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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43화 (143/200)

143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아이란의 반응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도망치려고?”

“죽은 줄…… 알았는데.”

“뭐, 비슷했어.”

“네놈은 누구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젤롬 황자. 하지만 아이란은 이미 몸을 내빼고 있었다.

1:1 대결에서 극도로 취약한 아이란이었기에 그녀는 몸을 틀며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

“아, 아이란?”

“너희는 다 가만히 있어, 저 여자만 문제니까.”

“개소리 말아라!”

검을 뽑아 든 1황자와 다른 친위대와 더불어 렉스턴 장군까지 나를 향해 달려들려 했으나.

우뚝 하고 그 자리에 멈춰선다.

“너무 과한 소란이 일었어. 이쯤 조금 조용해지자고.”

“이게, 무슨…….”

“크으윽!”

마력을 방출해서 이들의 움직임을 억제했다. 온몸이 무거워져 발 하나 앞으로 내밀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으아아!”

피가 나올 정도로 자신의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치고 나온 렉스턴 장군.

온몸에 오러를 두르고 내 압력에서 버텨 냈다는 얘기였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괜히 제국 제일의 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네.”

“고작 마법 따위로! 나의 검을 막을 성 싶느냐!”

“그런데 말이야.”

탕! 하고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는 흉흉한 기세의 오러가 둘린 검.

렉스턴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이나 다시금 검을 내게로 내리쳤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제국 제일의 검 정도로 나한테 닿기에는 조금 많이 부족한데.”

“나를 모욕하느냐!”

“어.”

방에 있던 고풍스러워 보이는 물주전자에 마나를 담아 그대로 렉스턴의 복부에 박아 넣자 그는 피를 토하며 내가 깨고 들어왔던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과했나.”

황금색 갑옷도 입고 있어서 나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른 친위대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아이란이 멀어지니 제라니 황자와 페르난도 그리고 볼트론 장군도 점점 정신을 차렸다.

“으음, 무슨 일이…….”

“머리 아파.”

“렉스턴?”

“자, 다들 정신 차리시고.”

짝하고 박수를 치고 웃으며 말하자 제라니 황자와 페르난도의 눈이 내게로 꽂히며 점점 커진다.

“너, 너는……!”

“뭐야! 진짜로?”

“정신 좀 차리고 있어. 나는 도망간 여자 하나 잡을 테니까.”

창문 밖으로 나와 하늘에 떠서 주변을 확인한다.

어두운 새벽인지라 아무래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너희는 꼭 더러운 기운을 풀풀 풍기고 다닌단 말이야.”

숨길 수 없는 역겨움이 눈에 딱 들어왔다.

어느새 황궁을 벗어나서 도심을 달리고 있는 아이란.

방법이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구를 찾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에 쓰레기가 보이면 치우는 게 더 나은 제국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니까.

“새벽에 운동이라, 나이가 먹어서 건강 관리 하시나?”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는구나!”

발악하듯 외치는 아이란의 권능이 치솟아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권능들이 주변 주택들로 퍼져나가는 걸 보고 인상이 찌푸려진다.

“어떠니? 이런 것도 가능하단다.”

벌컥 하고 주택의 문이 열리더니 잠들어 있던 시민들이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졸지에 파자마 파티라도 하는 꼴이 되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서 도망친다?”

“지금의 나는 이기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마. 하지만 이후에는 다를 거야, 라엘 텔리즈먼.”

시민들 사이에서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는 녀석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해 준다.

“일단 다음에 만나도 너희는 나 못 이겨. 이젠 그 정도 수준 차이가 생겼어.”

“닥쳐!”

“또 하나는.”

눈 깜짝할 사이.

바람의 칼날이 아이란의 목을 베고 지나간다.

그녀는 목이 베이는 와중에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민들이 아무리 많아도, 너 정도는 금방 죽일 수 있어.”

아쉽긴 했다.

어차피 마교단장들은 몇 번이나 다른 육체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로그니다츠만 해도 벌써 두 번을 죽였으니까.

예전에는 퓰리처럼 아예 가둬 두는 게 최선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예, 전부 죽여 주마.”

언제까지고 부활할 수는 없을 거다.

부활에 대한 제한도, 제약도 있겠지.

끝까지 밝혀내서 죽여 줄 거다.

“어, 뭐야?”

“엄마?”

“왜 밖에 나왔지? 몽유병이라도 생겼나?”

“꺄아악! 사람이 죽었어!”

아이란의 죽음으로 권능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당황하며 각자의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간다.

싸늘하게 남아 있는 아이란.

“그래도 시민들 덕분에 깔끔하게 죽었다 생각해라.”

원래였으면 붙잡아서 부활에 대한 분석을 할 생각이었는데 포박을 할 여유는 없었다.

조금만 틈을 보였다간 녀석이 바로 시민들을 자결시켰을 테니까.

아이란의 시신을 깔끔하게 태워 버려 정리한 이후, 다시 황궁의 제라니 황자의 침실로 들어갔다.

“……정말이었군.”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어.”

기다리고 있던 제라니와 페르난도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서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받아주진 않았다.

“친위대는?”

“볼트론 단장이 끌고 갔어. 아마 내일이면 바로 처형식이 집행되겠지.”

“쟤는?”

쓰러져 있는 젤롬 황자를 턱으로 가리키자 제라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형님은 갑자기 쓰러지시더군.”

“아마 아이란이 죽어서 걸려 있던 권능이 해제된 걸 거야.”

“그 부분 말인데. 정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대주교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권능이라는 건…….”

“그 여자는 가능해.”

단호하게 답해 주자 제라니는 그런가 하고 입을 다문다. 방금 그녀의 권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눈치챈 대주교들도 있을 수 있지.”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데 아무 말도 없었다는 건, 이미 그쪽 장악이 끝났다는 소리지.”

황실도 이미 장악이 끝난 상태였는데 종교 쪽은 가만히 뒀을까?

아마 그쪽이 가장 먼저 마교단장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거다.

“그래도 네가 아이란을 죽였으니까 이제 괜찮은 거 아니야?”

“마교단장은 총 다섯이 있어.”

생각해 보니 감옥에서는 아이란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 해 줬다. 다섯이나 있다는 얘기에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눈물과 절망의 여신 아도리아를 섬기는 퓰리. 얘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몸에 가둬 놨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냥 알아서 알아들어라.

“탐욕과 단죄의 여신 렐을 섬기는 로그니다츠 세이야스. 얘는 두 번 정도 죽였는데 아마 이번에도 살아났을 거야.”

지긋지긋한 바퀴벌레 같은 녀석이다.

“아이란은 방금 봤고, 벤트 몰란은 대침공에서 체체로에 빙의됐을 때 내가 죽였고.”

체체로에게 아예 영혼까지 먹혀 버렸기 때문에 벤트 몰란은 분명한 죽음이 선사됐다.

“파괴의 신 가이스를 섬기는 듄. 이 녀석이 제일 골칫덩이긴 한데 지금 나한테는 큰 위협이 아니야.”

“방금 그 여자 정도의 실력자가 아직 제국에 셋이나 남아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걱정이군.”

3년이 지나 솔직히 나도 걱정이 되었다.

혹시 제라니 황자가 변하지 않았을까?

제국의 시민들을 위해서 휘두르던 그 검이 부러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검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내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뭐, 그놈들 상대는 내가 할 거니까. 너희는 제국이나 잘 다스려.”

“그건 형님이…….”

“으윽.”

자기 얘기하는 게 들렸기라도 했던 걸까.

때맞춰 젤롬 황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무슨?”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순박한 눈동자와 얼굴.

“연기하나?”

“그렇진 않을걸.”

페르난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본격적인 지배는 즉위식이 끝나면 시작할 계획이었겠지만, 그 전부터 이미 아이란의 권능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던 상태였다.

아마 뇌에 낀 검은 안개가 사라져 맑게 갠 기분이겠지.

“형님?”

제라니 황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젤롬은 덜덜 떨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 아아…… 제라니. 내가, 내가 이 손으로 아버님을!”

예전 퓰리의 지배에서 벗어난 카밀라의 모습이 젤롬에게서 겹쳐 보였다.

그 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아이란의 명령으로 두 번째 황자인 제미아에게 지효성 독약을 먹인 것부터 시작해서 아버지인 젤라이트 데 아르니티를 죽인 것까지.

외에도 수많은 악행들이 젤롬의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매우 끔찍했으나 누구도 젤롬 황자를 비난하진 않았다.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건, 그 자신이었으니까.

“아우야.”

“……예, 형님.”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

젤롬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는 걸 기억한 제라니는 눈물을 훔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일 있을 즉위식에서, 나는 모든 걸 밝히겠다.”

“형님.”

“부디, 나와 같은 꼴이 되지 말고 제국을 지켜 다오.”

“형님! 하지만…… 하지만!”

“나는 무능했기에 죄를 범했고 아르니티의 이름을 짊어진 자에게 무능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국의 신민에게 직결되는 문제니까.”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아버지가 해 주셨던 말이다.

그렇기에 셋째이기에 황제가 될 수 없었던 제라니는 검을 연마했다.

통치가 아닌 무력으로 그들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아르니티라는 이름에 걸맞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나의 죄를 짊어지게 해 다오.”

“…….”

형제는 조용히 포옹을 나누었다.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던 형제의 오해가 풀렸으나 안타깝게도 해가 떠오르면 모든 게 끝이기에.

나와 페르난도는 조용히 두 사람의 시간을 위해서 침실을 나섰다.

“그런데 너, 엘리나는 만나고 온 거야?”

“졸업했다는 걸 듣기는 했어. 하지만 황제가 암살당했다는 걸 듣고 바로 이쪽으로 왔지.”

“…….”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가 제자를 찾으러 갔으면 자신들은 그대로 아이란의 꼭두각시가 되었을 테니까.

“엘리나가 어디로 갔을지는 알아?”

“혁명군으로 갔겠지.”

뻔했다.

혹시 내가 거기 있나 싶어서 가 봤겠지.

“나도 가능하면 바로 가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할 일?”

페르난도의 질문에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눈에 훤히 그려졌기 때문.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 뭐부터 하는지 알아?”

“음, 너무 여러 개라서 콕 집어서 말하기 뭐한데?”

“쯧쯧, 마도사면 마도 대회가 먼저 튀어나와야지.”

“아, 그렇지. 황제를 보필할 새로운 대마도사를 뽑아야…….”

녀석의 눈이 천천히 내게로 꽂혀 들어온다.

“설마.”

딱 예상한 그대로의 표정이라서 괜히 더 웃어 주며 끄덕인다.

“마도사를 200년 했으면 대마도사 한 번 될 때도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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