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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94화 (194/200)

194화

“와, 약간 새집 보는 느낌인데?”

이쪽 세계의 라엘과 스승님이 오기 전, 동굴 내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가슴이 몽글해지는 추억에 잠겨 버렸다.

“여기 돌부리 있는 거 봐. 이거에 맨날 다리 걸려서 나중에 마법으로 부쉈는데 생각보다 움푹 파여서 메우는 데 고생했잖아.”

[…….]

“이야, 얼룩도 하나 없네? 내가 여기서 나중에 마법 훈련이랑 다 하거든? 근데 완전 깔끔하네.”

[…….]

“아, 맞다 맞다! 혹시 그 책이 아직 남아 있겠네? 내가 여러 번 보던 책인데 한번 불 마법 쓰다가 타 버려서 아쉬웠거든. 200년 후에는 구할 수도 없었던 거라서.”

[…….]

“듣고 있어?”

주머니에 있는 하얀 꽃을 슥 꺼내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꽃이 팽 돌아가며 되레 나한테 역정을 내온다.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가 이 동굴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혀 흥미 없다!]

“하아, 정 없긴. 그러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서 살아왔지.”

[내가 홀로 있는 이유는…….!]

지모신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더욱 안쪽으로 들어간다. 스승님의 무덤으로 예정된 장소까지 도달한 후에야 나는 마나로 몸을 숨긴다.

[여기는 왜 온 거지?]

“스승님의 시신을 옮길 필요가 있거든.”

[흐음?]

“왜 이유가 궁금해?”

[아니, 그저 지켜보도록 하지.]

쳇, 이걸로 갑질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잠깐은 가능하지만, 오랜 시간을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괜히 나도 스승님의 결계에 휘말려서 어딘지 모를 시간대로 가 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나 혼자 잠깐 결계에 있다가 나왔는데 덜컹 100년이 지나 있거나 하면 말짱 꽝이지 않은가.

‘그것보다 결국 스승님의 시체를 옮긴 범인이 나였다니.’

당시를 회상하자면 그토록 충격을 받은 적도 드물지 않았나 싶다.

자유 혁명군에 가서 엘리나를 만나고, 스승님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에 그녀와 함께 이 동굴로 왔었다.

테토에게 부탁해서 땅을 파고, 스승님의 관을 열었으나 그곳이 텅 비어 있는 걸 봤을 때.

혼란스럽긴 했지만 어딘가에 스승님이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차오르긴 했었지.

‘아니면 마교에서 수작을 부린 건가 걱정하기도 했었고.’

결국엔 용들에게 얻은 펠리아의 눈을 통해서 모든 진실을 알아낸 덕분에,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돌고 돌아서 나라는 걸 알게 되었고, 과거로 오게 되었다.

‘참 복잡하게도 꼬였네.’

생각해 보면 스승님에 관해서 참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구나 싶다.

일단 자유 혁명군에서 어린 엘리나를 만난 것부터 시작해서, 라마닉스에서 흑두사의 신자인 세크메트가 스승님의 지팡이 ‘제국의 태양’을 통해서 만들어낸 거짓된 꼭두각시까지.

스승님의 시체를 둘러싼 의혹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고, 솔직히 이 당시의 나는 너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반쯤은 생각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엘리나가 지팡이를 통해서 스승님의 과거를 읽게 되었고, 그녀의 도움으로 스승님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어?”

갑자기 말을 걸어온 지모신.

나도 모르게 답하느라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지만, 침착한 척하면서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그냥 참 여러 일이 있었는데 돌고 돌아서 모든 범인이 나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 인생의 쓴맛? 뭐 그런 거?”

[내가 오래 살긴 한 것 같군. 요즘 인간들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 그건 나도 인정이야.

엘리나가 학교에서 배워 오는 신조어라는 것들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더라. 뜻을 알아도 그걸 왜 그렇게 줄여서 쓰는지도 모르겠어.

“뭐, 지금 내가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

나조차도 펠리아의 눈을 통해서 진실을 통찰했기에 겨우 깨달은 것들인데.

그때, 동굴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거친 호흡과 무거운 발걸음. 마지막 신념을 쥐어 짜내어 달리고 있는 200년 전의 나와 그 위에 업힌 스승님.

“들어온다. 조용히 해.”

[또 아까처럼 흥분하지나 말거라.]

뭐라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스승님과 라엘이 안으로 들어왔다.

200년 전의 라엘 텔리즈먼은 동굴 내부로 들어와 안의 설비에 놀라면서도 바닥에 깔려 있는 결계를 위한 문양을 보며 당황한다.

“스승님, 이건?”

“중앙으로…….”

문양의 정중앙에 스승님이 앉고,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분명 천마주교와의 목숨을 건 사투에서 마나 탈수 증상까지 일어난 걸 확인했는데 어디서 저런 마나가 나오는 걸까.

그것도 매우 순수하고 고결한 황금빛.

‘저건 내가 평생이 지나도 따라 하지 못하겠지.’

“지금부터, 결계를 펼친다.”

“결계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스승님이 이런 마법을 다루는 건 처음 봤기에 당시에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내 시간이……. 많지 않아. 많은 걸 알려 주진 못하겠구나.”

“스승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처 따위 금방 나으실 겁니다. 늘 자신감 넘치시던 분이 그러시니까 되려 무섭네요.”

“후후, 그래, 그렇구나.”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와는 반대로 축 늘어지는 스승님의 고개를 보며, 이미 한 번 겪은 일이고 모든 결말을 다 알고 있음에도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 지금 그렇게 힘을 사용하시면…….!”

“아이야,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를 저렇게 부르시는 일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었는데.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잘 참았다.’

“아직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많은데, 정말 너무 많은데.”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도, 흐트러진 스승님의 머리에 가려진 입 모양이 내게만 살짝 보였다.

만족스러운 미소.

그걸 보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저 미소는 내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많았으나, 그 모든 걸 깨달은 내가 대견하다고.

‘아, 아아…….’

“하나만 약속해다오.”

“예, 스승님.”

“‘되었다’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절대로 동굴 밖으로 나가지 말렴.”

스승님의 말씀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려는 라엘 텔리즈먼은 곧이어 굳은 의지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저 때만 해도 나도 이제 곧 죽는다는 생각에 결사의 각오로 바깥에서 추격하는 마교들을 죽일 생각이었는데.

“부디, 행복하길…….”

천천히 뺨을 쓰다듬어 주시는 스승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천천히 떨어진다.

‘…….’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지만, 스승님의 최후를 내가 망칠 순 없었다.

그분의 더 큰 행복을 위하여.

“적어도 당신의 마지막만큼은, 그 누구도 더럽힐 수 없을 겁니다.”

스승님을 두고, 라엘 텔리즈먼이 천천히 몸을 틀어 동굴 입구 쪽으로 향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앞으로 다섯 시간 정도는 동굴 앞에서 적들을 죽이겠다며 콧김을 뿜어 대고 있을 거다.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마법을 풀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깨어나실 것 같은 스승님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이렇게 되니 내가 모습을 드러낸 걸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승님조차 실은 도박수였다.

나를 미래로 보내는 건 스승님에게 있어서도 불안전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발악이었으나.

200년 후의 내가 나타남으로써 자신의 모든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게 되신 거다.

그러니까 이토록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으실 수 있으셨던 거겠지.

“끝까지 당신은 저를 놀래키시는군요.”

살짝 몸을 숙여 스승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의 끝부분을 살짝 만져 본다. 부드럽고, 따스하다.

[…….]

“뭐야, 왜 그래?”

아무 말도 없는 지모신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기도 했고, 이렇게 계속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는지라 가볍게 말해 봤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참으로 가여운 삶을 살아온 여인이로구나.]

“…….”

[죽는 그 날까지 자신의 제자를 위했으며, 그 제자 역시 스승을 위해 길고 긴 시간을 돌아 다시금 이 자리에 돌아왔다.]

왜인지 꽃에는 눈도 없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웠다. 가장 오랜 시간, 가장 많은 것을 봐 왔던 신으로서 단언하마. 그대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괜히 민망해져서 뒷머리를 긁적이긴 했지만.

“고마워.”

지모신이나 되는 존재의 인정을 받으니 솔직한 마음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거지? 이 여인을 바로 데려갈 것이냐?]

“아니, 지금은 표식만 간단히 남겨 둘 거야. 내가 스승님의 장례를 치르고 묘비를 세우는 건 시간이 좀 있어야 하거든.”

[그러면 지금부터 계속 기다리기만 할 것이냐? 네 스승이 쳐 놓은 결계 안에 있으면 시간의 균열이 많이 망가질 것이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잠깐 다른 곳으로 가 있을 거야.”

[다른 곳? 이 동굴 안에서 말이냐?]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장소.

스승님이 쳐 두신 결계 속에서도 유일하게 내가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

“우리는 정령계로 간다.”

내가 웃으면서 손을 뻗어 준비를 시작하자, 지모신은 비관적인 목소리로 불가능하다 선언했다.

[정령계를 인간이 갈 수 있다는 것부터가 일단 말이 안 된다.]

“그래,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데 저기 있는 책 중에 드레이크라는 애가 집필한 게 있는데, 그 안에 정령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인간이 자력으로 정령계로 갈 수 있다고?]

“어, 신기하지?”

피식 비웃음을 내걸면서 말하자, 지모신은 자존심이 구겨졌다 느꼈는지 더욱 거세게 외쳤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정령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다. 이미 인간계에서 쫓겨난 적 있는 정령들은 자신들의 공간에 지극히 예민하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필시 강제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일 터. 정령왕이 알게 된다면 정령들을 이끌고 너를 죽이러 올 것이다.]

“알고 있어. 경험해 봤거든.”

처음 정령계에 갔을 때 얼마나 격렬하게 당했는지, 두 번째로 갈 때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지모신의 말대로 정령계로 강제로 침입한다면 모든 정령들이 다 내게로 달려들 테고 그렇게 한다면 미래가 바뀐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가자.”

문 앞에 열린 정령계로 향하는 포탈을 보며, 지모신은 경악에 받쳐 소리쳤다. 꽃이 아니었다면 아마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광대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정령계로 강제로 가는 게 아니라 권한이 있다고? 인간에게?]

“응, 내가 정령왕이랑 좀 친해.”

나름 정령계의 기사라는 칭호까지 걸쳤던 사람 아닌가. 200년 후에 받은 권한이긴 했지만, 어차피 이것들은 자기네 집 자물쇠를 한 번 걸면 평생을 안 바꾸는 종족이다.

예전이나 미래나 똑같다는 소리.

[정령왕과 친하다고?]

입가에 그려지는 비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00년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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