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교수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부분 질문하지 마세요. 그것도 이해 못 하면 제 강의 들을 준비가 아직 안 된 겁니다.”
“마나는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없는 거로…….”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시고요.”
강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썩 좋지 않았다.
처음 오는 학생들이 손을 들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있는 것.
중요한 건 그게 영양가 있는 질문도 아니었고 기본적인 부분을 물어보거나 아니면 아예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나를 지적한다.
정말 마나에 대한 기본도 없는 학생들.
‘더러운 수를 쓰긴.’
권능 부문 교수들의 애제자나 연관이 있는 학생들임을 눈치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알아챈 듯 그들을 째려봤지만, 당사자인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기존의 학생들도 짜증을 내고 있다는 점.
계속 발목을 잡듯이 말꼬리를 잡아 대는 학생들 때문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탓에 9, 10학년의 학생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질문을 하는 건 보통 6~8학년들이었는데, 선배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저렇게 꾸준할 수 있는 건 교수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겠지.
뭐, 나랑은 무슨 상관인가.
귀찮긴 하지만 별 신경 안 쓰고 계속 강의를 이어 간다.
“자, 그러면 마나를 더욱 빠르게 보충하기 위해서는 무슨 작업이 필요할까요?”
그려 놓은 사람의 몸 위에 두 가지를 적는다.
“첫 번째로 신체가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
잠시 술렁이지만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두 번째는 외부의 마나를 신체 내부에서 정결하게 순환시키는 겁니다.”
이번엔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교수진은 물론이거니와 수 세기를 살아온 학장조차도 의구심이 드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유이하게.
엘리나와 페르난도만이 진지한 눈으로 필기를 이어 갔다.
이 부분은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듯.
“그러면 해결하는 방법은? 자, 첫 번째는 외부의 마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이건 숙련도의 문제이죠.”
다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건 경험을 해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육체를 강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팔이나 다리를 강화하듯, 외부 마나를 받아들이는 걸 강화한다는 느낌이죠.”
하지만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이자 힌트였다.
“두 번째는 조금 어렵습니다. 일종의 인공장기를 내부에 하나 만드는 겁니다.”
정적.
충격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용해져서 강의하기 편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말을 잇는다.
“외부에서 들어온 마나는 더럽습니다. 저희의 신체는 다행히도 더러운 마나를 순결한 마나로 걸러주는 작업을 할 수 있지만, 많이 느리죠.”
깨끗한 마나를 담는 양은 늘릴 수 있어도 더러운 마나를 변환시키는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내 스승께서 생각하신 방법은 아예 신체에 마나로 된 독특한 장기를 하나 더 만들어 낸다.
물론, 이건 이해하기 쉽게 말해 준 것뿐이고 나중이 되면 그런 거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마나 포션을 만드는 공장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곳은 외부의 마나를 추출하여 각종 과정을 거쳐서 마실 수 있는 포션으로 만들죠?”
그래서 마나 포션은 썩 효율이 좋지 못하다.
비싸긴 더럽게 비싼데 마나가 차오르는 건 쥐꼬리만 하니까.
“그 일부 작업을 할 수 있는 장기를 저희 몸에서 마나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헛소리!”
결국 참지 못한 마벤 교수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란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지만 마벤은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왔다.
“마나를 흡수하는 작업이 숙련도를 늘리면 된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뭐? 인공장기를 신체 내부에 만들어? 잘나신 교수님은 그런 게 가능한가?”
“…….”
예전에는 됐지.
지금은 좀 힘들지만.
“이따위 탁상공론을 늘어대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건가? 학장님의 추천이라도 이건 못 참겠군! 우리 학생들을 무슨 퍼지로 보고 있는 건가?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상관없게?”
“…….”
“학장님! 이놈은 교육자가 아닙니다! 그냥 사기꾼! 혹은 제멋대로 품은 망상에 빠진 몽상가일 뿐입니다!”
권능 쪽 교수들은 당연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심지어는 마도 쪽에서도 대부분의 교수들이 나를 적대적인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만큼 방금 전의 발언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겠지.
“라만 교수, 방금 강의를 증명할 수 있는가?”
학장님조차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 왔다.
200년의 세월이 지나며 나를 향한 믿음이 너무 과했나 싶은 얼굴.
그렇기에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아아, 다행이다.
정말 잘 따라와 줬다.
혹시라도 당신들이 화를 내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내게 증명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어.
다들 꾸욱 참고 있다가 강의가 끝나고 수군거리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였으니까.
“4학년 크리스티나 엘리나 학생.”
“어, 예?”
벌떡 일어난 크리스티나 엘리나를 손짓으로 불러들인다.
“이 학생은 입학 전부터 저의 제자였습니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을 가르쳤죠.”
다시 한번 경악.
학생에겐 일절 관심도 가지지 않던 내게 제자가 있다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게 지금 세인트 학교를 뜨겁게 달군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인트 학교에서 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두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특출난 학생을 더욱 뛰어나게 만들고 싶은 건 교육자로서의 본능이나 다름없으니까.
“방금 그 이론이 탁상공론이 아니라는 걸, 엘리나 학생이 보여 줄 겁니다.”
“스, 스승님.”
동굴에서 살던 와중, 엘리나는 내게 물었었다.
마나의 총량을 어떻게 그렇게 늘릴 수 있냐고.
나는 여러 방법을 설명해 주었지만, 그 끝에 마나의 총량은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마나를 채우는 법이라며 이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줬었다.
당시의 엘리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이걸 가르치는 건 아주 먼 훗날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내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곱씹고, 이해하려 했으며, 실현하려 노력했다.
결국 이 천재는.
내가 동굴에서도 몇 년이나 걸린 걸.
고작 한 달 남짓의 시간으로 해냈다.
“……나중에, 놀래켜 드리려고 했는데.”
입술을 삐죽 내민 엘리나에겐 미안했지만,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더니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고.
강의실에는 학생, 교수 할 것 없이 폭발적인 감정의 변화가 용솟음치고 올라왔다.
그게 경악인지, 놀람인지 혹은 공포인지는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고.
* * *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찌뿌둥한 어깨를 풀어 준다.
강의가 끝나고 수많은 교수들이 내게로 달려들려 했으나, 그것보다 한발 먼저 학장과 그 비서가 나를 낚아챘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수많은 고학년 학생들이 내 제자인 엘리나에게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과, 나를 놓친 교수들이 엘리나에게 다가가던 것.
-아는 척 안 한다면서.
슬쩍 내 어깨에 앉은 운디네가 조용히 속삭여 왔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어.”
괜히 밉보이던 아이가 특별 취급받으면 더욱 꼴 보기 싫어지고 뭐든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엘리나에게 다가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강의가 잡히고 생각이 바뀌었다.
차라리, 아예 격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일 거라고.
1, 2학년들은 감히 넘보지 못할 고학년들이, 그것도 다수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거기에 더불어 마도에 연관된 교수들은 하나같이 엘리나와 잠깐이라도 대화를 해 보고 싶을 거다.
“괴롭히던 아이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야.”
그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아마 이제는 함부로 덤벼들지 못할 거다.
-흐응, 확실히 체니랑 팔렌 도르손 표정이 썩 볼만했어.
-통쾌했지.
운디네와 플레임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엘리나는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었다.
내가 가르치긴 했지만 결국 그 모든 걸 노력하고 이해하고 결국 실현해 낸 건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엘리나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못했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바로 앞에서 학장이 나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등 뒤로 조금 거리를 벌리고 우리를 힐끔힐끔 보는 교수들도.
“잠깐 시간을 내주겠나?”
“요 앞 벤치까지는요.”
“크흠.”
학장실로 가자는 이야기였겠지만 깔끔하게 무시한다.
오늘 초과근무란 말이다.
벤치에 앉아 학장님은 발을 통통 두드렸고, 그러자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는 막이 생성되었다.
우리의 뒤를 따르던 교수들은 마법을 보자 풀 죽은 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방금 설명한 그 이론, 그대의 스승이 만든 건가?”
“그렇죠. 물론, 몇몇 부분을 보완하긴 했습니다만.”
“그래, 그렇군.”
잠시 생각에 잠긴 학장님.
사실 학장님은 용이라서 우리랑은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는지라 방금 이론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이분이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이론을 정말로 세상에 풀어도 괜찮겠나?”
“…….”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그러니까 자네 스승은 대륙의 마도 전체를 뒤흔들 해결책을 내놓고 실현시킨 거네. 하지만 지금 대륙에 그녀의 이름은 악명일 뿐이지.”
나와 내 스승님을 걱정해 주고 계셨다.
“이런 세상에, 정말로 그대들의 과실을 내주어도 괜찮나?”
당연히 싫었다.
이따위 세상에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싶지 않았다. 과실을 나누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스승님의 오명을, 조금이라도 덮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으음.”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이름이 제국을 집어삼키려 했던 악인이 아닌. 세상의 마도를 책임지는,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이제야 이해한 듯 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학장님의 표정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그 한 발자국이었다.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초신성의 등장은 분명 그녀의 이름을 대륙 전체에 퍼지게 만들 것이다.
“크리스티나 엘리나는 참으로 좋은 제자이자 스승을 두었군.”
부럽다는 듯한 학장의 표정.
모든 걸 지우진 못하겠지.
이미 퍼질 대로 퍼져나간 왜곡된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전부 주워 담지 못할 정도로 스며들어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위에,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다른 이야기를 덮는 것뿐.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먼 훗날에는.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이름이, 국가반역자가 아닌.
대륙의 마도를 선도한, 최고의 마법사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