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흐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됐기에 나도 대충 코트를 갈아입는다. 엘리나는 이미 등교를 했는데 최근 들어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운디네에게 듣기는 했지만, 한 번에 4학년으로 올라가는 세인트 학교 최초의 특례 덕분에 많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들에게까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쯧,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네.”
원래 뛰어나면 늘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만, 막상 내 소중한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다.
-그런데 방법은 있어?
-생각보다 인간들의 질투는 복잡하고 질기던데.
오늘은 운디네와 플레임에게 학교 설명을 좀 들을 생각이라 라푼젤과 테토를 엘리나에게 붙여 두었다.
나는 오후 수업이었기에 한산한 전차를 타고 여유롭게 학교로 향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니 금방 도착했다.
다시 학교에서 내부 순환하는 전차를 타서 제3 강의동에서 내렸다.
“와, 뭐 이렇게 넓냐.”
입학식에 한 번 왔을 때도 느꼈지만 200년 전에 다닐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새로 지은 듯 반듯한 건물로 들어가서 내 강의실을 찾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어쨌든.
14시가 되었고 점점 학생들이 들어온다.
학생을 기다리는 교수는 처음 봤는지 아이들은 단상에 서 있는 나를 보곤 화들짝 놀라서 자리로 달려갔는데, 나도 이렇게 서 있고 싶지 않았다.
다른 갈 곳이 없으니까 그냥 여기 있던 것뿐.
-우와, 사람이 엄청 많아.
-그러게. 엘리나가 듣는 수업은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아마 학장님이 소개하기도 했고, 처음 보는 교수니까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는지 궁금해서 찾아온 학생들이 많겠지.”
예상으로는 다음 수업 때면 절반은 빠질 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괜히 학생들이 많아지면 가르치기 귀찮으니까.
아예 안 와도 나쁘지 않다.
내가 오늘 가르칠 건 마법 이론.
아무래도 제도에서 현재 반 마법 정책이 강하다 보니, 마도보다는 권능에 관한 강의가 인기를 이루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학생 수였다.
졸업반인 10학년은 없지만 9학년인 학생들도 몇몇 보였고, 대부분이 아직 시간이 남는 5학년에서 6학년들이었다.
“시간 됐으니 출석 부르겠습니다.”
-엘리나는 정말 안 왔네.
-아쉽군.
두 정령의 말마따나 나도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특례와도 같은 월반으로 강제적으로 여러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으니까.
일종의 신고식 같은 느낌.
강의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이 있으니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자, 그럼 강의 시작합니다. 모르는 거 있어도 물어보지 마세요.”
시큰둥한 내 말에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이는 학생들. 당황해서는 손을 든 학생도 있었다.
“교, 교수님. 질문을 하라는 걸 잘못 말씀하신 거죠?”
뭐래.
“아뇨, 하지 말라고요. 알아서 이해하세요. 그리고 7학년의 발타니 학생, 한 번만 더 내가 발언을 허가하지도 않았는데 입 열면 퇴실 조치합니다.”
“…….”
꿀꺽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적막.
“참고로 자는 사람도 바로 퇴실, 학생끼리 떠드는 행위도 퇴실입니다. 출석 인정 안 하고요.”
200년 전.
가장 인기 있던 강의는 잠을 자도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괜히 편한 교수라고 입소문이 퍼지면 교육을 받기 위함이 아닌 잠깐 쉬러 와 버린다.
학생이 늘어나는 걸 원하지도 않는데 그런 처사를 허용할 리가.
내가 고생하고 있는데 감히 내 앞에서 잠을 처자려고 들어?
‘절대 용서 못 하지.’
-으아, 강압적이야.
-하지만 이렇게 해야 말을 듣는 게 학생이라는 걸 요즘 들어 알 것 같아.
어느샌가 단상에 앉아서 칠판을 올려보고 있는 정령들을 무시하고 분필을 집었다.
“자, 오늘 알려드릴 건 물과 바람 마법을 응용한 일종의 기후 조작입니다.”
그렇게 내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 교수님. 이 부분이 말인데…….”
“조금 더 고민하고 물어보세요.”
“그럼 이건…….”
“그런 쉬운 건 물어보지 말고요.”
강의가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내게 달려들어 이것저것을 물어 왔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하며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쓸데없이 열심히 하긴.
-그래도 알려 달라는데 좀 알려 주지!
-맞는 말이야, 교수면 교수답게 행동해.
복도를 걷고 있자니 정령들이 내 어깨에 앉아서 한마디씩 거든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야, 오늘 내 강의 절반이라도 이해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제자로 들인다.”
-그 정도야?
-확실히 학생들이 어려워하긴 했지.
필기를 때려치운 학생들이 대부분.
무슨 말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하고 잠을 자면 퇴실로 출석 인정이 되지 않아서 졸음과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물론, 중간중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오려 애쓰는 학생들도 보였지만 어차피 필기 속도만 빠른 거지 내용 이해는 제대로 하지도 못했을 거다.
그만큼 어려운 마법이었으니까.
“기후를 조작하는 마법이야.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페르난도가 들어도 이해를 못 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
마도사가 들어도 난해한 강의를 고작 15살에서 20살 언저리인 애들한테 해 줬다.
근데 뭔 상관인가.
나는 나름대로 진수성찬으로 준비해 뒀다.
떠먹을 수 있으면 한번 떠먹어 보라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데.”
“당신, 정말로 교수직을 하고 있었군.”
-페르난도다!
-순하게 생겨서인지 은근 마음에 들어.
평소 입던 노란색 로브가 아닌 평상복을 입은 페르난도 레빌로스. 평상복도 참 특징이 없이 무난했는데 이 정도면 특징이 무난함 아닌가 싶었다.
“무슨 일이야.”
“당신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닌가 감시하러 온 거야.”
“쉬는 날로 보이는데?”
“어쩔 수 없잖아.”
눈에 다크써클이 져 있는 게 꽤나 피곤해 보였지만, 페르난도는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봤다.
“당신 다음 강의는 몇 시야.”
“16시에 한 번 더 있지.”
“그럼 나도 뒤에서 들을래.”
-오오! 페르난도 도전!
-과연 그는 라엘의 꼬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들이.
“마음대로 해. 대신, 얼굴은 가려. 괜히 학생들 모이면 피곤하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페르난도.
의외로 내 강의를 듣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신,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서 왔다고 했지?”
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에 입에 음료수를 댄 채로 눈만 페르난도를 쳐다봤다.
“크리스티나 엘리나, 그녀가 당신 제자이지?”
회심의 미소를 지은 페르난도였지만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어? 안 놀라?”
“왜 놀라.”
“아니……. 이 많은 학생들 중에 당신 제자를 바로 특정해 냈잖아.”
뒷머리를 긁적이는 페르난도를 보면서 얘는 도대체 어떻게 마도사가 됐나 싶은 한숨을 내쉬며 답해 준다.
“내 제자인데 평범하겠니? 지금 학교에서 가장 뜨거운 학생이 엘리나인데. 지나가던 꼬마도 너 정도 정보가 있으면 바로 알걸.”
“으윽.”
내가 말로 풀어내니 별게 아니라고 본인도 느꼈는지 인상을 구기며 할 말을 찾다가 한숨을 내쉰다.
왜인지 조금 골려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너는 왜 여기 있을까를 내가 맞춰 볼까?”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면서 나를 보는 페르난도에게 피식 웃어 주며 하나하나 나열한다.
“의문 첫 번째, 3황자와 늘 함께하던 네가 따로 떨어져서 라마닉스로 왔다는 것.”
나를 쫓아서 타란 마을 근처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시작으로 플로이드의 안뜰, 대침공까지.
페르난도 레빌로스는 늘 제라니 황자와 함께했지만, 지금은 둘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의문 두 번째, 대침공으로 난리가 나버린 제도를 비우고 라마닉스에 있다.”
지금의 제도는 엉덩이 무거운 대마도사조차 성벽 보수에 나서야 할 정도로 대침공의 피해가 막심했다.
당연히 마도사들도 보수 공사에 힘을 써야 할 시기에 페르난도는 피해가 전무하다 싶은 라마닉스로 와 있다.
“의문 세 번째, 입학식에 너뿐만 아니라 너의 사형들인 첫 번째, 두 번째 마도사까지 왔다.”
로건 웰스와 클로이 노브의 존재.
아무리 명문인 세인트 학교의 입학식이라고 하더라도 입학하는 학생 중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참석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지금처럼 제도가 난리 난 상황이라면 말이지.
“마지막 네 번째, 페르난도 레빌로스가 지금 내 앞에서 ‘사복’으로 있다는 점.”
“…….”
“자, 퍼즐 조각은 대충 이 정도야. 그럼 맞춰 볼까?”
페르난도의 표정은 내가 입을 다물기를 바라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
그 역시 내가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 궁금한 듯했다.
“내 생각에 이번 건 제라니 황자의 명령이 아닌 그보다 더 윗선, 젤롬 황자의 명령이겠지. 마도사 셋이 동시에 움직였으니까.”
“…….”
“제도를 보수하는 데 중요 자원인 마도사들을 라마닉스까지 파견시켜서 확인해야 하는 건 뭐였을까? 사실 지금까지의 젤롬 황자의 행동이나 지금 제도의 상황을 생각하면 간단해.”
너무 간단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
“젤롬은 아마 두려워하고 있는 거겠지.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어느 측면에선 제도보다 발전이 잘된 라마닉스를 지키는 영주, 타이난 베르커스가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키진 않을까.”
“……!”
페르난도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진다. 그 반응이 내게 정답이라 확신을 주고 있었다.
“지금 황실을 향한 시민들의 인식은 최악이야. 대마도사가 내 공을 가로채서 가까스로 막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
“그러니 영향력도 있으면서, 병력도 있고, 게다가 인접국인 합루스크 공화국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타이난을 견제, 그의 의중을 확인하고 반란의 기미가 있으면 암살. 뭐, 이 정도겠지.”
“젠장.”
“로브가 아닌 사복을 입고 온 걸 보면 사형들이 하루 정도는 쉬라고 해 준 모양이야? 꽤나 좋은 사형들이네.”
“그동안 내가 계속 타이난의 동태를 감시했으니까. 하루 정도는 쉬게 해 주면 안 되냐고 겨우 얻어 낸 거야.”
“흠, 그래? 하긴 그때 봤을 때 썩 좋은 사람으로 보이진 않더라.”
페르난도의 똥 씹은 표정을 보니 음료수가 참으로 달았다. 하나 더 마셔야지.
“뭐, 걱정은 하지 마. 이걸 가지고 뭘 할 생각은 없어.”
“거기까지 읽혔다고?”
아마 내가 있는 걸 보고 페르난도는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혁명군에서 타이난을 꾀어 반란을 도모하게 만들려 한다고. 그러니까 쉬는 날을 틈타 나를 다시 찾아온 거겠지.
“쉬는 날만 버렸네. 타이난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정말 아무 상관 없어. 그리고 혁명군 쪽도 지금은 움직일 상황이 아니고.”
“……믿어도 되는 거냐?”
“그건 네 마음대로 하세요.”
한 캔 더 마시니 벌써 다음 강의를 할 시간이 되었다.
엘리나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페르난도한테 붙잡혀 버렸다.
“아, 쉬지도 못했네.”
투덜거리며 강의실로 들어가니 이번엔 꽤나 학생들이 줄어 있었다.
아마, 14시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소문을 내 준 듯했다.
페르난도는 뒷문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얼굴은 마법을 통해 변장한 상태.
‘저 정도는 할 줄 아네?’
하긴, 그래도 마도사니까.
공책에 필기도구까지 준비한 페르난도를 보면서 나는 괜히 웃겨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강의를 시작했다.
“16시 강의 시작합니다. 이전 시간대 학생들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해 못 해도 질문은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