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50화 (150/200)

150화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시간이 지연되었기에 어두워진 밤하늘.

경기장을 내리쬐는 조명과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마지막 경기.

앞에 있는 노인은 현시대 제국뿐만 아닌 대륙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마법사.

봐줄 생각은 없었기에 경기가 시작하는 순간 알로이스의 마나를 빼앗으려 했지만.

“……!”

“마나 순환 이론. 근 3년간 이 노인도 밤잠을 설쳐 가며 연구했다네.”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나를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는 저항을 해내고 있었다.

“제자들과는 다르군요.”

그의 제자인 마도사들이 마나 순환 이론을 부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보조로 연구와 연습을 거듭했던 것과는 반대로, 알로이스는 이 이론의 위력을 바로 알아챘기에 시간을 계속 쏟아부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게 바로 마나 순환 이론의 단점이다.

마법사를 상대로 그야말로 천적과도 같은 힘을 보이지만, 막상 상대 역시 이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는.

결국엔 마법 실력으로 겨루어야 하는 상황이 만족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상 마법을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황은 요번 대회에서 처음이었으니까.

스테아는 그 콧대를 눌러주고 싶기도 했으며 열기에 대한 마법 운용을 제대로 배웠으면 했고.

페르난도는 그냥 마나를 빼앗고 딱콩으로 끝냈다.

로건 웰스 역시 자신의 마나를 뺏기는 걸 알았기에 소모전을 치르면서도 달려들었었지.

결국 내가 마법을 쓰게 스스로 만든 건 알로이스가 유일했고, 나는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전격의 마나가 용의 형상을 하며 날아든다.

관객석에선 신기한 광경이라며 탄성 소리가 들렸지만, 알로이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바위 포탄으로 응수했다.

그 뒤는 단순한 마법을 주고받는 공방이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나는 바로 그의 마나를 앗아갈 작정이었고, 그 역시 알고 있었기에 별거 아닌 마법에 반응하는 것도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단한 집중력인데.’

아직 불완전한 마나 순환 이론을 펼치면서도 내 마법에 꾸준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지팡이에서 미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마법진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내 공세에 반응하는 게 고작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분명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고 경외감을 느끼면서도 진심으로 상대할 생각이었기에.

“훌륭하군요.”

역으로 내가 알로이스의 지팡이에 그려지는 마법진을 완성시키며 가로챈다.

화들짝 놀란 그가 급하게 몸을 뒤로 빼지만, 그의 지팡이에서 솟아 나온 나무뿌리들이 그대로 알로이스의 몸을 옭아맸다.

승패는 났다.

화려한 마법 대전을 봤다는 의미에서 우리를 향한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알로이스 역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듯 고개를 떨구었지만.

그 순간, 나무뿌리가 끊어지며 푸른빛의 마력포가 쏟아져 나왔다.

정확히 내게로 쏟아지는 마력포에 급하게 반응할 수는 있었지만. 알로이스는 오히려 그걸 반응했냐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 방이 남아 있으셨군요.”

“설마 그걸 반응해서 보호막을 치다니. 자네가 정말 인간인지 이제 의심마저 드는군.”

“몇 번인가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정령계에서 신들을 학살할 때 그놈들이 하는 말이 하나같이 저거랑 비슷했다.

인간 주제에.

인간이 맞는 거냐.

인간의 탈을 쓴 괴물.

기타 등등.

나중에는 프레이까지 종의 범위를 벗어난 것 같다면서 중얼거리기까지 했으니까.

“그것보단 순간적으로 마나가 운용됐습니다. 이만한 파괴력을 내려면 꽤나 시간이 있으셔야 할 텐데요.”

방심했던 이유는 아예 마나의 운용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금 정도의 위력을 내는 마법을 쓰는데 내가 마나의 운용을 놓쳤다는 건 이상했다.

그러자 알로이스는 오른손에 끼고 있는 장갑을 보였다.

그건 장갑이라기엔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오히려 기사의 갑옷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제국의 발명품이네. 마나 차단 장치를 역으로 이용한, 마나를 숨기는 장갑이지.”

“미리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요? 준비가 철저하시군요.”

시대가 흐름에 따라 마법사들의 싸움 방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는 이야기였고, 내 입장에서는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스승보다 먼저 눈을 감은 제자를 보고 배운 것이지.”

아마 그가 말하는 건 톨레스 트레이먼과 미오의 손에 눈을 감은 전 4석 바라모테일 것이다.

그 역시 기계를 마나로 운용하는 전투를 보여 줬었으니까.

알로이스가 반대편 팔꿈치를 손으로 건드리자 마찬가지로 갑옷과 같은 장갑이 씌워진다.

변신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신기했지만, 알로이스는 더없이 진지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봐주면 좋겠군.”

알로이스가 품에서 던진 건 보랏빛 약병이었다.

뭉게뭉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건…….”

“자네는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들었네. 플로이드의 안뜰에서 말이지.”

기억난다.

당시 혁명군과 다른 피해자들을 데리고 하늘로 도망치려 했을 때, 플로이드의 안뜰 위에 마나를 역류시키는 벽이 펼쳐져 있었다.

설마 그걸 이런 식으로 투척용으로 만들 줄이야.

정말 오랜만에 몸속의 마나가 꿈틀거리며 역류를 시작한다. 세계수에서 깨어난 이후에는 아무리 마나를 많이 다루어도 역류가 일어나지 않아서 잊고 있던 감각.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의 집념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긴다며 비겁하다, 추하다 말하고 있었지만, 알로이스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대마도사의 자리에 미련 따위 없어 보였다.

단순히 나라는 사람을 이기고 싶었기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 것뿐이었다.

“죽지 말게.”

알로이스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의 마력포가 다시금 갑작스레 나를 노려 왔다.

확실히 마나의 운용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예상을 못 하고, 마력포 자체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대응도 힘들다.

하지만.

마력포는 기이한 방향으로 굴절되며 허무하게 바닥을 내리찍는다.

온몸에 떠오르는 푸른빛의 마나.

“역류에 대한 파훼법은 진즉에 마련해 뒀습니다.”

마인화를 통해서 역류는 막을 수 있다.

이미 예전부터 하던 방법이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알로이스는 대단하다며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지팡이를 주웠다.

“그건 또 무슨 마법인지 알 수 있겠나?”

“마인화입니다. 역류를 통제하기 위해서 몸을 마나로 가득 채우는 거죠.”

말은 가볍게 했지만 절대로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알로이스는 바로 알아챘기에 자신의 턱을 쓸었다.

“그대는 마나 순환 이론을 통해서 마법사의 마나 부족을 해결했고, 마인화를 통해서 마나의 역류를 해결했군.”

마나 탈수와 마나 역류.

마법사에겐 최악의 두 상황을 완전히 파훼한 나를 보며 헛웃음을 짓는 알로이스.

“그대가 함께라면 제국은 다시 한번 찬란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저뿐만이 아닙니다. 현 황제는 분명, 역사에 길이 남을 선왕이 될 겁니다.”

그러자 알로이스는 경외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경기를 보고 있는 젊은 황제에게로 눈을 돌렸다.

“정말, 부럽군.”

쉰 목소리에서 나오는 짙은 감정은 후회와 질투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입 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관객과 옛 제자들에게 실망만 안겨 줄 수는 없겠지.”

자신을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추한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았는지 알로이스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지에서 솟아올라오는 거인.

관객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지 흥분과 감탄으로 얼룩진 관객들의 감정에 부응하듯, 흙으로 된 거인은 포효를 한 번 뿜어 대곤 거대한 주먹을 쥐었다.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 정점의 마법사에게 경의를 담아 이 한 방으로 최후를 맡기도록 하지.”

관객석조차 감쌀 정도로 거대한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히고, 나 역시 경의를 담아 손을 뻗었다.

어두운 하늘이 분을 토해 내는 듯한 울음소리를 자아낸다.

열파와 마찬가지로 내 오리지널 마법.

당시 스승님은 너무 과격하다며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며 200년 전, 마교단장들 역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쩌적, 쩌저적.

하늘에는 그림이라도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백색 전류는 별자리를 잇는 것처럼 하늘에서 현란하게 움직였고 곧이어 그것은 하나의 창이 되어 떨어졌다.

엄청난 흙먼지가 뿜어져 나오고 전류의 창은 그대로 내 앞에 박혀 들어와 강렬한 기세를 뿜어대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머리부터 뻗은 주먹까지 일직선으로 꿰뚫린 흙의 거인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방금, 그 마법은 뭐지?”

“뇌창이라는 제 오리지널 마법입니다.”

“흐, 흐흐.”

실소를 머금은 알로이스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며 푹하고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마도의 극의에 이르진 못한 늙은이었네만.”

마나 탈수 증상 탓인지 그는 휘청이더니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 끝을 눈에 담게 해 주어 고마웠네.”

“제 스승님을 제외하고는, 제가 보았던 마법사들 중 누구보다 뛰어나셨습니다.”

이제껏 숨겨 왔던 무지갯빛의 마나가 그의 눈에는 보이고 있는 걸까.

“정말 아름답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 이름을 외치는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전율이 이는 경기를 만들어 준 우리를 향한 박수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라엘 텔리즈먼, 그대를 33대 황제 제라니 데 아르니티의 오른손. 대마도사에 임명하네.”

이틀 뒤, 황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연회장의 중앙에서 제라니 황제가 직접 내게 대마도사를 상징하는 반지를 끼워 준다.

나를 위해 준비된 하얀색 바탕에 황금색으로 자수되어 있는 고풍스러운 로브를 가져오는 시녀들.

알로이스가 입던 것과는 디자인이 달랐는데, 아무래도 꽤나 공을 들인 것 같았다.

착 하고 감겨오는 착용감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며 산뜻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야 그 거적때기 같은 로브를 벗었다고 애들이 좋아하겠네.’

그것도 나름 200년 전 황녀님한테 선물 받았던 건데 조금 씁쓸했다.

박수갈채와 함께 나는 대마도사가 되었고, 고개를 숙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런 파티는 썩 불편했다.

어쨌든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긴 하니까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진 않겠지만.

“축하해요.”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온 건 공주인 제니 데 아르니티.

제라니 황제보다 한 살 어린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을 내밀었고 나는 제라니의 눈치를 슬쩍 본 뒤, 웃으며 손을 잡았다.

여성 쪽에서 먼저 춤 신청을, 그것도 공주가 한 것이 꽤나 쇼킹했는지 기자들은 펜을 놀리거나 사진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혹시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이 있으실까요?”

함께 춤을 추는 도중, 제니 공주는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로 꽤나 직접적으로 물어 왔다.

워낙 하얀 피부 탓인지 특히나 부각되는 그녀의 붉어진 얼굴. 시선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살짝 내린 가슴팍을 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음에 둔 정인은 따로 없으나, 이제 막 대마도사의 자리에 오른지라.”

아직은 대마도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는 정중한 거절에 제니 공주는 미처 생각 못 했다며 죄송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불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녀와의 춤을 끝마치고 다른 영애들도 꽤나 적극적으로 춤사위를 신청했지만, 공주를 배려하여 정중히 거절한 나는 기자들에게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게 질문 공세를 쏟아내는 기자들.

파티에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왜 기자 같은 것들을 파티에 참석시킨 거냐고 귀족들의 속닥거림이 들려왔지만 내가 일부러 참석시켰다.

“대마도사가 되신 이후, 가장 첫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소감은 어떠냐, 마도사는 언제 뽑는 거냐, 이름에 관해서 할 말 없느냐 등등.

쓸데없는 질문들에는 대강 답해 주고 옅은 푸른 머리를 가진 기자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질문.

“현 제국 내의 더러운 뿌리를 전부 뽑을 계획입니다.”

추상적이라 생각했는지 기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고.

“제국의 피를 빨아 먹으며 신의 뜻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제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정적.

내 목소리가 닿았는지 파티 음악을 맡은 연주자들의 고풍스러운 연주 소리 말고는 근처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내게 주목하고 있었고 기자들은 발을 빼야 한다는 본능이 표정에서 나타났다.

‘신의 뜻’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종교계를 특정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 한번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울부짖어 보거라.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묻겠지.

괴롭다며 눈물을 흘리겠지.

자신들의 과거는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만큼은 선한 신자처럼 무릎을 꿇겠지.

“그들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하루빨리 인지하길 바란다.

당신들의 신이 아닌,

나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애원할 시간이 찾아왔다는 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