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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45화 (145/200)

145화

오늘은 예선전이기에 마도사들은 참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본선부터 참여하니까.

그래서 관객들 숫자가 적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끄르륵!”

물로 만든 탄환을 맞고 쓰러진 상대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하기가 쉽지 않네.’

최근 들어 대군 마법만 남발하며 다녔다 보니 이런 작은 마법들을 사용하는 데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버린다.

가능하면 살살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진 마법사에게 애도를 표했다.

‘오늘 경기만 몇 개야.’

예선을 하루에 몰아서 치르기 때문에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했는데 늦은 저녁까지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니까.

참가 자격이 워낙 낮다 보니 별의별 어중이떠중이가 다 참가해서 이렇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것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짜증 나.”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혁명군에라도 한 번 살짝 들렀다 올 생각이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날아가도 한나절은 족히 걸리니까.

‘애들은 잘 있겠지?’

괜히 걱정돼서 나도 모르게 미간이 모였는데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남자.

“훗, 수 싸움은 잘 봤다.”

보라색 두건을 쓰고 있는 눈에 상처가 인상적인 남자가 피식하고 비웃음을 걸치고 있었다.

그것보다 수 싸움이라니 뭔 소리지.

“하지만 그 정도면 금방 떨어질 거다. 방금 상대했던 한센은 우리 쪽에서도 가장 약한 측에 속했으니까.”

‘얘 뭐라는 거야.’

진심으로 이해 안 되는 표정을 짓자 녀석은 클클 거리며 웃어 댄다.

“그래, 믿지 못하겠지. 하지만 원래 세상이 그렇다. 나 역시 한때는 내가 최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

“한센이 불꽃 마법사인 걸 이전 경기에서 유심히 관찰했던 모양이군. 그 허술한 물 마법으로 대응한 걸 보니.”

“…….”

“하지만 한센의 집중력이 흐트러졌기에 수 싸움에서 밀려 진 거지, 아니었음 결과가 달랐을 거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처음엔 짜증 났다.

이 애꾸눈이 뭐라고 내 앞에서 입을 털고 있는 건지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점점 들을수록 입가에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아, 조금 재밌을지도.’

연극을 보는듯한 말투에 나는 놀란 척하며 묻는다.

“방금 그 녀석보다 더 강한 마법사가 있다고?”

그러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훗 하고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합루스크 공화국의 배틀 메이지. 너희 제국의 평화에 찌들어 있던 마법사들과는 질이 다르다.”

이름 한 번 거창하긴.

“공화국?”

“그래, 미안하지만 이번 대마도사의 칭호는 우리 공화국이 가져간다. 제국은 아직도 낡아빠진 전통을 고집하다 큰코다치겠지.”

아직까지 타국에서 대마도사가 된 적이 없기에 솔직히 그렇게 되면 어떨지 궁금하긴 했지만.

‘네 실력으론 무리일 텐데.’

솔직히 말해서 페르난도도 이기기 쉽지 않을 게 딱 보였으나 나는 짐짓 긴장한 듯 답했다.

“공화국의 손길이 제국에 퍼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오롯이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대마도사의 자리를 사용할 뿐이다. 제국의 억지를 막기 위하여.”

“…….”

“큭큭, 우리의 공세를 어디 한번 잘 막아 보길 바란다.”

휙 로브를 한 번 손으로 펄럭이며 가 버리는 녀석.

놈이 사라지자 슬며시 내 뒤에 페르난도가 다가왔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냥 재밌어서 맞장구 한번 쳐 줬는데.”

그나마 지루함이 조금 가셨다.

“흐음, 공화국 출신이던데. 확실히 요번 예선에서는 제국 측 마법사들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어.”

“예선에서 올라가는 사람이 총 몇 명이지?”

“……그것도 확인 안 해 봤어?”

“어차피 다 이기면 내가 올라가긴 할 테니까.”

뭘 굳이 쓸데없는 것까지 알아야 하겠는가.

페르난도는 찝찝한 표정으로 맞긴 하다며 답해 준다.

“10명이 올라가. 스승님이랑 마도사들도 참여해서 총 16명이 본선에서 싸우게 되지.”

“흐음, 예전이랑 비슷하네.”

옛날엔 본선에 올라가는 숫자가 좀 더 적었던 거로 기억한다.

“가능하면 네가 외국 출신 마법사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어.”

“그래야 제국 출신이 하나라도 올라가니까?”

“그렇지.”

어차피 예선에서 올라간 이들 중 대부분은 페르난도보다 약하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었는데, 그렇다면 조금은 제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 제국 출신 마법사들이 본선에 올라오길 바라는 게 페르난도의 심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돌아온 다음에 마도사들이랑 비교를 해 본 적이 없네.”

“……음?”

“아니, 3년 전 기준으로 보면 너랑 엇비슷한 애들도 몇몇 보였거든.”

“뭐? 아무리 그래도 내가 마도사인데!”

“그러니까 잠깐 확인 좀 하자.”

“…….”

버럭 화를 내던 페르난도의 입이 뚝 하고 다물어진다.

“나 마침 다음 시합까지 시간 좀 남거든? 어디 남는 훈련장이라도 가서…….”

“싫어!”

쌩하고 달려가 버리는 페르난도의 등을 보며 헛웃음이 지어졌다. 저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지 사형인 로건이었으면 좋아서 죽었을 텐데.’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간단히 근처에서 밥이나 먹자 생각하고 걸음을 옮겼다.

* * *

“요행이군, 운이 좋았다.”

“놀랍군. 방금 그 공격은 즉석에서 떠올린 임기응변이겠지? 네놈의 재능은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을 수도 있겠어.”

“성장! 성장하고 있군! 대단해! 너는 오늘 하루 만에 엄청난 성장을 해냈다!”

한 번 이길 때마다 애꾸눈 아저씨가 계속 찾아와서는 한마디씩 해 주고 가신다.

물론, 나도 짐짓 힘든 척을 하거나 난적이었다며 고생한 척을 해 주긴 했지만.

‘슬슬 질리긴 하는데.’

미안하지만 이제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해서 설렁설렁 답을 해 주고 있는데도 아저씨는 지치지 않는 듯했다.

결국 저녁 9시.

본선에 진출하는 마지막 시합에서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공화국 출신 배틀 메이지! 라메다이스!”

‘이름이 라메다이스?’

카레라이스를 잘못 말한 거 아닌가.

“상대는 불길한 이름을 가진 남자, 라엘 텔리즈먼!”

방금까지 한숨 자고 있었기에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풀자 라메다이스는 나를 향해 자신의 지팡이를 겨누었다.

“솔직히 놀랐다. 설마 네가 내 마지막 상대가 될 줄이야.”

“응, 나도 그래.”

“재능은 뛰어나다. 성장도 했지. 하지만 아직 멀었다. 네놈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이라면 이 몸은 이미 만개하여 활짝 피어오른 꽃!”

말 참 많네.

“자아! 이 길고 긴 하루를 아름답게 장식하도록 하자!”

배틀 메이지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녀석도, 녀석의 일행들도 근접전을 상당히 선호하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같은 경우도 앞으로 달려들면서 마법을 외우고 있었으니까.

“정말 고마워.”

그렇기에 나는 오른손에 마나를 모으며 진심으로 웃어 주었다.

“덕분에 지루하진 않았다.”

“자, 장외! 라메다이스 선수 장외패입니다!”

* * *

“예선이라도 사람이 꽤 있네?”

“아마 본선 진출자 시합을 보려고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한 거 아닐까?”

유명 가수 제니아와 그녀의 친구 카밀라는 각자의 일을 끝마치고 마도 대회 예선전을 보러 왔다.

원래부터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은 제니아와 직장을 잡고 일을 하고 있는 카밀라였기에 늦은 저녁에나 도착할 수 있었다.

“맥주, 맥주.”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를 찾는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아저씨인데 말이지, 하고 카밀라가 말해 보지만 제니아는 병맥주를 건넨다.

“짠!”

“짠.”

안주를 꺼내지도 않고 맥주부터 그냥 입에 털어 넣는 제니아. 오늘 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다면서 투덜거리더니 그걸 여기서 풀 생각인 듯했다.

“와, 확실히 본선 진출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치열하네.”

“그러게.”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중얼거리는 제니아. 이렇게 편해 보이지만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정보 수집이었다.

본선 진출한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새로운 대마도사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여기서 승자들은 훗날 혁명군에 위협이 되는 마도사가 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기에 제니아는 미리 그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온 것.

‘그런데 정말 정보 수집을 하고 있는 건가.’

혁명군은 아니지만 그녀의 친구인 카밀라는 주먹을 쥐고 소리를 질러 대는 자신의 절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싸움 구경을 하러 오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세 경기 정도가 끝나고.

보라색 두건을 쓰고 있는 애꾸눈의 남자가 경기장으로 걸어 나왔다.

“생긴 거 살벌하네.”

“몸은 전사인 것 같은데.”

꽤나 위협적으로 보여서 아마 저 사람이 본선에 올라가지 않을까 하고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동안, 반대편에서 상대가 걸어 나왔다.

다른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지팡이도 없는 맨손.

낡아빠지다 못해 이제는 구멍이 숭숭 뚤려 있는 갈색 로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꽁지로 묶은 남자.

쨍그랑! 하고 제니아의 맥주병이 깨지며 바닥에 흥건하게 젖는다.

하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카밀라 역시 자신의 맥주병을 바닥에 떨어트렸으니까.

“공화국 출신 배틀 메이지! 라메다이스!”

해설진이 지친 목소리를 가능한 끌어올리며 양측을 소개한다.

“상대는 불길한 이름을 가진 남자, 라엘 텔리즈먼!”

그 이름에 제니아는 거칠게 외쳤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외침과 동시에 안타까운 희생자 라메다이스는 그대로 장외로 날아가 버렸다.

* * *

쿠당탕.

경기가 끝나고 이틀 뒤에 있을 마도 대회 본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이후, 밖으로 나오자마자 습격을 받았다.

“아오, 누구야.”

“누구야?”

쓰러진 내 위에 올라타 있는 연분홍빛 머리칼과 고운 목소리가 인상적인 여인.

“와, 진짜 오랜만이네.”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던지라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제니아는 퍽퍽 내 가슴을 내리치며 화낸다.

“지금까지! 어디 있던 거에요! 이 바보 같은 오빠가!”

“커억! 진짜 아파.”

“3년의 감정이 담긴 펀치니까!”

울상인 채로 입이 살짝 삐져나온 제니아와 그 옆에 서 있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 카밀라.

“그러게. 3년이나 걸렸네.”

이렇게 보니까 실감이 났다.

씁쓸한 감정이 밀려왔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술 냄새 나니까 조금 떨어져 줄래?”

“쓰레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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