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
내가 합류 의사를 밝히자, 다들 기뻐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물론, 여자들만 그랬고, 남자들은 시큰둥했다.
웃고, 재잘거리는 게 조금 시끄러웠지만, 꽃밭의 분위기에 취해 너그럽고, 흐뭇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선우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내 소개를 했다.
그들도 각자 나서서 한마디씩 했다.
“저는 박정아요.”
키가 작은 바로 그 여자다.
나이는 21세.
3레벨에 C 클래스, 직업은 궁수 계열.
외모나 말투가 상당히 귀여웠으며, 막내 티를 줄줄 내는 타입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지유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차분한 말투에 날카로운 인상을 한 여자.
나이는 24살이었고, 역시 3레벨에 C 클래스였으며, 직업도 궁수 계열이었다.
여자 넷 중에서 가장 마른 듯했지만, 가장 큰 ‘미드’를 뽐내기도 했다.
‘수, 수술인가?’
의느님의 손길을 의심했다.
뭐, 끝까지 확인은 불가했다.
“오민주요.”
23살의 그녀 역시, 궁수 계열에 3레벨이었고, C 클래스였다.
여자 넷 중, 가장 키가 컸고, 체격도 가장 좋았다.
뭐, 남자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1:1로 맞짱을 뜨면, 손쉬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그녀들을 한데 모아 걸 그룹을 결성한다면, 무조건 메인 보컬 자리는 그녀의 몫이지 싶었다… 킁!
“제 이름은 기억하시죠? 보시다시피 검사고요. 레벨은 3, 클래스는 B에요.”
정인영이 다시금 자신을 소개했다.
클래스 B를 말할 때, 억양에 힘을 더한 것이나 살짝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잘난 척과 예쁜 척을 하는 느낌이 확 전해지면서 살짝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자들한테만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는 얘기다.
남자들은 뭐….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니, 그저 돋보일 것이 분명한 그녀의 예쁜 외모에 그딴 것들은 전혀 문제로도 삼지 않을 터.
막말로 예쁜 척이 아니라, 진짜로 예쁜 애가 자연스레 예쁨을 발하는 것이라 보는 이들이 대부분일 테니 말이다.
‘너는 무조건 센터다!’
나 역시,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내 영혼의 피앙세라고 자부하는 하나쿠 짱을 위협할 만큼이었다면 설명이 충분하겠지?
나머지 남자 둘은….
그냥 최 씨와 김 씨였다.
둘 다 레벨은 5였고, 클래스는 D라나?
맞다.
딱히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많이 알아서 좋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정보 차원에서 살펴보고, 느낀 것을 좀 털어놓자면….
최 씨는 검을 들고 있는 것이 검사 계열인 듯했다.
키는 나랑 비슷한 것이 180센티미터쯤 될 것 같았고, 생긴 건 그냥 그랬다.
‘D 주제에 감히 날 비웃었던 거야?’
뭐, 싸우면 단박에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나와의 레벨 격차가 크긴 했지만, 첫인상이 거지 같았기에 대함에 있어 곱거나 정겨울 것이 하나 없는 자였다.
김 씨는 17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키에 조금 뚱뚱한 체격이었다.
긁지 않은 복권이란 말처럼 살을 빼면 꽤 괜찮은 얼굴이 될 것 같긴 했는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고, 뭐든 까 봐야 아는 것이라 장담은 할 수 없었다.
또한, 김 씨는 딱 봐도 무식하고, 특이하게 생긴… 짧고 뾰족한 징들이 군데군데 박힌 둥근 철퇴에 굵직하고, 단단한 손잡이가 달린 모양새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후아, 한 대 맞으면 바로 저승 특급열차겠는걸?’
크게 휘두른 걸 정통으로 맞으면, 뚝배기는 물론이고, 어디 하나 성할 곳이 없을 듯싶었다.
그렇게 그들과 합류하여 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 던전 안쪽으로 향했다.
….
‘흠….’
걸음을 옮기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앞서도 잠시 했지만, ‘과연 내가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인가?’가 그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보다 레벨이 높지 않았다.
1과 3의 차이도 그랬지만, 1과 5는 실로 엄청난 격차라고 봐도 좋았다.
뭐, 고 레벨의 헌터들이 들으면 가소롭다고 코웃음을 치거나 거기서 거기라며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초보들에게는 그마저도 티를 내고, 으스대며, 반대로는 기가 죽어 스스로 물러날 만큼 중대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다들 알다시피 나라는 놈이 남들에게 자랑을 한다거나 눈에 확 띌 만큼의 좋은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181센티미터의 키에 70킬로그램 전후의 몸무게로 나름 괜찮은 옷걸이를 가진 것은 맞지만, 울룩불룩한 근육의 빵빵함을 자랑한다거나 얼핏 봐도 탄력 내지는 운동 신경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들로 봤을 때, 나는 그들에게 조력자가 아니라 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과 풍토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또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던전 안에 들어와서 사냥하는 것인데… 도움도 아니고 걸림돌이 될 요지가 다분한 이와 함께 한다?
아무리 좋게 본다 해도 내 상식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들 무슨 평화 봉사단이나 마음씨 따뜻한 자원 봉사자들은 아닐 거 아니야….’
마음씨가 곱고, 따뜻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봉사 단체나 활동을 하는 이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닌가?
남들 모르게 막 엄청난 금액을 선뜻 기부한다거나 휴일마다 이곳저곳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서 따스함과 정겨움을 베푸는 취미라도 가지고 있으려나?
“쩝….”
답답한 마음에 입맛만 다셨다.
“훗!”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즉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거나 모른 척을 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계속 웃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이내 박정아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그녀가 특유의 귀여움을 마구 뿜어내며, 눈웃음과 함께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흐음, 그런 이유라면 뭐….’
실력이 아니라 나의 외모를 보고서 팀에 합류시킨 것이라면 인정!
재수 없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세 명의 남자들 가운데 외모 톱은 당연히 나였으니까.
나라서… 내가 나를 평가하기에 스스로 높은 점수를 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그 어느 누가 봐도! 그것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다.
아닌 말로 지금껏 겁나게 없이 살아서 꾸미지 못하고, 꼬질꼬질하게 다니긴 했지만, 진짜 진짜 진짜! 어디에다가 내놔도 꿀리지 않을 얼굴이기는 했다.
사박사박….
근거 있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던 내 옆으로 박정아가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어왔다.
“저기….”
“알아요, 나 잘생긴 거.”
“네?”
그녀의 반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급히 손사래를 치며 상황을 수습했다.
“아, 아니요. 제가 잠시 딴생각을… 근데, 왜 그러시죠?”
“아아… 직업이 검사라고 하셨죠?”
그렇게 나를 소개했었다.
무기로 검을 들고 있기도 했고, 굳이 카드 소환사라는 드러내기 뭐한 직업을 말하는 것도 좀 그랬었기 때문이었다.
“네, 그런데요?”
“게다가 클래스는 A고요.”
“네, 맞아요. A 클래스!”
힘을 주고 강조하듯 말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었으니까.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에서 A 클래스라는 말이 나오던 그 순간에 뒤따라오던 최 씨가 움찔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째졌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그런 나를 보며, 살짝 웃은 박정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스킬 숙련도에 별이 다섯 개겠네요?”
“네? 아아, 네… 그, 그렇죠.”
“와아! 멋지다. 그럼, 기본 스킬인 내려치기 말고 다른 특별한 스킬도 있으세요?”
질문을 던지는 박정아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뭔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일전에… 그러니까 특성 개화를 하고 나서 처음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
클래스가 A인 것을 보고는 내가 미친 듯이 좋아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A 클래스가 왜 좋은지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하기도 했었다.
뭐, 깊게 들어가면 복잡해지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자고도 했고 말이다.
박정아의 입에서 그에 관한 몇 가지 말들이 나온 김에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 보겠다.
바쁜 사람들은 그냥 넘겨도 좋지만, 나름 짧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 볼 테니, 대놓고 스킵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앞서, 직업이 같아도 클래스가 다를 수 있다고 얘기했었다.
또한, 기본적인 피지컬로 인해 A가 F보다 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모두 무마하거나 상회하는 것이 스킬과 장비들이라고도 했다.
장비야 내가 입고 있는 전투 타이츠로 예를 들며, 추가 옵션 부분을 설명했으니 패스하고, 그때 설명하지 못한 스킬로 넘어가자.
당연하겠지만, 각성자는 직업에 걸맞은 스킬 갖게 된다.
그런 스킬들에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자동으로 얻게 되는 ‘기본 스킬’이 있으며, 특별한 방법 등을 통해 익힐 수 있는 스킬들도 다수 존재한다.
높은 레벨에서 얻는 스킬이 유효하고, 강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낮은 레벨에서 얻는 스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는 박정아가 말한 ‘숙련도’ 때문이었고, 클래스가 높은 이들에 한한 얘기이기도 했다.
검사 계열 각성자의 스킬 중, 가장 기본이라 불리는 스킬이 ‘내려치기’다.
말 그대로 검을 일직선으로 내려쳐 적을 공격하는 스킬이다.
모든 클래스의 검사가 1레벨… 특성 개화와 함께 자동으로 익히게 된다.
내려치기의 숙련도는 총 5단계다.
시작은 모두 1단계지만, E 클래스는 거기서 끝이다.
D 클래스는 2단계까지, C 클래스는 3단계까지 높일 수 있다.
당연히 A 클래스는 5단계를 마스터 할 수 있다.
1단계와 5단계의 강함이나 완성도 등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발동부터 위력까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클래스의 격차에 따른 스킬의 대미지 증폭이나 반감도 있다.
같은 사람이 사용한 똑같은 스킬을 A와 B 클래스가 맞았을 때, A가 입은 피해가 50이라면, B는 그 이상의 대미지를 입는다.
또, 같은 스킬이 맞부딪쳤을 경우, 숙련도에 따라 스킬 자체가 아예 상쇄되기도 한다.
‘클래스의 격차는 무시할 수 없고 영원하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소리다.
….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는 박정아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요. 당연히 있죠.”
“아아, 뭔데요? 스킬 이름이 뭐예요?”
“교감… 아치기요.”
나도 모르게 교감 스킬을 말하다가는 가까스로 말을 바꿨다.
그에, 박정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교감아치기요?”
“아, 아니요. 감아치기요.”
바로 수습했다.
다행히 박정아는 의심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어떤 스킬이에요?”
당연히 그런 질문이 날아올 것 같아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힘 없이 술술 구라를 시전했다.
“이렇게 몸을 비틀었다가 회전력을 이용해 검을 휘두르는 형태에요.”
“와아! 완전 멋있겠다.”
나를 보는 박정아의 눈이 어째 핑크빛으로 물든 것만 같았다.
참으로 뿌듯했고, 어깨마저 으쓱해졌다.
그때였다.
뒤에 있던 빌어먹을 최 씨가 좋은 분위기에 초를 쳤다.
“그건 회전 베기 아닌가? 10레벨에 얻는 기본 스킬.”
최 씨의 말에 박정아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에? 정말이요?”
“네. 동작이 그거랑 비슷한 것 같네요. 뭔가 어설픈 듯도 하지만….”
최 씨의 말에 박정아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당황해서 반박도 못 하고 있는데, 최 씨가 쐐기를 박듯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딱 봐도 감아치기보다는 회전 베기가 더 어울리는 동작 아니었나요?”
그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박정아가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노려봤다.
‘이런, 씨 발라 먹을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