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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52화 (152/200)

152화

제도 내에서 가장 바쁜 장소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곳이 바로 라디오 타워.

개국식 날 테러를 당했던 걸 제외하면 라디오 타워는 순풍에 몸을 실은 것처럼 발전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황실은 물론이고 제국의 귀족들과 주교들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민중을 지배하는 단단한 목줄로 작용을 하며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타국에서는 라디오 타워를 향해서 비판 어린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보의 통제, 신민들의 세뇌 등.

정보를 전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문과 라디오를 전부 라디오 타워에서 컨트롤하고 있었으니까.

“하아.”

그렇기에 요번 대주교 사건을 두고 라디오 타워의 국장 벤티만은 자신의 측근들을 두고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대주교들이 신자들을 데리고 자기들 멋대로 성적 관계를 가졌으며 심지어는 인형처럼 가지고 놀기도 했던 사건.

보통이라면 그냥 묻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실은, 이런 식으로 제보가 들어온 적은 정말 많았지만 전부 벤티만이 잘라내고 있었다.

대주교들과 그들이 손을 잡은 귀족들의 압박이 무시무시했고, 심지어는 황실에서도 암묵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용인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제3황자이던 제라니가 황제가 된 이후, 그는 적극적으로 대주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마도사를 필두로.

이렇다 보니 라디오 타워는 현재 황실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주교들과 귀족의 편에 서야 한다는 입장으로 갈라져 있었다.

“국장님. 이건 정말 당연한 겁니다. 당연히 보도해야 합니다. 이제야 저희가 진정한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겁니다.”

“어허! 말조심해 레토리! 우리가 언제는 저널리스트가 아니었나?”

그러자 레토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주교들의 입맛대로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었죠. 시민들을 조롱하듯.”

“이 새끼가!”

단호한 말에 레토리의 반대편에 서 있던, 기자치고는 덩치가 조금 있는 남자는 위협을 주듯 주먹을 쥐었지만 레토리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국장님. 여기서 잘 선택하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제국을 위한다면 저희는 지금 굴복하면 안 됩니다. 황실이라는 가장 강력한 아군이 등장한 겁니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황실보다는 주교들에게 시민들의 마음이 쏠려 있어. 제국은 이제 마도가 아닌 권능으로 점철된 국가란 말이야.”

어느 면에선 황제보다 주교의 권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는 말에 레토리는 답답함에 계속 말했지만, 그럴수록 국장인 벤티만은 거북이가 껍질에 들어가듯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런…….’

결국 벤티만도 주교들이 심어 놓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레토리는 두통이 화악 밀려오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디오 타워가 개국하던 당시에는 대귀족이던 라이노르 체르헨 공작과 폴 도르손 공작이 서로 땅따먹기하듯 라디오 타워의 지분을 가지고 권력 다툼을 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라디오 타워가 테러를 당하고 책임자였던 두 귀족은 테러범을 놓쳤다.

불똥은 당연히 튀었으며 대주교들과 황실에서 거세게 둘을 압박했고, 결국 두 사람은 강력하던 자신들의 영향력을 누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빈집털이하듯 들이닥친 게 바로 대주교들.

그들은 황실과 손을 잡고 자신들의 사람을 앉히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폴 도르손은 원래 신권파라는 이름으로 대주교들과도 끈끈한 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의 실패로 대주교들에게서도 버려진 듯했다.

‘차라리 귀족들의 끄나풀이었다면.’

귀족들은 늘 여기저기 간을 보는 박쥐와 같은 자들이다.

황실과 주교들의 파워 게임이 시작되면 그들은 어디가 우세한지 가늠할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어느 정도 설득할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벤티만 국장이 대주교 측 사람이다 보니 결국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정녕 제국은 이렇게 썩어 가는가.’

새로운 황제와 대마도사의 등장은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고작 며칠 만에 13명의 대주교를 체포하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여기서 언론이 힘을 실어 주어야 하건만.

예전 함께하던 포르쉔 국장이었다면 단번에 결단을 내렸을 텐데 하고,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유난히도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저, 저기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덮는 거로 결론이 나오던 찰나, 바깥에서 소란이 들려왔고, 레토리는 갑작스레 자신의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세인트 학교에서 2학년이나 월반하여 3년 차임에도 5학년을 다니고 있는 자신의 딸 리스테린 레토리.

실습으로 2년 동안 라디오 타워에서 일하게 된 딸을 보며 처음엔 기특하기도 했지만 부끄러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진정한 언론인이 아닌 권력에 무릎 꿇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줘야 했으니까.

실제로 첫 며칠간, 리스테린의 표정은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라디오 타워와 제국의 실체를, 눈치 빠른 그녀라면 면밀하게 알아차렸으니까.

그런데 이변은 마도 대회 이후에 나타났다.

외부 출장으로 마도 대회를 보지 못했던 레토리 부녀는 새로운 대마도사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레반 레토리가 놀란 이유는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역사 속 국가반역자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이었지만, 리스테린은 조금 달랐다.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었다.

‘만약, 제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앞으로 많은 게 바뀔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실은 지금까지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 했었다.

그래, 회의실 문을 열고 대마도사인 라엘 텔리즈먼이 들어온 게 아니었다면.

“으음, 다들 모여 계셨구나.”

고풍스러운 하얀 로브와 미형의 얼굴.

꽁지처럼 툭 튀어나온 뒷머리를 묶고 있는 대마도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내가 대주교들을 족친 게 벌써 이틀 전인데 왜 아직도 기사 한 줄 나오지 않고 있는 거지?”

“그, 그건…….”

벤티만 국장이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주변 눈치를 보지만, 방금까지 주교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했던 이들은 전부 눈을 피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끈끈하게 뭉쳤던 동지에서 완전히 남이 된 듯한 행동에 벤티만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일단은 답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기사 내용이 충격적인지라 시민들에게 이걸 그대로 내보내도 괜찮은 건가 회의 중이었습니다.”

네 머리에서 생각한 게 고작 그 정도 변명이란 말이지? 라고 비웃듯이 라엘 텔리즈먼은 바로 되받아쳤다.

“충격적이니까 더 내보내야지. 시민들이 주교들의 더러운 민낯을 확실하게 알아야 그들도 정확한 종교와 주교들을 믿을 거 아니야.”

“…….”

“야근을 하든 아니면 밤을 새우든. 내일 아침 신문이랑 라디오에서 요번 사건이 걸리지 않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예, 옙. 알겠습니다.”

사실 이건 일종의 월권행위라고 볼 수도 있었다.

대마도사가 아무리 황제의 오른손이나 다름없더라도, 공문 하나 없이 이렇게 쳐들어와서는 기사를 내라 마라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그러나 이번 사건은 좀 달랐다.

대마도사가 직접 주관하여 주교들을 체포했기도 하고, 워낙 큰 건이다 보니 이것에 대한 기사 요구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었다.

“어떤 줄에 서는 게 좋을지 정확히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가슴이 철렁하는 싸한 한마디.

포식자의 위치에서 먹잇감을 찾듯이 쓰윽 훑던 대마도사의 시선이 레반 레토리의 앞에서 멈췄다.

“당신은 앞으로 나와 다녀 줘야겠습니다.”

“예?”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제가 엄청나게 바쁠 겁니다. 그렇다 보니 바로바로 상황을 체크하고 기사로 써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레반 레토리는 슬쩍 국장의 표정을 살폈고, 국장은 얼른 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이 기자분이 쓰는 기사는 무조건 다음 날 나가는 겁니다.”

그리 말하고는 손짓으로 레토리를 부른 라엘 텔리즈먼.

레반 레토리는 허겁지겁 수첩과 펜을 챙겨 들고는 그를 따라나섰다.

* * *

“따님은 잘 계십니까?”

“……예?”

갑자기 리스테린에 관한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는지 레반이 꽤나 놀란다.

손으로 그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토리. 제가 아는 학생의 성이랑 똑같으십니다. 리스테린 레토리라고. 머리 색도 비슷하시고요.”

“저희 딸을 아십니까?”

“제 제자의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지금은 라디오 타워에서 실습을 받고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그러자 레반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아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다가도 흠칫 놀란다.

“딸이 마도사랑 친구였다니.”

“아직 제자는 마도사 칭호는 못 받긴 했지만 금방 받을 겁니다.”

칭호를 주기는커녕 만나지도 못했다.

대주교들의 기억으로 읽은 제도가 워낙 더럽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보니 제자와의 만남을 조금 미루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라도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참, 잠깐 카메라를 좀 챙기겠습니다.”

“예, 물론이죠.”

레반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카메라 말고도 가방과 더불어 다른 잡다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챙기기 시작했다.

리스테린을 통해서 들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뛰어나며 정의감이 넘치는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믿을 수 있었다.

“어?”

그렇게 멀뚱히 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탄성.

슬쩍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벌써 울먹이고 있는 푸른 머리칼의 소녀, 리스테린이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놓쳤지만 눈은 똑바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3년이 지났다고 듣긴 했지만.

“엄청 컸네, 이제는 숙녀가 다 됐어.”

웃으며 말해 주자 그녀는 복도를 뛰어오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 품에 안겨 왔다.

“어디, 어디 갔었어요!”

“조금 먼 곳?”

“엘리나가! 엘리나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아세요!”

“나도 엄청 보고 싶었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리스테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자니 레반이 나오며 깜짝 놀란다.

“리스?”

애칭인가? 조금 귀엽다.

“아빠! 교수님이 왔으면 말해 주지!”

“대마도사님이 네 교수님인 줄 몰랐지…….”

그건 그런가 하고 훌쩍거리며 내 품에서 나오는 리스테린은 슬쩍 레반의 목에 걸린 카메라와 가방을 보더니 묻는다.

“취재 가? 교수님이랑?”

“그래, 네 덕분에 대마도사님 지명으로 같이 움직이게 됐다.”

“나도! 나도 갈게요!”

리스테린이 펄쩍 뛰며 말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부터 갈 곳은 꽤나 험악한 곳이라서 안 돼.”

“저도 기자예요!”

“아니, 리스 넌 학생이지 기자가 아니야.”

현역 기자의 냉정한 단언에 리스테린의 기세가 한풀 꺾인다.

“그치만…….”

“괜찮으니까 너는 네 아버지가 쓰시는 기사나 읽고 퍼트리면 돼. 앞으로 매일 아침마다 헤드라인은 너희 아버지 차지거든.”

일 열심히 하라고 어깨를 토닥여 준 후, 바깥으로 나온다. 레반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지 리스테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득, 궁금해졌는지 물어온다.

“그런데 헤드라인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벤 님. 지금부터는 꽤나 충격적인 장면을 계속 보게 되실 겁니다. 일주일 동안 쉴 시간도 거의 없으실 거고요.”

“…….”

진지한 내 목소리에 레반은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마도사님께서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면 저는 지지합니다.”

“기사를 무조건 저한테 맞춰서 적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앞으로 보게 될 참상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고 기사로 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각오를 다진 레반의 표정에 나는 웃으며 질문에 답을 준다.

“앞으로 일주일은 헤드라인에 실릴 정도의 사건이 레반 님의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겁니다.”

“아…….”

“가시죠.”

더러워진 제국을 청소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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