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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88화 (188/200)

188화

“뭐야, 진짜로 테러가 왔었다고요?”

무대를 끝마치고, 땀을 닦으며 음료를 연신 들이켜던 제니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병을 내려놨다.

퍼지들의 독립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알았고, 그녀의 소속사에서도 위험하다고 말했음에도 강행한 콘서트.

그렇기에 일부러 보통의 콘서트보다도 훨씬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보안에 신경을 쓴 건 물론이거니와, 톰 같은 전쟁영웅도 투입했던 것이었다.

물론, 톰은 놓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수로 끝이 났기에 다행인 부분.

무대는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쳤고,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와 춤에 감동의 여운을 가진 채로 집으로 귀가했다.

“어쨌든 잘 막기는 했지만, 너 조심해라. 원래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가장 표적이 되기 쉽잖아.”

“그렇겠죠,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여기까지 제국을 바꿔 놨는데, 마지막 정도는 제가 해도 괜찮겠죠.”

사실 제니아의 제국 내 영향력 자체는 예전부터 굉장히 컸지만, 그것이 혁명군의 활동에 큰 도움을 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다만, 독립을 하게 된 지금.

유명 가수였던 제니아가 실은 퍼지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좋지 않은 의미로 시끄러워졌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가수 제니아로 쌓아 올려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선언이었지만, 제니아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퍼지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게 바로 제니아였다.

모두가 전투를 끝냈지만, 그녀만큼은 여전히 많은 이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듬직해졌네.”

처음 해바라기 주점에서 봤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의연한 모습. 제니아는 코를 으쓱하면서 내 칭찬을 받아들였다.

나는 옆에 있던 톰을 손등으로 툭 치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네가 옆에 붙어서 제대로 경계해. 이번처럼 놓치지 말고.”

“……알았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분해하고 있는 톰이었기에 그는 평소의 가벼운 분위기와 다르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예전 전쟁터에서 날뛰던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독립을 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당장에는 극성인 녀석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할 거야. 조심해.”

“알았다니까요.”

하여튼 걱정은 많다면서 투덜거리는 제니아의 모습이 괜히 걱정스러웠기에 나는 옆에 있는 엘리나의 머리에 손을 툭 얹으며 말했다.

“필요하면 내 제자도 불러. 요번처럼 극소량의 마나를 이용한 폭탄도 손쉽게 감지해 낼 거야.”

“마도사님을 제 호위로 두라고요?”

너무 과한 거 아니냐는 제니아였지만, 엘리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꼭 불러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눈 끝도 축 처지고 몸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습.

제니아가 왜 이러냐고 눈짓으로 내게 물었으나, 나는 엘리나의 머리를 조금 더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일부러 마나를 이용한 폭탄이랑 그냥 폭탄을 따로 구분한 거야. 방심하게 하려고.”

적의 의도에 정확하게 걸려든 꼴이었지만, 이건 저쪽에서 나름 머리를 잘 쓴 것이었다.

“알아요.”

현명한 아이니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겠지. 원래였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지금 이번 실패는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위험할 수 있었다.

엘리나는 그걸 견딜 수 없는 것.

어린 나이에 높은 성과를 이루게 된 자들은 당연하게도 거쳐 가는 과정임을 알기에, 나는 엘리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책임감을 느끼는 건 좋아. 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는 않길 바란다. 앞으로 제니아를 따라다니면서 이런 일을 종종 해결하게 될 거야. 그때마다 이렇게 풀이 죽을 건 아니지?”

내 말에 엘리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진 내 손을 양손으로 꼬옥 쥐었다.

마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신자처럼.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암 그렇고말고.”

옆에서 불이 붙은 톰 역시 두 눈을 부릅뜨고 선언한다. 믿음직한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 * *

수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황실의 넓은 정원.

다들 교양 있는 하객의 복장을 차려입고 왔지만, 사실 하객 복장이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비슷하다 보니 똑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이거 봐요, 제가 로브 입어야 그나마 튄다고 말씀드렸죠?”

“라엘 님은 로브가 가장 어울리십니다!”

“푸훗.”

우리 혁명군의 꼬맹이 삼총사인 미오, 에딘, 헤니가 내 옆을 차지하고 있었고, 뒤에는 우리 흑주신의 아들들인 흑돌이들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얘네는 그냥 두고 오면 안 됐냐?”

덕분에 결혼식 하객들이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고 있는데.

“안 돼죠! 저희 흑돌이들도 동료인데! 루이나 언니도 꼭 데려오라고 말했거든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면서 평소의 시원할 정도로 가벼운 복장과는 반대로 자신의 머리 색과 딱 어울리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미오.

“마, 맞습니다, 라엘 님. 그래도 저희 같은 동료들이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오의 차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에딘.

“그래도 애들을 구석이나 다른 곳에 데려다 놓긴 해야 할 것 같아. 목줄도 채워 두고.”

언제나 맞는 말을 하면서 애들이 너무 흥분하지 않게 잘 눌러 주는 헤니.

“어, 어쩔 수 없긴 하겠지.”

미오도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걸 보곤 하는 수 없다며 흑돌이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아 주었다.

“미안해, 잠깐만 목줄 하고 있자.”

이제는 거의 얘들이랑 대화하는 수준이 된 미오. 흑돌이들은 괜찮다면서 미오의 뺨을 핥아 주었는데, 예전이랑 다르게 워낙 거대해졌다 보니 금세 침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좋다면서 애들 안아 주는 미오.

나는 마법으로 미오의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줌과 동시에 푸른 줄을 만들어 혹돌이들의 목에 걸어 주었다.

“이거면 목도 안 아프고, 답답하지도 않을 거야.”

대마도사인 내가 목줄을 채우는 걸 보고 조금은 안심한 듯 보이는 주변 하객들.

흑돌이들을 조금 멀찍이 데려놓은 이후, 우리는 다시 결혼식에 집중했다.

제국에서 가장 거대하면서도, 가장 솜씨 좋은 정원사들이 황제를 위해서 매일 정성 들여 가꾸는 정원.

이곳에서 오늘, 레온과 루이나의 결혼식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혁명군의 주축이던 두 사람이 황실의 정원에서 결혼식이라니. 정말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당시 제안자였던 내게 레온은 “인생은 정말 끝까지 살아봐야 하는구나.” 하고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고, 루이나는 재밌겠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귀족들이나 주교 같은 고위 관료들은 오지 않았다. 이곳에는 오롯이 혁명군과 관련된 사람들만이 찾아온 비밀의 결혼식.

황제인 제라니와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그리고 집사 같은 사용인들 정도만 알고 있겠지.

“와, 음식 봐.”

“헉! 저거 랍스타야?”

호들갑을 떨면서 음식에 돌진하는 미오와 에딘. 아까까지 흑돌이 어쩌구 하던 녀석이 요리를 보는 순간 바로 눈이 돌아갔다.

“저걸 보면 누가 짐승인지 헷갈린다니까.”

“후후, 맛있어 보이는 게 많기는 하네요.”

푸념하는 내 옆에서 헤니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바람의 정령 살로메.

-파티! 파티! 재밌겠다!

“응? 너는 왜 여기 있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인간계에 오지도 말라는 거야?

입술을 뾰루퉁 내미는 살로메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령들끼리 오늘 축하해 준다고 이벤트 준비하던데 너는 안 껴?”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의 정령분들께서 긴장해서는 오늘 아침부터 준비하셨다.

어제 내가 리허설을 봤는데 괜히 재앙의 정령이라 불리는 것들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결혼식 박살 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최대한 자제하라고 말해 뒀다.

-아, 그거.

살로메도 뭔가를 아는지 씁쓸하게 입을 뗐다.

-게네 정도로 미친 정령이 아닌 이상 그런 기예는 못 할걸.

“…….”

-도대체 어떤 정령이 인간 결혼식 축하해 준다고 태풍 10개를 불러.

아, 너도 봤구나.

어제 그거 보고 진짜 깜짝 놀라서 바로 마법으로 잠재웠었다. 이 정도도 하면 안 되냐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애교 부리던 라푼젤이 떠올랐다.

“하여튼 그것들은 그냥 놔두면 안 된다니까.”

인간계는 스케일이 너무 작다면서 투덜거리던 정령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두통을 느꼈다.

어쨌든 최대한 작게 해 보라고 했으니까 어느 정도 줄이긴 했겠지.

“……아, 괜히 걱정되는데.”

-나는 몰라.

자신은 책임 없다면서 그대로 헤니와 함께 도망치는 살로메.

그 뒤에도 나는 꽤 여러 사람을 만났다.

아무래도 혁명군만 있다 보니 당연히 다들 아는 사람뿐.

옛 동료였던 포르쉔 국장과 리스테린의 아버지인 레반 레토리의 드라마 같은 재회부터 시작해서.

다시 고향에서 대장간을 열었다는 로버트 부자와 그 집에 얹혀살면서 간단한 보건소를 운영 중이라는 테리스 선생까지.

테리스 선생은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헤니가 시집을 가거나, 자기만의 보건소를 차렸을 때를 위함이라고 어깨를 펴면서 밝혔다.

그 외에도 다른 혁명군이었던 사람들도 만났다.

청색횃불의 수장이었던 소니아 에델라이와 철거북의 수장이던 톤파 영감.

두 사람 다 나중에는 레온의 밑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특히나 놀라웠던 건 소니아 에델라이의 근황이었다.

그녀는 이제 이루고 싶었던 건 모두 이루었다면서, 지팡이를 손에서 놓고 간단한 가게를 운영하려 한다는 것.

한때는 혁명군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던 청염의 소니아가 마법을 그만둔다는 건 같은 마법사로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만큼 평화가 찾아왔음을 의미했다.

톤파 영감은 숲속에 작은 집을 지어서 자연인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너무나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딱 맞다고 말해 버렸다.

“두 사람이 결혼하다니, 결국 루이나가 성공했네.”

소니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말하자, 톤파 영감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레온이 에레오나랑 결혼을 할 줄 알았는데.”

“어머,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으시다. 둘은 딱 친구 그 이상은 아니잖아요.”

소니아와 톤파는 나름대로 죽이 잘 맞으며 대화를 하는 걸 보며 나도 한마디 보탰다.

“레온이랑 에레오나랑 결혼하면 제가 주례 봐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물론, 요번 결혼에서도 주례는 내가 보게 되었지만.

그런데 소니아와 톤파 영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두 사람 다 내 뒤를 보고는 딱 굳더니 바로 몸을 틀어서는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하.”

기가 차다는 헛웃음.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돌아보자, 그곳에는 자신의 은발과 딱 어울리는 은색 드레스를 입은 에레오나가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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