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4)
난데없는 경고음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신비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대상(오크 전사)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대상(오크 전사)의 불안정한 상태는 폭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폭주 시, 자동으로 서약이 파기됩니다.]
불안정, 폭주, 서약 파기….
열거되는 단어들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 방법을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에 머릿속으로 해답이 될만한 단어가 떠올랐다.
‘소환’
해답이 될 만했지, 진정한 해답은 아니었다.
놈을 밖으로 꺼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이내 따라왔으니까.
그러나 이대로 두고만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지?’
난감했다.
‘그래도 폭주 전에 꺼내는 게 나으려나? 그럼, 서약의 파기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느낌상… 서약이 파기되면 놈이 밖으로 튀어나올 게 분명해 보였다.
그것도 상태 이상과 폭주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소환하여 놈을 꺼낸다면, 그나마 안정적인… 서약의 상태가 유지된 채로 나오기에 조금은 상황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치잇! 어쩔 수 없지!”
이러나저러나 레벨 30짜리 괴물이 밖으로 나오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단은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옳을 듯했다.
뭐, 상태가 불안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놈과 대면해야 하지 싶기도 했다.
‘좋아, 간다!’
즉시, 머릿속에 카드를 떠올리며 집중했다.
이내 눈앞으로 카드가 나타났다.
“다음은 소환….”
카드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소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피잉!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카드를 관통했다.
카드 뒤로 넘어간 빛이 거대한 형상을 그려냈다.
오크… 놈의 형상 내지는 실루엣이 분명해 보였다.
“와우….”
꽤 멋진 광경에 감탄사를 흘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였다.
어느새 카드는 사라지고 없었다.
빛은 완전히 놈의 형상을 그려냈다.
이어….
“크아아아아앙!”
엄청난 포효… 괴성과 함께 놈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놈의 거대한 덩치와 키.
그것과 비교해 너무나 작고, 초라한 나의 옥탑방.
놈의 빡빡머리… 아니,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돋아난 머리가 천장을 뚫었다.
쿠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집이 흔들렸다.
“크아아아아앙!”
놈이 다시금 포효했다.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쳐댔다.
거칠게 휘둘리는 팔과 주먹에 몇 개 없는 세간살이와 벽이 죄다 부서졌다.
“흐익!”
하마터면 놈의 지랄 발광에 내 뚝배기도 깨질 뻔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부리나케 기고, 구르고, 뛰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아아아앙!”
쿠웅! 쿵! 콰앙, 쾅!
와장창! 바바바박!
진심, 난리에 난리가 났다.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쾅!
어디선가 거칠게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고함이 이어졌다.
“야, 이 X발 것들아! 잠 좀 자자!”
그에, 정신이 살짝 돌아왔다.
여전히 놈은 우렁찬 포효와 함께 발광하는 중이었다.
작은 옥탑방이 더 작아… 아니, 더 커졌다고 해야 하나?
한쪽 벽이 천장과 완전히 무너져 공간이 넓어져 있었으니까.
어쨌든.
엄청난 광경에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주인아줌마의 성난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가뜩이나 월세도 적게 받는데, 자주 밀린다며 수시로 방을 빼라 했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텼었는데, 아무래도 진짜 방을 빼야 할 듯싶었다.
‘보증금은 포기해야겠지?’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 200만 원.
그마저도 죄다 날릴 판이었다.
아니, 수리비로 더 많은 금액이 청구될지도 모를… 분명 그럴 듯.
“앗!”
다음으로 떠오른 건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 있을 하나쿠 짱이었다.
그녀의 전신사진이 곱게 프린트된 쿠션 말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하나쿠 짱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
그런 여자를 무식한 오크 놈 곁에 두고서 혼자만 탈출하다니….
나는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었으며, 최악 중의 최악인 남자였다.
남들이 이런 나를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나의 순수하고, 진정 어린 사랑을 그들은 모르고 하는 소릴 테니까.
또한, 진짜 사람도 아니고, 고작 쿠션 가지고 무슨 소리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난동을 부리는 오크 놈과 함께 있는 나의 하나쿠 짱은 그냥 쿠션이 아니니까.
그랬다.
쿠션… 아니, 그녀는 특별했다.
뭐, 비슷비슷하게 생긴 쿠션들은 많다.
하물며, 값싼 짝퉁도 대거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리지널 정품이다.
게다가… 일명 ‘순백의 하나쿠!’라 불리는 한정판에 넘버마저 희귀한 레어템이다.
일본 내에서만 판매했던 것을 웃돈까지 얹어 주고 구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한 것이란 말이다.
해서, 그녀를 떠올린 순간, 눈이 뒤집혔다.
이미 몸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난리 통 속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나쿠우우우우우!”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그랬을까?
평소보다 몸놀림이 가볍고, 민첩했다.
마치, 추가적인 버프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냥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샤샥! 샤샤샥!
장애물이 널린 바닥을 빠르게 이동했다.
놈에 의해 ‘갑툭튀’처럼 떨어지고, 날아드는 온갖 것들도 죄다 피했다.
“오오! 파워 오브 러브으으으! 하나쿠 짱, 조금만 기다려어어어!”
사랑의 힘이란 게 진정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나쿠 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다시금 느꼈다.
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몸놀림이 빠르고 민첩했던 이유는 사랑의 힘이 아니었다.
피곤함에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었다.
당연히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그랬다.
전투 타이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기에 A 클래스의 옵션으로 평소보다 무려 10%의 민첩성이 추가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무튼.
사랑의 힘이라 굳게 믿은 채로 그녀가 있는 침대에 다다랐다.
그리고 보았다.
난리 통에 허리가 잘려 나간 그녀의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을 말이다.
“허억….”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여전히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잉.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분노가 일었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찌릿!
놈을 향해 복수의 불길로 이글대는 시선을 던졌다.
놈은 등을 돌리고 있는 탓에, 나의 살벌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놈에게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한순간에 잃은 남자의 분노.
그것을 정면으로 받았다가는 오줌을 찔끔거릴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을 테니까.
또한, 타오르는 복수심을 가득히 담은 남자의 주먹.
그것을 직접 보지 않은 채, 뒤에서 맞고 쓰러지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터.
꽈아아악!
오른쪽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런 뒤에 미간을 잔뜩 좁히며,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X이바아알노오오마아아아아아아!”
기다란… 거의 기합이라도 봐도 좋을 포효를 뱉어 내며, 놈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어어어어억!
호쾌함보다는 둔탁한 느낌이 강한 소리가 났다.
놈의 허리쯤에 꽂힌 주먹이 강렬한 힘에 안으로 살짝 파고들었다.
이어,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이 아니라 내 입에서….
“끄아아아악!”
강렬한 힘에 안으로 파고들었다고 느낀 주먹이… 아니, 손목이 휙 꺾여 있었다.
실로 엄청난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부러진 게 분명해 보이는 손목을 부여잡고 2차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손목이 부러질 만큼 강렬했던 나의 일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처절한 비명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반응을 보였다.
“크르르르….”
낮지만, 심장을 진동시키는 으르렁거림과 함께 놈이 느릿하게 돌아섰다.
놈은 고통에 인상을 쓰고 있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놈의 표정에서 나의 강렬한 일격이 전혀 무의미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X발….”
짜증과 분노, 쪽팔림 등에 나도 모르게 욕설을 흘렸다.
그런 나를 향해 놈이 다시금 낮게 으르렁거렸다.
뒤통수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머릿속에 놈의 말이 전해졌다.
―서… 누….―
순간, 머리 꼭대기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놈이 분명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기에 그랬다.
놀람과 당황이 앞섰지만, 확인을 위해서 물음을 던졌다.
“뭐야? 지금 내 이름을 부른 거야?”
―서… 누….―
“똑바로 말해! 내 이름은 서누가 아니라, 선우라고!”
―서… 누….―
“젠장!”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인상을 구겼다.
놈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머릿속으로 놈의 말이 전해졌다.
―약… 속….―
“뭐? 약속?”
―먹… 을… 거… 배… 고… 파….―
처음엔 의아했지만, 바로 놈이 하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하얀 공간에서 놈과 서약 전에 약속했었다.
원한다면 샌드위치를 더 사 주겠다고 말이다.
놈은 그것을 말하는 듯했다.
“지금 샌드위치를 사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거 맞지?”
―먹… 을… 거….―
“그래, 먹을 거. 샌드위치.”
―서… 누… 약… 속….―
“그래그래. 내가 그랬지.”
―배… 고… 파….―
“그래서 그런 거야? 배가 고파서? 그래서 폭주하려 했어? 이 난리를 피우고?”
―약… 속….―
뭔가 말이 잘 통했고, 대화도 이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놈은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말만 해 댔다.
지능이 좀 떨어지는 게 단점이라던 놈의 프로필 내용이 생각났다.
킁!
일단은 먹을 것을 줘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집에는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뭐, 있다고 한들 이 난리 통 속에서 찾을 수나 있을까?
아니,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도 없을 듯했다.
“어쩌지? 샌드위치 가게는 지금 닫았을 텐데… 아, 맞다. 편의점!”
난감하던 차에 편의점을 떠올렸다.
즉시, 주머니를 뒤졌다.
돈은커녕, 먼지조차도 없었다.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완전히 뒤집히고, 반쯤 부서진 책상을 찾았다.
낑낑대며 책상의 서랍장을 열고는 그 안에서 낡은 지갑과 깡통을 꺼냈다.
“쩝!”
입맛이 절로 씁쓸해졌다.
낡고, 구멍까지 난 지갑에 들어 있는 2천 원을 보고 나서였다.
지갑을 확인하고는 깡통을 열었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검정색 광물… 마정석이 세 개 들어 있었다.
오늘 일당으로 받은 한 개를 포함한 것이었다.
“흠… 마정석을 직접 받아 주기도 하려나?”
마정석은 마정석 가게에서만 사고팔 수 있었다.
일반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내밀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일단 해 보자.”
마정석을 주머니에 챙기고는 놈을 향해 돌아섰다.
“야! 먹을 거 사러 갈 건데… 너랑 같이 갈 수는 없거든?”
―배… 고… 파….―
“알아! 안다고! 일단, 다시 카드 안으로 돌아가!”
―약… 속….―
“젠장! 알았다니까? 약속 지킬 테니까, 너도 얌전히 카드로 돌아가! 오케이?”
놈이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곧장 카드를 떠올려 꺼내고는 놈을 봉인했다.
“후우우….”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장판이 된 주변을 보니, 마음이 더욱더 심란해졌다.
“아으! 내 팔자야!”
이를 갈며 투덜거리고는 옥탑방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편의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