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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80화 (180/200)

180화

“…….”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믿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다. 그 생각에 흔들림은 없었지만, 내 옆에 있는 세인트 학교의 전 학장, 헤이만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정말로 이대로 대기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다고 지금 저희가 가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그럴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지 않은가. 마법을 쓸 수 없더라도 용들은 싸울 수 있다.”

“용들이 그 거체를 움직일 수 있는 건 근육이 발달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나를 이용해서 신체를 강화하는 거라면서요.”

내 말에 헤이만은 정곡을 찔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원래는 용들까지 처음부터 전력으로 투입하려 했다.

그들이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작전을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제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용들이 악신들과 마교단장들의 집중 견제를 당할 게 분명했다.

용들 역시 마나가 있어야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약해진 용들은 상대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니 지금 나와 함께 기다리는 중이었다.

“쳇, 답답하군.”

팔미산의 수문장이나 다름없는 녹색 용, 체르마닌도 옆에서 투덜거리면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녀 같은 무투파들도 마나가 없으면 제 실력도 내지 못하고, 소수의 용들이 가는 것도 포위당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결국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모든 용의 주인인 임페리얼조차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성공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금 믿음을 심어 주려 더욱 강하게 말했다. 기사단이 앞에서 주의를 끌고 혁명군이 안으로 파고들어 특공작전을 펼친다.

어찌 보면 늘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혁명군에게 있어 가장 자신들의 힘을 크게 발휘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없던 3년간 놀랍도록 성장한 그들을 믿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마나를 차단하는 장치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돌입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스승님, 준비는 다 됐어요.”

마찬가지로 마법사인 엘리나가 지팡이를 양손으로 꼭 쥐고 다가왔다. 이런 전장에는 그녀를 끼고 싶지 않았지만, 에딘이나 미오 같은 아이들도 싸우고 있으니 말릴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말린다고 해 봤자 어떻게든 따라오겠지만.

“가능하면 무조건 헤이만 님이랑 같이 있어. 알았지?”

“스승님 따라가면 안 돼요?”

어떻게 보면 나랑 같이 있는 게 더 안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엘리나를 보살필 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 장소가 가장 위험한 곳이 될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안될 것 같아.”

“히잉, 저도 같이 싸우고 싶은데.”

“같이 싸우는 거야. 나는 나의 위치에서, 너는 너의 위치에서.”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엘리나도 고개를 같이 흔들며 기분 좋게 받아준다.

옆에 있던 헤이만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가능하면 엘리나의 옆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헤이만 님은 이 아이가 마법을 쓰는 걸 지켜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내게도 손녀딸 같은 아이라서 걱정하지 말게.”

용의 마법을 가르쳐 주면서 꽤나 친해졌는지 헤이만도 엘리나를 향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으음.”

정작 엘리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헤이만을 바라봤기에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준 듯했지만.

“……!”

그 순간, 퍼뜩 내가 퍼뜩 고개를 돌리자 한 템포 늦게 임페리얼이 눈을 뜨며 팔짱을 풀었다.

정령왕이 준 지팡이 ‘프레이’를 강하게 쥐며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흐트러지던 마나가, 전신에 차오름을 느꼈다.

* * *

“네놈.”

천마주교 파이엔이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레온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저따위 빛을 뿜어 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기를 과히 거스르고 있었다.

“이름을 빼앗긴 신의 휘광을 짊어지고 꽤나 있는 척을 하는구나.”

파이엔이 전신의 권능을 끌어올리자, 레온은 오히려 더욱 비웃음을 내걸면서 답했다.

“태양신의 힘 따위를 믿고 있는 게 아니야.”

찬란히 빛나는 자신의 검 말고 다른 걸 믿고 있다?

파이엔은 무슨 소리를 하냐 일갈하려 했지만 레온이 말을 덧붙였다.

“네가 무서워하고 있는, 내 친구를 믿는 거야.”

“이 몸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따위 도구에 의지하고 있는 거지.”

또.

또 같은 말.

하트가 했던 말을 똑같이 들은 파이엔의 이마에 핏줄이 툭 솟아올랐다.

자신은 타인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이지, 공포에 떠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걸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겠다는 생각으로 파이엔이 손을 뻗는 순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용의 숨결.

레온이나 다른 자벨린 부대원들은 무너지는 천장을 보면서 급하게 도망치며 몸을 숨겼다.

“…….”

용들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공격인 브레스임에도 천마주교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간단히 치워 버렸다.

“용?”

뻥 뚫린 천장 덕분에 훤히 보이는 어두운 하늘.

그곳에는 마치 별처럼 오색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거대한 용들이 수 세기 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들 중 하나에 올라타 있는 금발의 소녀.

스승님과 비슷한 로브를 흩날리며 크리스티나 엘리나는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들고 정확하게 파이엔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리스티나 엘리나…….”

마교단장들에게 이미 듣기는 했다.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환생이라고 봐야 할 존재가 상대측에 있다고.

자신을 고전하게 만들었던 존재이기에 처음에는 조금 거슬렸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는 없다 일갈했다.

'게다가 당시보다 더 약해졌군.‘

아직 어린 크리스티나 엘리나를 보면서 파이엔은 조소를 내뱉었다.

성장한 크리스티나 엘리나가 와도 지금의 자신에겐 미치지 못하건만,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 보였다.

용들을 방패 삼아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는 있었지만, 그것 또한 파이엔에게 있어 불면 날아갈 참새와도 같은 존재들.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구나.”

1차 신령대전에서 용들은 악신들에게 패배했었다.

마교와 아르니티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크리스티나 엘리나는 자신에게 패배했었다.

지금은 신령대전보다 용들의 숫자도 훨씬 적었으나, 악신들은 인간계를 지배하며 강대한 힘을 얻었다.

진짜 크리스티나 엘리나인지, 아니면 단순히 닮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보다 훨씬 강해진 파이엔의 앞에 더욱 연약해진 크리스티나 엘리나.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자신들의 차례는 없다며 지루해서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있던 악신들이 용을 보는 순간 바로 하늘에서 나타난다.

‘내가 움직일 필요도 없겠군.’

악신들에게 있어 용들보다 재밌는 장난감은 없겠지.

파이엔은 좋은 구경을 하겠다 생각하며 다시 왕좌에 앉아 하늘을 무대로 전투를 시작한 신과 용을 관망했으나.

쿠구궁.

바닥이 흔들린다.

여유롭던 천마주교가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급하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내성을 다시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이건…….”

내성이 무너진다.

바닥에서부터 치솟고 있는 마나는 마치 변주곡을 연주하듯 아름답고, 현란하게 움직이며 내성을 먹어치우듯 박살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존재는 딱 하나.

“라엘 텔리즈먼!”

천마주교가 눈을 부라리며 무너져가는 바닥을 직시했다.

용과 크리스티나 엘리나는 눈속임.

라엘 텔리즈먼은 지하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 * *

“메로아루아!”

가장 거대한 황금의 용, 임페리얼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정욕과 음기의 여신을 보며 비명을 지르듯 포효했다.

그녀에게 죽어 나간 자신의 동지들을 떠올리며 쏟아낸 브레스에 악신들이 수없이 죽어 나갔지만, 정작 메로아루아는 악신들을 이용해서 몸을 지켰다.

[산 위에 숨어 있던 용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으윽.”

울려 오는 메로아루아의 목소리.

마치 귓속에서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엘리나가 인상을 팍 쓰며 자신의 귀를 양손으로 감싼다.

“마나로 귀를 보호하거라. 저런 격이 높은 신들은 목소리만으로 인간의 정신을 헤집어 놓는다.”

태워 주고 있는 헤이만의 충고에 엘리나의 지팡이에서 빛이 솟아오르며 소음을 막았다.

이제야 조금 편해진 표정으로 메로아루아를 노려보는 엘리나.

하지만 그녀는 임페리얼을 보며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내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있니?]

“…….”

[용의 시체를 얻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나도 답지 않게 주책맞게도 조금 흥분한 상태란다.]

“추한 년.”

임페리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온다.

라엘 텔리즈먼에게 패배했을 때는 그래도 긍지 높은 인간에게 패배했기에 깔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수많은 동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 죽음조차 시체를 능욕해서 더럽힌 더러운 여신.

임페리얼은 분노를 토하며 수많은 마법들을 고속 영창하기 시작했고, 그걸 보며 메로아루아와 악신들 역시 자신들의 권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엘리나, 너는 지상에 있는 게 어떻겠니.”

엘리나를 걱정하는 헤이만은 악신들과 용들의 전쟁에 그녀를 끼어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나는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지팡이 밑으로 헤이만의 머리를 톡톡 내리쳤다.

“지금 그럴 때예요? 얼른 정신이나 차려요!”

엘리나의 지팡이에서 마나가 흩뿌려지며 보호막이 만들어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악신들의 권능에 엘리나가 인상을 팍 찌푸린다.

“방금 학장님 죽을 뻔했다고요!”

“크흠!”

헤이만은 헛기침을 하며 미안하다 답하고 엘리나를 돕는다. 하지만 순간적인 방심에서 시작된 대응이 미숙했고, 엘리나 역시 힘이 딸려서 밀리던 순간.

부적처럼 품에 가지고 있던 푸른 꽃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엘리나의 몸에는 마나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끝없이 솟아오르는 마나.

엘리나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품을 확인했고.

[그래도 내 적합자인데 도와줘야지.]

경박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솔직히 엘리나는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 준 것만큼은 감사했다.

3년간 사라졌던 건 라엘 텔리즈먼만이 아니다.

마나의 신 우레아.

그가 엘리나와 함께, 악신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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