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
“너, 진짜 마장동 털보랑 아는 사이야?”
재수 없는 놈이 내게 물어왔다.
조금은 당당하게 구라를 날렸다.
“우리 삼촌이라니까? 내가 조카라고!”
내 당당함에 놈들이 당황하며 눈빛을 교환했다.
바로 말을 덧붙였다.
“왜? 못 믿겠어? 전화라도 한 번 할까?”
이전의 비굴함이나 수치심 따위는 이제 없었다.
아예, 자리까지 툴툴 털고 일어났다.
놈들은 계속해서 눈치만 보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내 놔!”
내 몸을 뒤지던 놈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놈이 들고 있던 지갑을 황급히 내게 건넸다.
그 위로 지갑에서 빼낸 현금이 올려졌고, 제 주머니에 꽂아 넣었던 마정석 두 개도 꺼내 얹어놓았다.
그것들을 대충 주머니에 욱여넣은 뒤, 몸을 틀어 점잖은 놈을 향해 섰다.
이죽거림을 살포시 담아 말했다.
“보아하니, 삼촌을 좀 아는가 본데… 이름이 뭐지? 소속은?”
내 물음에 놈이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지금까지의 수모를 죄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놈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조금 더 여유로움을 곁들인 채 말을 이었다.
“뭐, 말하지 않아도 돼!”
“…??”
“어차피 얼굴만 기억하면 되니까!”
놈을 빤히 쳐다봤다.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 놈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더니만 안 되겠던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뭐를?”
“저,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면 마음이 풀리실까요?”
정말이지 제대로 먹혔나 보다.
이 정도로 쉽게 상황이 반전되고, 돌아가도 되는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내게 명함을 준 털보 아저씨의 정체(?)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 일단은 이놈들부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놈을 쳐다봤다.
놈의 표정에서 뭐든 다 해 줄 것만 같은 기운을 느꼈다.
한껏 거드름을 장착한 뒤, 느긋하게 말했다.
“뭐, 사람이 실수할 때도 있지… 내가 또 그런 면에서는 나름 관대하기도 해.”
“아아…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놈이 완전한 저자세를 취했다.
뭔가 뿌듯했다.
이래서 모두 ‘갑’의 위치…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아등바등 애를 쓰나 싶었다.
“다 좋아… 근데,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
“게다가 이 새끼, 저 새끼 찾으면서 사람을 깔아뭉개는 것도 영… 하물며 제 새끼도 아닌데 말이지.”
말을 뱉어 내는 중에 재수 없는 놈을 힐끔 쳐다봤다.
놈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놈을 점잖은 놈이 불러들였다.
내 몸을 뒤지던 놈도 어기적거리며 합류했다.
이내, 나와의 거리를 조금 벌리고서는 저희끼리 뭔가를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나를 힐끔거렸고, 재수 없는 놈의 언성이 살짝 높아지기도 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잠시 후.
놈들이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떤 카드를 꺼낼 거냐는 듯이 그들을 쳐다봤다.
툭….
점잖은 놈이 재수 없는 놈의 어깨를 툭 쳤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온 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머리를 숙였다.
“미, 미안하게 됐수다.”
사과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건방져 보였다.
뭐,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당한 것도 있고, 완전한 갑의 위치였기에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그걸 지금 사과라고 하는 건가?”
가득한 빈정거림에 놈이 인상을 구겼다.
점잖은 놈이 뒤에서 ‘흠흠’ 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그에, 놈의 허리가 접혔다.
“죄, 죄송합니다. 몰라뵙고, 실수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딱딱한 말투에 소리까지 고래고래 치니, 이번에도 사과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괜히 더 긁었다가는 일이 이상한 쪽으로 흐를 수도 있을 테니까.
해서, 살짝 새침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딱 여기까지만 하려 했었다.
그러나 놈들의 사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박….
내 몸을 뒤지던 놈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재수 없는 놈은 휙 돌아서서 뒤쪽으로 가 버렸다.
점잖은 놈이 그런 놈의 어깨를 토닥여댔다.
‘형제인가?’
상대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서로 간에 다독이고, 위로하는 모습이 상당한 돈독함을 느끼게 했다.
아무튼.
내 앞으로 다가선 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놈은 양손을 공손히 모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는 꽤 큰 사이즈의 마정석이 들려 있었다.
못해도 20레벨짜리는 될 듯싶었다.
“뭡니까?”
“사, 사과의 의미입니다.”
“흠….”
당장에 손이 움찔하고,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반응했지만, 눈치를 보며 주춤했다.
점잖은 놈이 이내 말을 덧붙였다.
“성의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 주시죠.”
놈의 말을 듣고도 조금 더 눈치를 봤다.
그러다 끝내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흠흠… 뭐, 성의라고 하니까 일단은 받겠습니다.”
말투마저 바꿀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여유로움을 이어가려 했지만, 너무나 티가 나도록 실패했다.
집어 든 마정석을 어디에다가 챙길 생각도 못 한 채, 그냥 손으로 움켜쥐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성의 표시라던 마정석을 내가 받아들자, 점잖은 놈이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럼, 상황이 잘 마무리됐다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러시죠.”
“삼촌 분께는 말씀 좀 잘… 아니, 괜찮으시다면, 그냥 오늘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아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존심이란 게 있는데, 징징대면서 일러바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그렇게 알고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도 이만… 수고들 하세요.”
굉장히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잘 이루어졌다.
어떠한 뒤끝도 발생할 것 같지 느낌이었다랄까?
놈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놈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돌아섰다.
참았던 미소가 입이 째지도록 얼굴에 그려졌다.
“앗싸! 땡잡았고!”
손에 들린 마정석의 두께와 크기가 정말이지 날아갈 듯한 쾌재를 불러일으켰다.
“씨바… 이 정도 성의라면 몇 번이라도 밟힐 수 있겠다, 크큭!”
* * *
곧장 던전을 빠져나왔다.
진심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던 것 같다.
너무 신이 나서인지 힘든 줄도 몰랐다.
바보처럼도 보일 수 있는 실없는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흐흐, 흐흐흐….”
버스를 탔다.
A 구역으로 가는 버스였다.
목적지인 마정석 가게가 A 구역에 있기 때문이었다.
1시간 정도 걸려 A 구역에 도착했고, 가장 가까운 마정석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친절한 목소리만큼이나 인상도 좋아 보이는 사장에게 놈들에게서 받은 마정석을 꺼내 보였다.
“이거 좀 팔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어디 좀 볼까요?”
마정석을 이리저리 살핀 그가 혼잣말처럼 작게 말을 흘렸다.
“흐음… 20은 넘을 것 같고… 22쯤 되려나?”
그러고 옆에 있는 기계에 마정석을 올렸다.
내 눈에도 보이는 화면에 ‘22’란 숫자가 떠올랐다.
참고로 레벨을 말함이었다.
확인을 마친 사장이 마정석을 내 앞으로 내밀고는 유창하게 말을 쏟아 냈다.
“요즘 마정석 시세가 떨어진 건 아시죠?”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옳을 듯했다.
“그, 그런가요?”
“예, 요새 물량이 좀 많거든요.”
“아아… 그럼 이건 얼마나….”
“어디 보자… 22레벨이면 50쯤 하겠네요.”
50만 원.
큰돈이었다.
마정석을 팔아서 그만큼의 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덜렁 한 개의 마정석으로 그런 큰돈을 받을 수 있다니….
‘흐흐….’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러는 중에 문득, 사장의 뒤편 벽에 붙어 있는 표를 하나 보게 됐다.
―――――
〈오늘의 마정석 매입 시세〉
05= 150,000
10= 310,000
15= 470,000
.
.
.
―――――
5레벨 단위로 마정석의 가격이 적혀 있었다.
20레벨의 마정석 가격은 65만 원이었다.
시세가 떨어졌다더니만, 오히려 내가 아는 것보다 오른 상태였다.
“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놓고 의아함을 표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사장이 내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당황의 빛을 감추지 못한 채, 갑자기 허둥지둥했다.
“아, 아니, 이, 이게 왜 아, 아직도 여기 부, 붙어 있나?”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후다닥 가격표를 떼기까지 했다.
“흠….”
절로 눈이 가늘게 떠졌다.
사장이 내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의심을 가득히 채워 그에게 물었다.
“얼마라고요?”
“아아… 그, 그러니까… 이, 이건 어제 자… 맞아요. 어제의 가격입니다. 하하….”
사장이 변명이랍시고, 말을 둘러댔다.
그의 거짓말이 뻔히 보였다.
피식하며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말했다.
“요즘 시세가 떨어졌다면서요?”
“그, 그랬죠. 네, 마,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제랑 오늘의 가격 차가 그렇게 크게 날 수 있나요?”
“아, 그, 그건….”
티가 나도록 변명 거리를 찾던 사장이 끝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제대로 된… 아마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가격을 털어놨다.
“시, 실은… 7, 72만 원입니다.”
불과 1, 2분이란 짧은 시간.
그 사이에 20만 원이란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참으로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에이, 아무리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게 장사라지만, 너무 하셨네요.”
“죄, 죄송합니다.”
“뭐, 됐고요. 계산이나 해 주세요.”
“예, 예… 그러겠습니다.”
사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마정석 가격을 계산해 줬다.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작은 마정석 두 개도 팔아 버렸다.
‘음… 들고 다니기엔 조금 많은데?’
100만 원.
정확히는 102만 원인 현금을 그냥 들고 다니기가 좀 그랬다.
“이거 입금도 가능한가요?”
“네? 아아, 가능합니다.”
“그럼, 이 정도만 계좌로 넣어 주세요.”
80만 원을 떼어서 다시 사장에게 건넸고, 그가 내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나름의 환대(?)를 받으며 마정석 가게를 나왔다.
“그나저나 그 새끼도 정말 몰랐던 걸까?”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새벽, 편의점에서 했던 마정석 깡 때문이었다.
분명, 열흘 전쯤엔 5레벨짜리 마정석 가격이 10만 원이었다.
해서, 당연히 그런 줄 알고, 7만 원에 넘겼다.
솔직히 3만 원도 아까워 죽을 판인데, 지금은 15만 원으로 가격이 오른 상태였고, 차액은 무려 8만 원이나 됐다.
실로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는 상황.
뭐, 내 실수가 분명했다.
사정이 급했던 것도 있었다.
또, 편의점 알바 놈도 모르고 있었다면, 그나마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가서 한 번 족쳐?’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
다시 발걸음을 옮겨 향한 곳은 시장이었다.
시장에 도착하니, 날이 슬슬 어두워지려고 했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뭐를 드릴까요?”
“음… 이건 얼마나 하죠?”
“족발이요? 몇 분이 드실 건가요?”
“둘… 아니, 넷? 아니다. 다섯이요.”
“그럼, 이거 두 쪽이면 될 것 같네요. 가격은 6만 원인데, 5만 원에 가져가세요.”
인심 좋은 사장님 덕에 족발을 싸게 사고는 급히 시장을 빠져나왔다.
곧장 새벽에 찾아갔던 폐허로 향했다.
….
폐허에 도착하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아주 멀리서 불빛 몇 개가 보이기는 했지만, 주변은 어둑했고, 너무나 조용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식충이 녀석을 소환했다.
“크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