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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17화 (117/200)

117화

“으아! 지각이다!”

세인트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

엘리나는 어김없이 부스스한 머리로 방에서 후다닥 뛰어나와 욕실로 냅다 달려갔다.

가면서 먹을 수 있는 간단히 아침밥을 식탁에 준비한 나는 앞치마를 벗으며 기지개를 켰다.

“어떻게 매일 저럴 수 있는 거야.”

일주일 동안 매일 지각한다면서 저 난리를 피우고 있다. 예전 마리아 씨에게도 아침잠이 많다고 혼난 적이 더러 있다고 듣긴 했지만, 해이해진 느낌이 있다.

-그러지 말렴, 노력하고 있는 거 알잖니.

“하아, 몸이 상할 정도로 하는 걸 원하진 않아.”

라푼젤의 말처럼 저 아이가 새벽까지 공부하고 마법을 연습하는 건 알고 있다.

옆방에서 새벽마다 마나가 꿈틀거리는 게 계속 느껴지니까.

하지만 쉬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걱정해 봤자 아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또 나름대로 연습할 테니까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만.

앞치마를 벗고 있자니 덜컹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온 엘리나는 식탁으로 달려온다.

“오늘은 빵이네요?”

“괜히 뛰면서 먹다가 체하지 마라.”

“옙!”

척 하고 경비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경례를 하고는 빵을 챙겨 그대로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오늘은 스승님도 오세요?”

“아니, 수업 없어서 출근 안 하는데.”

“도대체 언제 출근하시는 거예요?”

“아마, 다음 주?”

엘리나의 말대로 입학식에서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나는 아직도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보조 교수라서 강의를 신청하는 모든 학년을 상대해야 하지만, 아직 주요 과목들의 간단한 설명이나 오리엔테이션의 진행이 한창이었다.

“빨리 오시면 좋겠어요!”

“너 근데 시간 괜찮냐?”

아차 하고 급하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간 엘리나. 엘리나가 나가자 방금까지 꽉 차 보이던 집이 휑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아이를 키우는 건가?”

-엘리나가 밝아서 특히나 그런 거란다.

-흠, 가다가 넘어지지만 않으면 좋겠군.

라푼젤과 테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어디 갈 거니?

“시장, 오늘은 저녁은 축하 만찬으로 준비할 거라서.”

-축하 만찬?

의아해하는 정령들.

“세인트 학교는 1주차가 끝나면 학생들에게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해. 그리고 아마 오늘부터 엘리나는 평범한 학교생활은 못 할 거야.”

이건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월반할 거라서.”

* * *

“우웁.”

덜컹거리는 전차.

인파 속에서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엘리나는 고개만 밖으로 살짝 빼서 숨을 고른다.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노력해도 이 시간대의 전차는 정말 힘들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태우려고 옆문을 뚫어 놓은 건 이해는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다 떨어지면 그대로 뛰어가야 하지 않은가.

처음엔 이걸 타면서 통학한다고 들어서 설렜는데 현실은 잔혹했다.

제도에는 전차 대신 자동차가 많다고 들었는데, 라마닉스는 전차가 훨씬 대중화되어 있었다.

‘물론, 귀족들은 자기들 차를 타고 오지만.’

일반 시민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다고 들었고, 택시도 있지만 그것도 타는 시간에 따라 어마어마한 가격이 책정된다고 하니 꿈도 꾸지 못했다.

-나는 타 봤는데!

갑자기 본인 자랑을 하기 시작한 운디네.

스승인 라엘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엘리나에게 운디네와 플레임을 붙여 뒀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차피 택시 안에서도 떠 있었을 거면서.

-네가 뭘 알아. 택시도 못 타 본 녀석이랑 얘기하기 싫거든?

플레임의 핀잔에 비웃음을 걸며 답하는 운디네.

두 정령은 불과 물이라는 특성 탓인지 아니면 그냥 서로를 싫어하는 건지 자주 투덕거렸다.

‘플레임 쪽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플레임을 보자면 예전에 계속 장난을 치고 시비를 걸어오던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나중에는 좋아하니까 그랬다며 고백해 와서 싫다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아마 플레임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세인트 학교 앞에 도착한 전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학생들. 한산해진 전차를 타고 싶다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내렸다.

전차를 놓치지 않아서 느긋하게 가도 지각은 면했기에 여유롭게 걷는다.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보니 학교 부지도 많고 넓었는데, 심지어는 학교 내부에서도 작은 전차를 운행하는 중이었다.

다행인 건 1학년은 입구에서 걸어도 충분한 거리라는 것.

아마 적응하는 기간을 주기 위함이겠지.

오늘 강의가 있는 교실로 들어가자 이미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무리를 이루거나 잡담을 하고 있었다.

“엘리나! 여기!”

여자 그룹 중 하나에서 엘리나를 부른다. 그녀 역시 특유의 친화력으로 일주일 만에 친구들이 꽤 생겼다.

사실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국가 반역자의 이름 탓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웃으면서 이름 희한하다고 다가와 준 친구들도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필수 과목들만 수업이 잡혀서 따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지 못하기에 앞으로 3년간은 계속 이들과 함께해야 했다.

“오늘 드디어 수준 테스트야.”

“그냥 평균점만 나오면 좋겠다.”

“아무래도 팔렌 도르손은 월반을 하겠지?”

“그렇겠지.”

친구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엘리나는 오늘이 수준 테스트임을 떠올렸다. 최근 새벽까지 공부만 주야장천 하다 보니 하나둘 놓치는 게 생겼다.

팔렌 도르손.

이제 11살인 소년은 뚜렷한 이목구비와 왁스를 통해 올린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

제국의 대귀족 중 하나인 폴 도르손의 막내아들로, 요번 년도 신입생 중 에이스이자 몇 계단은 껑충 뛸 인재라고 불리고 있었다.

라디오 타워 테러 사건에서의 불명예를 씻지 못하여 황실의 압박을 받는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그는 오늘 수석을 따내며 2학년으로 당당하게 월반할 생각이었다.

‘별 관심은 없지만.’

지금도 남자 무리의 중심에서 웃어 대는 도르손인지 도르레인지 하는 자식은 관심 없었다.

스승님은 편하게 생각하고 학교에 다니라고 했지만, 자신이 그럴 입장이 아닌 건 알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잡혀 있을 시간 없다고.’

다짐하는 엘리나. 그와 동시에 교실 앞문이 열리며 교수님이 시험지를 수레째로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들이 자리에 앉고, 교수는 간단히 시험 중 주의사항 등을 설명했고 곧이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 * *

과목은 여덟 과목.

한 과목당 백 개의 문항.

시간은 고작 한 시간.

게다가 문제 번호가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올라갔고, 20번부터는 아예 손을 놓는 학생들도 많았다.

당연했다.

이제 막 1학년으로 올라와 기본적인 것밖에 모르는 이들이 풀 수 있는 건 딱 19번까지.

그 뒤는 학생들이 풀 재간이 없는 문제였고, 그렇기에 100개의 문항을 주었음에도 고작 한 시간의 제한시간을 둔 것.

모든 시험이 끝나니 시간은 벌써 오후 5시.

지칠 대로 지친 학생들은 녹아내린 얼음처럼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금 문이 열리고 선생들이 주르륵 들어온다.

어느새 채점을 끝마쳤는지 거대한 칠판에 붙여지는 성적들.

대부분의 학생들이 당연하게도 20점을 넘기지 못한 처참한 광경.

하지만 그중에서도 홀로 성적표의 가장 높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름이 있었다.

크리스티나 엘리나

-우리 이쁜이가 1등이다!

-장하다! 아주 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뺨을 부벼 대는 운디네와 눈물을 감추는 플레임이었지만, 엘리나의 눈은 성적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권능 부분은 42점, 수학 55점, 제2외국어는 41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었고.

‘역사 31점? 왜지?’

인상을 찌푸리며 이해 안 되는 점수들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마도……. 87점!’

가장 열심히 했던 과목의 점수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져 주먹을 꼬옥 쥐었다.

벌써부터 잘했다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스승님의 얼굴이 보여서 가슴 깊이 만족감이 마구마구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금발의 소녀에게로 쏠린다. 정작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여 관심도 없었지만.

대부분이 20점을 넘기지 못한 시험에서 홀로 87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취를 이뤄 냈다.

1등이 있다면 당연히 2등이 있는 법.

모든 시험에서 2등을 차지한 소년, 팔렌 도르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크리스티나 엘리나와 성적표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가장 자신 있는 역사 부분에서 29점…….’

자신 있는 과목이자 가장 점수가 높은 게 29점인데, 그녀에게 가장 점수가 낮은 역사 과목이 31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과목은 아예 상대가 되지 못하는 수준.

완패.

전혀 관심도 없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녀에 의해 팔렌 도르손은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졌다.

* * *

회의실에 모인 교수진은 썩 밝지 못한 분위기였다.

그들의 중심에 놓인 건 몇 장의 시험지.

시험지들은 하나같이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여학생은 250년 전통을 가진 세인트 학교의 역사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을 점수를 만들어 냈다.

나이가 있는 입학생들은 가끔 이런 점수를 내며 월반을 하긴 하지만, 11살인 아이가 해냈다기엔 믿을 수 없는 점수.

원래였다면 천재라며 호들갑을 떨고 축하해야 했지만 그 정도가 과했다.

특히나 마도 부분 87점.

80번 이후부터는 세인트 학교 6학년은 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소녀가 풀어낸 문제는 딱 87개.

한 문제당 1점임을 감안하면 이 학생이 푼 문제는 전부 정답.

뒤에 남은 문제들은 시간제한으로 풀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시간에 제한이 없었다면…….

만점을 받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모두의 뇌리를 스칠 때, 날카로운 인상의 여교수가 입을 열었다.

“컨닝이군요.”

단언.

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진 못했고 오히려 다들 수긍하는 눈치.

“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래 보여도 명문 중의 명문.

컨닝에 대한 방범 대책은 수십 가지가 넘었다.

“하아, 이래서 요즘 애들이 문제라니까요. 어디서 이상한 수법을 또 배워 와서.”

“그럴 시간에 면학에 힘쓰지.”

“식을 적은 종이도 제출하라고 해야겠어요, 이제. 답안지만 걷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죠.”

교수들은 각자의 푸념을 내놓는다.

더불어 크리스티나 엘리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하던 토론이 한창이던 때에, 학교의 최고권위자 학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장님!”

“안녕하십니까!”

교수들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으나 학장은 가볍게 손만 들어 올릴 뿐, 테이블 중심에 있는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끌끌.”

그러곤 몇 번인가 웃음을 짓더니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 학생은 내일 4학년으로 진급시킵니다.”

학장의 발언은 학교 전체에 거대한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

시험지의 주인공인 소녀는 자랑스럽다며 스승에게 들려져 칭찬을 받은 후, 스승이 준비한 만찬을 먹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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