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졸업 파티가 끝나고.
엘리나는 방에 있는 라엘 텔리즈먼의 지팡이 ‘프레이’와 자신의 ‘제국의 태양’을 챙겼다.
지인들과 인사한 이후, 엘리나가 향한 곳은 동쪽.
연습하는 겸해서 날아서 가 봤는데, 장거리 비행은 처음인지라 생각보다 마나 소모가 빨라서 쉬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3년 만에 돌아온 장소.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뭐야.”
하나의 요새처럼 높게 치솟아 있는 그들의 거점은 일종의 성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예전 자유 혁명군에서 자신들의 군락에 자신감이 넘쳤지만, 이건 그걸 몇 배는 뛰어넘는 수준.
“레온 오빠랑 에레오나 언니가 엄청 열심히 뛰어다녔나 보네.”
그런데 이런 요새가 있는데 변경백은 신경을 안 쓰는 건가?
‘분명 동쪽은 마이노 변경백인데.’
석양의 방패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선망을 받는 귀족이자 기사.
그의 입장에서 혁명군이라는 반동분자들이 이렇게 세력을 확장하도록 놔둘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련히 잘하셨겠지.’
이런 방면으로 머리를 쓰는 건 리스테린이 좋아하는 분야다.
자신은 그냥 마법이나 쓸 뿐.
요새 근처에서 내려와 걷고 있자니 괜히 조금씩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혁명군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혹시 여기 계시지 않을까?’
3년 동안 자신을 버려두고 떠난 스승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샘솟았기 때문.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날아든 건 마력탄이었다.
탕! 하는 소리가 숲에 울려오고 새들이 깜짝 놀라서 푸드덕거리며 날아든다.
엘리나도 자신의 발치에 쏘아진 총알을 한 번 쓱 보더니 앞의 성벽을 바라보니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물러나라.”
“오랜만에 돌아온 사람한테 이따위 환영 인사라니.”
순간 욱해서 마나를 끌어올릴 뻔했지만 애써 꾸욱 참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저는 크리스티나 엘리나에요. 예전에 혁명군에서 살던 사람이죠.”
“엘리나?”
되묻듯 들려온 목소리는 이상하게 익숙했다.
어릴 적 몇 번인가 들었던 목소리라는 곳까지 유추하자 엘리나는 금방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가터? 설마 가터야?”
“엘리나! 진짜 엘리나야!”
성문이 열리며 우르르 몰려나오는 엘리나 나이 또래의 아이들.
그들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 혁명군에서 자신과 함께 놀던 고향 친구들임을.
이제는 자신처럼 성장해서 훈련을 받고 혁명군을 지키는 수호병이 된 친구들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게 얼마 만이야!”
“와아! 진짜 예뻐졌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뒤에서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직 앳된 목소리의 소년.
“야! 아무리 누구인지 알아도 함부로 근무지 이탈을 해? 장난하냐? 오늘 얼차려 한 번 받을래?”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원래 자리로 달려가는 아이들과 성문에 서 있는 로브를 두르고 건틀릿과 비슷한 장갑을 끼고 있는 남자.
분명 자신과 비슷한 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입이 험하던 남자.
“에딘 오빠?”
“라엘 님은? 라엘 님은 어디 있어!”
“와, 하나도 안 변했네.”
극도의 라엘 빠돌이.
그가 선물로 줬던 극독의 숑의 지팡이를 거의 가보처럼 모시고 있어서 분명 병이 있는 거라고 당시엔 생각했었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충격.
‘그래, 여기도 안 계시구나.’
혹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에딘이 저렇게 찾는 걸 보면 이곳에도 그녀의 스승님은 없었다.
“어디 계시냐니까. 내 성과를 보여 드리겠어!”
“없어. 나도 몰라, 어디 갔는지.”
“뭐?”
“됐어. 나 안으로 들어간다?”
기분이 나빠져서 획 하고 에딘을 지나 안으로 들어온다.
내부는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웠다.
물론 라마닉스에서 살다 온 엘리나가 보기에는 여전히 많이 뒤처졌지만, 목재로 된 건물만 있는 게 아닌 것만 해도 혁명군에겐 큰 사치였다.
“엄청 변했네.”
자신이 살던 혁명군 마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
“도시 이름은 세이라스야.”
자신을 뒤따라온 에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 뚝 하고 멈춘다.
“세이라스? 옛 태양왕국 라스의 수도 이름 아니야?”
“맞아,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걸로 정해졌어.”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시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도시 중앙에 있는 작은 성을 봤다.
“저기에 다들 있는 거야?”
“……그렇지.”
에딘의 대답을 들으며 엘리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성 내부는 꽤나 깔끔했다.
하지만 얼추 보기도 전에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엘리나?”
“진짜로 돌아왔어!”
에딘과 동갑이던 미오 역시 조금 성숙해진 분위기가 있었고, 루이나는 이제 완전히 여인이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언니들! 오랜만이에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엘리나는 뒤에 서 있는 레온을 바라봤는데 뭔가 이상했다.
“레온 오빠는…… 조금 달라졌네요?”
“그래? 그닥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정한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이상하게 분위기가 묘했다.
‘뭐, 3년 동안 가장 변한 사람은 나지만.’
힘없는 소녀에서 세인트 학교 최초의 3년 졸업을 해낸 천재 마법사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에 조금 힘이 들어가면서도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근데 에레오나 언니랑 자벨린 부대분들은요?”
순간 정적.
설마 싶었으나 레온은 웃으며 답했다.
“지금 임무 나가 있어서 한동안 여기 없어.”
* * *
“후하하! 그래! 이곳이 본녀의 자리니라! 다시 왕좌를 탈환했노라!”
옛 궁전에 들어선 프레이는 후다닥 달려가서는 자신이 늘 앉아 있던 왕좌에서 방방 뛰어 대기 시작했다.
“얼씨구, 난리 났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란 말이다.”
피식하고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자니 바깥에서도 정령들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전쟁은 한창이다.
가야 할 길은 멀었지만 한 걸음을 떼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세계수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탈환한 땅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뻐할 시간이 없었기에 나는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면…….”
“아니,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하마.”
“응? 무슨 좋은 작전이라도 있어?”
내 물음에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지만,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곳을 점령하면서 차원을 간섭하던 권능도 풀렸다. 지금이라면 그대를 인간계로 돌려보낼 수 있어.”
“…….”
“정령계는 정령들에게 맡기거라.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
허세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지만, 뒤에서 나타난 다른 정령들.
“그래,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게.”
“엘리나도 걱정되지 않니?”
“혁명군 녀석들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인간이면 인간계부터 챙겨.”
마음이 흔들린다.
확실히 엘리나를 비롯해서 혁명군 녀석들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여기보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지.
“협상을 할 거다.”
노르먼이 뒷말을 덧붙인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현실적인 방안은 공존뿐이다. 많은 정령들이 죽었고 우리의 패배나 다름없지만, 저들도 이 이상의 피해를 원치 않겠지.”
“괜찮은 거야?”
“전혀. 하지만 방도가 없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애초에 저 땅을 다 얻어 봤자 정령 수가 너무 줄어서 쓸데도 없느니라.”
씁쓸한 말이지만 애써 괜찮다고 다독이는 듯한 녀석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자.”
“당연하지!”
노란빛의 포탈이 열린다.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동안 우리도 인간계로 가지는 못 할 거란다. 조금만 기다려 주렴.”
라푼젤의 말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신 협상이 결렬되면 바로 불러.”
“그건 걱정 말거라. 오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올 거니.”
확답을 듣자 이제야 발걸음이 떼어진다.
나를 배웅해 주는 녀석들을 한 번 보고는 작게 웃어 주며 포탈로 향했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느니라.”
프레이의 인사와 함께 시야가 끊겼다가 다시 뜨여진다.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
묘한 피비린내까지 코를 간질이며 철창이 눈에 들어온다.
‘아, 감옥이었지.’
깜빡했었다.
여기는 얼마나 지났으려나 싶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내 뒤에 앉아 있는 남자가 멍하니 물어왔다.
“너 뭐냐?”
“응?”
내가 쓰던 감옥을 지금은 누가 쓰고 있었나 보네.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왔냐고.”
험상궂은 남자가 툭툭 몸을 풀며 내게로 다가온다.
마나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싹 사라진 마나.
“마나 차단 장치?”
그러고 보니 감옥에는 그게 있었지.
아차 하고 이마를 탁 치고 있자니 녀석의 주먹이 내게로 휘둘러지려던 순간.
건물 벽을 부수고 날아드는 바위 하나.
“어차피 범위 밖에서 마나 운용하면 그만이지.”
감옥이 지하에 있는지라 마나로 지하에 박혀 있는 바위 중 하나를 끌고 와서 부숴 버렸다.
덕분에 죄수는 물론이고 철창도 사정없이 부서졌는데, 다른 죄수들이 무슨 일이냐며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으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마나 차단 장치를 부숴 버리는 게 우선.
“오랜만에 세상의 공기 맛이나 좀 볼까.”
긴급 상황이라며 울려오는 사이렌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 * *
“끄응!”
수감소 밖으로 나온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켰다.
두부라도 있으면 먹는 건데 하고 아쉬웠지만 뭐 어쨌든.
마나를 차단시키는 장치를 부숴 버린 이후에는 간단했다.
그냥 전부 기억을 지워 버리면 끝이었으니까.
감옥은 원상태로 돌려놨고 나를 봤던 녀석들도 전부 기억을 잃었다.
삶의 10분 정도는 놓아도 인생을 살면서 아무 지장 없으니까.
“꽤 많이 변했네.”
도시 라마닉스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예전에 음식점이 있던 곳에 옷가게가 있었고 거대한 간판들도 대거 눈에 들어왔다.
꽤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감옥에서 챙겨온 오늘 자 신문을 들고 대충 근처 화단에 앉아서 촥 펼쳤다.
1877년 11월 23일
“1877년?”
엘리나가 입학했던 시기가 1874년이니까 자그마치 3년이 지난 상황.
아이를 3년이나 방치해 버렸다는 현실에 씁쓸함이 퍼지는 걸 애써 무시한 채로 오늘 자 헤드라인에 눈이 갔다.
어찌 보면 3년이 지났다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젤라이트 황제 피살! 암살자는 혁명군?]
“뭐?”
지병으로 인해서 제대로 거동이 힘들어 지금껏 모든 정사와 행사를 젤롬 황자에게 맡겼던 황제가 사망했다?
거기에 범인이 혁명군?
신문에 빨려 들어갈 듯 나는 기사를 정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