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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200화 (완결) (200/200)

200화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아니, 내가 더 고맙지.”

그대로 등을 돌려 가 버리는 흑주신의 뒷모습을 보며, 지모신은 잠시 기다렸다가 완전히 거리가 벌어진 걸 보며 말했다.

[저 마수를 도와주는 것 역시 네가 해야 할 일이었느냐?]

의심이 짙게 깔린 지모신의 목소리. 확실히 그냥 보기에는 내가 조금 과할 정도로 도와준 거로 보이긴 할 것이다.

상처를 치료해 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심장 쪽에 마나를 흘려 넣어 줘서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래, 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응, 사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맞춰지네.”

어떻게 흑주신이 200년 후까지 살아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내게 그토록 호의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참 미래라는 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구나 싶어서 솔직히 당황스럽긴 했다.

[그래, 방금 그것이 마지막 할 일이라는 건 아니겠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물어오는 지모신에게 당연히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저 끝에 있는 산 정상으로 가자. 사람들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거 없어.”

[흐음?]

다시금 어둑해진 밤하늘을 날아간다. 촘촘하게 수 놓인 별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마음을 위로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에 선 나는 지모신에게 스승님의 시신을 가져오라 부탁했고, 그러자 괜히 지모신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있는 게 아닌지 땅이 열리며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한 스승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어찌하려는 거냐?]

“내가 말해 줬지? 200년 후에,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스승님과 똑 닮은 아이가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 그러했다.]

품에서 나는 200년 후의 크리스티나 엘리나가 가지고 있던 것과 동일하지만, 붉은빛 보석만 박혀 있지 않은 밋밋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200년 후의 크리스티나 엘리나는, 내 스승님의 환생이 맞았어.”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스승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지모신은 억세게 반발하며 외쳤다.

[그럴 순 없다. 아니, 내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내게 묻혀 안식을 취한다. 그 외에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지모신의 근처에 거센 광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전신을 죄여 왔다.

[라엘 텔리즈먼! 네가 지금 하려는 일은 세계의 균형이자 질서를 무시하는 일이다! 내 잠깐의 시간을 너와 함께하며 정이 들었던 건 사실이나. 이 이상 마음대로 행동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나 역시 지지 않겠다고 마나를 뿜어 댔으나, 그건 지모신을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랑 거래를 하나 하자.”

[……거래?]

“응, 거래.”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모신에게 말했다.

“사실 이 목걸이는 200년 후의 마리아라는 유모에게 누군가 전해 줘야 해.”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품에 함께 있던 붉은 보석이 담긴 목걸이라고, 마리아가 말해 줬었다.

그런데 나는 줄 수가 없다. 나는 마수와는 다르게 마나의 풍족함이 곧 육체의 강함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길어 봤자 100년을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황금빛 마나를 사용해서 그 시간대로 넘어가기에도 황금빛 마나가 부족했다.

“계속 생각해 봤어. 어떤 방법으로 아이가 된 스승님을 보석과 함께 옮길 수 있는 걸까?”

그 해답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바로 너였어. 네가 해 준 거야, 지모신.”

이것까지 펠리아의 눈으로 보고 온 건 아니지만, 이제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지모신과의 거래에 성공한 거다.

[내가 했다?]

지모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말을 곱씹었으나 금세 부정했다.

[생과 사의 경계를 깨트리는 행위를 내가 할 리가……!]

“만약 내가 이 모든 일을 끝마치고 다시 미래로 가 버리면 어떨까?”

[…….]

거칠게 내뱉던 말이 끊긴다. 눈치는 없는 지모신이었지만, 그래도 머리가 굴러가는 건 괜히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신이 아니었다.

[미래의 내가 그대를 계속해서 감시하겠지. 당장에는 내가 억누를 수 있으나 그대는 아직 앞날이 창창한 마법사. 훗날 과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되겠지, 나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런 너에게 기회를 줄게.”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내가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200년 후의 지모신은 내가 돌아왔을 때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마치 작별을 하듯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아마, 지금의 거래를 그녀가 수락했고, 앞으로의 내 미래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소리였겠지.

능구렁이 같은 신이네.

“나는 미래로 돌아가는 걸 포기하겠어.”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냐? 부족하다. 고작 그런 걸 가지고…….]

“마법도 포기하도록 하지.”

지모신은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스승님의 심장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라도 괜찮다면 말이야.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마나가 들 거라서.”

듄에게 한 번 죽게 될 엘리나를 다시 살리기 위한 마법. 당시 봤던 고차원적인 마법을 따라 하기 위해선 꽤나 고생을 하게 될 듯했다.

[진심인가?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었느냐?]

“맞아, 돌아가야 해. 실은 지금도 돌아가고 싶어.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심장을 욱신거리게도 때려 왔다.

[네가 평생을 이뤄 온 업적이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올라온 힘이다.]

그래, 아깝지.

정말 아깝긴 한데.

“내가 이런 힘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스승님이야. 그분을 위해서라면, 이깟 힘 정도는 포기할 수 있어.”

지금 내가 포기해야만, 스승님은 대마도사라는 후회로 점철되어 있던 구슬픈 삶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다.

늘 친구들과 함께하고, 부모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 평범한 소녀로.

“자, 거래야. 미래를 위협하는 불안한 마법사의 싹을 지금 제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단 한 번만 네가 말하는 생과 사의 규율을 어기면 되는.”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아주 잠깐의 시간 이후, 지모신이 불어오는 바람이 손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

마법사 라엘 텔리즈먼은 사라졌다.

* * *

“끄응차.”

이름조차 잘 모르던 구석진 마을.

나름대로 꿍쳐 뒀던 돈은 있었던지라 어렵지 않게 먹고 지낼 오두막은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간단한 식사를 내어주며, 안에 있는 가구들이 처치 곤란이었으니 사용해도 된다고 해 주었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집.

이전에 살아가던 곳보다는 아담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나만의 비밀기지가 생긴 기분인지라 썩 나쁘지는 않았다.

스읍 하고 새집의 기운을 느끼려 숨을 들이마시니 바로 혀와 폐를 텁텁하게 만드는 먼지.

기침을 하며 청소를 하려고 손을 뻗었으나, 허무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맞다.”

마법으로 청소를 하는 게 워낙 익숙해져 있었기에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지금도 버릇처럼 행동했다. 어색하게 다시 손을 접으며 청소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집을 청소한다는 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이런저런 사념을 정리하는 데 꽤나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슬땀을 흘리며 허리를 편다.

신체 강화를 하지 않은 내 몸은 생각 이상으로 연약했고, 무뎠으며, 쉽게 무리가 찾아왔다.

“어이구야, 저녁이라도 먹을까.”

집주인의 아내가 챙겨 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나의 첫 번째 성과물을 쭈욱 둘러본다.

음.

확실히 청소에 재능이 있는 듯하다.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깔끔해진 의자에 턱 하고 주저앉는다. 청소로 인해 채워졌던 만족감이 썰물에 밀려가듯 자연스럽게 쓸려나가고, 그 자리를 공허함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하아.”

생각해 보니까 정령들이랑 같이 식도락 여행 가기로 했었는데.

‘에레오나랑도 같이.’

지금쯤 애들은 뭐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깊게 했다가, 남은 건 쓰라린 감정뿐이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샌드위치만 베어먹을 뿐이었다.

* * *

생활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천마주교 파이엔이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생각보다 늦게 알려졌구나 싶었는데, 온 국민들이 통곡하며 강제성을 띤 금식 기간에 들어갔다.

이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꽤나 얘기가 많이 나돌았지만, 나는 그런 거 무시하고 당연히 계속 밥을 먹었다.

내가 죽인 사람을 추모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 * *

1년 정도를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 보니, 예상외로 마을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가지는 관심이 커졌다.

듣기로는 내가 엄청난 갑부라서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얘기도 나돈다고 하는데. 덕분에 도둑이 한 번 들어왔던 적도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어쨌든 마법이 사라졌기에 그와 반대 선상에 있는 체력을 기르고 있던 나는 나름 탄탄해진 근육으로 고작 빗자루를 들고도 도둑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이게 돈도 있고 시간도 있다 보니 시간이 남아돌아서 육체 자체는 상당히 탄탄해지고 있어서 그런지 은근히 자신감이 생겨 버렸다.

옛날에는 자벨린 부대 애들이 에레오나의 훈련을 따라 개고생을 해 놓고도 힘들지만 땀을 흘리는 게 좋다고 말했을 때 무슨 개소리인가 했는데, 지금은 좀 이해가 된다.

* * *

3년 정도가 지나니 슬슬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이 생겼다. 허름하던 집을 꾸미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구 만들기, 간단한 식물 키우기, 요리하기, 그림 그리기 등.

사람에게 돈과 시간이 있다면 생각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깨달으며 매일매일을 바쁘게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사실 생각보다 썩 즐거운 삶은 아니었다.

마을 처녀 몇몇이 내게 구애를 해 온 적도 있지만 모두 거절했다. 안타깝게도 고작 2년으로는 내 안에 있는 은발의 여인을 잊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후우.”

나도 모르게 200년 후의 전우들을 그리고 있던 손을 멈추고, 도화지를 구긴다. 썩 아쉽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예전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내 마음만 피폐해질 뿐이다.

“술도 겨우 끊었는데.”

사람이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지만, 완전히 몸을 망치기 전에 끊을 수 있었다.

“아, 면도를 안 한 지 좀 됐네.”

간지러운 턱을 긁적이며 욕실로 향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생각 이상으로 피폐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몸은 더없이 건강했지만,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얘기는 거짓이라는 게 판명되었다.

“다음은 뭘 해 볼까.”

할 일은 많았다.

방금도 말했듯이 취미 생활이 너무나 많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지만.

“…….”

털썩 벽에 기대어 별말 하지 않고 멍하니 바닥만 본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의욕이 없는 날이 몇 번씩인가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몇 날 며칠이고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닐까?

동굴에서는 5년이란 시간을 홀로 보내고도 크게 문제없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변한 걸까 하는 생각이 최근 들기 시작했고.

동굴에 들어가기 전, 내게는 스승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기에.

생각 이상으로 잃은 게 많았기에.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멍하니, 오랜만에 술이라도 한 모금 마실까 싶던 순간.

이제는 익숙해진 거실의 중심이 일그러진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이제는 다 잊었다 생각했던 황금빛이 따스하게 나를 비춰 왔고.

“우레아랑 계약을 하고, 익히는 건 2년 만에 해냈는데.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려 버렸어요.”

익숙하면서도, 늘 꿈에만 그리던 활기찬 목소리.

내 기억보다 나이가 조금 든 금발의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른 가요, 다들 스승님한테 한마디씩 해 주겠다고 벼르고 있으니까.”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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