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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82화 (182/200)

182화

“허억 허억!”

성벽 위에서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깨질 듯한 머리를 양손으로 쥔 채로 쓰러진 로그니다츠 세이야스.

그는 애써 몸을 틀어서 성벽에 기대고는 전황을 살폈다.

‘아무리 놈이 강해졌다고 해도 나타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정도의 힘을 보여 준다고?’

로그니다츠 세이야스는 두려움과 동시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패배라는 단어가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이미 죽은 벤트 몰란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마교단장 넷이 모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의 왕인 천마주교 파이엔까지 전장에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파이엔과 함께하는 수많은 악신들까지.

‘고작 저딴 마법사 하나에 전장이 흔들릴 성싶으냐.’

정령 그리고 용들과 싸우는 것도 있었고, 아직까지 진정한 힘을 가진 악신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컸다.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금방 전황은 뒤집힌다.

그렇게 생각하며 로그니다츠 세이야스는 잠시 시간을 두며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굳이 지금 나섰다가는 퓰리나 아이란처럼 놈의 마법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뿐이었으니까.

‘빌어먹을.’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힘없는 벌레 같은 인간과 비슷한 느낌인지라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찾았다.”

낮게 깔리는 청년의 목소리.

처음 듣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익숙하다고도 할 수 없는, 아직 어릴 때 들었던지라 당시에는 변성기가 지나지 않았었지만, 세월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어 찾아왔다.

“네놈은…….”

잊을 수 없었다.

제도 아르니에 있는 자신의 신전에 라엘 텔리즈먼을 몰고 왔던 원흉과 같은 존재.

당시에는 천마주교 파이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육체를 찾아다녔었고,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던 소년.

하지만 워낙 하찮았기에,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기억 못 할 것 같았어.”

복수를 위해서 스산한 목소리로 검을 뽑아 든 노아는 천천히 로그니다츠 세이야스를 향해 걸어왔다.

“같잖은 놈 주제에 감히 나를 죽이겠다고?”

로그니다츠는 코웃음을 치면서 일어나려 했지만, 정령왕들에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여신 렐의 권능을 과하게 사용한지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

아주 잠깐만 있으면 되었다.

로그니다츠 세이야스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판단을 다시 내리고, 조금 천천히 움직이려고만 했어도 노아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심했다.

고작 저딴 꼬맹이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들고 온다는 게 같잖았기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버티지 못한 몸이 과부하를 일으켰다.

그 찰나의 틈을.

로그니다츠 세이야스에게 박힌 권능의 힘 탓에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월한 노아는 놓치지 않았다.

콰득!

그의 심장에, 정확하게 꿰뚫린 검을 내려다보며 로그니다츠는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바라봤다.

거점에 시체가 있다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겠지만, 라엘 텔리즈먼이 이미 전쟁 전에 제국에 있는 모든 거점을 파괴했으며, 지하에 있는 시체들도 전부 소각했다.

결국.

이 신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로그니다츠는 급하게 의사봉을 휘둘러 보지만, 노아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피한 후, 주먹을 놈의 얼굴에 박아 넣었다.

“우리 아이들이! 수녀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타란 마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던 사랑이 많은 수녀, 엔돌 아나와 그녀의 아이들은 로그니다츠 세이야스와 세크메트라는 여인에 의해서 처절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저, 세상을 밝게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선물하던 아무 잘못도 없던 수녀는, 과할 정도의 비극 속에서 눈물 흘리며 죽어 갔다.

“커억! 크억!”

노아가 내리치는 주먹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것보다 더욱 심한 건, 고작 이런 애새끼한테 자신이 두드려 맞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천치 놈이!’

어떻게든 권능을 끌어올리려 해도 가슴에 찍혀 들어온 검의 통증을 통해서 자신의 힘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가 무시하던! 고아원 아이의 손에! 죽는 거야!”

“자, 잠까…….!”

잠깐만 버티면 된다.

아주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바로 몸을 추스르면서 권능을 휘두를 수 있건만.

노아의 발이 로그니다츠 세이야스의 얼굴을 발로 밟자, 코뼈가 무참히 부러진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노아의 발차기가 그대로 가슴에 박혀 있던 단검을 더욱 깊게 박아 넣기 위해서 발로 찼고.

“끄어어억!”

로그니다츠 세이야스는 듣기 민망할 정도의 비명을 내지르며 덜덜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빛의 정령왕에게 이미 한번 당했던 상처가 더욱 길게 찢어지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에 기절을 할 수도 없다.

“지옥에 떨어져, 너희의 신들과 함께 후회해라.”

사죄를 받을 생각도 없었다.

백 번을, 천 번을 죽어서 다시 살아나도 노아는 늘 똑같이 그를 죽이고, 복수하며, 단죄할 것이었고.

“아…… 안 돼에에에!”

어떻게든 발악해 보려던 로그니다츠 세이야스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툭 떨어진다.

동공이 커지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다.

“드디어.”

드디어, 모두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적의 강함과 거대함을 알면 알수록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신의 몸을 옥죄여 왔다.

많은 밤을 눈물과 절망으로 베갯잇을 적셔 왔다.

그 모든 나날에 대한 보상이 이제야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소설에서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있었다.

복수만큼 헛된 것도 없다고.

하지만 노아는 단언할 수 있었다.

개소리다.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 만족감만으로도 노아는 지금 당장에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수녀님, 얘들아.”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악신들의 강림으로 먹구름이 잔뜩 끼며, 어둡던 하늘이 라엘 텔리즈먼의 찬란한 무지갯빛 마나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해냈어.”

오늘따라, 정말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 *

도망치고 있는 천마주교 파이엔과 듄을 쫓는다. 파이엔을 들쳐업고 있는 듄과 그런 자신의 부하를 향해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파이엔.

“내려라! 저놈을 당장에 찢어발기겠다!”

“참으셔야 합니다! 진정한 힘을 가진 악신들이 이제 금방 올 것입니다!”

“닥쳐라! 나는 천마주교!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는단 말이다!”

‘저놈이 원래 저렇게 감정적으로 굴었나?’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당시에는 패배라는 걸 모르는 무적의 기세를 뿜어냈기에 저런 면이 있는 걸 당연히 몰랐지만.

그럼에도 종교라는 간판에 신의 이름을 내걸고 있었기에, 그는 다른 대주교들과 비슷한 분위기와 말투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패배라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모양이네.’

200년 전, 스승님을 죽이고 제국 아르티니를 손에 넣었던 그가 불현듯 누군가에게 죽었다.

펠리아의 눈을 통해서 그 모든 광경을 봐 왔던 나였기에, 그가 얼마나 처참하게 구르고 발악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때의 패배가 녀석에게 꽤나 큰 트라우마가 되어, 꼴사납게 도망치는 지금 이 순간이 참을 수 없는 듯했다.

“에이잇! 꺼져라!”

결국 천마주교는 권능을 끌어모아 자신을 들고 있는 듄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파, 파이엔 님!”

전신 갑주를 입은 듄이기에 큰 피해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왕에게 손찌검을 당한 게 충격인 듯했다.

“나는 패배 따위 하지 않는다!”

“그래, 네가 맞이할 건 패배 같은 게 아니야.”

보다 확고부동한 말이 있지 않은가.

“죽음. 너는 이제 죽는 거야, 파이엔.”

“닥쳐라아!”

“굳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부활해서 트라우마도 건드리고, 상처만 받고 끝나지 않는가.

녀석의 권능은, 놈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 사납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능히 기사단을 홀로 학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지만.

어둠을 밝히는 나의 마나와 마법은 가차 없이 녀석의 권능을 깨부수며 앞으로 치고 나갔고, 결국 파이엔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억!”

피를 토하며 쓰러진 파이엔.

눈처럼 하얀 녀석의 머리칼이 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파이엔 님!”

듄이 허겁지겁 달려들지만, 파이엔도 상대가 안 되었다.

녀석은 땅에서 솟아난 수많은 마나의 창에 꿰뚫려 전신에서 피를 쏟아냈다.

“이래도 안 죽어?”

이 정도면 다른 마교단장들은 물론이고 천마주교까지 죽일 수 있는 위력이었을 텐데, 역시 듄이 단단하긴 가장 단단했다.

그렇게 녀석들을 죽이기 위해 다시금 마나를 끌어모으는 순간.

파이엔과 듄을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힘은 아니었다.

이미 놈들은 축 늘어진 옷가지처럼 힘없이 나풀거릴 뿐이었다.

‘기적인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악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천마주교인 파이엔에게 기적을 부여할 정도의 신이라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듄은 뻔하지.’

듄은 당연히 그가 섬기고 있는 파괴의 신 가이스가 깃들기 시작했다. 녀석의 전신 갑주에 검은색 불꽃이 더욱 거세게 피어오르며 등 뒤에 투구를 쓴 남자의 형상이 떠올랐다.

[인간의 잔재주는 썩 재밌게 보았다.]

파괴의 신 가이스.

녀석이 자신의 신자인 듄의 신체를 강탈하며 강림한 것이었다.

벤트 몰란의 목숨을 이용하여 질투와 폭식의 신 체체로가 강림한 것과 마찬가지.

‘듄은 이제 끝났군.’

이미 모든 의식이 사라져, 흰자위만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 혹시나 싶어서 마법을 몇 발 더 쏴 봤는데 정타로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다.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서 억지로 붙잡혀 있는 듯한 모습에 혀를 찼다.

마교단장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쓰러지지 않는 괴인. 선봉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당백 남자의 결말치고는 지나치게 시시했다.

‘그게 네놈의 업보이겠지.’

200년간 쌓아 올린 힘을 자신이 섬기던 신에게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적으로 빼앗겼다.

놈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럼 파이엔 쪽은…….”

저쪽은 불길한 기운이 올라오고는 있었지만, 묘한 게 기운 자체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3개 정도.

각기 다른 신들이 파이엔의 육체를 이용해서 강림하고 있었다.

무슨 자리 뺏기 싸움도 아니고 신들끼리도 치열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기 싸움을 하고 있는지, 파이엔의 몸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까짓거, 내가 해답을 줄게.”

그냥 전부 오 지마.

거대한 마력탄이 정확하게 파이엔에게 날아들었다. 정신을 잃은 인간에게 쏘기에는 과격한 파괴력이 담긴 공격.

놈의 신체를 산산이 부숴 버릴 생각이었지만, 연보랏빛 권능이 앞을 막아섰다.

[아주 불경한 아이구나.]

소리만으로도 귀를 후비는 것만 같은 여인의 찐득한 목소리.

정욕과 음기의 여신 메로아루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하늘에서 용들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훨씬 강하다.’

어떻게 보면 지모신과도 필적하는 수준.

[숙명의 여신, 레이기스라고 한단다. 너무 겁먹지 말렴.]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두 신들이 파이엔의 몸을 통해서 입을 연다.

[운명의 신, 라이노다! 같잖은 인간 나부랭이가 감히 우리까지 불러낼 줄이야!]

고막은 물론이고, 전신의 핏줄을 터트릴 기세로 소리를 질러대는 남신.

[종말의 신, 엔드.]

마지막으로, 오래된 노인의 목소리를 하고 있는 노신까지.

“이제야 최종장인가 보네?”

수많은 신들을 죽여 온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모신과도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죽이는 순간.

이 전쟁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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