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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16화 (116/200)

116화

입학식이 끝나고 학장실.

엘리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안내받고 있어서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학장님이 타 준 차를 홀짝이고 있자니 반대편 소파에 앉은 페르난도가 나를 노려보면서 차를 마시다가 혀를 덴다.

“앗뜨!”

저런 거 보면 어떻게 마법사 하는 건가 싶었지만, 보조 마법 계열에서는 썩 뛰어난 편이라는 걸 직접 경험했으니까.

“너무 노려보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국가 반역자가 코앞에 있는데.”

“나름 같이 싸웠던 전우잖아?”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말하자 페르난도도 딱히 할 말은 없는지 찻잔만 입에 물고는 고민에 빠진다.

“하아,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결국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물어오는 페르난도.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혁명군 하면 돈이 많이 부족하잖아, 돈 좀 벌려고 왔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아니면 나를 진짜 바보로 아는 거야?”

“후자 쪽이 조금 더 강하지.”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페르난도는 얼굴을 붉히며 뭐라 외치려 했지만, 입만 뻐끔거리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학장이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혁명군? 자네 지금 혁명군에 있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서 그런 거였군.”

무언가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학장은 답답하다며 가슴을 두드리는 페르난도를 보며 손을 휘저었고 사일런스 마법이 해제되었다.

“괘, 괜히 세인트 학교 학장님이 아니시군요.”

“흘흘, 그냥 잔재주 많은 늙은이오.”

말은 저렇게 하지만 페르난도는 대륙 최고 마법사의 제자인 자신에게 간단하게 사일런스 마법을 거는 걸 보면 학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 듯했다.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페르난도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어쨌든. 이번엔 라마닉스에서 활동하는 거냐?”

“활동 안 한다니까.”

“그럼 여기 온 이유가 뭐야!”

탕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책상을 내리치는 페르난도.

본인 나름 위압감을 주려고 했던 듯했지만 나도, 학장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걸 보며 오히려 자신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변명해도 믿지를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여기서 페르난도를 포섭하지 않으면 어차피 도망쳐야 하는 신세기도 해서 그냥 털어놓는다.

“제자를 교육하려고.”

“음?”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페르난도.

“내 제자가 학교에 다니면 좋겠다 싶어서 여기에 입학시켰어.”

학장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제자라고?”

당황해서 되묻는 녀석에게 답답함을 느껴 조금 짜증이 나려고 했지만, 때맞춰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남녀.

하나는 붉은색 로브, 하나는 푸른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페르난도와 마찬가지로 마도사라는 문양이 찍혀 있었다.

“사, 사형들.”

“페르난도,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한참 찾았잖아.”

“죄,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이며 사죄하는 페르난도. 하지만 둘은 별 관심을 주지 않고 학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제1 마도사 로건 웰스입니다.”

“둘째인 클로이 노브입니다.”

‘호오?’

붉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적갈색 머리의 남자가 로건 웰스, 첫 번째 마도사.

푸른 로브를 걸치고 있는 회색 머리의 여인이 클로이 노브, 두 번째 마도사.

셋째인 극독의 숑과 넷째인 철의 마법사 바라모테가 죽었으니, 사실상 가장 강한 마도사 삼인방이 모인 것.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대마도사와 필적하는 수준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보니 확실히 뛰어났다.

페르난도가 두 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을 정도?

“안녕하십니까, 학장인 존 텐아니입니다.”

‘존 텐아니? 이름 참.’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름 짓는 센스가 아주 별로였다. 참고로 내 시절에 쓰던 이름은 체플린 델리노스. 무슨 연극에나 나올 법한 이름이지 않은가.

“아직도 학장직을 맡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맞아요, 졸업식에서 보여 주신 폭죽 마법은 잊지를 못합니다.”

“허허, 저도 본교에서 마도사가 두 분이나 나온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대화를 이어 간다.

두 사람 다 딱히 용건이 있어서 왔다기보다는 그냥 학장님에게 인사 차원에서 들른 것 같았다.

난 이런 대화를 듣는 것보다 페르난도를 구경하는 게 훨씬 재밌었다.

‘웃기네.’

두 마도사의 등장에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보기 바쁜 페르난도. 자신의 손을 어디에 놔야 할지를 몰라서 난처해하고 있자 결국 로건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페르난도, 정신 사납다.”

“예! 죄송합니다, 사형!”

순간, 페르난도와 눈이 마주쳤고 씨익 웃어 주자 녀석의 표정이 똥 씹은 듯 변모한다. 중요한 건 그걸 로건이 봤다는 것.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내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이분은……. 입학식에서 소개해 주신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이시군요?”

“라만 아인이라고 합니다,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울리지도 않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한 번 해 줬는데 둘은 익숙한지 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도와는 아는 사이신가요?”

잠깐의 정적.

여기서 페르난도가 내 정체를 밝히는 순간 끝장이라는 걸 순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인지했다.

‘젠장, 너무 바보라서 방심했다.’

학장은 절대로 나를 돕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마법도 쓸 수 없으니 정령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된다 생각한 순간.

“저, 전우입니다!”

“전우?”

로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아직 납득이 덜 됐다고 판단한 페르난도가 뒷말을 덧붙였다.

“예, 그렇습니다. 대침공에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대침공에서…….”

“우리 사제가.”

대침공 당시 다른 기사단을 따라 변경을 막으러 갔던 두 사람이었기에 조금 놀란 눈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정말 놀란 건 나다.

설마 페르난도가 나를 변호할 줄이야.

정말 하기 싫다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지만, 잘 넘어가긴 했는지 마도사들은 다시 학장과 얘기를 나누다 가 버린다.

다행인 건 페르난도도 자기 사형들에게 끌려가 버렸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엘리나 벌써 구경 끝난 거 아닌가?”

“네가 다닐 때보다 많이 넓어져서 아직 조금 더 걸릴 거다.”

뭐, 라푼젤도 붙여 놨으니까.

“자아, 이제 훼방꾼도 모조리 사라졌군.”

학장이 천천히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지긋이 나를 바라본다.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네가 한 번 말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

결국 나는 200년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고.

학장님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놀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와아, 학장님 그런 표정은 처음 보네요.”

“수 세기를 살아온 나라도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 크리스티나 엘리나 말고도 나를 놀라게 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 스승에 그 제자잖아요.”

“딱히 칭찬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칭찬으로 받으려면 받아도 좋다.”

차를 한 번 홀짝이곤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는 학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원인은 단연 체체로와의 전투로군.”

“예, 맞습니다.”

“네가 말한 마법은 조금이지만 기적이란 영역으로 넘어간 건 맞다.”

체체로를 쓰러뜨릴 때 썼던 마법은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명확하지 않았으니까.

당시엔 사고가 개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길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반동이 아닐까 싶다. 인간으로서는 넘어설 수 없는 부분을 억지로 넘었으니.”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하고 싶습니다. 학장님은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으실 거 아닙니까.”

그러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젓는 학장.

“너는 내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구나.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영역을 넘어선 적은 없다.”

“으음.”

설마 이런 답이 나올 줄이야.

수 세기를 살아왔으니 나름 경험이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하군,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아서.”

“아닙니다. 엘리나를 받아주시고 숙소랑 생필품 제공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어쨌든 짧은 기간이라도 보조 교수로 일을 하게 되었으니 학생들은 잘 부탁하지.”

“옛날부터 변함없으시네요.”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학생들을 위하는 저 모습.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는 홀로 남아서 세인트 학교라는 배움의 장을 신교로부터 지켜 왔겠지.

나를 받아 준 것도 학생들 교육에 도움이 될 거란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거다.

“그리고 편애는 안 된다네.”

“걱정 마세요. 제가 그럴 것 같습니까?”

“네 스승을 생각하면 썩 그럴 것 같다만.”

“…….”

그건 할 말이 없네.

스승님의 제자 사랑이 워낙 각별했어야지.

“그런데 이제 슬슬 물려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의도적으로 주제를 틀자 학장은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네가 살아 있다는 편지를 받고 너한테 주려고 했다.”

“오?”

이 답답한 영감을 어떻게 구워삶아야 내놓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뱉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다루지 못하게 됐으니 쓸모가 없어졌군.”

“사실 안 주려고 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다.”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학장.

짜게 식은 눈초리로 보다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럼 엘리나한테 가르쳐 주시죠.”

“크흠.”

“이러시기에요?”

막상 주려니까 또 아까운 건가 했지만, 결국 학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엘리나가 10학년 과정을 밟을 때부터 내 따로 지도하겠다.”

“10학년이면 졸업반이잖아요.”

“그래, 적어도 그 정도 세월은 있어야 내 마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대충 계산해 본 결과.

“딱 3년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엘리나는 지금 1학년이다. 보통은 10년, 아무리 천재라도 5년은 있어야 된다.”

“크리스티나 엘리나잖아요.”

자신감 넘치는 내 미소에 학장은 입을 꾹 다문다. 어쩔 수 없다. 내 스승과 내 제자가 동일인물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비슷했기에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끄응.”

“수백 년을 숨기고 계시던 학장님의 정체도 금방 꿰뚫어 봤는데요, 뭘.”

물론 200년 전의 이야기긴 하지만.

“그때 얘기는 그만하지.”

“설마, 세인트 학교의 학장님 정체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용이었다니.”

그래, 명문 중의 명문 세인트 학교 학장의 정체는 바로 용. 그것도 매번 신분을 세탁하며 꾸준히 학장 자리에 앉는 철밥통 용이었다.

1대 학장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실은 모든 학장이 겉모습만 다르고 동일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건, 현시점에서는 나뿐이지 않을까?

신과 정령들의 전쟁에서 정령을 도왔던 용들은 패배하면서 대부분의 개체가 죽음을 맞이했다.

학장님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숨어들어 인간 사회에 적응한 손에 꼽히는 용들만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 뒤, 용들은 각자 맹세했다.

절대적 중립을 지키며 시대에 개입하지 말자고.

종의 보존만을 목표로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가자고.

그렇기에 학장님에게 전력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분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게 있으니까.

수백의 동포들의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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