다.
그런 게 아니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만뒀다.
끝내 박정아가 씁쓸한 미소를 한 번 전하고는 앞서 걷는 이들 쪽으로 가 버렸다.
‘젠장! 분위기 좋았는데….’
….
그로부터 30분쯤 이동을 계속했다.
중간중간 토끼 놈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신경을 쓰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잡겠다고 이렇게 깊이 들어가는 거지?’
아직 어떤 괴물을 사냥할 것인지 듣지 못했다.
다시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럴 기회가 오지 않았었다.
‘흠….’
이제라도 물어볼까 고민하던 중, 멀리서 소리… 익숙한 괴물의 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구륵구륵….
바로 괴물의 모습과 이름을 떠올렸다.
‘프록? 아아….’
‘프록’은 개구리를 꼭 빼닮은 괴물이다.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에 뒷다리가 유난히 발달했고, 발가락에 물갈퀴며, 미끈미끈한 피부까지… 누가 봐도 개구리였다.
뭐, 앉은키가 1미터쯤 되고, 뒷다리를 쭉 펴면 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커다랗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프록의 레벨은 5였고, 비선공 타입이었다.
어제 내가 잡았던 토끼 놈들처럼 먼저 공격받지 않는 한, 놈들도 달려들지 않는다는 소리.
뭐, 개구리처럼 생겼기에 그 특징을 닮아서인지 점프력이 어마어마했고, 유일한 공격 수단인 ‘혀 채찍’은 맞아 본 사람만이 아픔을 안다고 할 정도로 장난 아닌 위력을 과시했다.
혀 채찍은 말 그대로 길고 가는 혀를 채찍처럼 휘두르거나 상대의 몸뚱이를 휘감은 뒤, 내동댕이치는 공격 법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프록을 떠올리고는 곧장 우리의 사냥감이 놈들임을 알아챘다.
팀의 조합도 그렇고, 레벨도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우뚝….
앞서가던 이들이 멈춰 섰다.
정인영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준비하세요. 파트너는 어제와 동일합니다.”
정인영의 말에 사람들이 바로 움직였다.
김지유와 최 씨, 오민주와 김 씨가 각각 짝을 이루었고, 정인영과 박정아가 함께 내게로 다가왔다.
“프록 잡아 보신 적 없죠?”
가까이 다가온 정인영이 내게 물었다.
직접 잡아 본 적은 없지만, 짐꾼으로 참여해 본 적은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하지만 사냥 법은 알고 있습니다.”
“어머? 어떻게 아세요?”
“아, 인터넷에서….”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내 대답에 앞에 있는 정인영과 박정아보다 빌어먹을 최 씨 놈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풋!”
곧장 놈을 노려봤다.
놈이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 쏘리! 진짜 웃겨서 그만….”
바로 목소리를 높이며 대응했다.
“뭐가 웃긴다는 거죠?”
“그럼 안 웃깁니까? 사냥을 인터넷으로 배웠다는데?”
“그러니까, 그게 뭐가 웃깁니까?”
“하, 이래서 초짜들은 피곤하다니까? 이론과 실전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줄도 모르다니.”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최 씨 놈의 말에 혈압이 빡 하고 상승했다.
몸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겠지만, 말로라도 지고 싶지 않아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려는데, 정인영이 먼저 나섰다.
“아, 진짜 아까부터 왜들 그러세요? 그만 좀 하세요, 애들도 아니고.”
그녀의 호통에 최 씨 놈이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진심으로 짜증나고, 지랄 같은 놈이었다.
‘아오! 저걸 진짜… 나중에 따로 한 번 부를까? 아주 그냥 지옥을 맛보게 해 줘?’
정말로 그러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놈과 둘만의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물론, 놈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 줄 것은 내가 아니라 오식이겠지만….
….
짝을 이룬 이들끼리 준비를 마치고는 프록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질척질척….
몇 발자국 차이를 두고, 지면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프록의 서식지가 늪지나 습지였기 때문이었다.
“히히, 오늘도 사람이 없네? 아, 완전 좋아!”
박정아가 신을 내며 좋아했다.
그녀의 말처럼 프록 밭에는 사냥을 하는 이들이 우리 빼고 단 한 명도 없었다.
원래 그랬다.
프록 밭은 사냥터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이유는 몇 가지나 됐다.
일단은 이동과 움직임의 제약 때문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프록 밭은 늪지와 습지다.
해서, 주변의 땅이 무척이나 질척했고, 그로 인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프록들은 저희가 나고 자란 서식지라 딱히 움직임에 방해를 받지 않았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버프 아닌 버프를 받는 느낌이랄까?
또한, 프록은 혼자서 사냥하는 게 까다로웠다.
물론, 놈들보다 레벨이 높은 헌터들의 얘기는 아니다.
놈들보다 조금 더 높은 레벨… 7레벨 이상이면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했다.
그럼, 7레벨 미만은 사냥이 불가능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웃기게도 놈들은 저보다 한참이나 아래인 1레벨의 공격에도 깊은 상처를 입을 정도로 연약한 피부에 낮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그것은 놈들이 낮은 방어력 대신에 갖고 태어난 높은 체력과 어마무시한 점프력, 긴 리치와 빠르기를 자랑하는 혀 채찍 때문이었다.
먼저, 놈들과 근접 전으로 맞설 경우.
검은 물론, 웬만한 창보다 긴 사정거리와 이리저리 휘두르고 날려대는 빠른 혀 채찍을 막거나 피하면서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한다.
그것도 계속해서 발을 잡아 끄는 듯한 질척질척한 지면의 페널티를 동반한 채로 말이다.
해서, 프록을 잡을 때는 원거리 공격이 그나마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도 100% 능사는 아니었다.
놈들은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공격자를 향해서 날듯이 점프해 거리를 좁혀 온다.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거나 그쪽 계열 각성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다음 공격까지의 딜레이보다 빠르게….
그 뒤는 뭐 알아서 생각하자.
그런 의미로 프록을 사냥할 때는 팀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 방법은….
“사냥 법을 아신다고는 했지만, 일단은 저랑 정아가 하는 걸 지켜보세요.”
정인영이 친절하게 말했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박정아 옆에 똑바로 섰다.
박정아가 나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려 했지만, 애써 참아 내며 정면만 쳐다봤다.
“준비됐지?”
“네, 언니.”
정인영의 말에 박정아가 화살을 장전한 활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정인영이 나를 한 번 힐끔거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프록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괜찮겠죠?”
함께하는 이들 중에서 나 다음으로 클래스가 높은 그녀였지만, 그래도 레벨은 3이었다.
뭐,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고, 이미 검증된 사냥 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테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어여쁜 얼굴에 상처라도 난다면, 그것은 나만의 슬픔만이 아니라, 온 세상 남자들의 슬픔이 될 일이었으니까.
그런 내 걱정의 물음에 박정아가 자신만만한 투로 답했다.
“당연하죠. 잠시 후면 깜짝 놀라실걸요?”
“…??”
의아한 표정으로 박정아를 힐끔 쳐다봤다.
그녀가 정인영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인영 언니가 엄청 화려하거든요.”
정인영의 외모가 화려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에, 박정아가 말하는 화려함이 정인영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 내 생각이 맞았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휘이익!
정인영의 프록의 등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횡으로 그어진 검의 궤도 위로 프록의 등껍질이 뭉텅 떨어져 나가는 게 보였다.
“구륵구륵!”
공격을 받은 프록이 이내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더니 곧장 새빨갛고 기다란 혀를 뽑아 내며 미친 듯이 휘둘러댔다.
촤악! 촤아악!
그동안 몇 번이나 봤었지만, 다시 봐도 놀라울 만큼 빠른 혀 채찍의 속도였다.
멀리서 봐도 그런데, 가까이 붙어 있거나 직접 상대해야 한다면….
후우우, 정말이지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인영은 무척이나 여유로운 듯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프록 놈의 주위를 돌거나 정확히 반 발자국쯤만 앞뒤로 오가며, 놈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박정아가 말했던 대로 화려함을 한껏 뽐내며 놈을 농락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프록의 혀 채찍은 놀랍고도 엄청나게 빠르며, 리치 또한 길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 단점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장점이자 특징을 너무 믿은 나머지 그 외의 것을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재, 정인영과 대치 중인 프록은 제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혀 채찍의 리치가 닿는 정확한 거리.
해서, 놈에게 몸을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기게 만드는 속임수.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혀 채찍을 검으로 쳐 내거나 막아내면서 놈의 유일한 공격 수단인 혀를 야금야금 상처 입히고, 더불어 놈의 체력까지 깎아 내는 완벽한 움직임.
‘정석’
그랬다.
정인영은 놈들의 습성을 이용해, 프록을 상대하는 최상이자, 최고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머, 멋지다.”
나도 모르게 정인영을 칭찬했다.
짐꾼의 신분으로 따라다니면서 봤던 웬만한 헌터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화려한 그녀의 움직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물론, 그녀의 예쁜 얼굴이 반함의 80% 이상을 차지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정인영의 움직임은 동급 이상… 아니, 그런 수준을 현저하게 넘는 듯했다.
끼이익!
정인영의 화려한 움직임에 넋을 빼고 있는데,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곧장 고개를 돌렸고, 꽤 멋진 자세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박정아를 볼 수 있었다.
“나도 언니만큼 멋지다고요!”
살짝 삐친 듯한 투로 말한 박정아가 끝까지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팅!
꽤 맑은 느낌의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정인영이 상대하고 있는 프록을 향해서였다.
피휴웅!
콰아악!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정확히 프록의 눈 사이에 박혔다.
보기에는 그다지 강하거나 위력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는지 놈의 대가리가 뒤로 훅 젖혀졌다.
“와우!”
진심의 감탄사를 뱉어 냈다.
“봐요. 저도 멋지죠?”
내 반응에 신이 난 듯 우쭐한 박정아가 이내 화살을 장전하고는 거침없이 발사했다.
첫 번째 공격 이후, 다음의 공격까지 지체되는 시간을 늘 걱정해야 한다는 원거리 계열 각성자들의 푸념이 무색할 만큼 빠른 동작이었다.
정확도도 일품이었다.
먼저 맞춘 화살과 거의 비슷한 지점에 두 번째 화살이 꽂혔고, 놈의 대가리가 다시금 뒤로 훅 넘어갔다.
이어….
“이얍!”
정인영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이 평행의 반원을 그렸다.
햇빛에 반사된 검 끝이 반짝였고, 뒤로 젖혀졌던 프록의 대가리가 그대로 몸통과 분리됐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놈을 철저히 농락하며, 제자리에 붙들어 놓은 정인영의 화려한 움직임.
그에 못지않은 강력하고, 정확하며, 빠르기까지 한 박정아의 치명적인 공격.
거기에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숨통을 끊어 버린 마무리까지….
그녀들의 협공과 사냥 법은 실로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