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73화 (173/200)

173화

제도에서 라엘 텔리즈먼이 제라니 황제의 명에 따라 출정을 거행한 때에.

레온 역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

묵묵하게 자신을 검을 허리춤에 착용하는 에레오나를 보면서 레온은 입을 열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그래, 알고 있어.”

저번 일 때문에 아직 화가 덜 풀렸기에 에레오나는 레온에게 쌀쌀맞게 대했지만, 오히려 레온이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이 일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얘기야.”

“……알고 있다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쏘아붙이는 에레오나의 눈동자에 레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아이들의 복수를 하지 못했잖아.”

“…….”

“라엘한테 말했어?”

“아니, 라엘이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레온에게 짜증을 내려 했지만 레온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둘이 같이 학원 차리려면 비밀 같은 건 없어야 되는 거 아니야? 동업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뚝 하고 움직임이 멈춘 에레오나. 점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마치 태엽 감는 기계처럼 고개를 돌려 레온을 바라봤다.

“누, 누가 말했어?”

“누구겠어, 라엘이지. 나한테도 같이 할 생각 있냐고 묻던데?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에레오나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제안을 했던 건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그를 향해 레온은 혀를 찼다.

“꽤 힘들 텐데 어떻게 하냐?”

“다, 닥쳐.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심호흡을 하면서 안장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여 은발로 얼굴을 숨기는 에레오나. 만약 라엘 텔리즈먼이 앞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주먹을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서 분명히 말해 줘야 할걸? 걔 그런 거 눈치 전혀 없잖아.”

“…….”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레온은 웃으면서 천천히 자신의 친구로부터 시선을 돌려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부디, 라엘 텔리즈먼과의 인연을 통해서 자신의 오랜 친구가 인연이 만들어 낸 주박을 끊어 내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는 너는?”

“뭐가?”

에레오나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눈을 빛냈다. 마치 역공을 해 오는 군사와도 같은 기세.

“루이나가 너 좋아한다고 말한 거, 이미 다 들었거든?”

“아, 그거?”

“……뭐야?”

뭔데 이 녀석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거지?

회심의 공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적의 심연과도 같은 강함을 알아챈 기분이 들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진지하게 사귀기로 했어. 아직은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지, 진심이야?”

“나도 루이나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루이나는 내 체면 때문에 자기가 먼저 고백한 것처럼 말한 것 같은데, 내가 먼저 고백했는데?”

“…….”

붕어가 된 양 입을 뻐끔거리면서 레온을 보는 에레오나와 그런 에레오나에게 묘한 미소를 띠는 레온.

“나 은근 인기 많았어. 본판이 좀 되잖아.”

“그 본판을 아예 뜯어 부숴 주리?”

“그러면 루이나가 울 텐데.”

이놈이 어디서 이런 걸 배워 온 거지?

분명 라엘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 혼자서 근엄한 척, 진지한 척은 다 하면서 웃음기를 싹 빼놓고 있었으면서, 지금은 또 기다렸다는 듯 장난을 쳐 댄다.

‘빛의 신 때문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라엘이 말하기로는 빛의 신과 동화가 너무 깊어져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고는 했지만, 그 반동이 좀 심하게 오는 듯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넓은 아량을 가진 자신이 넘어가 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이미 레온의 뒤통수를 후리고 있었다.

“아!”

“어라? 참으려 했는데.”

“너한테 뭘 바라겠냐.”

신기하다는 듯 자기 손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에레오나를 보며 레온은 짙게 짜증을 내며 말에 올라탔고.

에레오나는 이겼다는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말에 올랐다.

아무래도 제도에서 출발하는 것보다는 조금 거리가 있다 보니 조금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연설은 필요 없었다.

자신들은 이미 모든 걸 이뤘고.

지금 움직이는 건 오롯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선물한 동지이자 친구를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원치 않는 자들은 모두 빠져서 세이라스를 지키기로 했지만, 대부분이 와 주었다.

아내가 임신을 했거나, 부양할 가족들이 많거나 혹은 결혼을 최근에 한 특별한 사람들은 일부러 레온이 빼 버렸다.

그들 역시 자유를 얻게 해 준 보답을 하고 싶다고 칼을 빼 들었지만, 레온이 극구 거절했다.

혹시라도 좋지 못한 사고가 생긴다면 남을 그들의 가족을 위함이었다.

“대장, 제 도끼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로버트 부자가 만들어 준 두 자루의 토마호크를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톰과 옆에서 짜증을 내는 하트.

생각해 보니까 자신의 부대원들은 모든 게 끝나면 뭘 할 생각인지 궁금해진 에레오나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이게 다 끝나면 뭘 할 생각이지?”

예전에는 현실성 없이 그냥 망상처럼 풀어헤치던 말들이지만, 이제는 그 미래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알았기에.

두 사람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저는 주점 일을 할 겁니다. 해바라기 주점 주인장이 비법을 알려 준다고 했거든요. 해바라기 주점은 제도에 있으니까 저는 라마닉스에 차릴 생각입니다.”

그럴 돈은 있냐? 하고 코웃음을 친 하트는 의외로 수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녀?”

“뭐야, 지금 우리가 누구랑 싸우러 가는지 몰라?”

“알고 있거든? 악신들이랑 싸우러 가는 거잖아.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수녀가 아니라 고아원 원장이야.”

아무래도 현 시대에서 고아들을 거두기 위해선 종교를 가지는 게 편했으니 그걸 이용할 속셈인 듯했다.

“내가 살던 마을이 마수들에게 사라지고, 갈 곳 일었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나한테는 남아 있어서. 그런 아이들에게 쉼터가 되어 주고 싶어요.”

웃으며 말하는 하트를 보며 너는 잘할 것이라 답해 준 에레오나.

다들 나름의 꿈을 가지고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끝에, 부디 모두가 도달하기를 바라며.

에레오나는 홀로 작게 속삭였으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거센 말발굽 소리와 더불어 거친 흙먼지 그리고 스산하며 불길한 기운.

레온과 에레오나를 시작으로 다들 하나같이 무기를 뽑아 들고는 자연스럽게 전투를 준비해 나갔다.

“라엘이 말했던 대로잖아?”

톰이 자신의 토마호크를 붕붕 휘두르며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마교 측에서 혁명군과 제국의 기사단이 합류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그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

멀리서 보이는 건 아이란의 죽음의 기사들.

이미 한번 상대해 본 적 있는 혁명군이었기에 갑옷을 뒤집어쓴 흉흉한 푸른 눈의 해골들에게 겁을 먹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쪽에는 그들의 완벽한 카운터도 있었으니까.

“후우!”

심호흡하며 자신의 검을 높게 뻗어 든 레온.

그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며, 언데드들에게는 독이나 다름없는 빛과 태양의 권능이 뿜어져 나오며 놈들의 기세를 끊으려 했으나.

-재롱을 떠는구나.

울려오는 목소리.

이것 역시 혁명군은 이미 한 번 경험해 봤던 적이 있었다.

죽음의 신과의 대결에서 느꼈던 비슷한 오싹함. 물론, 죽음의 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분명 그것과 비슷한 기운이었고.

아직까지 맑던 하늘은 급속도로 어두워지며 레온의 검이 빛을 잃어 갔다.

-맹인과 병자의 신 타뷸란. 내 앞에서 함부로 두 발로 서 있느냐, 인간들아.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타뷸란이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강림하기 시작했다.

신들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강림을 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렇게 대단한 놈도 아니야.”

이 와중에 냉정함을 유지한 건 혁명군 제일의 검사 에레오나였다.

그녀는 차분하게 타뷸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들이 인간계에서 힘을 쓰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필수야. 하지만 나는 저런 신 따위 들어 본 적도 없어.”

“……맞는 말이야.”

“단순히 페이크야. 등장만 저렇게 요란하지 실상은 마교단장들보다 약할 거야. 우리가 이길 수 있어.”

에레오나의 판단은 정확했다.

마교는 지금 악신들을 인간계로 불러들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힘을 전부 다룰 수는 없었다.

라엘 텔리즈먼이 마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제도에서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제국의 동서남북으로 지어진 구조물과 예배를 정령들이 박살을 내 버린 것.

이 두 가지 때문에 신들의 전력은 원래 예상했던 압도적인 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인간인 레온의 권능을 막아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고.

에레오나는 그대로 말을 몰고 앞으로 치고 나가 죽음의 기사들을 베어 내기 시작했으나.

“성장했구나.”

기사들 중, 죽지 않고 산 자가 있었다.

검은 갑옷을 뒤집어쓴 덩치 큰 남자.

에레오나가 꿈에서도 찾아 헤매던 소름 끼치면서도 증오를 끌어올리는 남자의 목소리.

“렉스턴!”

전 친위대 대장인 렉스턴 밀렌.

라엘 텔리즈먼이 황실에서 젤롬을 속박하던 아이란의 주박을 풀었을 때 도망쳤던 인물.

그는 굳이 따지자면 마교는 아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마교에 몸을 맡겼고.

에레오나를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내 딸이다. 마법이든 권능이든 다 필요 없지. 결국 우리 검사들이 최고의 자리에 설 거다.”

“아직도 헛된 꿈을 처 꾸고 있구나, 망상에 빠진 노인네.”

카앙!

에레오나와 렉스턴의 검이 맞부딪치며 과격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확실히 렉스턴의 검은 묵직했지만, 에레오나는 힘만으로 싸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유려하게 흘려 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야!”

에레오나의 검에 투명한 빛의 심검이 떠오르자 렉스턴은 오히려 환영하듯 환히 웃으며 자신의 오러를 뿜어 냈다.

황제를 보호하는 최강의 방패이던 친위대의 대장 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 있던 남자답게, 오러의 크기와 질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네가 떠났어도 우리는 부녀의 정을 나눴다. 어찌 그것이 지워질 수 있겠느냐.”

얼굴도 전혀 닮지 않았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에레오나를 향해 자신의 딸이라 말하는 렉스턴.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아주 오랜 시간, 에레오나가 어릴 적 음지를 나돌아다니며 골목대장 역할을 하던 때로 돌아가야 했고.

그녀에게 있어 주박과도 같은 트라우마가 생기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