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38화 (138/200)

138화

숲속 깊은 곳까지 몰렸던 에레오나는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루이나의 사과와 함께 문이 닫히며 바깥에서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력은 우위에 있었다.

지금의 에레오나라면 세 사람이 동시에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동료들에게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한번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동료들을 버리거나 배신하는 행위는 그녀에겐 있을 수 없었으니까.

잠긴 문을 빤히 바라보던 에레오나는 슬쩍 몸을 틀어 바깥 풍경이 보이는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답답함을 느끼지 말라는 듯 창문은 꽤나 넓었지만, 그사이에는 쇠창살이 걸려 있었다.

검이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검도 전부 빼앗긴 상황.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혁명군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모이며 이제 드디어 제국으로부터 분명한 독립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혁명군은 날이 갈수록 강대해져만 가고 있었지만, 혁명군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웠다.

“후으.”

결국 답은 나오지 않는다.

편하게 지내라고 방은 꽤나 잘 준비해 줬기에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는다.

품속에 있는 뽀얀 구슬 하나.

어느 상황에서든 3년간 계속 가지고 있었던 물건.

‘긴급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이거 줄게. 터트리면 나한테 신호가 올 거야.’

‘나도 줘.’

예전 라엘 텔리즈먼이 정령계에 가기 전, 레온과 자신에게 주고 갔던 마나의 구체였다.

레온은 터트려서 라엘을 불러들였지만, 자신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일종의 추억이자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제라도 그가 다시 돌아와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약하긴.”

스스로를 자책하는 에레오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한 남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했었다. 그가 지금 어떠한 이유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네게 의지하지 않겠어.”

팡! 하고 구체는 사라지며 그 흔적은 바람에 실려 자연스레 날아갔다.

* * *

“…….”

뭐지?

죽지 않았나?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는 백색 풍경.

천국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황량했으며 지옥이라고 보기에는 또 나름의 따스함이 있었다.

“음? 죽은 것 같긴 한데.”

슬쩍 몸을 움직여 본다.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며 이리저리 달려도 본다.

마교단장들과의 전투 등으로 심각하게 손상된 내 몸과는 전혀 다른 느낌.

확실히 많이 다쳤었구나 하고 절실히 실감했지만, 또 구속구가 없어진 것만 같아 막 달리고 싶어졌다.

“그대여.”

“뭐야.”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나를 부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여긴 정말 나밖에 없었으니까.

“정말로 그대가 깨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제 기운을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릴 줄은.”

멋대로 놀라는 것 같지만 나는 뒷머리를 긁적인다.

“방금 외부의 마나가 저한테 다시 들어와서 그 탓인 것 같은데요?”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명확하진 않았지만, 하여튼 그것 덕분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분명했다.

“그래서 여긴 어디입니까? 분명 파란색 뭔가한테 칼에 맞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기억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하고 내가 대화하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도 대충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안은 원래 이렇습니까?”

“여긴 나의 심상 세계입니다. 의식이 없는 그대를 잠시 이곳으로 데려왔죠.”

“잠시면 어느 정도입니까?”

“내게 시간이란 무의미합니다.”

모른다는 말을 있어 보이게 하긴.

“심상 세계이기에 몸이 이렇게 편한 거였군요.”

“그건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세계수.

그것보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벌러덩 누워버린다.

세계수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대를 받음으로써 나의 힘을 그대도 받아들였습니다. 오래된 친우의 부탁이었죠.”

“오래된 친우요?”

“그건 밝히지 못하겠군요.”

나한테 말을 하지 못하겠다는 건 정령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거슬리는 부분이었지만 세계수는 일절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의 생명력으로 당신을 치유해 두긴 했지만.”

“했지만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세계수는 말을 이어 갔다.

“그대의 힘은 인간이 홀로 짊어지기엔 과한 것입니다. 마나의 신 우레아가 그대와 함께한 적이 있었죠?”

“예, 그의 기적 덕분에 악신을 쓰러트렸죠.”

한숨을 내쉰다.

“그대가 마나를 쓰면 두통을 일으키는 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당시 본인에겐 넘치는 마나를 마구잡이로 난발했던 탓에 마나량이 과격하게 커졌어요.”

고무를 쭉쭉 당겨서 늘렸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원래였다면 찢어지기 마련입니다. 당신이라는 인간이 부서지는 게 당연하건만.”

“부서지지 않았고 버텨 냈고, 결과적으로 두통은 일종의 성장통이었다는 얘기군요.”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뭐야, 그럼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마나를 쓸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흥분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신은 일종의 기적을 경험했지요?”

“아, 그것도 악신과 싸우던 때입니다.”

그것보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다 알고 있는 거지.

내 기억이라도 읽은 건가 싶었다.

“그것 역시 인간의 틀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신들조차 해내지 못하는 인간만의 기적이었죠.”

“…….”

왜일까. 보이진 않지만 세계수의 손이 내 머리에 얹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따스하지만 걱정 어린 손길.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대여, 이제 그만 보내 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대가 눈을 떠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쉽게 보내 주셔도 되는 겁니까?”

나와 하나가 되어라! 같은 거라도 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세계수는 재밌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약속이었으니까요.”

* * *

“세계수 덕분에 영양실조는 걸리지 않겠어.”

세계수의 옆에 기대어 누워있는 자신의 계약자를 보며 운디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선배들이 세계수에서 잠들면 아예 의식이 사라진다더라. 자신이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로 전부 잊고.”

뺨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워 주는 운디네.

“너한테는 이런 결말도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떠올려 봐,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굳기 다문 입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정령계에서는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체감으로는 여태 어떠한 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처음 했을 때 우리끼리도 싸우고 다퉜지만 말이야.”

사실 이걸 처음 말한 건 테토였다.

라엘의 죽음이 이것이라면 그는 결국 안식을 취하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운디네를 포함한 라푼젤, 플레임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외쳤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만 다시 웃는 걸 봤으면 좋겠다.”

싱긋 웃으며 운디네가 천천히 라엘의 옆에 누웠다. 혹시 이렇게 하면 세계수가 자신도 데려가 버리진 않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울컥하고 순간 눈물이 솟아올랐다.

이 남자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져왔 는지 알고 있고 고통을 등반해 왔으며 괴로워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최후를 마음 한편에서는 인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남아 있는 우리는?”

계약자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세계수를 둘러싸고 정령들을 포위하고 있는 신들과 싸우며 그대를 지키는 우리는?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에서 지쳐 버린 우리는?

“차라리, 나도…….”

눈물을 감추려 운디네는 라엘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나도 데려가 줘.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콰앙 하고 다시금 폭발음이 들려왔다.

다시 한번 시작된 신들의 침공.

이미 정령계는 전부 신들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이곳 세계수만이 정령들이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였다.

하루에 몇 번이나 벌어지는 전투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래도 운디네는 다시 일어나 싸우러 가야 했다.

툭 하고.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온 따듯하면서도 익숙한 손만 아니었다면.

“미안해.”

너무나 그리웠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 *

“운디네는 어디 있니?”

조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플레임은 불덩이를 던져 대며 외쳤다.

“라엘한테!”

“……반칙이구나.”

전투가 시작되었는데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서 농땡이를 치고 있나 싶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 역시 그런 식으로 늦었던 적이 몇 번인가 있었으니까.

“크하하! 다시 한번 붙어 보자 라푼젤!”

“집착하긴.”

몇 번이나 겨루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긋지긋한 신 팔렘이 다시금 선봉장으로 나섰다.

그는 세계수를 두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전투가 참을 수 없이 즐거운 듯,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얼굴이 밝아졌다.

물론, 신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며 침공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는 건 신들이 늘 패배했다는 의미.

허나, 정령들 입장에서도 승리는 아니었다.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꼼짝없이 갇혀서 이곳을 수성하는 것만이 정령들이 할 수 있는 최대였다.

“저 녀석은 최근 너한테 푹 빠졌군.”

“한동안 네가 맡아 줬잖니.”

“네가 무참히 날려 버린 게 이유겠지.”

“마조히스트 자식.”

한동안 테토한테 꽂혔던 녀석.

라푼젤이 시끄러워서 한 번 날려 버린 이후로 완전히 라푼젤과의 전투에 맛이 들려 버렸다.

“죽이지도 못하고.”

몇 번인가 팔렘을 죽이려 했었지만, 놈은 그때마다 끈덕지게 살아나가더니 더 강력해져서 돌아온다.

게다가 전쟁과 투쟁의 신이라는 이름답게 싸움 자체를 즐기다 보니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없다.

녀석에게 이제 이 전쟁은 놀이터에 가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아닐까?

“얼른 불러오거라, 힘들구나.”

“운디네가 있어야 적의 발을 묶기 수월하긴 하지.”

빛의 정령왕 프레이와 어둠의 정령왕 노르먼 역시 익숙하게 전장에 참여했고 태초의 정령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정령들은 소모되어 가고 적들은 계속해서 몰려온다.

이 전쟁도 점점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아마, 결과는 패배겠지.

알고 있지만 정령들은 계속 싸워 나갔다.

그게 정령의 긍지였으니까.

“정령왕, 오늘로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이다.”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신뢰와 믿음의 신 뫼르아네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순간적으로 재앙의 정령들의 눈이 뫼르아네에게로 쏠린다.

자신의 계약자를 저렇게 만든 주범.

그렇기에 뫼르아네가 전장에 나오는 순간 세 정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이게 뫼르아네가 점점 전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였다.

“웬일로 얼굴을 내밀었느냐, 저번처럼 매 맞는 개처럼 쫓기고 싶으냐?”

“이상 성욕이라도 발현된 건가?”

정령왕들의 도발에도 뫼르아네는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세계수를 향해서 떨어지는 수많은 유성우들.

아니, 그건 유성우가 아니었다.

“신?”

당황한 프레이의 말에 뫼르아네는 껄껄 웃어 댔다.

“소모적인 전쟁을 단번에 종식시킨다. 별자리의 신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만들어낸 최후의 일격이자 전쟁의 끝을 알리는 별이다.”

엄청난 숫자의 신들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별이 떨어진다는 분위기의 장관이었지만 정령들에겐 멸망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다수의 정령들이 막아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최후인가 싶었으나.

하늘에서 터져 가는 별자리의 신들.

폭죽이라도 터지는 듯한 연출에 정령이고 신이고 할 것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으나.

주인공은 그들의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허리까지 내려와 버린 장발.

머리카락이 눈가를 가려서인지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남자.

옆에 있는 운디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의 힘을 느낀 뫼르아네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우레아?”

마나의 신 우레아와 필적하는 마력과 존재감.

“그런 변태랑 나를 똑같이 본다고?”

하지만 남자는 짜증을 내며 답했다.

그리곤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라엘, 라엘 텔리즈먼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