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하,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는군.”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애송이 주제에 썩 날뛰긴.”
“고삐를 잡을 필요가 있긴 하겠습니다.”
거대한 원탁에서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사제복을 입은 대주교들은 각자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대마도사를 향한 제재를 어떻게 가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제 막 대마도사에 올라 놓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어리석은 놈.
여기 있는 대주교들이 대마도사를 향해 한마디씩만 해도 그를 향한 시민들의 시선은 금방 바뀔 것이다.
대침공 당시 황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신민들의 마음은 황실이 아닌 주교들 쪽으로 더욱 돌아섰다.
물론, 황제가 제라니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지지도 다시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 주교들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냥 뇌물이라도 주는 게 어떻습니까? 딱 보니까 젊은 놈이던데 돈 몇 푼이랑 계집애들 몇 넣어 주면 금방 꼬리 내리지 않겠습니까?”
“쯧, 한심하긴. 우리가 뭐가 꿀린다고 굳이 약하게 나간단 말이오.”
“나도 벤 주교의 말에 동의하오. 우리가 굳이 약하게 나가면 나중에 가서도 버릇이 이상하게 들 거요. 초장부터 확실하게 잡아 둬야지.”
그러자 다른 대주교들도 동의했다.
굳이 새파랗게 젊은 놈의 치기에 흔들릴 필요 없다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분들께서는 정말 연락이 없으십니까?”
한 주교의 물음에 벨테니 대주교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젤롬이 정신을 차린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벨테니는 일부러 타국의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마도 대회라도 늦춰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목소리가 굵고 콧수염이 인상적인, 대주교보다는 전사에 어울리는 남자가 탕 하고 원탁을 내리치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는 그분들에게서 벗어날 시간이 됐소. 솔직히 우리가 함께하면 아무리 그분들이라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거요.”
몇몇이 동의하는 말을 던져 왔으나 벨테니 대주교 및 오랜 기간 대주교의 자리를 지켜온 자들은 회의적이었다.
저들은 그분들의 진정한 힘을 알지 못한다.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신들을 살려 두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그분들이 마음만 먹으면 길거리의 부랑아도 대주교의 자리에 앉힐 수 있다.’
마교단장.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름을 떠올린 벨테니는 호전적인 대주교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 두었다.
지금은 저렇게 당당해도 다음 대주교 모임에서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사실 연락이 되지 않아도, 젤롬 황제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죄를 모두 고백했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그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건 정상으로 돌아간다.
대주교들은 그저 그분들의 수발을 들며 하라는 걸 하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시간이 좀 되었군, 식사부터 하시죠.”
오늘 만찬과 모임을 준비한 건 방금 전의 목소리가 굵은 호전적인 대주교.
그가 옆에 있는 종을 한 번 울리자 문이 열리며 수많은 만찬을 들고 나체와 다름없는 옷을 입은 하인들이 들어온다.
방금까지 진중한 토론을 하던 대주교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참을 수 없다는 듯 의자를 톡톡 두드리거나 손을 비비는 자들도 있었다.
“어머, 괜찮은 남자애들이 많네.”
하인들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몇 없는 여성 대주교들도 꽤나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남색을 즐기는 대주교들 역시 그쪽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벨테니 대주교의 눈에 들어온 미색이 굉장한 여인.
“으음.”
오늘은 저 아이다.
음식을 전부 차린 하인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 줄로 서서 지명을 기다렸다.
대주교들은 보통 2~3명 정도를 불러서 옆에 끼워 두고 식사를 시작하기 전 각자의 신을 향한 기도를 올렸다.
각자의 기도가 끝나고 오늘 자리를 주선한 걸걸한 목소리의 대주교가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르며 일어났다.
“오늘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신께서 은혜를 베풀어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음을 믿으며 다 함께 축배를.”
그렇게 대주교들은 서로를 향해 축복과 은혜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다음 모임에서 누군가는 사라지고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지 알 수 없으나.
지금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척을 하며 웃어 보였고.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음? 아직 덜 들어온 요리가 있었나?”
피식하고 다른 대주교들이 비웃음을 내걸자 주최자인 대주교는 치욕에 얼굴이 붉어지며 한 소리를 내뱉으려 했으나, 저쪽에서 먼저 입을 뗐다.
“제국의 썩은 물들이 다 여기 고여 있으셨네.”
처음 듣는 목소리.
남성은 미색이 뛰어나긴 했지만 하얀 바탕에 금색 자수가 되어 있는 로브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다른 자들과는 달랐다.
별거 아니라는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의 아주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분노가 천천히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다, 당신은!”
얼굴을 알아본 대주교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뚜벅뚜벅
당당하게 걸어 들어온 남자는 앞에 놓인 쓰레기들을 보며 말했다.
“분명, 경고했을 텐데.”
* * *
‘총 13명.’
눈에 들어오는 대주교들의 숫자.
생각보다 많은 주교들이 모이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아이란이나 마교단장들이 몸을 사리다 보니 다른 주교들 역시 몸을 웅크린 듯 보였다.
쓰레기들의 옆에 있는 남녀들은 하나같이 감정이 없는 눈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인형과도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주먹이 쥐어졌다.
“대마도사, 이곳은 어쩐 일로?”
‘벨테니.’
그나마 이름 있는 대주교인 벨테니가 능글맞게 웃으며 물어왔다.
“대주교들의 모임 자리입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다시금 묻는 그에게 비웃음을 내걸며 물었다.
“요즘 주교들은 양옆에 신자들 하나씩 끼고 밥을 드셔야 하나?”
“하하, 대마도사님께서 무슨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다른 대주교들은 벨테니에게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대마도사께서 보시기엔 썩 오해하실 수 있는 장면이군요.”
“어이구, 이 나이 들어서 이런 오해나 받고 주교로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조심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지랄한다.
하지만 벨테니는 뱀과 같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마도사님께서 이런 오해를 가지고 굳이 신민들을 혼란에 빠트리시진 않으시겠죠. 저희가 해명하면 곤란해지실 텐데…….”
한마디로 이것들은 지금 여론전을 펼칠 자신이 있는 거냐고 묻는 중이었다.
신의 말은 절대적이라고 믿는 신민들에게 이제 막 대마도사가 된 내 말을 믿겠냐 아니면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자신들의 말을 믿겠냐.
이래서 황실에서도 대주교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고 귀족들도 가능하면 주교들에게 맞추는 게 현 제국.
참, 거지같이도 돌아가는 꼴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우선.
“참 같잖게도 머리들 굴려 대긴.”
“무, 뭐요?”
“대마도사! 언행에 주의하시오.”
역으로 내게 경고하는 벨테니 대주교.
“참회의 신 볼택스를 섬기는 벨테니 대주교.”
“으음?”
“대마도사의 권한으로, 당신을 테러 및 불법 성매매 등의 혐의로 체포한다.”
“뭐?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발끈한 벨테니는 탁자를 탕 치며 일어나 삿대질하며 뭐라 소리쳤지만, 지렁이가 밟으니까 꿈틀하는 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네놈을 볼택스 님께서……!”
“웃기네. 아도리아가 물의 여신인 것부터 시작해서 볼택스가 참회의 신이라니.”
이것들은 나를 어디까지 웃기려고 작정한 건지.
“후회의 신 볼택스. 아도리아와 더불어 다수의 신도들을 모으는 대표적인 악신이지. 요번 마도 대회를 습격한 마법사들의 기억을 읽었고 네가 그랬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발뺌할 생각하지 마.”
“어떻게 볼택스 님의 정체를…….”
기억을 읽은 것보다 그게 더 놀라웠는지 벨테니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주먹을 꾸욱 쥐고 고개를 살짝 떨구며 나를 노려봤다.
“네놈, 무엇을 더 알고 있는 거냐.”
“너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이제 더 알 게 될 거야. 너희 머릿속을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볼 거거든.”
벨테니가 자신의 권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다른 대주교들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권능을 발산했다.
근처에 있던 하인들은 압박감에 숨을 쉬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에 신음했지만, 주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확실히 강대한 힘이다.
13명이나 되는 대주교들의 힘은 분명 놀라웠으나.
스윽 하고 손을 한 번 훑자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던 하인들이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쉰다.
편해졌는지 근처 대주교들의 눈치를 보다가 나와도 시선이 맞았는데 작게 웃어 주었다.
“웃어? 우리를 상대로 웃어?”
“하, 이것 참. 매일 축복을 내리고 웃어 주니까 우리가 정말 별거 아닌 줄 아나 봅니다.”
“대주교들의 힘을 너무 무시하는…….”
입가에 걸려 있던 비웃음들이 천천히 사라지며 입을 다물고 나를 노려본다.
얼굴이 붉어져서는 제대로 호흡도 하지 못하는 꼴이 부풀어진 복어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 재밌기는 했지만.
“왜? 가서 사람들한테 말해야지. 대마도사가 주교들을 협박하고 죽이려 한다고.”
식탁에 놓인 쿠키를 하나 집어 먹고 있자니 층을 울리는 다수의 발걸음 소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대주교들은 눈동자만 굴리며 무슨 일인이 확인하고 싶어 했기에 친히 설명해 줬다.
“기사단이야. 지금 상황을 적나라하게 다 보고 현장 급습으로 체포라는 시나리오거든.”
아참, 걱정하지 말기를.
“체포돼도 고문은 없을 거야. 여기서 너희 기억을 다 뽑아 갈 거라서 굳이 너희한테 얻을 건 없거든.”
“……!”
“여기 참가 안 한 다른 놈들도 어차피 전부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니까, 거기서 모임 하면 되겠다. 사식은 내가 넣어 줄게.”
쿠키를 하나 더 집어 먹으며 웃어 대자 대주교들의 얼굴이 더욱 붉어져서 노려보기 시작했고.
“커억!”
벨테니 대주교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신음을 하며 땅을 기는 벨테니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대주교들의 눈이 무슨 파리처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기에 간단히 설명해 줬다.
“적당히 째려봐, 기분 더러워지니까.”
의자에 앉아 식탁에 다리를 걸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주교들을 향해서 한마디 해 준다.
“다 눈깔아, 여기서 뒤지기 싫으면.”
그제야 분노를 죽이고 거슬리는 시선들이 하나둘 땅을 바라본다.
썩 마음에 드는 광경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기사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