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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화 (2/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

‘…?’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온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벌써 뚝배기가 깨져도 서너 번은 깨지고, 터졌을 시간이지만, 어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스르륵.

질끈 감고 있던 눈 주변의 근육에 힘을 풀었다.

양쪽 눈을 모두 뜰 수 없어서 한 쪽만 뜨는 쪼잔함도 보였다.

움찔.

뭔가 보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는 다시 눈을 감는 추태까지 보이다가 끝내 눈을 떠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헛!’

눈을 뜨고서 확인한 상황의 제일 처음은 일단 놀라움이었다.

분명, 직전까지의 나는 녹음으로 물든 풀숲 사이에 있었다.

또, 거대한 오크의 살벌한 공격을 뚝배기로 받아 내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것들과 사뭇 달랐다.

일단은 주변이 하얀색이었다.

벽도, 빛도, 뭣도 아닌 느낌의 그냥 하얀색 공간으로 전혀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또한, 무식하게 생긴 도끼를 내리찍으려던 녹색 괴물도 없었다.

아니, 눈앞에 있기는 한데… 뭐랄까? 약간은 멍한 상태?

정신이 나간 것인지, 아니면 뭐가 잘못됐는지,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게 다였다.

분명,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살벌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두툼한 입술과 누런 송곳니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고는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여전히 무식하게 생긴 도끼를 들고는 있었다.

그런데 도끼가 무거운지 양쪽 팔을 힘없이 축 늘어뜨린 채였다.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래도 신중하게 눈치를 살폈다.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 애를 썼다.

‘대체, 무슨 일인 거야?’

한참 만에 신비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교감’이란 말이 떠올랐다.

‘스킬의 효과인가?’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허공에 메뉴 패널을 띄우고 ‘스킬’을 터치했다.

이내, 새로운 패널이 떠올랐다.

이전까진 텅 비어 있던 패널 안에 세 개의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다.

―――――

[교감]

[소환]

[봉인]

―――――

뭐, 뜻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그냥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제대로 확인해 볼 요량으로 하나씩 터치를 하려던 그때!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때렸다.

[경고!]

[스킬 ‘교감’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 내에 대상(오크 전사)과의 ‘서약’을 체결하세요.]

갑작스러운 음성에 깜짝 놀랐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서약이라고? 그게 뭔데?’

서약이란 단어의 뜻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걸 어찌하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눈앞의 패널들을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여전히 멍한 채 서 있는 오크 놈을 쳐다봤다.

“….”

“….”

그렇게 놈과 한참이나 침묵의 눈싸움을 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뭘 어쩌란 거야?”

나도 모르게 불만의 혼잣말을 흘렸다.

그 순간!

“크르르….”

놈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진심으로 식겁하여 온몸이 쪼그라드는 경험을 했다.

“….”

다시금 놈의 눈치를 살폈다.

한 번의 으르렁거림 뒤로는 또다시 멍한 상태를 이어 갔다.

‘흠….’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한 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놈의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휙휙!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졸보 같은 추태를 보였지만. 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해서, 조금 더 용기를 냈다.

휙휙!

놈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고, 작지만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야… 야아….”

그러자 놈이 반응했다.

“크르르….”

다시금 식겁하여, 흔들던 손을 재빨리 거두어들였다.

또다시 침묵….

“꼴깍….”

침을 한 번 삼키고 놈을 향해 목소릴 냈다.

“야아….”

“크르르….”

“여어….”

“크르르….”

목소리에 반응을 보인다는 판단이 섰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안녕?”

“크르르르… 크륵!”

“나, 나는 서, 선우라고 해… 나, 나선우.”

“크륵! 크르륵….”

내가 하는 말에 따라 놈이 반응을 달리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놈이 보이는 반응은 그저 으르렁거림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답답함에 혼잣말을 흘렸다.

그것에도 놈이 반응했다.

“크르르….”

그 순간!

뒤통수와 등골을 서늘하고, 짜릿하게 만드는 소름과 함께 머릿속에 정체 모를 어떤 느낌이 전해졌다.

“뭐, 뭐지?”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몸이 반응할 정도로 느낌이 왔는데, 그 실체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닿을 듯 닿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것을 잡으려 애를 썼다.

“으으… 뭐, 뭔데? 응? 뭐냐고!”

답답함에 짜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놈의 반응이 이어졌다.

“크륵!”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단어? 음성? 느낌?

뭔지 모를 무언가가 스치듯 전달됐다.

―배… 고… 파….―

뒤통수와 등골에 또 한 번 소름이 돋았다.

놀란 눈으로 놈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입까지 헤 벌린 채, 잠시 멍해짐을 표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배, 배가 고프다고?”

“크르르….”

내 물음에 놈이 바로 반응했지만, 직전의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안을 뒤적였다.

점심으로 준비한 싸구려 샌드위치를 꺼내 놈에게 내밀었다.

“머, 먹을래?”

“크륵!”

짧고, 강렬한 반응에 이어, 그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놈이 몸을 움직였다.

정확히는 팔을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내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낚아채 갔다.

휘익!

“흐익!”

진심으로 놀랐다.

만약, 그것이 놈의 공격이었다면 순식간에 당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뒤통수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 사이, 놈은 낚아채 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우적우적!”

샌드위치를 감싸고 있던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게걸스럽다는 느낌을 제대로 풍기면서였다.

‘다음으로 나를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엉뚱하지만, 전혀 헛소리는 아닐 것 같은 끔찍한 생각을 떠올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등 뒤쪽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여전히 벽인지, 빛인지 모를 하얀 공간의 장벽(?) 때문이었다.

“쩝!”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시며 놈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좋은 타이밍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샌드위치를 목구멍으로 막 넘기고 있었다.

“꿀꺽… 쩝쩝!”

놈이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겁나도록 두려웠다.

그런 나를 향해 놈이 시선을 던졌다.

다시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순간!

예의 느낌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더… 줘….―

이전보다 조금 더 명확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더, 더 달라고?”

“크륵!”

느낌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는 듯했다.

난감했다.

샌드위치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더, 더는 어, 없는데….”

미안함을 내비치며 말했다.

놈이 화를 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크르… 크르르….”

아뿔싸!

진짜로 놈이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당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미친 듯이 말을 뱉어 냈다.

“지, 지금은 없지만… 지, 집에 가면 있어!”

“크르….”

“아, 아니… 지, 집 근처 가게에 가면 있어! 워, 원한다면 더 사 줄게!”

황급히 말을 뱉어 내고 놈의 반응을 살폈다.

왠지 내 말을 전부 알아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제발 그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발… 제발….’

원래 너무 간절한 소망 같은 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내가 지지리 복도 없고, 운도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간절함이 클수록 이루어질 확률은 미친 듯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번엔 통했다.

아니, 그런 듯했다.

아, 아닌가?

잠시간… 그러나 체감상으로는 꽤 길었던 침묵의 시간을 끝내듯 놈이 구부정하게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스르륵.

저절로 시선이 위로 향하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완전히 우뚝 선 놈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순간.

놈과 나 사이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거렸다.

“윽!”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까지 옆으로 틀었다.

“….”

감긴 눈꺼풀로 전해지던 빛이 사라진 뒤에야 눈을 떴다.

빛이 번쩍이던 자리에 뭔가가 둥둥 떠 있었다.

‘카, 카드?’

의아함과 함께 카드를 살폈다.

직사각형 모양에 손바닥 정도의 크기, 화려한 문양의 테두리를 두르고 있지만,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

의문과 의아함이 계속됐다.

그때였다.

신비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대상(오크 전사)과의 ‘서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대상(오크 전사)이 당신의 카드에 봉인됩니다.]

신비한 목소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드가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휘리리리릭!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카드가 일으킨 바람이 바늘처럼 따끔하게 얼굴로 날아들었다.

해서, 양쪽 팔을 들고 ‘X’자로 교차해 얼굴 앞을 막았다.

휘이이잉.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었다.

감았던 눈을 뜨고는 교차한 팔 너머를 살폈다.

빠르게 회전하던 카드도, 우뚝 서 있던 거대한 오크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주위를 두르고 있던 하얀 공간이 팽창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또한 엄청난 속도였다.

게다가 밖이 아니라 안쪽으로 부풀며 공간을 빠르게 좁히고 있었다.

‘어엇? 이, 이건 또 뭐야?’

이대로라면 압사당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세 몸이 짓눌리는 압박감이 전해졌다.

“끄어억….”

묵직한 압박감에 꺽꺽거렸고, 온몸으로 발버둥질을 쳤다.

“아,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

….

번쩍!

안 된다고 길게 소리를 내지르다가 눈을 떴다.

“어라?”

달라진 주위 풍경에 놀랐다.

온통 하얗던 공간이 아닌, 그 전에 있었던 풀숲… 그곳에 내가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어떻게 된 거지?’

진심으로 어리둥절했다.

꿈이라도 꾸다가 깨어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 놈은?’

주위를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꾸, 꿈이 아니었나?”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직전의 일들을 빠르게 떠올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그러나 꿈이 아니라고 하기엔 또 너무나 엉뚱했고, 이상했다.

“흐음….”

묵직했던 압박감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해서, 일단은 꿈이 아닌 쪽으로 여기며,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꿈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그러다 문득,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게 됐다.

앞선 문제도 잊은 채, 커다란 의문에 휩싸였다.

‘뭐야? 시간이 왜 이래?’

놈과 맞닥뜨리기 직전에 시간을 확인했었다.

분명히 12시 10분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12시 15분이다.

겨우 5분 차이….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뭔가 좀 이상했다.

“아, 씨바… 꿈이었나?”

하얀 공간에서의 일은 꿈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럼, 놈은 어디로 간 거야?”

꿈이라고 친다면, 놈이 갑자기 사라진 게 말이 안 된다.

“젠장!”

진짜로 젠장 같은 상황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때, 잠시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맞다! 카드!”

꿈인지 뭔지 모를 그곳에서 분명히 놈이 카드에 봉인됐다고 했었다.

당장에 메뉴 패널을 열었다.

이전까진 덜렁 ‘상태창’과 ‘스킬’의 두 가지 항목밖에 없었던 메뉴 패널에 ‘카드’라는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대감과 함께 카드 항목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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