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3)
특성 개화를 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젠장!”
젠장이었다.
특성 개화와 함께 클래스 A까지 됐으니, 그야말로 내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것도 절대!
PC방에서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 다음 날부터 꾸준히 던전에 들어갔다.
그나마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았지만, 완전 정화 직전의 던전이 아니고서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많았다.
도무지 녀석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게 몇 번이나 던전을 옮겨 다녔다.
그리고 꽤 한적한 곳을 발견하여, 안심하며 녀석을 소환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에게 발각되었고, 또다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이렇게들 조심성이 없어서야, 원….”
불만의 투덜거림을 뱉어 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잘못은 없었다.
그저 괴물을 발견했으니, 공격을 한 것일 뿐이었고, 그것이 던전 안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뭐, 꽤 멀리서도 보일 만큼 커다란 덩치에 시도 때도 없이 우렁찬 울부짖음을 발산하는 녀석의 문제점이 가장 컸다고 보는 게 옳을 일이었다.
“하아, 일일이 설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어쩌지?”
내가 얻은 직업이 카드 소환사고, 그 때문에 내가 키우게 된 녀석이라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냥 다니자니, 녀석은 물론 나까지 위험한 상황.
아닌 말로, 1레벨인 지금의 내 상태로는 눈 먼 공격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었다.
“흠… 혼자서 해야 하나?”
아무래도 당분간은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맞는 듯했다.
레벨을 어느 정도 올리고 나면, 조금이나마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테니까.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내가 가진 스킬은 ‘교감’, ‘소환’, ‘봉인’, 이렇게 세 가지였다.
딱 봐도 알겠지만, 공격용 스킬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그냥 맨몸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소린데….
내가 아는 한, 그렇게 싸우는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스킬이나 상태창 같은 것을 뺀 기본적인 피지컬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물론, 장비빨이라는 나름의 카드가 있긴 했다.
내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전투 타이츠의 기본 옵션과 A 클래스가 받는 추가 옵션으로 인해,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더 빠르고, 방어력도 높다.
하지만,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일반인이 아니라 괴물들이다.
상승한 신체적 능력에 일반인들은 ‘와와!’ 거릴지 몰라도, 괴물들을 상대함에서는 그저 최소한의 안전장치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
그래도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레벨을 올릴 수밖에….
“그래, 레벨이 오르면 공격용 스킬이 생길 거야!”
확실한 건 없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고, 부디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
괴물과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했다.
당장에 A 구역으로 향했고, 무기 상점을 방문했다.
각성 전에는 물론, 각성 후에도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어떤 걸 찾으십니까?”
“검이요.”
“이쪽에서 골라 보시죠.”
한쪽 벽에 빼곡하게 진열된 검들을 찬찬히 살폈다.
‘짧은 것보다는 긴 게 좋겠지?’
짧은 단검은 사용하기가 쉽고, 빠른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적과 가까이 붙어야 하기에 위험했다.
반대로 긴 장검은 무겁고, 사용하기가 불편했지만, 공격력이 우수했다.
길이만큼 적과 떨어져서 싸울 수 있을 것도 같고 말이다.
‘흠… 아니야.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내가 먼저 지치면 그게 무슨 소용이람?’
만만치 않은 무게의 장검을 들었다가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그냥 내려놨다.
그것을 본 가게 주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무게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 아, 네… 상당히 무겁네요?”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가게 주인이 진열대에 걸린 검을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다.
먼저 본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형태와 길이였지만, 무게는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어? 이건 왜 이렇게 가볍죠?”
“일반 금속보다 마정석 함유량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아….”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까지 쓰이면서 특출난 효능과 효과를 발휘하는 마정석이었다.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할 때도 마정석을 갈아 넣는다면, 훨씬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가볍기만 한 게 아닙니다. 내구도는 물론, 공격력도 몇 배나 좋습니다.”
“그렇군요. 이건 얼마나 하죠?”
검을 이리저리 살피고, 휙휙 휘두르며 물었다.
“큰 거 한 장입니다. 기성품이라 조금 저렴한 편이죠.”
“에에? 큰 거 한 장이요? 이게 100만 원이나 한다고요?”
“예? 100이라니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
“그, 그럼… 처, 천만? 허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설렁설렁 들고 있던 검을 한 번 쳐다봤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는 얌전하고,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받친 뒤, 그에게 돌려줬다.
그런 내 행동을 의아하게 보던 그가 이전까지의 인자해 보이던 표정을 살짝 바꾸었다.
“흠흠… 혹시, 어느 정도 가격의 검을 원하시는지….”
“아… 그게….”
수중에 남은 돈이 50만 원쯤 됐다.
앞으로의 생활도 있기에 최대 20만 원 정도는 생각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전투 타이츠가 그 정도 했으니까.
물론, 구형에 중고품이긴 했지만….
내 대답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다가는 조심스럽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삼십?”
“하아….”
가게 주인이 짧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완전히 맥이 빠진 듯 변해 있었다.
나와는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고는 벽과 진열대가 아닌, 한쪽 구석에 놓인 커다란 통…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들어 있는 통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검을 하나 뽑은 뒤, 내게 내밀었다.
“이게 25만 원짜리인데… 20만 원까지 해드리겠습니다.”
가게 주인이 말을 하다가 잠시 끊고는 나를 스윽 훑어보더니만, 가격을 낮춰 줬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긴 한데, 그리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20만 원을 주고 검을 샀다.
검의 날 부분만 60센티미터쯤 되는 중간 길이의 검이었다.
가게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가게 한 쪽에 비치된 ‘감정 머신’에 검을 넣어 봤다.
감정 머신은 말 그대로 무기나 방어구를 감정해 주는 장치였다.
지이잉….
감정 머신이 검을 스캔했고, 화면에 정보가 나타났다.
―――――
이름: ??
타입: 검
등급: F
공격력: 5
―――――
클래스별 추가 옵션은 고사하고, 이름조차도 없는 막검 중의 막검이었다.
“쩝….”
절로 입맛이 씁쓸해졌다.
“썰리긴 하겠지?”
살짝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던전으로 향했다.
* * *
“이야압!”
파삿!
“아다닷!”
빠각!
꽤 활발한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화 던전 안.
이제 막 각성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초보 헌터들이 여기저기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여럿이 모여 팀을 이룬 상태였고, 간혹 혼자서 사냥을 하는 이도 보였다.
“어디 한 번 해 볼까?”
20만 원짜리 검을 힘껏 꼬나쥔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향해 다가갔다.
던전 안에 서식하는 괴물들은 거의 다 ‘선공’ 타입이었다.
놈들이 감지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적… 인간이 들어오면, 무조건 달려든다.
그러나 몇몇 ‘비선공’의 형태를 띠는 놈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토끼’였다.
1레벨인 놈들은 딱 봐도 그냥 토끼처럼 생겼다.
풀을 뜯는 놈들의 바로 옆을 지나가도 딱히 도망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위협은커녕, 친근감 내지는 귀염귀염한 느낌마저 물씬 풍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눈으로 보고 있을 때만 그랬다.
놈들의 귀엽고, 연약해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놓고서 터치를 한다거나 공격을 하면, 이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뾰족이 솟아 있던 귀를 뒤로 접은 채, 풀이나 갉아 대던 귀여운 앞니를 두 배 이상 늘리고는 숨기고 있던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놈들의 덩치가 작다고 얕보면 오산이었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의 시뻘건 눈알이나 날카롭게 늘어난 앞니 내지는 그 사이로 진득하게 흘려대는 침 줄기를 본다면, 웬만한 일반인들은 오줌을 지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놈들과 1:1로 싸워서 상처 하나 없이 이길 수 있는 일반인도 드물 테고 말이다.
해서,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검을 꼬나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래, 어려울 것 없어! 제대로 조준해서 한 방에 목을 날리기만 하면 되니까!’
5년간 짐꾼 노릇을 하면서 능숙한 이들의 사냥법을 질리도록 봐 왔다.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나름의 사냥법이나 이론만큼은 빠삭하다는 얘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자신감을 돋우며, 머리 위로 치켜든 검을 일직선으로 내리쳤다.
눈으로는 목표인 토끼 놈의 목을 뚫어지라 응시한 채였다.
휘이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이 토끼 놈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파슷!
꽤 섬뜩한 느낌이 검 끝에서 일었고, 이내 짜릿한 손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됐다!’
확신과 함께 첫 번째 사냥을 해냈다는 기쁨을 표하려 했다.
그러나 섣부른 자축이었다.
“…??”
쓰러지거나 사라져야 할 토끼 놈이 그대로 있었다.
찌릿!
시뻘건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이런, 너무 짧았나?’
검의 길이가 짧았던 것인지, 아니면 긴장감에 몸이 위축됐던 탓인지, 놈의 목은 반… 아니, 1/3쯤만 잘려있었다.
해서, 하얀 털이 새빨간 피로 물들었고, 그 때문에 기괴함과 섬뜩함이 배로 전해졌다.
“으으… 에잇! 이잇! 주, 죽어! 죽어, 이 새끼야!”
형이나 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구잡이식의 개폼으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댔다.
휘익! 휙! 휘이익!
놈이 요리조리 검의 궤도를 피하며, 내게 달려들 타이밍을 노렸다.
그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터라 더욱더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이잇! 에이잇! 마, 맞아라! 제, 제발 좀 맞아!”
어째,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놈이 다가오지 못하게 방어를 하는 느낌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며, 팔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속도 또한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 이런 젠장!’
이러다가는 분명 내가 먼저 지쳐서 쓰러질 듯했다.
그 뒤는… 전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이어질 터.
‘이대로는 안 돼! 절대 안 돼!’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검을 즉시 멈췄다.
이를 악물며, 토끼 놈을 똑바로 주시했다.
계속해서 날아들던 공격이 멈추자 놈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나를 바라보며 멈춰 섰다.
나름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눈싸움이 잠시간 이어졌다.
먼저 분위기를 깬 것은 놈이었다.
“까드득!”
놈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고 이내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당연히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놈이 실수를 범했다.
내가 휘두르는 검을 피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서 얄밉게 움직이던 것과는 다르게 일직선으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죽어, 이 새끼야아아!”
허공에 몸을 완전히 띄운 터라, 별다른 대처를 할 수 없는 놈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익!
검이 똑바른 평행선을 그리며 반원의 끝점에 도달했다.
이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공격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