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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42화 (142/200)

142화

젤라이트 황제를 추모하는 장례식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러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원래부터 병상에 누워 계시던 황제 폐하이시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또 누군가는 젤롬이 즉위를 위해서 재촉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라마닉스에서 엘리나의 졸업을 축하해 줬던 페르난도도 돌아오자마자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는데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결국 현실이 되었다.’

주먹을 꾸욱 쥐고 페르난도는 대사제들과 대화 중인 젤롬 황자를 노려보았다.

“노골적이다, 페르난도.”

슬며시 옆에 선 제라니 황자의 주의에 그는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황자를 바라봤다.

“괜찮으십니까?”

“아버지를 몇 년 만에 뵙는 건지 모르겠더군. 생각보다 정말 많이 늙으셨어.”

젤라이트 황제가 지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는 그의 황후와 젤롬 황자 그리고 하인 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젤라이트 황제를 보지 못했었다.

그렇게 만나 뵙고 싶었던 아버지가 이렇게 초췌한 몰골로 돌아오신 걸 보면 먹먹하다는 말로는 감정이 표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마치 내게 무슨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저한테까지 숨기시고 준비하시던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제라니 황자는 슬쩍 페르난도를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대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눈치가 빨라졌군.”

“저한테 숨기시던 건 이해는 합니다. 황후님이나 황녀분들께는 다 이야기가 끝나신 거죠?”

“증거를 잡았으니까.”

가슴이 아팠다.

가족들에게 장남의 추악한 계획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젤라이트 황제는 암살당했다.

하지만 그게 세간에 퍼지는 것처럼 혁명군이 한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젤롬 황자가 만들어 낸 상황.

제라니 황자는 이미 모든 걸 준비하고 끝내 뒀다.

장례가 끝나고 젤롬은 바로 즉위식을 치르겠지만 그렇게 두지 않는다.

아르니티 제국을 지키는 검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형제를 향해 검을 들이밀 시간이 왔다.

* * *

“웃기는군.”

장례식이 끝나고 늦은 저녁.

벌써부터 알랑거리는 대주교들의 장단을 맞춰 주기는 지루했지만, 겉으로는 신성하다 떠드는 자들이 자신의 앞에서는 굽신거리는 게 또 묘한 만족감을 주었다.

자신의 방에서 후 하고 연초를 태우며 젤롬 1황자는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내일이면 자신이 황제가 된다.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르다.

압도적인 권력과 위엄으로 모두를 사로잡아 어떠한 역사에도 없던 강력한 제국을 만들 것이다.

“흐음, 기분이 좋아 보이네?”

방의 그늘진 곳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여인.

도대체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기척을 숨기고 저렇게 들어오는 건지 매번 감탄할 따름이었지만, 젤롬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이란!”

“그래, 고생했단다.”

마치 아이처럼 아이란에게 안겨든 젤롬 황자는 더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아이란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부드럽게 쓸어 주는 그녀의 손길에서 젤롬은 더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황제가 되면 그대를 황후로 지정할 거야. 이렇게 숨어서 다닐 필요는 없어. 나와 함께해 줘.”

“어머, 내 출신이 워낙 천해서 그런 건 안 돼.”

“도대체 누가! 누가 당신을 천하다 하겠어! 제국의 황제인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는데!”

“아이참.”

아이란은 기대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젤롬은 그 사인을 받고 기뻐서는 그녀를 그대로 침대로 끌고 갔다.

‘한결같아.’

재밌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몇 번째일까?

3번?

아니면 4번?

어쨌든 이 핏줄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결혼을 하자고, 황후로 만들겠다고 발정 난 개처럼 소리친다.

‘그대의 아버지인 젤라이트도,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그랬단다.’

다들 자신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그 누구의 꿈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아, 귀여운 장난감들.

그는 평생을 바쳐도 모르겠지.

아버지인 젤라이트 역시 자신의 인형에 불과했으며, 젤롬이 죽이기 쉽게 점점 기력을 빼앗은 것을.

“그런데 제라니 황자는 어떻게 할 거니?”

“하, 그 천치 놈?”

꽤나 거슬리는 존재임은 틀림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제2황자이던 제미아 황자 역시 총명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빠르게 눈치챘기에 젤롬을 이용해서 죽였으니까.

그런 비슷한 맥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준비해 뒀어. 아이란 덕분에 녀석들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호오?”

아이란의 콧소리에 칭찬을 듣고 싶다는 듯 젤롬은 흥분해서는 말을 이어 나갔다.

“놈들은 내 즉위식 바로 직전에 일을 벌이려는 속셈인 것 같지만 나는 그것보다 한발 먼저 움직였지! 바로 오늘 새벽에 친위대가 제라니 녀석의 침소에 치고 들어갈 거야.”

“…….”

“큭큭, 아버지한테 했던 것처럼 혁명군 놈들이 했다고 대충 떠들어 대면 끝이지!”

아아,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 끝까지 어리석을까?

총명하던 둘째와 무술과 더불어 신념을 갖춘 셋째에게 가지고 있던 열등감 탓에 이렇게 된 건 알고 있다.

정확히는 젤라이트 황제를 조종하기도 했고, 아이란이 권능을 통해서 성격을 비틀리게 만들긴 했지만.

‘잘도 두 번이나 그런 거짓말을 믿어 주겠구나.’

혁명군이 두 번이나 황실에서 암살을 성공해?

그것도 황제와 황자를?

이건 이제 혁명군이 대단한 게 아니라 황실이 무능해도 너무 무능한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을 처리했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을 유추하면 간단하게 젤롬 황자가 나오게 되고, 범인은 쉽게 들통난다.

친위대를 사용한 것도 그렇다.

제라니 황자의 무위가 출중하다고는 해도 기사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반감을 주는 건 당연했고, 그들 중에 정보를 흘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혁명군이 암살을 한 걸로 치면 당연히 화살은 친위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결국 친위대는 자기 칼로 자기를 찌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제라니 황자는 황후에 더불어 황녀들까지 이미 포섭을 끝마친 상황.

제라니가 죽으면 황후와 황녀가 들고일어날 게 분명한데도.

‘혹시 이 아이는 자신을 제외한 황족을 전부 죽일 생각일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지만, 여색에 빠진 젤롬은 그저 아이란의 품에서 사랑을 갈구할 뿐이었다.

“잘했어, 정말.”

상관없었다.

어차피 젤롬이 즉위만 하면 그 순간 젤롬이라는 인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이란의 꼭두각시만 남을 테니까.

‘네 아비처럼.’

“그래서 사실 새벽에는 나가 봐야 해. 같이 잠들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함께해도 괜찮을까?”

혹시 모르니까.

젤롬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봐 둬, 내가 활약하는 장면을!”

“응, 기대할게.”

* * *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아무리 형님이라도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거야.

“페르난도랑 그런 대화를 나눴던 게 겨우 몇 시간 전인데.”

제라니 황자는 자신의 방에 들어온 친위대를 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명예롭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황자님.”

친위대 대장인 렉스턴 장군이 앞으로 걸어 나왔고 제라니는 침대 옆에 둔 자신의 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여기서 나를 죽이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저희는 검이자 방패입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그대들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책임을 포기했군.”

자조적으로 웃으며 검을 치켜든다.

“그래, 언젠가 렉스턴 그대와 한 번쯤은 검을 겨루어 보고 싶었지.”

“취미로 검을 휘두르신 걸 저랑 비교하시다니요.”

“그건 대봐야 알겠지.”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전투.

황자의 방이 넓기는 했지만 전투를 하기엔 굉장히 비좁았다.

렉스턴은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황자의 검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었고. 제라니는 피할 공간이 부족한 상황.

결국 제라니가 분전을 하긴 했으나 제국 최강의 검이라 불리는 남자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꽤나 하시는군요.”

“하하.”

씁쓸하지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죽음이 젤롬 황자에게 위협이 될 거란 걸 알고 있는 제라니였기에 사실 기쁘게 죽어 줄 수 있었다.

‘흑막에 대한 비밀도 페르난도가 알고 있으니 괜찮다.’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마법사가 사형식 이틀 전, 도망칠 때 페르난도에게 해 줬던 말.

‘현 황실을 조종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악이 하나 숨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란. 타인의 심리를 장악하고 매혹하는 권능을 가진 여인.’

그 존재를 찾기 위해서 애썼고 이제야 뒤꽁무니를 잡았다고 생각했더니 자신은 여기서 퇴장한다.

안타깝지만 페르난도라면 분명 해 주겠지.

‘모든 걸 맡기고 가서 미안하다.’

제라니 황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방 밖에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한 남자가 소리를 질러 댔다.

“흑황 기사단의 단장 볼트론! 제라니 황자님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노라!”

친위대 몇몇이 밀려나기 시작한다.

렉스턴은 인상을 찌푸리며 방문을 확인했고, 그곳에는 거대한 덩치의 볼트론 기사단장과 마도사 페르난도가 서 있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위험, 하다고!”

“인정하지, 형님이 이리도 어리석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네.”

급하게 뛰어왔는지 페르난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아직 제라니 황자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볼트론, 지금 너는 반역죄를 저지르고 있다.”

“친우여. 그대는 정말 많은 것이 망가졌군.”

렉스턴과 볼트론의 신경전.

두 기사단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무기를 휘두르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일단 도망칩시다. 살아남기만 해도 저희의 승리입니다!”

“음.”

볼트론이라면 밀릴지언정 죽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다른 친위대만 밀어내고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이게 무슨 일이냐!”

문밖에서 나타난 건 젤롬 황자와 매혹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

“형님…… 그리고.”

1황자가 왔음에도 제라니 황자와 페르난도의 시선은 여인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대가 마교단장 아이란이군.”

“어머? 나를 알고 있니?”

비웃음을 걸치는 아이란을 향해 제라니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검을 쥐고 전력으로 오러를 뿜으며 달려들었으나.

친위대 중 하나가 그녀의 앞으로 달려와 제라니의 회심의 일격을 막아 내었다.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푹 하고 쓰러진 친위대를 보며 제라니는 일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친위대까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총명하신 황자님이 떠올린 거면 아마 정답이 아닐까?”

킥킥하고 비웃음을 걸치는 아이란과.

“제라니 네 이놈! 감히 형님의 부인에게 칼을 들이밀어!”

어리석게도 분노하는 젤롬.

아이란의 권능이 방안을 채워 간다.

“좋은 생각이 있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란에게로 쏠린다.

멍해지는 시야, 벌어지는 입, 뿌옇게 흐려지는 사고.

“그냥 다 같이 사이좋게 내 품에서 노는 거야.”

괜히 죽이면 뒤탈이 생긴다.

그러니까 아이란은 그냥 제라니 황자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고, 여신의 권능이 너무나 가볍게 이들을 장악하고 지배하려던 순간.

“어허.”

쨍그랑 하고 창문이 깨지며 들어오는 한 남자.

예전과는 다른 장발을 꽉 묶어서 꽁지처럼 길게 늘어졌지만, 그의 외모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근 3년간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죽은 게 아닐까 하고 마교단장들이 추측하던 남자.

“라, 라엘!”

방금까지 여유롭고 느긋하던 아이란의 얼굴에 당황과 더불어 공포의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제국의 황제 되실 분한테 어딜 손을 대냐.”

라엘은 씨익 웃으며 손을 뻗었고 마나가 요동치며 아이란의 권능들을 그대로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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