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
내 이름은 ‘나선우’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다섯.
나는 ‘각성자’다.
무려 5년 전에 ‘각성’을 했다.
그것도 아침에 일어나 똥 싸다 말고서… 쩝!
각성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인생 로또’라 불린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질 절호의 기회니까.
해서, 처음엔 대박이란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아닌 말로 싸던 똥도 끊고, 밑도 제대로 닦지 않은 채, 화장실을 뛰쳐나왔었다.
“만세! 마안세에! 아싸라비용!”
미친 듯이 만세를 외쳤고, 이리저리 방방 뛰었다.
주인아줌마가 집 무너진다며 쌍욕을 해댔지만, 개의치 않았다.
“씨바… 이제 나는 부자다! 우하하하하!”
어릴 적부터 내 꿈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거였다.
물 쓰듯 돈을 펑펑 쓰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멋진 삶.
그리고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사랑인 ‘하나쿠 짱!’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하나쿠 짱은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다.
청순한 얼굴에 상냥한 웃음이 내 마음을 녹인다.
더불어 죽여주는 반전의 다이너마이트 급 몸매는 내 몸을… 흐!
아무튼.
나는 하나쿠 짱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비록 지금은 그녀의 사진이 프린트된 쿠션으로 만족하지만, 언젠가 수준급의 인공지능이 지원되는 최신형 ‘하나쿠 MK. 0873’과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다.
뜻밖의 장소와 상황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각성의 기회.
나는 내 꿈이 곧 이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각성 이후에 이어진다는 ‘특성 개화’를 기다렸다.
1분… 10분… 1시간….
“어라, 좀 늦네?”
의아함이 들었지만, 묵묵히 기다렸다.
하나쿠 짱과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침대 위에서 ‘므흣므흣’도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흐흐… 흐잇! 아구구, 어쩜 좋아….”
진짜, 어쩌면 좋을까?
특성 개화는 빠른 사람은 1분 내외, 아무리 늦어도 24시간 안에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하루를 꼬박 기다렸음에도 아무런 변화나 진전이 없었다.
“뭐지? 각성이 아닌가?”
혹시 내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 내 눈앞에는 각성의 증거인 상태창이 떠 있었다.
―――――
이름: 나선우
나이: 25세
레벨: ??
클래스: ??
직업: ??
―――――
특성 개화 이후에 드러난다는 정보가 물음표로 도배된 채 말이다.
“더 기다려야 하나? 그래, 뭐…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그렇게 얼마든지 할 수 있다던 나의 기다림은 무려, 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씨바… 똥 싸다 말고 각성한 것부터가 지랄이었어.”
* * *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는 곳이 나뉘어 있다.
재산과 직위 등 자신의 위치에 맞는 구역에 산다는 얘기다.
빈곤층이라고도 불리는 서민들은 ‘B’ 구역에 산다.
B 구역은 위험 지대다.
언제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들이 튀어나와 난동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상… 좀 산다 하는 이들은 ‘A’ 구역에 산다.
A 구역은 다양한 방어 시설과 안전장치가 구비 된 곳이다.
해서,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들이 나타나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돈이 더 많거나 잘나가는 상위 계층은 ‘S’ 구역에 산다.
S 구역은 땅속 30미터 아래에 있는 지하 세계로 ‘뉴타운’이라 불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왜 가장 안전하냐고?
시간도, 공간도 무시하며 무작위로 생성되는 게 게이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은 물론, 깊은 바닷속에서도 생성이 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땅속에서만큼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게이트 시대라 명명된 지난 100여 년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말이다.
그러니 지하 세계가 가장 안전할 수밖에….
B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A 구역으로 가고 싶어 한다.
당연히 A 구역 사람들은 S 구역으로 가고 싶겠지.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집값과 땅값은 ‘어마무시’하니까.
….
천금 같은 기회, 인생의 로또라 불리는 각성을 하고도 나는 ‘B’ 구역에 산다.
그것도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말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각성은 했지만, 특성 개화를 하지 못해 완전 쭉정이가 됐으니까.
각성자는 일반인처럼 일을 할 수가 없다.
평범한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
오로지 게이트나 ‘헌터 협회’에서 지정한 일….
게이트 밖으로 나온 괴물의 퇴치와 게이트 너머의 던전 소탕 등의 특별한 일만 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나쁜 사항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고, 대박 같은 일이었다.
괴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부속인 가죽, 뼈, 살, 장기는 물론 에너지원인 ‘마정석’, 그리고 놈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까지….
운과 노력 여하에 따라 어마어마한 부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뭐, 그것도 제대로 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이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처럼 지지리 복도 없이 쭉정이가 된 이들….
각성의 최하 클래스라는 ‘F’ 등급이나 한때, 잘나가다가 불운의 사고 한 방에 불구가 된 이들 등은 예외가 된다.
아니, 더 지랄 같고, 어렵게 생활해야 한다는 게 사실이었다.
솔직히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몸으로 괴물들과 맞서야만 했으니 말이다.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가야 했다.
으스대고, 무시하며, 비웃어 대는 상위 ‘헌터’들의 따까리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지랄 맞은 것은….
내가 그 짓을 5년째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 * *
대한민국 B―134 지역 내의 ‘정화 던전’.
정화 던전이란 ‘코어’가 파괴되어 ‘일반화’가 된 던전을 말한다.
폭주의 위험이 없고, 괴물도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다.
해서, 초짜 헌터의 수련 내지 레벨업 장소나 상위 헌터들의 노가다 작업장, 돈 많은 이들의 관광지 등으로 이용된다.
나는 오늘 이곳에 있었다.
열두 명이나 되는 사냥팀과 다섯 명의 짐꾼들 사이에 낀 채로 말이다.
“어이, 거기 털모자!”
사냥팀의 리더인 털보 아저씨가 소리쳤다.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틀째 감지 않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비니를 쓴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비니를 보고 털모자라니… 아재는 아재인 모양이다.
“네!”
당장에 대답하며, 그에게 달려갔다.
“이 앞쪽에 뭐가 있는지 좀 보고 와라.”
그의 말에 짜증이 밀려왔다.
다들 쉴 타이밍에 혼자 일을 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한 푼이라도 더 챙겨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
바스락바스락.
빽빽한 풀숲을 헤치며 앞으로 이동했다.
엄청나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했고, 주위의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혼자서 움직이는 만큼, 갑자기 맞닥뜨릴 괴물을 조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조심스러움이 무색할 만큼 괴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 이러면 곤란한데….”
괴물의 흔적이 없으면 목숨은 안전하다.
하지만, 돈을 벌 수가 없다.
“흐음… 아무래도 방향을 바꿔야겠어.”
사냥의 이동 경로를 틀어야 할 듯싶었다.
또한, 그런 판단이 섰을 때, 멈췄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이 실수였다.
바삭!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았다.
꽤 큰 소리가 났고, 괜히 식겁해서 몸이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괜한 식겁함이 아니었다.
“크륵!”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한 번의 실수였다.
바사삭!
다시금 나뭇가지를 밟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게 괴물일 것이 분명한 어떤 놈에게 내 존재와 위치를 들켜 버렸다.
“크르륵!”
조금 더 크고, 위협적인 울음에 이어, 공기를 가르는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우웅!
내 눈앞의 빼곡한 풀숲이 크게 움직였다.
아니….
스스스스슷!
살벌한 바람과 함께 내 머리를 훌쩍 넘긴 풀숲의 허리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꽉 막힌 것 같던 전방의 시야가 확 밝아졌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무식하게 생긴 도끼를 들고 서 있는 거대한 녹색 피부의 괴물을 말이다.
‘허억! 오, 오크….’
키가 2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덩치도 나의 두 배 이상이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과 거칠고, 두툼한 입술을 비집고 나온 누런 송곳니, 거기에 겁나 큰 콧구멍까지….
못생겼다.
아니, 두려움을 자아내게 생겼다.
“크르르륵!”
놈이 나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에, 몸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고양이 앞의 쥐, 사자 앞의 사슴이 이런 느낌일까?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목구멍으로 꼴깍 넘겼다.
쿠웅!
놈이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며 한 발짝 다가섰다.
땅이 진동했다.
놈이 내뻗은 한 걸음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뒤로 물러났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다리가 후들거리며, 얼떨결에 그렇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사시나무처럼 제멋대로 후들거린 탓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몸이 뒤로 기울었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대로 서 있다가 냅다 돌아서서 뛰어도 모자랄 판에 주저앉아 버리다니….
이건 뭐, 그냥 ‘날 죽여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아아… 이, 이대로 죽는구나….’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죽기 직전에 보인다던 옛일의 주마등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언제나 내게 힘이 돼 주는 하나쿠 짱의 얼굴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아아, 하나쿠 짱… 너랑 진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목숨이 왔다 갔다… 아니, 곧 죽기 직전인 상황에 뭔 개소리냐 싶겠지만, 나는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고, 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서글펐다.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웠다.
저벅저벅.
그러는 사이, 놈이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목숨은 포기한 상태였다.
억울함과 서러움에 계속해서 하나쿠 짱을 떠올렸다.
‘하나쿠 짱, 미안… 나 먼저 갈게… 다음 생에는 우리 꼭…!’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물기로 흐릿해진 시야에 놈이 들고 있던 도끼를 높게 쳐드는 것이 보였다.
진짜로 생의 마지막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나쿠 짱! 아이시떼루우우우우우!”
내 영원한 사랑을 목놓아 외치며, 진심 어린 고백을 하던 그 순간!
번쩍번쩍.
흐릿하던 시야가 강렬한 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던….
5년 전, 변기에 앉아 똥을 싸던 중에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당신은 각성하였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던 것과는 달리, 꽤 다급한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경고! 경고!]
[심장 박동 상승! 신체 리듬 불규칙!]
[위험 수위 초과!]
경고를 알리던 신비한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
‘뭐지?’ 싶은 생각이 들려던 찰나, 다시 이어졌다.
[위험 수위 초과로 인한 당신의 특성 개화가 이루어집니다.]
[특성 개화를 통해 당신의 직업과 클래스가 드러납니다.]
[당신의 직업과 클래스에 따른 스킬의 봉인이 풀립니다.]
몸이 한순간에 훅하고 뜨거워졌다.
‘크으… 이, 이제 와서….’
드러난 직업과 클래스가 뭔지, 봉인이 풀린 스킬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늦은 듯했다.
“크아아앙!”
지랄 같은 괴성과 함께 놈이 머리 위로 쳐들었던 도끼를 내리찍고 있었으니까.
“하아….”
한숨이 나왔다.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이루어진 기쁨이나 특성 개화로 드러난 직업과 클래스 등을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그냥 눈을 감았다.
그때,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던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특별한 상황에 의해 스킬 ‘교감’이 자동으로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