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72화 (172/200)

172화

“…….”

늦은 저녁.

집중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있는 바깥을 보고 조금 놀랐다.

고도가 높은 산이라서 그런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더 가까웠고, 찬 공기에 입김이 새어 나왔다.

“우와.”

손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보지만, 당연하게도 허공만 휘저을 뿐이라 다시 로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어, 라엘 님!”

“끝났는가?”

모닥불 앞에 앉아서 꼬챙이에 치즈를 굽던 노아와 알로이스가 나를 보더니 바로 달려온다.

노아가 먹을 거를 많이 챙겼다고 듣기는 했는데 치즈도 챙겼던 건가. 오랜 시간 집중을 하고 마나를 쏟았다 보니 배가 허기졌다.

“내 것도 있나?”

“많이 챙겨 왔어요.”

웃으면서 모닥불 옆에 둔 가방을 가리키는 노아. 아까 용들이 줬던 고기 남은 거랑 해서 간단히 저녁 식사라도 해야겠다.

“오오.”

두툼한 고기 위에 올라가는 치즈를 노릇노릇하게 굽고 있자니 절로 침이 고였다.

고기가 조금 질기고 치즈 때문에 입에 쩍쩍 붙어서 생각보다 씹는 게 고됐지만, 그래도 풍미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으음, 배부르다.”

턱이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맛이 있던 터라 꽤나 많은 양을 먹어 버렸다.

뭐 어차피 내일이면 바로 산을 내려갈 거니까 식량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방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다른 용들과 함께 임페리얼도 우리가 앉은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다른 용들은 나를 보면서 약간은 불편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임페리얼은 곧바로 내게 물어 왔다.

“그래서 그대가 보고 싶었던 진실은 보았는가?”

“예, 모두 보았습니다.”

스승님을 데려간 사람과 천마주교 파이엔을 죽인 사람에 대해서 펠리아의 눈을 통해 과거를 확인했다.

저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아내기도 했고, 그 정체 또한 파악했기에 나는 로브를 꾸욱 잡았다.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타닥타닥거리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임페리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그대가 정한 길이, 그대의 행복이길 바라지.”

“…….”

그의 축복에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하늘을 바라봤다.

늘 생각했지만 200년 전에도 지금도 별은 참 예뻤다.

“저희는 내일 바로 내려갈 겁니다. 여러분은 마신들과의 싸움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게.”

굳이 그들을 부르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올 것을 알기에 나는 만족스러운 답이라 생각하며 오늘은 조금 일찍 자야겠다 생각했다.

* * *

팔미산에서 내려오고 하루가 지났다.

노아는 나와 함께 내려와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고,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용들의 마법을 배우기로 했다.

아마 용들이 전쟁을 위해 움직이면 그도 한 손 보태 주겠지.

제라니 황제에게 보고를 한 뒤, 나는 황궁의 옥상 위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굳이 나 자신이 뭔가를 할 생각이 있다기보다는 여기에 앉아 있으면 앞으로 할 일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뭐 해, 라엘?

이렇게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운디네가 천천히 나타나며 내 앞에서 살랑살랑 날아다녔다.

“그냥 준비하고 있었어.”

-준비?

“응, 다른 애들도 다 불러 봐.”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나머지 정령들.

-어머, 풍경이 참 좋구나.

-팔미산과는 색다른 맛이 있군.

-인간들은 멀리서 보면 참 예쁘단 말이야.

운디네, 라푼젤, 테토, 플레임.

2차 신령대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나의 정령들.

인간계에서는 신들 때문에 그 힘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실은 재앙 그 자체인 나의 정령들을 향해.

나는 마치 오늘 점심으로 뭐 먹을지 묻는 것처럼 말했다.

“동서남북, 각자 하나씩 맡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금세 알아챈 정령들은 하나같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힘은 어느 정도로?

턱을 괴는 동시에 묻는 운디네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금 답해 줬다.

“제한 없어. 너희의 모든 힘을 다 보여 주고 와.”

-아하, 금방 끝내고 올 수 있겠다!

-마음에 드는구나.

-흠, 결정했나 보군.

-드디어 답답함이 풀리겠네.

그렇게 말하고 정령들은 각자 방위를 정하고는 곧장 그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인간계에서는 힘을 숨겨 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제 놈들과의 전쟁이 시작한다.

차라리 먼저 선빵을 치는 게 이쪽의 계획이었고, 오늘 제라니 황제와 이미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맞춰 뒀다.

마교를 수색하던 기사단은 이미 제도로 다시 귀환하고 있었고, 오는 순간 바로 전쟁을 위한 진군 준비를 할 것이다.

동서남북에 있는 놈들의 거점은 나의 정령들이 부순다.

천마주교 파이엔과 마교단장들이 숨어 있을 제국의 중앙에 언젠가부터 솟아오른 제단.

아마 권능을 통해서 숨겨 둔 것 같은데 펠리아의 눈 덕분에 찾아낼 수 있었고, 그곳이 최후의 전쟁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개막 축포는 내가 울린다.”

제국의 사방에서, 아주 성대한 축포가 울려 올 것이다.

* * *

서쪽의 철거북 혁명군이 자리를 잡고 있던 공터 위에는 어느새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 밑에는 무릎을 꿇고 미친 듯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기도를 드리고 있는 마교의 신자들.

마교단장들을 따라 숨어다니던 이들도 있었고, 제도에서 이루어진 대주교들의 대규모 숙청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교인들을 현혹시키기도 했기에 꽤나 사람이 많이 몰려 있었다.

“아아! 아도리아 님!”

“가이스 님! 당신의 파괴의 날이 도래했습니다!”

“그 자비를 저희에게!”

인간들을 통해서 인간계에 자신들의 권능을 뿌리는 신들에게 있어 신자들의 이러한 예배는 당연히 신들의 힘을 늘려 주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구조물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의 망루처럼도 보였다.

바다 너머 다가오는 적들을 알아채기 위한.

마교가 이걸 짓고 있는 이유는 적이 다가오는 걸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건 바다 너머가 아니었다.

제국에서 자신들을 숙청하기 위해 오는 군세를 미리 알아차리고 준비하기 위함이었고, 더불어 황제의 권위보다 신이 높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공사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마교의 잔당들.

그들의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 소나기.

바다와 붙은 제국의 서쪽이었기에 비에서도 짠 내음이 나는 것만 같았다.

“비가 오면 공사는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개소리. 우리의 신들을 위한 이 거룩한 행위를 고작 비 때문에 멈춘다고?”

“얼른 발 움직여! 오늘까지 끝내야 한다!”

비가 옴에도 신자들은 누더기 후드를 덮을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이 할 일을 행했지만.

빗방울이 굵어지고 빗소리가 거세진다.

이제는 옆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파묻힐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기에 하는 수 없이 신자들은 움직이려 했으나.

-어디를 그렇게들 가고 있는 거야?

빗소리에 섞여 들려오지만, 모두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 또렷하게 울려 오는 소녀의 목소리.

장난스러운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오히려 신자들에겐 그게 더욱 섬뜩했다.

“무슨?”

“시, 신께서 계시를 내리시는 건가?”

“아아! 아도리아이시여!”

오해를 하고 바로 무릎을 꿇은 신도들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소녀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만들었다.

-자기 신도들 괴롭히는 게 취미인 음침한 여자랑 나를 비교한다고?

“신을 모욕하느냐!”

“누구냐! 어디 있는 거냐!”

정신을 못 차리고 외치는 신자들.

그들 중 누군가가 비 때문에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린 채로 멍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하나둘 다른 신자들도 거센 비를 뚫고 눈을 하늘 위로 올렸고.

그곳에는 푸른 머리칼이 발끝까지 내려오는 어린 소녀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여.

소녀의 손이 천천히 들린다.

더욱 거세지는 빗방울에 더불어 근처에 있는 바다의 파도가 흉흉하게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범람을 시작했다.

-오늘, 그대들의 더러움, 죄 그리고 목숨을 씻겠노라.

몰아치는 파도 속에 사람들은 휩쓸렸고 거대한 철골 구조물은 그대로 무너지며 바다로 흘러가 깊은 심해로 가라앉았다.

서쪽뿐만이 아니었다.

동쪽에서는 거센 폭풍이 몰아쳐 그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목숨을 앗아갔고, 구조물은 형태를 알 수 없게 토막이 나 버렸다.

남쪽에서는 범의 아가리처럼 벌려진 대지 탓에 신자들과 구조물이 그대로 땅속 깊은 지하로 빨려 들어갔다.

북쪽은 말 그대로 불꽃의 지옥.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이 자비와 차별 없이 모든 것을 검은 재로 만들어 바람에 흩날리게 만들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마교가 이루고 있던 거점이 주요 거점들이 전부 부서졌고.

제도 아르니.

제라니 황제가 수많은 기사들의 앞에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노기를 토하고 있었다.

“나의 기사들이여, 제국을 빨아먹는 간악한 자들이 우리의 위에, 아래에,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분해하며 울분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두 형님과 아버지를 죽인 주모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신의 이름 아래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던 간악한 자들에게 우리의 검을, 제국의 철퇴를 내릴 시간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신이라는 작자들에게 우리의 운명과 삶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제라니의 검이 성벽 밖, 지평선을 가리켰다.

“가라, 나의 기사들이여. 오늘 우리는 아르니티 제국의 명예로운 기사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함성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주먹을 쥐고 제라니의 외침에 호응하였다.

200년을 이어 온 길고 긴 마교와의 악연을 끊기 위한 마지막 전쟁이었고, 기사들은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말을 몰았다.

그리고 가장 선봉에는 당연히.

“가자.”

황금 자수가 놓인 하얀 로브를 입고, 정령왕이 줬던 지팡이 ‘프레이’를 쥐고 있는 내 뒤를 따라 수많은 기사들이 제국의 악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능하겠지?”

내 옆에 있는 페르난도가 벌써부터 초 치는 소리를 하기에 한숨을 내쉬며 놈의 머리를 지팡이로 꽁 내리쳤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벌써부터 이렇게 기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단순히 제국의 기사들만 믿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의 반대편에선 내 동료들이 오고 있어.”

“……혁명군?”

페르난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황실과 기사단만이 제국은 아니었다.

늘 불합리와 투쟁하고 자유를 위해 싸워 오던 나의 동료들 역시, 마지막 전장을 위해 진군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