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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97화 (197/200)

197화

“너무 편하게 있는 거 아닐까요?”

“예? 아까 편하게 쉬라고 하셨잖아요. 그것보다 먹을 건 없습니까? 세계수라는 이름에 비해서 썩 풍요롭지는 않으시네요.”

“이제 언질 받을 거 다 받았다고 이렇게 나오는 건가요?”

순간적으로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좀 편하게 대하긴 했는데, 여기서 긍정해 봤자 좋은 말 듣지 못하기에 그냥 입을 꾹 다문다.

[불리하니까 입을 다무는 거 보면 신들한테 뭐라 할 건 아니구나.]

“그걸 또 마음에 담고 있었어? 나이가 들면 좀 잊고 그래. 피곤해서 살겠냐.”

[하여튼 입 놀리는 건…….]

더 이상 뭐라고 하기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엉덩이에 뭐라도 묻었나 탈탈 털었다.

“그럼 얼추 쉰 것도 같으니 가 보겠습니다.”

“…….”

얼른 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계수의 반응이 썩 이상하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듯했는데, 나무라서 그런지 감이 전혀 잡히질 않는다.

“뭐 원하는 거 있으세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에이, 말투에서부터 뭔가 느껴지시는데요? 말씀해 주세요. 제 부탁도 들어주셨으니까 그래도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면…….”

나름 내 생명의 은인이지 않은가.

세계수에게는 뭐라도 하나 더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가지가 살랑 흔들린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해서 즐거워, 이 시간이 가는 게 조금 아쉬워서 그랬습니다.”

“아…….”

[자주 찾지 못해 미안하군.]

확실히 지모신 같은 경우는 인간계를 돌아다니며 균형을 수호한답시고 이곳저곳 주시하고 있겠지만, 세계수의 경우에는 자기 몸에 주렁주렁 달린 정령들이나 데리고 있는 게 다였다.

시간을 더 내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를 배려하는 세계수.

“괜찮습니다. 그대가 짊어진 걸 알고 있기에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다만, 훗날 당신이 왔을 때를 기대하도록 하지요.”

“제가 돌아가면 다시 찾아뵐게요.”

“기대하도록 하죠.”

천천히 몸을 돌렸던 나는, 잠시 지팡이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세계수 쪽을 바라봤다.

“이것도 인연인데 친구나 먹읍시다.”

“친구요?”

“예, 생각해 보니까 세계수께서 저를 살려 주셨을 때 친구의 부탁이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제가요?”

처음에는 지모신이 끼어 있었기에 그녀를 지칭하는 거구나 했지만, 막상 이렇게 대화하면서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해 봤던 말인데.

“좋습니다, 조금 독특한 인간 친구를 만들어 두는 것도 썩 나쁘진 않겠네요.”

[…….!]

세계수의 반응에 지모신이 놀란 듯했지만,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다시 인간계로 향하는 포탈을 열고 그곳을 통과했다.

‘눈이 조금 적응해야겠네.’

방금까지 환하게 밝던 정령계에 적응했던 눈이 동굴의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슬쩍 확인해 보니 스승님의 묘비 근처. 묻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정령계에 있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 같다.

이 시대의 나는 훈련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지 동굴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와 더불어 격한 파괴음이 울려 왔다.

[설마 세계수가 그렇게까지 인간에게 친근하게 대할 줄은 몰랐다.]

옆에 둥둥 떠 있던 지모신이 무슨 여행 감상이라도 남기는 분위기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후기를 내뱉는 지모신을 보면서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네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마 나 혼자 같으면 절대로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있었기에?]

“보증된 인간이라는 거겠지. 지모신이랑 같이 있으니까.”

[흐음,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원래의 세계수였다면 인간인 나한테 그렇게까지 친화적으로 대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모신이 함께하고 있으니 나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었던 거겠지.

이미 검증된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던 상태라고 할까.

“그것보다 얘는 무슨 마법을 연습하는데 이러는 거야. 잘못하다가 동굴 무너지겠네.”

물론, 직접 경험했던 나였기에 절대로 동굴이 무너질 일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생겼기에 모습을 감추는 마법을 사용한 후, 슬쩍 가 본다.

그곳에는 양손을 휘두르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이 시대의 라엘 텔리즈먼이 있었다.

아무래도 근접하는 마교단장들에게 패배했던지라 접근전에서 유용한 마법들을 연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익히겠다고.’

푹푹 한숨이 새어나왔다.

과거의 나를 보니까 답답함이 배가 되는 기분.

육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렇게 했다가는 5년이 지나도 못 쓸 것 같다.

‘아, 이걸 말해 줄 수도 없고.’

[…….]

지모신이 두 눈, 아니, 꽃을 환하게 피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뭔가 도와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냥 저렇게 두면 알아서 깨닫는 건가?

기억을 되돌아봐도 썩 느낌이 오진 않았다.

“후, 힘들다.”

땀을 뻘뻘 흘리던 라엘 텔리즈먼은 물 마법으로 간단히 씻은 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편의를 위해 동굴에 놓은 시계를 보니 새벽. 늦은 시간까지 연습한 건 썩 대견하긴 하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에휴, 내가 개고생을 하긴 했구나.’

그냥 책만 보고 마법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기에 나는 잠들어 있는 라엘 텔리즈먼을 속으로 응원하던 순간.

“어?”

머리에 스치는 마교단장들과의 전투, 스승님을 잃은 슬픔, 마법을 익히기 위한 고뇌.

순간 어지러움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걸 지팡이로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왜 그러느냐?]

지모신도 당황해서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잠들어 있는 라엘 텔리즈먼이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며 지모신은 자신이 실수했다 생각한 것 같지만, 시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기억이 공유된 것 같은데?”

[무슨 말이냐?]

“아니, 설명하기는 힘든데……. 뭔가 나랑 얘랑 통한 것 같은데?”

[흐음?]

지모신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소리를 내었으나 나는 점차 확신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잠깐 대기하고 있다가 확인 좀 해 보자.”

그렇게 원래였다면 스승님의 시체를 빼내서 밖으로 나와야 했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하루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나로 허기를 채울 수 있으니 배고픔은 내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한 생리현상도 마찬가지. 이런 식으로 실생활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기에 마법을 만능이라고 부르는 거라고 늘 느낀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지모신이 저렇게 말할 정도이니 말 다 했지 뭐.

어쨌든 우리는 이 시대의 라엘 텔리즈먼이 훈련하는 걸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마법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흐름을 딱 잡더니 손쉽게 마법을 쓰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

나와 같은 광경을 보며 이상하다 느낀 지모신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스승님의 묘비 쪽으로 향하며 답해 줬다.

“예전에 내가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어. 내가 본 적이 없는 걸 보고 있는 꿈. 스승님이 천마주교랑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거나, 동굴 내부에서 혼자서 마법을 훈련하는 걸 보거나.”

이 정도만 말했음에도 지모신은 척하고 알아들었다.

[설마 그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 200년 후에 왔던, 그러니까 지금 너의 기억이 이 시대의 라엘 텔리즈먼과 연동되었던 기억이라는 거냐?]

“응, 그런 것 같아. 너는 이쪽에 관해서 뭐 아는 거 없어?”

그래도 명색이 지모신인데 뭔가 알지 않을까 했으나, 그녀는 괜한 물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나 과거에서 찾아오는 존재가 너 말고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하긴, 그건 그렇겠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했다. 동굴에 살면서, 스승도 없이 단순하게 책만 보면서 그 정도의 성과를 5년 만에 이룬다고?

‘어림도 없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건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미 모든 걸 깨달은 나와의 기억이나 경험이 무의식중에 공유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걸 배워 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5년 만에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거겠지.

“뭔가 묘하긴 하네. 내 노력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야.”

찝찝한 느낌이었지만 의외로 지모신이 옆에서 부정해 주었다.

[남의 것을 배운 것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에게서 배운 거다. 게다가 이 시대의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말이지.]

“당연히 모르겠지, 나도 지금 깨달았는데.”

[그렇다면 된 것이지 않으냐. 네 노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뭐 그렇긴 하지.

“웬일로 위로를 해 주냐.”

[위로라기보다는 그냥 상황을 객관적으로 말한 것뿐이다.]

튕기기는.

[그래서 이제 확인할 건 다 확인한 것이냐?]

“응, 이제 스승님의 시체만 챙기고 나가면 돼. 몰래 나가려면 녀석이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리긴 해야겠지만.”

그렇게 다시금 인내의 시간.

지모신이랑 끝말잇기를 하거나 서로 겪었던 썰이나 풀면서 시간을 죽인 후, 라엘 텔리즈먼이 잠든 걸 확인하고 스승님의 무덤을 파헤쳤다.

관 속에 곱게 잠들어 계신 스승님.

마법적 처리를 해 두었기에 부패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눈을 뜨실 것처럼 깔끔했다.

“…….”

제자로서 스승의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를 두 번이나 하게 될 줄이야. 묵념으로 사죄를 드린 후, 마법으로 조심스럽게 스승님의 시체를 들어 올리고 그대로 입구 쪽으로 향했다.

[나갈 수는 있는 것이냐?]

“조금 비틀면서 나가면 가능은 할 것 같아. 어차피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려면 결계에서 황금빛 마나도 조금 얻어 가야 했어.”

이미 수백 번 머릿속으로 그려 봤던 상황이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게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오케이, 얻었다.”

밖에 나와서 우리를 마주한 숲의 나무들과 밤바람, 달빛에 보다 내 시선을 앗아간 건 단연 황금빛의 마나.

다시금 봐도 살아 숨 쉬듯 내 오른손을 이리저리 휘감으며 움직이는 마나는 아름다웠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그거 알아? 관광할 때 계획을 짜 놓으면, 여기는 꼭 가야지 하는 곳이 있는 거.”

[정녕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은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냥 해 본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갔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꼭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 중에서도 꽤나 거물인 일을 지금부터 할 생각이야.”

펠리아의 눈을 통해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었지.

[호오? 그건 흥미가 동하는구나.]

지모신마저 궁금해하며 나를 설레게 하는 일.

“천마주교를 죽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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