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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8화 (8/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돌아섰다.

휘익!

갑자기 날아든 바람과 급격한 다가섬.

퍼어억!

묵직한 소리가 이어졌고, 본능적으로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미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이의 주먹이 내 복부에 깊이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본 후에야 격한 통증이 날아들었다.

“허어억!”

대번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은 상대가 피식거렸다.

“하, 이런 양아치 같은 새끼를 봤나.”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양아치 짓을 했다고….

그가 목을 꺾어 뚜둑 하는 소리를 내고는 발끝으로 내 옆구리를 툭툭 찼다.

그리 세게 찬 것도 아닌데, 굉장히 아팠다.

모욕감에서 오는 마음의 통증은 더 심했다.

저벅저벅….

다른 이들도 내 곁으로 다가왔다.

슬쩍 고개를 들어 표정을 확인했는데, 상당히 불쾌해하고,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면, 분명히 나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그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봐요. 어딨죠?”

점잖은 이가 내게 물어왔다.

근데 뭐가 어딨냐는 거지?

고개를 갸웃할 틈도 없이 그가 나의 의문을 해결해 줬다.

“마정석 말입니다.”

마정석을 찾는 모양이었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뜬금없는 마정석 타령에 다시금 의아했고, 이번에도 그가 답을 내려줬다.

“당신이 가져갔죠? 오크 놈이 떨어뜨린 마정석 말입니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

생성된 게이트를 통해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온 괴물들은 죽여 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죽음을 맞이한 놈들은 기화되듯 연기만을 흩날리며 사라진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 놈들을 죽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얻을 게 많다는 소리다.

일단, 무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경험치’가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게임의 그것과 같이 일정량의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올라간다.

괴물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마지막 목숨을 끊었을 때,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 것도 똑같다.

레벨이 낮은 놈은 적게 주고, 레벨이 높은 놈은 많은 경험치를 주기도 한다.

다른 점이라면, 그 수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괴물이 주는 경험치의 양도 그렇고, 각성자들의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의 양도 제각각이란 소리.

같은 레벨의 똑같은 괴물이라도 주는 경험치가 다르다.

그렇다고 완전 제멋대로인 것은 아니다.

얼추 파악된 범위나 한계 안에서 랜덤하게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은 클래스에 같은 직업, 똑같은 레벨의 각성자라도 다음 레벨까지 필요로 하는 경험치의 양이 달랐다.

누구는 10마리 잡아서 레벨 업을 했는데, 누구는 30마리를 잡고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한 이유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각성이니 레벨 업이니 하는 것들부터가 뭐를 가져다 붙여도 제대로 된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상태창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경험치의 수치였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는 실정이었다.

뭐, 대놓고 묻는다거나 게거품을 물고서 따질 존재조차 없는 마당이었으니까.

아,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 듯.

쏘리….

다음으로 놈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체’였다.

공격을 받아 목숨이 끊어진 놈들은 그 자리에 사체가 남게 된다.

던전 안에 남겨진 사체는 24시간 안에 흔적도 없이 소멸하지만, 바깥세상으로 가지고 나온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보존된다.

게이트가 처음 나타난 시기인 ‘대혼란 시대’를 막 넘겼을 즈음엔 놈들의 사체가 큰돈이 되었다.

가죽도 팔리고, 고기도 팔리고, 장기 등도 비싼 값에 팔렸다고 한다.

실험을 위해 정부에서 사들이는 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놈들의 사체나 부속은 거래가 되지만, 워낙에 운반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어서 초보자나 업자가 아닌 이상은 건들지 않는 게 보통이다.

간혹, 특정한 괴물의 온전한 사체나 특정 장기들을 원하는 이들이 있기는 한데, 크게 메리트가 있는 수준은 아닌 듯했다.

문제는 사냥한 괴물의 70% 이상이 사체를 남긴다는 것.

그건 죽은 괴물이 사체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30%쯤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

게이트를 통해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온 괴물들처럼 죽이자마자 말끔하게 사라지는 놈들이 있었다.

그런 놈 중에 약 20%가량은 새까만 색의 결정체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마정석’이다.

마정석은 괴물들의 에너지 원이었다.

그 안에는 어마무시한 것들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탓에 들어도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진심 다양한 곳에 유효하게 쓰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대혼란 시대를 겪으며, 완전히 멸망 직전까지 갔던 지구의 문명.

그것을 그나마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더 나아가 이전의 시대보다 조금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하기까지 마정석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해서, 가격도 비쌌다.

각성자나 헌터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얻고,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목숨을 걸고서 사냥을 하거나 노가다를 하는 이유가 마정석 때문이었다.

놈들이 남기는 나머지 10%는 아이템이었다.

소멸한 놈들이 마정석 대신에 남기는 각종 물품으로 걸치고 있던 무기나 장비류는 물론, 소지하고 있던 동전이나 기타의 것들까지 실로 다양했다.

뭐, 무기나 방어구 같이 비싼 것들을 남기는 경우는 당연히 드물었다.

사체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가죽이나 장기 등을 남기는 경우도 흔했다.

그나마 그것은 나은 상황.

개중에는 똥을 싸지르거나 털 부스러기 같은 것만 남기고 사라지는 놈들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다짜고짜 나에게 마정석을 가져갔냐고 묻는 이들.

그들이 멀리서 보고, 화살로 공격한 식충이… 아니, 오크가 홀연히 사라졌다.

진실은 내가 가진 카드 속에 봉인이 된 것이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그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공격에 놈이 쓰러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

그렇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 아이템이나 마정석이 남아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누가 봐도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에….”

무척이나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기에도 좀 그랬다.

더군다나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의 행위도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따지고 들거나 대들기에도 만만치 않은 상황… 아니, 무조건 내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1:3인 쪽수는 물론, 레벨 30짜리 오크를 그리 어렵지 않게 사지로 몰아넣을 수준이라면, 그들의 레벨 또한 그 정도 내지는 그 이상이란 소리일 테니 말이다.

“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사실을 털어놨다.

살짝 비굴하긴 했지만, 최대한 공손함을 드러내면서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어떤 것도 먹히지 않았다.

“하아, 이 양아치 새끼. 구라를 입에 달고 사네?”

내 복부를 가격했던 이가 말을 뱉어 냄과 동시에 발로 내 등을 짓이겼다.

상당히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자존심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사이, 점잖게 얘기하던 이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더니 나름 나긋함을 표하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순순히 내놔요.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주머니에 마정석이 있기는 했다.

그것도 두 개나.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은 레벨 5짜리 괴물에게서나 얻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 30레벨짜리 오크가 떨구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들의 성이 찰 것 같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가진 전 재산이자, 당장에 오늘 저녁밥과 잠을 잘 돈이기도 했기에 뺏길 마음도 없었다.

“저, 정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다시금 사정하듯 진실을 말했다.

점잖음을 뽐내던 이가 당장에 내 말을 끊고는 살벌함을 드러냈다.

“야! 안 되겠다. 뒤져!”

그의 말에 제일 처음 나를 발견했던 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뒷덜미를 움켜쥔 채,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에, 거북이처럼 발라당 엎어졌다.

이전에 그들의 지랄 같은 시선을 받으며, 발가벗겨졌던 느낌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수치심이 날아들었다.

“이잇….”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얼굴이 불덩이처럼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 아니, 놈들이 내 몸을 마구잡이로 뒤지기 시작했다.

허우적허우적… 휘적휘적….

본능적인 발버둥질을 쳐댔다.

그러나 아랑곳없었고,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이 씨바랄 새끼야, 가만히 있어! 뒤지기 싫으면.”

옆에 서 있던 제일 재수 없는 놈이 이번에는 내 배에다가 발을 올리고 으름장을 놓았다.

더욱더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이 들었다.

당장에 놈의 발을 손으로 붙잡고서 떼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놈이 힘을 더하는 통에 고통만 커졌다.

뒤적뒤적….

내 몸을 뒤지던 놈이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던 마정석을 찾아냈다.

“아, 여기 있네! 어라? 이게 아닌가?”

쾌재를 부르며 마정석을 꺼내더니만, 당장에 사이즈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곳에 숨겼겠지. 잘 뒤져 봐!”

놈이 다시금 내 몸을 뒤졌다.

그러다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여 꺼냈다.

내 낡고 낡은 지갑이었다.

“이게 걸레야. 지갑이야? 키킥!”

놈이 비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새벽에 마정석 깡으로 받은 돈… 훈제 닭 다리 값과 PC방에서 사용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몇 푼이 들어 있을 터였다.

“이거 완전 거진데?”

놈의 지랄 같은 말에 내 배를 짓이기고 있던 재수 없는 놈이 한술을 더했다.

“뭘 새삼스럽게… 딱 봐도 거지 아니냐?”

정말로 치욕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내 지갑에서 돈을 모두 빼내고, 이리저리 뒤지던 놈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살짝 움찔했다.

내게 눈길을 한 번 준 그가 그것을 점잖아 보이는 놈에게 내밀었다.

“여기 이런 게 들어 있는데? 한 번 봐봐.”

“뭔데 그래?”

점잖은 놈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어제 사냥팀 리더였던 털보 아저씨한테 받은 바로 그 명함 말이다.

“흐음….”

명함을 들여다보던 놈이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이 사람… 아니, 이분이랑 아는 사이야?”

어째 말투가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라고 했다가 곧장 ‘이분’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했다.

희미하지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 우리 삼촌이다.”

당연히 뻥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당당했다.

한계를 넘어선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이었을까?

악에 받친 것 같은 투가 제멋대로 곁들여졌다.

놈들에게 그것이 제대로 먹혔다.

“저, 정말?”

놈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였다.

살짝 당황하는 빛도 서려 있었다.

그에, 내 배를 짓밟고 있던 놈이 관심을 보였다.

“뭐야? 누군데 그래?”

놈의 물음에 지갑을 뒤지던 놈이 떨떠름한 투로 답했다.

“마, 마장동 터, 털보….”

당연히 나야 아무런 감흥이나 반응을 표할 무언가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의 반응은 사뭇 굉장했다.

“에엑? 그 투신 길드의 그 아저씨?”

“어.”

재차 확인을 마친 재수 없는 놈이 당장에 내 배에서 발을 뗐다.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상당히 놀라고, 겁에 질린 것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면서였다.

‘뭐지? 갑자기 왜들 이래?’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명함 한 장 때문에 상황이 내 쪽으로 이롭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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