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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92화 (192/200)

192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하는 듄은 자신이 꼴사납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급하게 일어났다.

뺨에 붙어 있는 마른 나뭇잎을 떼어 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어째서 자신이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지 하나씩 기억의 발자국을 되감아 본다.

분명 자신은 죽음의 기사들을 데리고 산을 넘어서 제국의 병사들을 기습하려고 했었다.

대마도사와 마도사에게 거짓된 정보로 다른 거점을 지키게 만들고, 완전히 허점을 찌를 수 있는 상황.

점점 마교에게로 승기가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한 결정타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음의 기사들과 함께 산을 내달리고는 있었지만, 그 이후의 기억이 뚝 끊기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죽음의 기사들도 전원이 사라진 상태.

듄은 당황하면서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젠장.”

우선은 돌아가야겠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떠 있던 하늘은 벌써 그 자리를 달과 별이 채우고 있었다.

혼자서 제국의 거점을 타격할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시간이 지났으면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대마도사와 마도사가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왕인 천마주교 파이엔에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마교단장 듄은 산을 내려갔다.

“흠, 갔네.”

그리고 듄이 사라진 자리에서 마나가 흔들리며, 공간이 일렁인다.

듄의 뒤통수를 보면서 아예 죽이지 못한 게 아쉬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손 하나 정도는 날려도 괜찮지 않을까?”

녀석이 무투가이자 오른손잡이라서 그 정도만 잘라내도 충분히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해 봤던 말인데, 옆에 있던 지모신이 버럭 화를 낸다.

[이런 식으로 나올 건가?]

“뭘 시작부터 흉흉하게 그러냐. 나도 그냥 해 본 말이야.”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믿어 준 지모신.

그녀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리는 계약을 하나 했다.

바로, 내가 겪었던 미래의 일이 그대로 일어나게 하기로.

그렇지 않으면 사력을 다해서 나와 싸울 거라나 뭐라나. 솔직히 지금이라면 지모신과도 얼추 해볼 만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와 생각이 일치했기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보다 궁금하구나. 정말로 당신이 봤던 그 미래를 똑같이 만들 수 있을지.]

“이미 미래의 네가 대답을 했다니까?”

[그건 미래이지 않느냐.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하는 걸 원한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기에 이제는 살아 있는 것인지 혹은 죽은 것인지도 모르겠는 나, 지모신이.]

묘하게 들뜬 목소리의 지모신.

고개를 살짝 꺾고 있던 꽃도 지금만큼은 빳빳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이토록 궁금한 적은 처음이구나. 200년이라고 했느냐? 참으로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건만, 참으로 오랜만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구나. 그것은 마치 도둑과 같아, 시선을 주는 순간 움직이지 않지.]

“어이쿠, 나이에 맞지도 않게 주책은.”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거지?]

“뭐야, 따라다니려고?”

질린다는 표정을 했지만, 원래 나이 많은 분들은 눈치가 없으시지 않은가. 지모신은 당연하다면서 자연스럽게 내 귀에 걸린다.

“아, 미쳤어? 누굴 미친놈 취급받게 하려고!”

바로 귀에서 뺀 후, 주머니에 쑥 집어넣자 지모신은 어색한 헛기침으로 괜한 변명을 한다.

[예전에는 꽃을 귀에 꽂는 인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도대체 언제 얘기를 하는 거야. 지금 몇 년도인데.”

그 정도면 거의 돌 깎으면서 생활하던 시대 아닌가?

눈치 없으면서, 시대 감각조차 없는 고대신 하나 데리고 다니게 생겼구나 싶었다.

[크흠, 그래서 무엇을 할 거지?]

방금 일은 없었던 거로 쳐달라는 듯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한 지모신. 한 마디 해 줄까 하다가 이러다 정들 것 같아서 그냥 별 고민 없이 답해 준다.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그리고 이제 곧 시작될 거야.”

[시작된다?]

듄의 속공을 막으면서 대충 기억을 더듬어본다. 녀석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스승님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지 않은 날.

앞으로 며칠 뒤면 마교는 본격적으로 제도 아르니를 향해서 진군을 할 테고.

‘제국은 마교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 * *

[참혹하구나.]

씁쓸한 목소리가 하얀 꽃으로부터 울려온다.

무너지는 첨탑보다 훨씬 높이 떠올라있는 나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타오르는 아르니티를 내려다본다.

마교의 일원들이 그야말로 제도를 유린하며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내리찍으며 놈들을 전원 학살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서라, 이것이 운명이며. 네가 말하는 미래로 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지 않으냐.]

“알고 있어.”

[네가 돌발행동을 하는 순간, 나 역시 다른 수많은 신들을 이끌고 너를 죽일 것이다. 명심하거라, 우리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걸.]

“안다고.”

듄이 성벽을 넘어 안으로 파고들어 오고 있었고, 퓰리의 울음소리가 기사들의 귓구멍을 파먹으며 울려온다.

아이란의 군세는 죽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며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로그니다츠 세이야스와 벤트 몰란도 전쟁터에서는 듣기 힘든 환호를 지르며 신을 냈다.

‘가서 꿀밤만 먹여도 죽일 수 있는데.’

한숨을 내쉬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왕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금발의 로브를 두른 여인.

그녀의 찬란한 금발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미모는 숨겨지지 않았다.

각오와 전의를 다지며, 마나를 끌어올리는 대마도사.

“스승님.”

나의 스승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사람이 곁에 있다면. 결국, 떠나간 사람은 잊히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있던 스승님과 너무도 똑같은 그 모습에, 나는 스승님을 전혀 잊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옅게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그것이 쓰게 변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승님이 나타나는 걸 기다렸던 천마주교 파이엔이 모습을 드러내며 바로 스승님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

“기다렸도다! 대마도사!”

“내 인기가 워낙 많아서, 너 정도 흔남은 상대해 줄 시간이 없다.”

달려드는 파이엔을 향해 무차별적인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한 스승님. 파이엔도 자신의 권능을 내뿜으며 반격한다.

정말로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맞는 건가 싶은 화력과 규모의 전투. 전투가 아닌 전쟁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만 같은 화려함.

[놀랍구나.]

지모신조차 두 사람의 공방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권능과 마나가 한데 어우러지며 뒤섞이는 모습은 목숨을 내건 결투가 아니었다면 아름답다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저런 이들이 인간 중에 있다는 것도 놀랍건만, 그대는.]

갑자기 나한테로 타깃을 바꾼 지모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스승님과 파이엔은 충분히 대단하지만, 사실 지금의 나와 비교하기에는 좀 많은 격차가 있었으니까.

으흠 하고 다시금 내 깊이를 가늠하려는 지모신을 무시하며 나는 다섯 명의 마교단장들이 모여들고 있는 한 지점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천마주교와 스승님의 대결을 방해하지 못하게끔 홀로 다섯의 단장들과 싸우는 내가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저 때 꽤 젊긴 했네.”

[그런가? 내가 봤을 때는 똑같은 것 같은데.]

“그쪽은 본인이 몇 살인지도 까먹으셔 놓고 무슨.”

영겁을 살아가는 신이 고작 몇 년 차이를 본다고 뭘 알겠는가.

“……답답하네.”

스승님과 파이엔의 대결을 보면서는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가 실감이 났다면, 이 시대의 라엘 텔리즈먼이 싸우는 걸 보면서는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그냥 꺼지라고 말하고 내가 대신 싸워 주고 싶은 정도.

공격 일변도의 마법사이기에 마교단장들이 달려들어 접근전이 펼쳐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

‘그러게 조금 준비를 해 놓지 그랬냐!’

나 자신에게 공허하게 외쳐 보지만,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몸을 틀어 스승님과 파이엔의 대결 쪽으로 눈을 돌리려던 순간.

“어?”

지끈하는 두통이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강타했다.

하늘에서 살짝 몸이 휘청거렸을 뿐 추락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당혹스럽긴 했다.

‘이게 뭐지?’

예전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때 느끼던 두통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외부적인 무언가가 작용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지?]

지모신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

뭔가 불안함을 느끼며, 나는 다시 스승님과 파이엔의 결투로 시선을 돌렸다.

“훌륭하다, 대마도사.”

“빌어, 먹을 새끼.”

그렇게 몸을 숨긴 채로 스승님의 전투를 지켜봤다. 피를 토하는 스승님과 거의 반쯤 죽어 가는 파이엔.

하지만 승부는 파이엔의 승리였다.

스승님의 마나는 이미 고갈되었으며, 쥐고 있던 지팡이 ‘제국의 태양’은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보기 흉할 정도로 거칠게 꿰뚫린 스승님의 복부. 마지막 마나를 뿜어내며 어떻게든 반격을 하시긴 했지만, 패배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여기서 스승님은 도망치다 나와 만나셔서 내가 그분을 업은 채로 동굴로 도망친다.

그리고 200년간의 수행이 시작되겠지.

어찌 보면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남자의 인생에 2부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었는데.

“자아, 이제 그만 가라.”

악신의 권능이 날카로운 검의 형상을 띄웠고, 파이엔이 스승님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은 어떻게 도망치셨던 거지?’

지금 상태를 보아서는 정말 조금의 마나도 남지 않았는데.

풀썩.

부들부들 떨리던 스승님이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전형적인 마나 탈수 증상과 함께 허무하면서도 모든 걸 포기한 미소.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라엘에게 그 장소라도 알려 줄 걸 그랬구나.”

‘어?’

푹 숙인 고개와 오작교처럼 쏟아져 내리는 스승님의 금발이 대지에 웅덩이가 고인 것처럼 흐트러진다.

‘잠깐만.’

휘둘러지는 천마주교의 검과 포기한 스승님의 모습에.

“이건 내가 알고 있던 거랑 다르잖아!”

나도 모르게 마나를 뿜어 천마주교에게 날렸고, 녀석은 망가진 장난감처럼 바닥을 구르며 날아가 버렸다.

“어?”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친 스승님.

“아.”

나도 모르게 쏘아낸 마나에 당황한 나와.

[하아.]

짜증을 내는 지모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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