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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60화 (160/200)

160화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강제적인 강림은 아니었다.

최근 제도에서 대주교들을 열심히 잡으면서 악신들의 기적은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비슷한 느낌이었으나 악신들의 강제적인 기적과 강림에 고통스러워하던 주교들과는 반대로 레온은 차분했다.

“많이 친해졌나 보다?”

빛과 태양의 신 라헬.

자신을 섬기는 태양왕국 라스의 왕족에게만 권능을 부여하던 신.

여전히 태양신을 섬기는 신자들은 많지만, 거짓과 기만의 신 흑두사에게 태양신이라는 이름을 빼앗긴 탓에 희소성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힘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년 전에는 달랐다.

그야말로 태양왕국을 수호하는 절대적인 검이자 방패.

당시 친우이자 왕자이던 펠디어스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권능을 통해서 그야말로 일당백은 우습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레온은 마치 그 당시의 펠디어스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빛의 검과 방패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는 레온은 천천히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고.

하늘을 뒤덮는 빛의 광명이 펼쳐진다.

마교단장들과 싸우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화력.

게다가 상성에서도 우위를 점하다 보니 만약 내가 없었다면 마교단장들의 가장 큰 적이 됐을 게 바로 레온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크메트가 죽으면서 흑두사의 영향력이 줄어든 탓이 큰 것 같네.’

그 탓인지 3년 전에 봤던 빛의 신과는 전혀 다른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양왕국은 대륙을 위해 필요하다!”

“…….”

전신에 울리는 목소리.

강제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무래도 빛의 신 쪽에서 주도권을 가져서인지 말투가 변했다.

“네놈은 악신들과 대적하면서 어째서 나의 걸음을 막아서느냐!”

“추하긴, 대륙을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위한 거잖아. 개인의 욕심을 대의인 양 말하는 건 무슨 심보야?”

거대한 빛의 검이 떨어진다.

하늘이 내려온다는 표현이 적절한 광경에 밑에 있는 사람들의 탄성과 비명도 섞여서 귀에 흘러들어 왔다.

마나로 이루어진 푸른빛의 방패가 만들어지며 빛의 검을 막아 낸다.

대부분의 상성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권능이다 보니 당장에는 밀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과격한 마나량으로 밀어붙인다.

“처음 폐공장에서 만났던 거 생각나네. 그때랑 비교하면 우리 둘 다 많이 달라졌어.”

당시에 마나 차단 수갑을 부순 나를 향해 권능을 두른 검을 휘둘렀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전혀 달라진 전투 규모였지만, 그래도 괜히 겹쳐서 보이긴 했다.

“무너진 영광은 다시 재건될 것이다! 나의 왕국은 제국을 삼켜 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꽤나 당찬 포부이지 않은가.

라헬은 단순히 자신을 섬기는 왕국에서 멈추지 않고 아르니티 제국까지 점령할 생각인 듯했다.

“악신들을 상대는 할 수 있고? 도망치려고 정령계나 침공하는 주제에!”

“고작 하찮은 신들 몇 상대했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구나!”

찌릿하고 피부가 울려온다.

전쟁과 투쟁의 신 팔렘이나 신뢰와 믿음의 신 뫼르아네도 빛의 신과 마찬가지로 고위신의 반열에 들어 있었지만, 고위신들끼리도 그 편차가 심했다.

어느 정도 힘을 되찾아서인지 혹은 레온과의 궁합이 좋은 건지, 녀석은 마나의 방패를 부수기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검을 내리쳤다.

“너도 알고 있잖아, 레온. 이 녀석의 뜻대로 살아 봤자 그 앞은 파멸이야. 타국에서 지원을 받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제국이나 마교단장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어.”

마교단장들은 당연하고 아무리 제라니 황제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땅과 시민들을 흡수해서 왕국을 세우려는 레온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라엘 텔리즈먼! 또다시 잔망스러운 입을 놀리며 나를 우롱하는구나! 이번만큼은 나의 분노를 피하진 못할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몸을 빼앗겼는지 레온의 위에 라헬의 형상이 떠오르며 그를 완벽히 조종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제는 나도 단순히 막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지팡이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며 그대로 푸른빛의 창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레온의 검과 마찬가지로 한없이 거대해졌고, 레온의 빛의 권능을 베어 내며 휘둘러졌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황금빛 권능이 푸른 마나에 의해 갈라진다. 흡사 하늘을 베어 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는 듯한 광경.

라헬은 인상을 쓰며 자신의 방패를 치켜들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방패의 형상을 한 황금빛의 권능이 발현되었다.

“감히 신을……!”

내 공격을 막아서 기고만장해졌는지 입을 놀리려는 라헬이었지만 이미 나는 녀석의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어떻게!”

아직도 지팡이로 만들어진 창은 방패를 내리치고 있었기에 녀석은 내가 있던 자리를 흘긋 쳐다봤고, 지팡이가 혼자서 움직이는 걸 보더니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만한 마나를 원거리에서 다룬다고?”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한눈을 팔아?”

꽈악 하고 주먹이 쥐어진다.

붉은빛이 오른손에 깃들며 그대로 얼굴에 정타로 가격했고, 녀석은 중심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추락을 하면서도 허공에서 마법을 이용하여 폭발을 주어 녀석의 착지 지점을 조정했다.

종잇장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이 조금 꼴사나워 보이긴 했지만.

하늘에서 폭발 탓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레온과 달리, 나는 일직선으로 대지로 내려왔고 의도대로 근처 언덕에 쓰러진 레온의 위에 올라탔다.

손을 들자 지팡이가 바로 내 손으로 날아든다.

지팡이 끝이 날카롭기에 그대로 목에 겨누자 황금색으로 빛나던 레온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한다.

“어이쿠.”

퍽하고 지팡이로 뺨을 쳐서 옆으로 고정시켜 놓자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열기.

솔직히 징그러웠지만 그만큼 빛의 신이 코너에 몰렸다는 말이었다.

“200년 전이었다면 네놈 따위 당장에라도 죽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 악신들 무서워서 입 꾹 닫고 있었으면서도 도대체 어쩌라고.”

이놈은 좋을 때를 자기 발로 걷어차 놓고 왜 계속 그때 얘기를 하는 건지.

“감히 이 몸을……!”

콰악.

결국 짜증이 나서 입에 지팡이를 박아 넣었다.

읍읍거리는 꼴이 꽤나 통쾌했지만 내가 대화를 할 상대는 좋은 시절을 못 벗어나는 어리석은 빛의 신이 아니었다.

“레온, 잘 들어. 지금 이렇게 가면 결국 다 죽어.”

“읍! 으브븝!”

“태양왕국을 재건하겠다고? 그게 네 소망이라고? 정말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솔직하게 말해 준다.

주변 국가에서는 지원을 주지만 결국 아르니티에게 걸리게 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싹 자를 것이다.

아르니티만이 아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교단장들 역시 자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아르니티를 위협하는 레온을 가만히 지켜볼 리 없었다.

보면 현 아르니티와 마교단장들은 서로가 대칭점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황실과 신교가 아르니티라는 케이크를 두고 싸우는 형국이다.

그리고 태양왕국 라스는 그 케이크를 빼앗으려는 존재.

황실과 신교가 힘을 합치기에 충분한 외부의 적이라고 볼 수 있었고,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아무리 나라도 이들을 전부 지킬 수는 없었다.

“라헬의 힘을 빌리면 될 것 같아? 일순 신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 잘 생각해. 이놈들은 200년 전, 지금보다 훨씬 강한 힘이 있었으면서 악신들에게 꼬리를 말고 패배한 개새끼들이야.”

라헬이 꽤나 거칠게 권능을 일으키지만 나 역시 몸에 있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바로 힘 싸움을 해 준다.

상성 따위 양으로 밀어붙이면 끝이다.

“제대로 생각해. 지금 너한테 중요한 게 뭐야?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빌어 처먹을 꿈이야? 아니면 그럼에도 너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야?”

얼마나 예전부터 레온이 태양왕국 재건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겐 태양왕국 재건도 소중하지만, 그것에 버금갈 정도로 자신의 동료들 또한 소중했다.

그렇기에 3년 전 수많은 상황에서 갈등하고 고민했으며 죄책감에 빠져 있었겠지.

“이제 그만해, 네가 이렇게 변하면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들이 보잘것없게 느껴지잖아.”

복잡하면서도 쓰라린 나의 감정이 느껴졌던 걸까.

발버둥 치던 녀석은 손에 힘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지팡이를 녀석의 입에서 떼었다.

“많이 늦었지만 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해피 엔딩을 가져왔어.”

“…….”

그렇기에 제라니 황제와 교섭했고 제국의 대마도사가 되었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세상에서 굳이 자멸의 길로 빠지는 친구를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레온이 천천히 말했다.

“나의 꿈은.”

빛의 신이 아니었다.

강림 상태에서 해제되었는지 녀석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전하고 있었다.

“라스의 왕족 출신으로서 내가 가져야 할 책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버려야지.”

단호하게 답해 주자 레온은 조금 놀란 눈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알고 있잖아. 너한테는 그것 말고도 꿈이 있고, 그것 말고도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는걸.”

왕족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것 말고.

자신이 직접 쌓아 올려 온 진실이 있지 않은가.

“텐 씨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너를 지지해 주셨던 걸 거야.”

양쪽에서 레온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텐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분명 언젠가 레온이 직접 그 답을 깨달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텐이 죽은 지금, 녀석은 단순히 길을 잃은 것뿐이었다.

정답은 결국 정해져 있었다.

텐이 떠오르는지 레온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한 방을 눈가를 타고 흐르기 전, 녀석은 말했다.

“비켜, 무거워.”

* * *

“참나.”

하늘에서 떨어지던 두 사람을 따라 달려온 에레오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둘은 어느새 서로의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치 오늘 뭐 하고 놀 거냐고 아웅거리는 거리의 청년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레온 님이, 웃으시네.”

옆에 있는 루이나는 훌쩍이더니 눈가를 가렸다. 지난 3년간 레온이 웃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기에 왜인지 이제야 자신의 리더가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한두 방 정도로 끝내진 않을 거야.”

자벨린 부대원들을 타국으로 임무를 보내 놓고 자신은 가두고 있던 레온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몇 방이 아니라 하루 종일 묶어 놓고 때릴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는 뒤따라온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레온이 지금까지 얼마나 무리를 하고 있었는지 그들 역시 알고 있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레온을 잡아 주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해 왔지만, 결국 실패했고 레온을 버릴 수는 없기에 그를 따랐다.

“나도 할 얘기 많은데.”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치고 있는 엘리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다.

3년 만에,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혁명군이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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