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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31화 (131/200)

131화

싸늘하게 쓰러진 로그니다츠의 모습을 보며 숨을 고른다.

녀석의 앞에선 허세를 떨어 보았지만 솔직히 마지막 맹세의 선포는 꽤나 묵직했다.

“팔이 저리네.”

지팡이를 들고 있는 팔이 띵하고 저려서 손을 흔들며 풀어 준 후, 학장님에게로 향한다.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괜찮네.”

“아마 앞으로는, 학장직을 내려놓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도사들에게 폴리모프라는 마법으로 속인 것 같지만 로건 웰스는 이미 눈치챘다.

폴리모프 따위의 눈속임이 아니라고.

학장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용이었다고.

“괜찮네, 그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야.”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어째서 저 때문에…….”

답답함에 묻지만 거대한 용이 왜인지 웃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를 위함이 아니네.”

“예?”

“그거 아는가? 용은 생각보다 훨씬 자존심이 높고 교만한 자들이네. 신과 정령들의 싸움에 참전한 이유도 신들의 오만함이 거슬렸던 탓이지.”

그리고 장렬히 패배했다.

씁쓸한 이야기였지만 오만했던 건 용들이라고 결과가 말해 주었다.

“아무리 전투를 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고작 인간 하나에게 졌다는 게 분해서 찾아왔다네.”

“…….”

알고 있다.

용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가 거짓말을 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나도 이제 은퇴를 해야 할 시간인 것 같긴 하군.”

“가실 곳은 있습니까?”

“팔미산에 나의 동족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네. 아마 그쪽으로 가게 되겠지.”

마을이라고 해 봐야 인구가 20명이 채 안 되겠지만.

“가서 돕게. 흑두사를 섬기는 그 여자는 생각보다 위험하다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무얼, 별거 아니었네.”

그리 말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 황룡.

조금 쉰 후, 모습을 바꾸고 자취를 감추겠지.

세인트 학교에는 일대의 소란이 일겠지만 그렇다고 학장님이 용이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을 거다.

그냥 행방불명 같은 거로 처리되겠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니 세크메트에게 고전하고 있는 로건 웰스와 엘리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황을 대충 확인한 나는 불덩이를 만들어 그대로 세크메트에게 쏘아붙였다.

“네놈은!”

지상에서 싸우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혀 들어온다. 세크메트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더니 로그니다츠의 권능이 사라진 걸 깨닫고는 곧바로 등을 돌린다.

“젠장, 뱀 새끼들!”

로건이 앞으로 달려들었지만, 뱀들은 주인을 지키겠다며 더욱 거세게 치고 나왔다.

미안하지만 도망칠 순 없다.

포장된 도로 위로 솟아올라오는 철벽이 세크메트를 그대로 가둔다.

녀석에게 그대로 날아가 달려들면서 머리를 낚아채고 바닥에 처박았다.

“끄악!”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손과 발이 땅에 파묻히듯 속박당한다.

“하남 마을에서 꽤나 재미 좀 보셨지?”

“이거 놔!”

버둥거리지만 이미 속박당하여 움직이지 못한다. 씨익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미 죽은 자신의 가족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면서 다시 움직이는 걸 보던 노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끄으윽!”

구속이 조금씩 강해지며 세크메트의 양발이 점점 빨갛게 변한다.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었겠지.”

“끄아아아악!”

파각 하는 소리와 함께 세크메트의 양발이 잘려나간다. 고문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 감정적으로 변해서 힘이 너무 들어갔다.

“개새끼가아아아!”

세크메트의 외침과 동시에 땅에 뱀의 그림자가 진다.

그림자는 무척이나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코앞까지 다가온 뱀의 그림자가 그대로 얼굴을 들이밀며 나타났으나.

나는 세크메트의 위에 앉아 턱을 괴며 중얼거린다.

“정말 웃기네.”

마찬가지로 땅에서 마나의 창이 수십 솟아오르며 거대한 뱀의 머리에 박혀 들어간다.

“정말 강한 권능이야. 로그니다츠보다 훨씬 강해. 그런데 너는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끄윽.”

속이 매스꺼운지 연신 헛구역질을 해 대는 세크메트.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마교단장들은 200년을 살아와 반신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야. 그런데 기껏해야 30년 정도 살았을 거로 보이는 네가 더 강한 권능을 다룬다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

“그냥, 그냥 죽여…….”

“그럴 거야. 생각보다 범인을 일찍 찾아버렸으니까.”

무슨 소리냐는 듯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세크메트. 무언가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 자체는 훌륭했지만.

미안해라.

이미 필요한 건 전부 모였단다.

“거짓과 기만의 신 흑두사. 처음 들어보는 신이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어.”

어째서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도.

“그놈이 바로 태양신 라헬의 이름을 훔쳤구나?”

“……!”

이제는 단순히 이름 없는 빛의 신이 되어 버린 존재.

현 제국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건 태양신이었다.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태양신의 신자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었다.

라헬은 태양왕국 라스가 섬기던 신이다.

그리고 라스는 제국에게 패배하여 멸망했다.

그런데 어째서 제국은 자신이 멸망시킨 나라의 국교가 제국민이 가장 많이 섬기는 신이 되게 두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바뀐 것이다.

태양왕국 라스가 멸망하면서 빛과 태양의 신 라헬의 이름을 흑두사가 빼앗아 그 자리에 대신 앉아 있는 것.

한마디로 지금 대륙의 태양신을 섬기는 수많은 자들은.

실은, 거짓과 기만의 신 흑두사를 섬기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며.

한없이 어둡던 장막에 숨어 있던 대륙에서 가장 큰 거짓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어, 어떻게…….”

“너희는 늘 엄청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더라.”

그리고 그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녀석의 반응을 보면 정답임이 틀림없으니 이제 마나를 운용하여 세크메트를 죽이려 했으나.

“우욱!”

헛구역질이 나오더니 곧이어 피가 쏟아져 나온다. 코피는 물론이거니와 눈과 귀에서도 주르륵 흐르는 피에 정신이 멍해진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자 이쪽으로 달려오던 일행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부작용!’

약의 부작용.

하지만 저번에는 30분은 버텼었는데 지금은 아직 20분밖에 되지 않았다.

한 번 복용했었다고 효능이 떨어진 건가.

결국 어지러움에 쓰러진 나의 시야에 들어온 건 구속을 풀어내고 거대한 뱀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한 세크메트.

로건이 달려 보지만 뱀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점점 거리가 벌어질 뿐이었다.

일직선으로 깔린 도로만 지나면 바로 라마닉스를 탈출할 수 있다.

그렇게 웃고 있을 세크메트의 앞에는.

거목과도 같은 지팡이를 쥐고 하얀색 바탕에 황금색과 푸른색 자수가 되어 있는 로브를 입고 있는 노인이 서 있었다.

“스승님!”

페르난도의 목소리.

라디오 타워에서 나도 한 번 본 적이 있던 남자.

대마도사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

어떻게 그가 여기 있는 건지에 대해서도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받는 것만으로도 무리가 있었기에 천천히 눈이 감겨들어 갔으나.

마지막에 본 건 대마도사의 마법이 세크메트의 거대한 뱀을 무참히 박살 내는 장면이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추위에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붕대 탓인가 했으나.

철그럭.

쇠사슬 소리에 슬쩍 고개를 틀어 보니 양손과 발이 완전히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쇠사슬뿐만이 아니었다.

습하고, 더러우며, 피비린내가 조금 감돈다.

바닥은 딱딱했으며 방에는 모포와 간이 화장실.

그리고 앞에 있는 벽은 쇠창살.

“이거, 설마…….”

완전히 감옥이지 않은가.

잘 보니 마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마나를 차단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일어났다!

-다행이구나.

-일단은 아파 보이지는 않는구나.

-추운 것 같으니 따듯하게 해 주마.

라푼젤과 풀레임 덕분에 주변 공기가 따듯해지며 이제야 추위가 가신다.

“세크메트는?”

대충 몸을 추스르고 묻자 운디네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체포됐어. 대마도사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파박 하고 쓰러뜨린 다음에 구속해서 감옥에 가뒀어. 여기가 지하 3층이니까 그 여자는 지하 2층에 있을걸?

“음? 보통 지하감옥은 죄수의 죄질이 나쁠수록 더 지하층에 수감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마 페르난도가?

-대마도사다.

테토의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마도사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보더니 라디오 타워를 테러한 마법사라면서 바로 구속하라고 하더라고.

“뭐?”

아니, 어떻게?

당황스러웠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가 맞는데도 이상하게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덜컹 하고 문이 열리며 걸음걸이와 함께 지팡이로 땅을 짚는 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일어났군.”

대마도사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

그가 철창 밖에서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정령들에게 정보를 받지 못한 척해야 했기에 물었으나 그는 역으로 작게 웃으며 답했다.

“알고 있지 않은가.”

“예?”

“라디오 타워를 테러하고 황가를 모욕했다. 그대는 극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죄인이라네.”

“그건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알로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거짓으로 떠볼 생각은 말게. 이미 확신하고 있으니.”

어떻게?

“라디오 타워의 대리석 바닥을 15층에서 1층까지 부수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1~2초 남짓이었네.”

“…….”

“부끄럽지만 그런 기예는 제국의 정점이라는 이름을 짊어진 이 노파도 하지 못한다네.”

아아……

“그리고 라마닉스로 오면서 자네의 마법을 봤네.”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때보다 더 뛰어나졌더군. 솔직히 죄인만 아니었다면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네.”

“고작 마법 실력으로 나를 범인으로 모는 겁니까?”

이런 말을 해 봤자 이미 저쪽에선 확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마도사인 나를 뛰어넘는 범인이었네.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

“내 재량으로 굳이 제도로 이송하지 않고 라마닉스에서 곧바로 처형을 진행할 예정이네. 앞으로 이틀 남았군.”

“뭐?”

그렇게 빨리?

“그대에게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아서 실은 바로 처형하려 했지만, 젤롬 황자님이 직접 와야겠다더군.”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혹시나 싶어서 마나 차단 장치를 설치해 뒀네. 이 안에서는 아무리 그대라도 마법을 다루진 못하겠지.”

어차피 품에 숨겨뒀던 약 케이스도 뺏겼다.

이런 거 아니어도 마법은 못 쓴다.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에 올랐는지 심히 궁금하지만.”

대마도사는 뒷짐을 지고 몸을 튼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겠지.”

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감옥 안은 어둠과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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