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이틀이라.”
뒷머리를 긁적이며 벌러덩 드러눕는다.
설마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엘리나는 괜찮으려나.”
학장님도 사라졌고 나도 이제 교수가 아니라서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되었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학교는 다닐 수 있을까?
혹시 나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쫓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도중 드디어 기다리던 정령들이 등장했다.
“어때?”
다행인지 정령들의 표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직 11살 아이니까 일단은 집에서 대기 중이야. 처분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대.
“그래.”
씁쓸했다.
내가 이렇게 잡혀 들어가면 내 제자라고 공인된 엘리나는 당연히 학교에서 퇴학 처분이 내려올 게 분명했다.
그 아이는 아직 배울 게 많은데.
-너는 어떻게 할 거니?
“글쎄, 조용히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것 같아.”
라푼젤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법을 쓸 수도 없다.
정령들의 힘을 빌리면 당장은 도망칠 수 있겠지만, 아마 엄중하게 지키고 있는 마도사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거다.
특히나 대마도사 알로이스는 조금만 이상한 점이 눈에 띄면 바로 움직일 테니까.
“끄응.”
-나 좋은 생각이 있어.
별 믿음은 안 가는 운디네가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나 다시금 밖에서 들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령들은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여기 있었구나!”
“페르난도.”
다섯 번째 마도사인 페르난도 레빌로스.
내 정체를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알아챈 남자.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설마 스승님께서 이렇게 빨리 도착하실 줄은…….”
“네가 왜 미안하냐.”
“어?”
헛웃음이 지어진다.
이 녀석 자신의 위치를 까먹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국가 반역자야. 라디오 타워를 테러한 것도 내가 맞아. 퍼지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도 맞고.”
“…….”
“너는 마도사잖아. 네가 나한테 미안할 일은 없어.”
하지만 말을 해 주면 해 줄수록 녀석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진다. 침묵 속에서 할 말을 찾고 있는 듯한 페르난도.
“라엘 텔리즈먼.”
“응?”
애써 내뱉은 한마디는 내 이름.
굳이 웃으며 대답해주자 녀석은 무언가 교차되는 감정을 느끼더니 철창을 잡고는 물었다.
“정말로 너는 국가 반역자야?”
“…….”
“역사 속의 동족을 잔학무도하게 죽였던 학살자가, 정말로 너라고?”
“어떤 것 같아?”
페르난도는 굳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피식하고 웃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봐주니까 고맙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결국, 나는 제국이 멸망하고 역사 속에 묻힐 정도의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이 오명을 벗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나의 무죄를 알아준다는 건.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이틀 뒤에 젤롬 황자가 온다고 들었어. 제라니 황자도 같이 오는 건가?”
“응, 라디오 타워는 황가를 모욕하는 행동이었으니까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황족들이 오고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다.
“페르난도, 지금부터 잘 들어.”
“응?”
“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 잘 기억하고 제라니 황자한테 전해. 다른 누구도 들어선 안 돼.”
비장한 분위기 탓인지 페르난도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알았다 답했다.
그리고 약 30분.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나와 30분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페르난도.
하지만 입만 다물고 있을 뿐,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페르난도의 표정은 다채롭게 변해 갔다.
“이걸 나한테 믿으라고?”
“그건 네 마음이야. 하지만 제라니 황자한테는 꼭 말해 줘.”
“어째서 황자님이야?”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페르난도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멍한 얼굴.
“그가 아르니티 제국의 유일한 희망이니까.”
“…….”
퍼뜩 정신을 차린 페르난도는 무언가 울컥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다.
“알겠어.”
녀석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호하게 답해 준다. 조금 안심이 되어 슬쩍 웃어 주니 페르난도 역시 준비해 왔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너랑 학장은 사고로 행방불명 처리된 거로 해 뒀어.”
“뭐?”
갑작스러운 뜬금없는 주제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처형일이 갑자기 정해져서 아직 언론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네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어. 요번에 도심에서 난리가 났으니까 그거에 휘말려서 행방불명됐다고 학교 사람들한테는 말해 뒀어.”
“어째서?”
어차피 금방 들킬 일이다.
제도에서 처형을 집행하고 싶겠지만 나를 두려워하는 대마도사 때문에 라마닉스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학교의 교수들은 당연히 보러올 것이고 내 얼굴을 보면 정체를 알게 된다.
“네 제자가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
“라엘 텔리즈먼의 제자 이름이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니.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어.”
어이없다고 중얼거리는 페르난도.
아마 녀석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 아이도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걸.
하지만 입을 다물어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나는 내가 책임지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게 해 줄게. 그 아이의 실력이면 교수들도 놓치고 싶지는 않을 거야.”
맞는 말이다.
엘리나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학교 입장에서도 꼭 데리고 있고 싶겠지.
잘하면 다음은 힘들어도 다음 세대의 대마도사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세인트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내가 그 아이의 스승인 걸 알고 있어. 아무리 너라도 반역자의 제자를 감싸는 건 힘들 거야.”
“사람들은 아직 네가 반역자인 걸 모른다니까.”
“…….”
“탈옥할 거잖아?”
“허.”
그러니까.
페르난도는 내가 무조건 탈옥하고 도망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라마닉스의 제일 깊은 감옥에서 마법사에겐 쥐약인 마나 차단도 되어 있는 이곳에서.
“안 돼? 도와줄까?”
“너 정말 미쳤구나.”
당연하다는 듯 묻는 녀석의 얼굴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필요하면 말할게.”
“그래, 내일도 이 시간에 올게.”
몸을 돌리며 돌아가는 페르난도.
“엘리나를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못 미덥던 녀석인데 왜인지 저 대답은 썩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엘리나에 관한 건 페르난도에게 맡겼다.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된다.
“그럼 탈옥을 어떻게 한다.”
페르난도의 도움을 받으면서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자니 옆에서 운디네가 툭 하고 내뱉었다.
-정령계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어?”
-아니, 마법만 막히는 거니까. 정령계로는 갈 수 있잖아. 저번에 정령왕이 너한테 통행권 줬을걸?
-맞구나. 흐음, 오랜만에 머리를 썼구나, 운디네.
-정말 드문 일이군.
-오늘 날짜가 언제지? 이런 날은 기억해둬야 해.
-이 쉐리들이!
운디네가 정령들에게 1:3 맞짱을 신청하며 투덕거리기 시작했지만 충격을 먹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은연중에 정령계를 별로 안 좋아해서 까먹고 있던 건가.
저 뇌가 물로 되어 있는 정령보다 사고가 느렸다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정해졌으면 바로 출발하는 게 좋겠네.”
페르난도는 내일 온다고 했지만, 탈옥에 도움이 될 게 아니면 이미 해 줄 말은 끝났다.
“남은 건 엘리나인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정령들을 불러 모았다.
* * *
“하아.”
한숨은 내뱉을수록 더욱 짙어지며 엘리나의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택에 감금당한 지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1년은 기다린 기분.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느린가 하고 중얼거릴 정도로 엘리나는 생각이 산만해진 상태.
심지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빼먹지 않는 마법 수련도 오늘은 하지 못했다.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으니까.
클로이 노브라는 마도사가 와서 말해 줬다.
‘네 스승은 이틀 후에 처형되기로 예정됐어, 미안하구나.’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엘리나는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든 스승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잘 알겠다.
라디오 타워를 테러했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클로이 노브가 문 밖에서 수많은 기사들과 함께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감금해 두었다.
“스승님.”
부름에 답하기라도 하듯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온다.
번뜩하고 엘리나가 고개를 들자 그곳에 있는 건 네 정령.
“얘들아!”
환하게 웃으며 엘리나가 반겨 주자 그들도 엘리나를 안아 주며 나름의 애정 표현을 해 주었다.
“스승님은? 지금 어때?”
-잘 지내. 그리고 걱정하지 마.
-금방 도망칠 거란다.
“후우…….”
다행이다.
역시 스승님.
그렇게 쉽게 죽일 리가 없지.
생각해 보면 우중충한 동굴에서도 5년을 버틴 사람이다. 거의 바퀴벌레 급 생존력이 아닌가.
조금 마음이 놓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엘리나.
하지만 입가에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앞에 있는 기사들이랑 마도사한테 도망치는 게 조금 까다롭지만 어떻게든 해 볼게. 어디로 가면 될까?”
엘리나의 물음에 정령들은 안색이 대번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중 라푼젤이 엘리나의 귀로 다가가 손을 대었다.
-라엘의 전언이란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스승의 목소리.
‘내 제자 엘리나. 정령들에게 들었겠지만 이 스승은 도망쳐서 잠시 몸을 숨겨야 할 것 같다.’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바람에 담겨 있던 거라 일종의 녹음이나 다름없었다.
‘너도 함께 데려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조금 어려울 것 같아. 그러니 너는 지금까지처럼 학교를 계속 다녀 주렴.’
‘마도사 페르난도가 너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거다. 무슨 일이 있거든 그에게 의지하렴.’
“스승님…….”
싫었다.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닿지 못할 걸 알고 있기에 입술을 꾸욱 물었다.
‘금방 다시 돌아오마. 그때 네가 얼마나 성장했을지 자랑스럽게 나한테 보여 주길 바란다.’
“…….”
‘못난 스승이라 미안하다.’
-이게 끝이란다.
슬쩍 라푼젤이 뒤로 물러나자 엘리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눈에 맺힌 눈물을 숨기듯 닦아 버리고 몸을 돌린다.
그곳에는 이제는 사라진 크리스티나가 자신에게 준 황금빛 보석이 박혀 있는 지팡이 ‘제국의 태양’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못난 제자를 잘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고 크리스티나는 떠났다.
“정말, 못난 스승이자 못난 제자셨네요.”
라엘 텔리즈먼을 향해 투정을 부린 후, 제국의 태양을 손에 쥐었다.
“너무 늦으면 스승님을 뛰어넘는 마법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금방 오라고 전해 줘.”
엘리나의 당찬 외침에 정령들은 감사가 담긴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엘리나를 안아 주었다.
-금방 돌아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렴. 생각보다 일찍 와서 깜짝 놀랄 수도 있단다.
-괜히 이상한 놈들한테 물들지 마라.
-뭐, 다시 만나자.
“응, 얘들아.”
그걸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진 정령들.
방금까지 꽉 차 보이던 집이 이제는 허무할 정도로 텅 비어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뺨을 짝 치며 고개를 저었다.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지.”
엘리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시작한 마법 공부.
집중이 안 된다고 포기했었지만 다시 소녀는 공부를 시작했다.
‘엄청났어.’
마나를 개방한 스승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엘리나는 각오를 다잡았다.
정말 너무나 대단해서 같은 인간이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기에 죽어 가던 크리스티나도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겠지.
“나도, 그렇게 될 거야.”
그래서 이번처럼 무능하게 있지 않을 거다.
엄청나던 스승보다 더 엄청나져서 스승을 지킬거다.
그리 다짐하며 엘리나는 열심히 펜을 움직였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라엘 텔리즈먼이 크리스티나 엘리나에게 돌아오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