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6)
게시글을 올리고 잠시 쉬기로 했다.
답변이나 댓글이 달리려면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쉬는 동안, PC 사용을 중지하기로 했다.
쓰지도 않는데, 돈을 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지금껏 그래왔고, 아직도 그래야 할 상황이었다.
타닥… 타다닥….
카운터로 보낼 PC 사용 중지 요청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어라? 뭐 했다고 벌써 9시야?”
동이 트기 훨씬 전에 PC방에 들어왔었다.
그런데 9시면… 못해도 서너 시간 이상을 보냈다는 얘기가 된다.
“후아, 얼마나 집중을 했으면… 쩝!”
나의 놀라운 집중력에 감탄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각성자가 아니어도 먹고살았을 것만 같았다.
그러지 못했음에 씁쓸해진 입맛을 다셨다.
타닥… 타다닥!
탁!
메시지를 마저 작성하고는 엔터키를 눌렀다.
잠시 후, 눈앞의 PC가 자동으로 꺼졌다.
그제야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평상시 같았으면, 완전히 뻗은 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피로하고, 뻐근한 몸을 길게 늘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으드드드드드!”
절로 입에서 힘겨움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분위기였다.
여기가 B 구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느낌이었다.
“…?!”
그러던 중, 우연히 카운터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좀 있기는 했지만, 불만으로 가득한 그녀의 표정과 눈빛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하긴, 공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흐음… 살짝 출출하네. 컵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일부러 소리를 좀 내어 혼잣말을 흘렸다.
물론, 여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차오르는 민망함에 변명처럼 뱉어 낸 말이었고, 변명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옆에 달린 호출 벨을 눌렀다.
“하아….”
온 신경을 두고 있기에 들렸을 작은 한숨 소리.
이어, 그녀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말투에 작게 말했다.
“컵라면 하나 주세요.”
“음료수는 필요 없으세요?”
여자의 말투가 살짝 풀어졌다.
“네? 아, 괜찮아요.”
“네, 알겠습니다.”
여자의 말투가 다시 무뚝뚝해졌다.
‘음료수도 시킬 걸 그랬나?’
코끝을 찡긋거리고는 꺼진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과 돌아서서 멀어지는 여자의 모습을 살폈다.
….
잠시 후.
“여기… 컵라면 나왔습니다.”
여자가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가지고 왔다.
친절하게도 단무지를 서비스로 내왔다.
원래 컵라면을 주문하면 딸려 나오는 것이긴 했지만, 나한테는 안 줄 줄 알았거든….
“감사합니다.”
여자는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돌아서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3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중에 단무지를 하나 입에 넣고 씹었다.
“어디… 아작! 쩝쩝… 아작아작….”
짭짤하고, 달콤한 것이 맛있었다.
단무지 맛집인 듯.
3분이 지나갔다.
이어, 10분을 더 기다렸다.
라면을 불리기 위함이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자.
원래 불린 라면을 좋아한다.
이렇게 해서 시간을 좀 더 끈다거나 팅팅 불은 라면으로 배를 채우려는 얄팍한 짓을 하는 게 아니란 소리다.
그럴 거였으면, 물을 더 붓거나 했겠지.
찌이익….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국물을 반도 넘게 흡수하여 면발이 두 배가 된 라면이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굵기는 두 배가 됐지만, 탄력을 잃고서 툭툭 끊어지는 면발을 나무젓가락으로 슬슬 긁어내듯 집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룹… 오물오물… 크으!”
찐득하면서도 짭짤해진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뜨겁지도 않아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었다.
역시 라면은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었다.
덜 익은 라면이 좋다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딱딱하고, 간도 덜 배고, 밀가루 냄새까지 풀풀 나는 것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크읍….”
가슴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불린 라면을 좋아한다.
절대로 배를 불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 크읍… 훌쩍!
….
아주아주 느릿하고, 여유롭게 컵라면을 먹었다.
전부 녹고, 스며든 라면 스프 한 알 한 알의 맛까지 모두 음미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였다.
“으음… 쩝쩝….”
그렇게 컵라면을 바닥까지 모두 긁어 먹었다.
서비스로 준 단무지도 남김없이 해치웠다.
일회용 그릇에 남은 단무지 국물은 그래도 패스했다.
그냥 둬도 되는 빈 용기는 내가 스스로 버렸다.
한 쪽에 마련된 정수기에서 물을 네 컵이나 뽑아 마셨다.
짠 기로 가득한 입안이 말끔해졌다.
찌릿!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꾸 눈치를 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뒤통수의 따가움만 견디면 될 일이었다.
절대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꺼어억… 으으, 배부르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거하게 트림을 했다.
든든해진 배를 슬슬 문질렀다.
네 컵이나 마신 물로 인해 한 번 더 면발이 불 터였다.
소변도 보고, 손도 씻고, 입가까지 정리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나 여자와는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야? 나한테 관심이 있나? 하긴, 내가 또 한 인물 하지. 흐흐!’
절대 그런 게 아닌 것을 알고,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음도 알지만, 그냥 멋대로 좋게만 생각했다.
“어디, 이제 확인을 좀 해 볼까나?”
얼추, 게시글을 올린 지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많지는 않겠지만, 워낙에 활발한 활동이 있는 곳이기에 기대감은 있었다.
꾸욱….
PC의 전원을 켜고 부팅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공짜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엔 여자 쪽에서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후훗! 부끄러워하기는….’
다시금 뻔뻔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하고는 게시글을 확인했다.
“오오!”
내가 올린 게시글 제목 옆으로 ‘(37)’이란 숫자가 붙어 있었다.
당연히 게시글에 달린 댓글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우와! 조회 수도 엄청나잖아?”
비슷한 시간에 올라온 다른 게시글과 비교해 조회 수도 높았다.
기대감이 한층 올라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게시글을 클릭했다.
“흐음….”
축하한다거나 부럽다는 등의 댓글이 가장 먼저 보였다.
조금 더 내리자, 이상한 댓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씨발… 유X왕이냐? 웬 카드 소환?]
└ 난 이번 드로우에 모든 걸 걸겠어!
.└ 유X왕… 미친 ㅋㅋㅋ….
└ 드로우!
.└ 함정 카드 오픈!
...└ 푸하하하!
“….”
댓글의 내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밑에 달린 댓글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카드 캡X 체리도 있어요.]
└ 원제는 카드 캡X 사쿠라죠.
.└ 크로우 만들어 낸 카드여, 나를 위하여 힘을….
...└ 으억! 내가 먼저 쓰려고 했는데 히잉!
└ 사쿠라 하니까, 타X도 생각나네요.
.└ 자, 이제부터 확인 들어가겄습니다잉.
...└ 따라란 다라라란 다라란.
....└ 어, 사쿠라네?
.....└ 사쿠라야?
......└ 내가 봤어! 이 씨X놈이 밑장 빼는 거… 아, 욕해서 죄송합니다.
“하아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래로도 몇 개의 댓글이 더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 따위는 없었다.
“대체 이런 지랄 같은 드립은 뭐래? 짜증나게스리… 쩝!”
유행은 돌고 돈다.
복고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수도 있다.
지금의 시대가 오기 이전… 게이트가 막 생성되며 ‘대혼란의 시대’라 불리던 그때보다 훨씬 더 전의 세상.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지고, 유행하던 것들이 요즘에도 먹히는 추세다.
댓글에 달린 유X왕이나 사쿠라, 타X 등등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란 소리다.
만약, 내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낄낄대고, 우스개 같은 댓글을 달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 상황으로 겪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악플이 달리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젠장! 도움이 안 되네.’
짜증에 게시글을 지울까 하다가 그냥 남겨 뒀다.
후에라도 내가 원하는 답변이 달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였다.
PC의 전원을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용료를 낸 뒤, 밖으로 나왔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단은 직접 해 보는 수밖에….’
게시글을 올리기 전에 여러모로 찾아봤던 정보들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화 던전을 향해서였다.
* * *
정화 던전 근처에 도착했다.
제법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게이트라 꽤 북적거릴 줄 알았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적다고 보는 게 옳았다.
‘완전 정화까지 얼마 남지 않았나 보군.’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게이트를 통해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생성된 던전들 중에 가장 흔한 ‘초원형’ 타입의 던전이었다.
말 그대로 푸르른 잔디밭과 풀숲, 나무와 산으로 이루어진 자연 친화적 공간이었다.
“여기도 사람이 별로 없구나.”
던전 안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던전의 입구 근처에는 원래 괴물들이 없거나 적었다.
뭐, 처음에는 제법 있었을지 몰라도,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드니 제일 먼저 씨가 마르는 게 당연했다.
“약한 놈들이 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변변한 무기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은 둘째치고 어차피 있어 봤자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덜렁 오크 놈이 잠들어 있는 카드와 입고 있는 전투 타이츠가 전부인 상황.
해서, 감당이 안 되는 괴물을 만난다면 실험이고, 테스트고 할 것 없이 냅다 도망을 쳐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움직임이 굼뜨고, 레벨이 낮은 놈들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흐, 그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빽빽하거나 도망치기 어려운 곳은 피했고, 최대한 빙 둘러가듯 움직였다.
“이건 뭐, 사람도 없고, 괴물도 없고…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네.”
썩어 빠진 아재 개그를 흘리고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던전 안쪽으로 꽤 들어왔지만,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흐음… 어쩐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이제부터 들어가야 할 곳은 빽빽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분명히 도망칠 퇴로가 여의치 않게 될 터였다.
“쩝, 들어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좋아, 들어가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더 들어가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의 고민을 이어갔다.
카드 안에서 잠든… 지금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죽은 것은 아닌가 싶은 오크 놈을 꺼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흐음….”
주위를 다시금 둘러봤다.
인기척이 없는 것도 그렇고, 지금보다는 훨씬 더 위험해진 곳으로 들어서야 하기에 놈과 함께 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듯싶었다.
“먹을 거라도 좀 사 올 걸 그랬나?”
그나마 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게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이내 카드를 허공에 띄우고서 놈을 소환했다.
“크아아아아앙!”
너무나 조용하기에 죽거나 잠들어 있다고 여겼던 놈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귀청이 떨어질 만큼 크게 울부짖었다.
“이잇!”
깜짝 놀랐다.
이어, 찡해진 귀를 틀어막고는 인상을 구기며 놈을 노려봤다.
다시 한 번 놀랐다.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덜렁덜렁….
아래로 축 늘어진 흉측하고,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놈의 ‘그것’을 말이다.
“으아아악! 내 누우우우우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