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대기실에 있는 화면을 통해서 라엘 텔리즈먼과 네 번째 마도사 스테아의 대결을 지켜본 로건 웰스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세인트 학교에서 라만 아인이라는 이름으로 ‘마나 순환 이론’을 발표한 교수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라디오 타워를 테러한 마법사로 3년 전 구속되었으나 사형 전 도망을 쳐서 한차례 큰 소란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저런 마법이 가능하다고?”
압도적인 위력.
대군 마법이라고 볼 수 있는 거대한 질량의 마법을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중간에 마법을 회수했다는 게 충격 그 자체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건 총을 쐈는데 날아가는 총알을 손으로 낚아채서 다시 가져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마법이 날아가는 순간 유도 같은 특별한 마법들을 제외하고는 마법사의 손을 떠난 거니까.
‘이거 스승님보다 더 위협적인 남자가 있었군.’
페르난도? 클로이 노브?
로건 웰스에겐 오직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만이 눈에 들어왔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라엘 텔리즈먼.
절대로 무시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는 호적수가 나타났다는 확신에 로건 웰스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 *
“…….”
“으아아아앙!”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세차게 울려오지만 그걸 파묻히게 만드는 사람들의 야유 소리.
“애를 울리냐!”
“스테아 괜찮아!”
“우리는 너를 응원한다!”
“잔인한 놈! 이름값 하는구나!”
심지어는 쓰레기를 휙휙 던져 대는 게 처음에는 비라도 내리는 줄 알았다.
“……야, 울면 어떻게 하냐.”
워낙 서럽게 울어서 스테아에게 다가가서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내 손을 쳐 냈다.
“오, 오지 마아아!”
“…….”
그 한마디에 더욱 가속되는 사람들의 야유 소리.
“스, 승자는 라엘 텔리즈먼입니다! 선수 바로 퇴장해 주세요!”
결국 사회자의 멘트에 떠밀려 대기실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슬쩍 뒤를 확인하니 자매인 스테미와 페르난도가 와서 위로를 해 주는 걸 보며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
방금 열파를 제대로 봤다면 스테아라는 저 아이의 마법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 알지도 못하면서.
열기를 사용하는 독특한 마법사에게 열기를 사용한 마법으로 가르침을 준 거 아닌가!
어쨌든 그 이후에는 상당한 접전이 펼쳐졌다.
물론, 예선 참가자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떨어졌지만. 16강의 이변이라면 나와 스테아 그리고 페르난도와 클로이 노브였다.
2석인 클로이 노브와 3석인 페르난도 레빌로스의 대결.
클로이 노브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고 단순히 바람을 사용하는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여기서 페르난도가 승부수를 던졌다.
특기인 보조 마법을 통해서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고 그대로 접근전을 시도한 것.
우는 스테아를 안아 주고 위로하는 거로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던 페르난도가 마도 대회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면서도 호쾌한 싸움을 보여 줬고, 결국 승리했다.
클로이 노브는 분해했지만 1석과 스승만을 견제했던 자신의 패착이라며 악수와 응원을 건네며 나갔다.
그렇게 8강.
다시 등장한 무대에 선 나는 아까보다 더한 야유를 받고 있었다.
“라, 라엘 텔리즈먼입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회자의 목소리가 정확히 안 들릴 정도.
어린아이를 울렸다는 것과 더불어서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이름에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반감이 불을 지핀 것 같았다.
“다음은! 2석 클로이 노브를 쓰러트리고 올라온 호쾌한 쾌남! 페르난도 레빌로스!”
나와는 정반대로 무대가 떠나갈 것만 같은 환호성이 덮쳐 온다.
하지만 반대로 페르난도는 삐질거리며 무대로 나오는 걸 꺼려 하고 있었다.
“좋겠다?”
결국 내 앞에 선 페르난도에게 웃으며 묻자 녀석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은밀하게 제안했다.
“좀 보기에 그럴듯하게 지게 해 줄 수 있을까?”
“허.”
헛웃음이 나오며 슬쩍 관객석을 바라본다.
관객들은 경기가 시작 전임에도 페르난도의 승리를 바라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 자식은.
“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는 없는 거냐?”
“살아 보니까 의지만으론 기적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제라니 웃음 참는 거 보인다. 너 무슨 말 하는지 대충 눈치챈 듯.”
“……젠장.”
가장 높은 자리에서 다른 황녀들과 함께 관람 중이던 제라니가 큭큭 거리며 입을 막고 있다.
“클로이 노브랑 싸우는 거 보고 조금은 재밌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
“넌 안 되겠다.”
“야, 잠깐만!”
페르난도가 당황해서 외쳤지만, 사회자의 경기 시작 소리에 묻혀 버렸다.
“페르난도! 페르난도!”
사람들의 환호성을 속에서 나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 레이디 퍼스트를 실천하는 신사처럼 선공을 양보했다.
“먼저 해.”
“에이 씨!”
자신에게 보조 마법을 걸기 시작하는 페르난도. 아무래도 클로이 노브 때와 같은 전략으로 접근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무르다.”
녀석의 마나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페르난도는 어벙하게 자신의 손과 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하더니 점점 절망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실 마도 대회에서 내가 질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라마닉스에서 크리스티나가 마도사들의 마나를 뺏은 것과 마찬가지로.
“마나 순환 이론의 정점, 상대의 마나까지 뺏어올 수 있다. 한 번 경험해 봤잖아.”
어차피 마나만 뺏으면 마법사란 족속들은 허약한 민간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뭐해, 들어오지 않고.”
웃으며 말하자 거의 울상이 된 페르난도는 어떻게든 몸을 틀어 마나를 모아 마법을 완성시키려 했지만, 그 전에 소용돌이처럼 내 손으로 마나가 빨려 들어온다.
탈수 증상이 비슷하게 일기 시작하자 녀석은 이제 지팡이를 쥐고 그냥 앞으로 달려들었고.
쿵.
마법으로 손을 강화해서 녀석의 머리에 꿀밤 한 대 먹여 주자 그대로 땅에 박히며 기절했다.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먹을 한 번 불어 주니 방금까지의 환호성은 이제는 적막이 되어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았다.
“이제야 조용하네.”
몸을 틀자 사회자의 승리 선언이 울려왔고 관중들은 꾹 입을 다물었다.
* * *
공화국 출신 배틀 메이지.
총 5명으로 이루어진, 실은 공화국 출신일 뿐이지 공화국 소속은 아닌 이들로, 단순히 용병 일을 하다가 만난 사이였다.
리더인 라메다이스를 필두로 다들 나름 한 가닥 하는 마법사들이었지만, 요번 예선전 배팅에서 돈을 잃고 제도나 거니는 중이었다.
“본선 보고 싶었는데.”
여성 멤버 미아의 투덜거림에 라메다이스는 뻘쭘함에 뒷머리만 긁적일 뿐 다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설마 그 남자한테 전부 질 줄은 몰랐죠.”
“한센! 네가 초장에 밟아 뒀으면 됐잖아!”
가장 처음 라엘 텔리즈먼에게 패배했던 한센을 향해 따지고 드는 마른 체형의 남자 레옹.
이렇게 말해도 레옹도 라엘 텔리즈먼을 만나서 그대로 패배했기에 둘이 썩 다른 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어디서 얻었는지 손에 쥔 꽃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묻는 사니매라. 리더인 라메다이스는 괜히 쾌청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서 돈이라도 벌어야지.”
“그런데 제도에서는 용병일 하기 쉽지 않잖아요.”
“다시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거 어때요?”
“차비는 있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다.
다들 라엘 텔리즈먼과의 대결에서 리더인 라메다이스에게 올인을 해 뒀고, 그 결과는 이거였다.
“차비 정도는 남겨 둘걸.”
한센이 두툼한 배를 문지르며 훌쩍거리다 킁킁하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돼지 같으니까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레옹이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으나 한센의 시선이 꽂힌 곳에는 ‘불우한 이웃을 돕습니다.’라는 푯말을 내걸고 무료 배식 중인 종교단체가 눈에 들어왔다.
“…….”
다섯의 눈이 서로를 한 번씩 보더니 자연스럽게 대기 줄에 섰다.
“시민증 좀 잠깐 확인할게요.”
무료 배식을 하는데 굳이 시민증까지 확인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섯 사람은 딱히 거리낄 게 없었기에 검사하러 온 신자에게 공화국 시민증을 내밀었고.
“어이구, 공화국에서 오신 분들이구나! 고생이 정말 많으셨겠어요! 여기, 이분들은 특별히 많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볼택스 님의 은혜에요.”
타지인에게도 친절한 제국민들을 보며 배틀 메이지들은 긴장이 풀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잠깐, 당신 퍼지 아니야?”
하지만 그들의 바로 뒷사람.
딱 봐도 며칠은 굶은 듯한 허리 굽은 남자를 보며 따지고 들기 시작한 신자.
“아, 아닙니다!”
“시민증 내놔 봐.”
남자는 결국 머뭇거리더니 시민증을 내지 못했고 신자는 버럭 화를 내며 퍽 하고 발로 남자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지면! 퍼지답게 살아갈 것이지 감히 성지에 발을 들여? 네 주인은 어딨어!”
“버, 버려졌습니다! 제발 한 끼만 주세요!”
“그럼 음지로 다시 돌아가라고! 괜히 성지 더럽히지 말고!”
“신고합시다!”
쓰러진 퍼지를 계속해서 발로 내리찍는 신도를 보며 라메다이스는 욱하는 마음으로 나서려 했지만, 미아가 그의 팔목을 낚아챘다.
“괜히 나서지 마요, 원래 제국이 이런 곳이에요.”
“…….”
결국 라메다이스는 한 발 뒤로 빼기는 했지만 어이가 없어서 이빨을 까득 물었다.
외지인에겐 그렇게 친절하면서 정작 음지라는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태어난 자국민은 저렇게 짓밟다니.
심지어는 주변에서 말리려는 기색도 없었고, 오히려 더 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곳이었군.”
얼른 제도를 뜨고 싶어진 라메다이스는 침을 탁 뱉으면서도 배식을 받았는데.
“으음? 꽤나 귀한 손님들이신 것 같군요.”
새하얀 법의를 입고 있는 노인이 웃으며 걸어온다.
라메다이스를 향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저는 볼택스 님을 섬기는 대주교 벨테니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갑자기 왜 대주교가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건가 했지만, 대주교는 귀한 반찬들을 배틀 메이지들에게 내어주며 맞은편에 앉았다.
“전도하려는 거 아니에요?”
“밥만 먹고 가려고 했는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이런 거 한 번씩 듣고 가는 거예요.”
속닥이는 그들에게 편하게 드시라며 대주교는 권했고, 배틀 메이지들은 힐끔힐끔 눈치만 보더니 급하게 식기를 움직였다.
맛있었다.
오늘 종일 굶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맛있었고.
의식이 멀어지며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자아, 그럼 가 봅시다.”
다섯 마법사는 슬며시 일어난 벨테니 대주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