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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39화 (139/200)

139화

“라엘 텔리즈먼?”

이름은 기억에 없었지만, 얼굴도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간질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누구인지는 단번에 떠올렸다.

인간이 정령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희귀했고.

지긋지긋한 세계수의 전장이 시작되던 당시, 빛의 정령왕을 처리할 뻔했던 자신의 검을 몸을 던져 막은 존재였으니까.

“그때 죽은 줄 알았는데.”

뫼르아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죽든 말든 별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계는 이미 포기했고 인간 한둘 죽는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자신은 격이 낮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분위기가 묘했다.

주력이라 볼 수 있는 정령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 전쟁 중인 것도 잊은 듯 그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마나량.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끝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걸까?

마나의 신으로 마나 그 자체인 우레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뫼르아네는 슬쩍 팔렘을 바라봤다.

팔렘 역시 저 남자에 대한 흥미가 솟았는지 창을 꼬나 쥐며 콧바람을 뿜어 대고 있었다.

정령들만 아니라면 바로 달려들 기세.

‘이놈을 이용해 봐야겠군.’

저 인간이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변수 덩어리인지 아니면 그래 봤자 고작 인간인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 * *

“라엘!”

“쿠억!”

격하게 반겨 주는 정령들에게 떠밀려서 넘어질 뻔했지만, 테토가 뒤에서 받쳐 주었기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정말, 돌아왔구나.”

처음으로 보는 라푼젤의 눈물이 가슴팍을 적신다. 미안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다음은 자기 차례라며 뒤에서 순번을 정한다.

“지금 전쟁 중 아니냐?”

“아쉽구나.”

“포옹 정도는 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프레이와 노르먼의 말에 팍 하고 인상을 쓰니 녀석들은 알았다면서 돌아간다.

“내가 라엘을 지킬 테니 너는 전장으로 가렴.”

“뭐래. 팔렘이 요새 너한테 푹 빠졌는데 네가 가.”

“아니, 너희는 너무 감정적이다. 내가 함께하지.”

“무슨 소리야? 가장 강한 정령이 있어야지!”

라푼젤과 운디네가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테토와 플레임도 한마디씩 거들면서 끼어든다.

이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꽤나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는 건 알겠지만.

‘이 녀석들 외모가 바뀐 게 아니라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를 모르겠네.’

원래부터 셀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정령들이었기에 고작 몇 년 지났다고 외모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내 머리카락이 자란 걸 보고 대강 시간을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인간계는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야?’

깨어나고 이해했지만 아마 나를 깨운 건 에레오나에게 준 마나 신호.

그때는 레온이 부른 거로 돌아가서 잊고 있었지만

“저기! 재회는 좋지만 좀 도와주세요!”

울먹이는 살로메의 목소리에 내 정령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가기는 가야 하는데 딱히 가고 싶지는 않은 묘한 상황.

“에휴, 지키긴 뭘 지켜.”

결국 내가 앞으로 나섰지만.

“내가 전장에 참여하면 너희도 어차피 내 옆에 있는 거니까 상관없지?”

“위험하단다!”

라푼젤이 다급하게 외치지만 작게 웃어 준다.

거기서 무언가 눈치챘는지 라푼젤의 눈동자가 커졌고 테토가 답을 말했다.

“설마, 방금 별자리 신들의 자폭을 막아 낸 게?”

“맞아, 세계수가 좋긴 하더라.”

태초의 정령들이 왜 거기서 나오기 싫어했는지 알겠다.

몸을 새로 갈아 끼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가지고 있던 부상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게 몸에 축적되어 있던 부담과 내상은 물론이고.

화르륵.

마나까지.

마나의 불꽃들이 손 위에서 날뛰며 놀고 있었다.

대양이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는 마나들이 어서 빨리 나가서 날뛰고 싶다면서 기승을 부려 댄다.

“다들 조심해.”

순식간에 전신을 마나가 채워 온다.

몸에서 푸른빛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마인화가 되니 정말로 넘칠 것 같은 마나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전쟁과 투쟁의 신 팔렘! 인간, 네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저 녀석!”

때마침 창을 들고 달려드는 팔렘.

한 번의 도약으로 내 앞까지 당도한 녀석이 곧바로 창을 휘두르려 했고 다른 정령들이 앞을 막아 섰지만.

쾅!

녀석의 창은 푸른빛의 보호막에 막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크헉!”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쉬기 괴롭다는 듯 고통스러워하며 가슴팍을 쥐고 소리친다.

“무슨! 무슨 짓을!”

정령들 또한 놀란 눈으로 팔렘과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고.

웃으며 팔렘을 내려다본다.

“그냥 단순히 마나로 찍어 누른 것뿐이야.”

“무, 뭐라?”

“이렇게 무식하게라도 쓰지 않으면 진짜 폭발할 것 같아서 말이야.”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쓰러지기 전의 내 체감으로는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방금까지 마나를 다루기만 해도 머리가 부서질 것만 같은 두통이 마구잡이로 덮쳐 왔는데.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모든 게 완치된 건 물론이고 힘이 과할 정도로 넘쳐흐른다.

솔직히, 조금 흥분한 것도 있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마나를 쓰는 건 효율은 영 꽝이었지만, 그래도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물.

눈동자만 굴리는 전쟁과 투쟁의 신.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어 녀석에게 내리쳤고.

놈은 그대로 숨통이 끊어졌다.

“그래, 신이라는 것들은 이렇게 죽는단 말이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기분.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은데, 얼른 끝내자.”

머리 위에 떠오르는 셀 수 없이 많은 마력탄.

그와 동시에 바닥에 그려지는 3개의 마법진.

“이게…… 인간의 힘이라고?”

노르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고, 서로를 향해 칼과 창을 휘두르던 정령과 신들 역시 하나같이 시선이 몰렸다.

“알아서 휩쓸리지 않게 조심해라.”

일순, 마력탄이 신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마법진 하나가 빛을 내었고 푸른빛의 손들이 마치 꽃처럼 땅에서 피어오르며 신들을 낚아챘다.

“끄아악!”

“젠장! 젠장!”

방패를 들어 봐도 마력탄의 숫자가 워낙 많기도 했으며, 밑에서 올라온 손들이 방어나 도망치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고.

반쯤 사라진 신들과 그 사이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푸른 피부가 특이한 신.

가장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는 녀석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군, 후퇴!”

왜인지 그렇게 외치면서도 녀석의 눈동자에는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걸 느꼈기에 나는 일부러 정령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걸어나갔고.

“의도를 읽었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꽤나 당돌하구나.”

기다렸다는 듯 검을 꼬나 쥐고는 앞으로 뛰쳐나오는 녀석.

다른 신들은 후퇴시키고 자신만큼은 나와 동귀어진이라도 할 생각인 듯했는데, 기세만큼은 용맹했다.

맞부딪치는 녀석의 보검과 나의 마력검.

신의 보검에도 마력검은 흔들림 없이 일정한 모습을 띄우고 있었다.

‘게다가 마인화 상태임에도 움직임에 무리가 없다.’

예전에는 마인화를 했을 때 격하게 움직일 수 없었는데 지금은 큰 상관이 없었다.

“내 이름은 신뢰와 믿음의 신 뫼르아네. 네놈, 정녕 인간이 맞는가 싶은 힘을 가지고 있구나.”

“너희는 생각보다 낮은 곳에 있더라.”

도발은 문구도 중요하지만 누가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극명하다.

인간을 벌레처럼 여기는 신이다 보니 내 도발에 꽤나 잘 먹혀들었던 것 같다.

더욱 검을 거칠게 휘두르는 뫼르아네.

확실히 검술 면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지만, 어차피 검으로 이길 생각은 없었다.

두 번째 마법진이 빛을 발했고.

“열파(熱波).”

강렬한 열기가 모이며 그대로 쏟아져 나간다.

“……!”

뫼르아네는 양손에 검을 쥐고는 열파를 막아 내려 자신의 권능을 끌어모았지만.

“네놈! 네노오오옴!”

“신이라 그런가. 대군 마법도 혼자서 막아 내고 대단하네.”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대침공 당시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하는 크라켄조차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던 마법인데.

하지만 결국 열기를 이기지 못한 뫼르아네는 열파에 휩쓸려 버렸고, 그 뒤에 있던 도망치고 있던 신들에게까지 닿았다.

여기서.

세 번째 마법진이 빛을 뿜었다.

“이, 이게 뭐야.”

“얼른 달려! 앞에서 왜 멈춘 거야!”

혼란에 빠진 신들의 목소리.

뒤에서 날아드는 열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앞을 막고 있는 신들에게 외치지만.

“마, 막혔어!”

“뭔가가 앞을 막고 있어!”

내가 펼친 보호 마법에 갇힌 신들은 결국 뒤에 있는 신들에게 밟히거니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신이라서 그런지 저렇게 된다고 죽지는 않는 것 같지만.

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죽이러 왔으면, 죽을 각오도 했다는 뜻이겠지.”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

이 안에 발을 들이민 모든 신들은 오늘 죽을 거다.

“네…… 놈…….”

“열파를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안 죽었어?”

갑옷이 녹아내려 사라진 뫼르아네는 보검을 땅에 짚고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이미 한계에 가까워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는 방금처럼 투지가 아닌 절망과 공포에 가깝게 물들어 있었다.

“변수, 따위가 아니었나.”

스스로에게 자조하는 뫼르아네.

수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신은 자신의 최후가 다가왔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재앙이다…… 네놈은, 이 전쟁을 휩쓸.”

“익숙한 호칭이야.”

원래부터 일 대 다수는 특기 중의 특기.

그것도 대군 마법은 200년 전부터 이미 주력 분야였다.

“설마, 인간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은.”

“너희는 기본적으로 우리를 깔보는 경향이 있어.”

결국 힘이 다했는지 풀썩 쓰러진 녀석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이렇게 보면 우리랑 하등 다를 것도 없으면서.”

“…….”

“고작 힘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위아래를 나눠 놓은 거라면.”

슬며시 시선을 돌려 살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신들을 바라봤다.

“이제, 그 낡은 관계성이 뒤집힐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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