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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14화 (114/200)

114화

-나 쟤 마음에 들어.

-나두. 깨물어도 되겠니?

“애 잔다.”

침낭에 모포까지 덮고 곤히 잠들어 있는 엘리나를 보며 운디네와 라푼젤이 한마디씩 거든다.

-오랜만에 웃긴 했군.

-아, 난 눈물까지 조금 나왔어. 진짜.

테토와 플레임도 꽤나 재밌었는지 큭큭 거리고 있었고 주인공인 우레아는 모닥불 옆에 찌그러져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고민은 해 본다고 했잖아.”

[나는 신인데…….]

“신답게 굴어야 신이지.”

어째 첫 만남을 제외하고는 점차 우레아의 이미지가 점점 볼썽사납게 변해 가고 있었지만, 본인 책임이지.

“그러고 보니 정령왕한테 말했어?”

-아, 그거? 했지.

-그거라니? 너희 나 모르게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니.

나와 운디네의 대화에 끼어드는 라푼젤. 딱히 운디네에게 부탁한 이유는 없고 그냥 이동하면서 말했던 것뿐이었지만. 운디네는 콧대를 높였다.

-흐흥, 가장 믿는 정령이 누구인지 이제 알았냐?

-가장 다루기 편한 정령을 말하는 거니? 아니면 허드렛일 시키기 좋은 정령?

-야!

“알겠으니까, 그만 싸우고. 정령왕이 뭐라고 해?”

더 이상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내 상태를 정령왕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정령계를 지키는 기사가 되겠다는 의무는 지키지 못하게 될 정도로 나는 약해졌으니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옆에 둔 정령왕에게 받은 지팡이 눈치가 조금 보였다.

-처음엔 놀라더니 별 상관없다던데. 자기가 지키면 된다고.

“…….”

-걔도 네가 진짜로 정령계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은 안 했을걸?

-맞는 말이란다. 그냥 잡아 두고 싶었던 것뿐이지.

“나는 심하면 계약 해지까지 생각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니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정령들의 질타 어린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와, 우리랑 계약 끊으려고 한 거야?

-이건 그냥 못 넘어가겠구나.

-조금 서운하군.

-뭐야, 나랑 한 약속은 개나 줘 버린 건가?

“아니, 너희랑 계약한 것도 정령왕이랑 했던 약속이었으니까.”

이렇게 다 같이 합심해서 달려들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지만 내심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령들은 꽤나 불쾌했던 듯 계속 달려들었다.

-정령왕이 뭐 어쩌라고. 내가 원하지 않았으면 계약도 안 했어!

-정령왕이 하라고 해서 계약을 한 게 아니란다.

-맞는 말이다.

-쳇, 이래서 인간이란.

“아, 알았어. 알았어.”

-얘 역소환한다!

-자기한테 불리해지면 역소환하는 버릇은…….

손을 한 번 휘젓자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남는다. 이제야 조금 조용해졌다.

‘고맙긴 하네.’

나 역시 정령들은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저렇게까지 나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미안하고 고마웠다.

조금은 따스한 마음을 느끼며 나도 모포를 덮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여기서 생활을 하셨어요?”

“그렇지.”

“5년 동안 혼자서요?”

“응.”

“와, 거의 원시인이셨네요.”

“…….”

스승의 고향과도 같은 장소를 그렇게 단언하는 건 썩 좋지 못한 말버릇이라고 말해 주려 했지만, 엘리나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음.”

확실히 그 말을 듣고 동굴 내부를 둘러보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5년을 살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겉만 좀 그럴 뿐 내부에는 나름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고, 그걸 봤는지 엘리나의 탄성이 들려왔다.

“우와! 도서관이다.”

뒤따라 걸어가니 엘리나는 호들갑스럽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식당이나 도서관, 훈련장 등 내 나름 구역을 정해 두었기에 나름 볼만할 거다.

“여기 있는 책 다 읽으셨어요?”

“5년 동안 할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으엑.”

혀를 내두르며 책을 하나 빼서 펼치는 엘리나. 먼지 탓에 콜록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청소를 한 번 할 필요가 있긴 하겠어, 라푼젤.”

-음? 왜 나를 찾니?

“……환기 한 번만 해 주라.”

그러자 옆에 있던 운디네와 플레임이 혀를 찬다.

-버릇을 잘못 들였어, 버릇을.

-너희가 하도 오냐오냐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나였으면 주도권을 꽉 잡고 있었을 텐데.

-하! 어제 엘리나한테 만져져서 모닥불 피우고 고기도 구워 준 게 누구였냐?

-…….

두 정령이 싸우든 말든 라푼젤은 한숨을 내쉬더니 손짓한다.

-에휴, 그래. 무능해진 주인 뒷바라지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그 취급은 조금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아.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서 나만의…….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정령왕이나 할 법한 생각이라고 말해 주니 라푼젤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우아하지 못했다나 뭐라나.

“……근데 테토는 뭐 하냐.”

-엘리나가 밟기에는 땅이 너무 거칠어서 평평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주 지극정성들이시구만.”

고작 이틀 만에 엘리나에게 흠뻑 빠진 정령들을 뒤로한 채 나는 동굴 가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엔 동굴 벽을 등진 채로 ‘세계 제일의 마법사 이곳에 잠들다’라고 적힌 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여기가?

운디네가 조심스레 물어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스승님을 묻은 장소야.”

-센스가 너답구나.

“…….”

아픈 곳을 찔러 대긴.

잠시 합장을 한 나는 테토를 불렀다.

“파 줘.”

-진심인가?

“어쩔 수 없어.”

그래, 어쩔 수 없지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묻은 스승님이 정말로 살아 있는지 혹은 아니면 단순히 내 착각인지.

이게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묘비 근처에는 내가 쳐둔 보호 마법이 있었지만 정령들이 간단히 해제해주었고, 테토가 조심스럽게 관을 파냈다.

마법으로 나무를 자라게 해서 관을 만드는 데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문득 들었다.

“…….”

슬쩍 아직 도서관에 있는 엘리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위기를 느꼈는지 굳이 이쪽으로 다가오진 않는 아이.

“후우.”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진실을 위해서.

눈을 질끈 감으며 천천히 관을 열었고.

“…….”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 * *

“하압!”

엘리나의 기합 소리를 음악 삼아 책을 읽는다. 한 번 읽었던 책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복습을 해야 저 아이를 가르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생각보다 제자를 가르친다는 건 꽤나 까다롭고 어려웠기에.

“…….”

이곳에서 생활한 지 이제 약 한 달이 지났다.

4월이 되어 쌀쌀하던 날씨도 슬슬 풀리며, 동굴 안에서 플레임이 난로 역할을 잃어 발언권이 적어지는 하루하루.

엘리나의 성장은 고무적이었다.

과연 크리스티나 엘리나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우레아의 권능을 받을 수 있는 자질 때문인지.

혹은, 뛰어난 스승을 두어서인지(아마 이것 때문일 거다).

한 달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루었지만 최근 조금 막힌 부분이 있었다.

“으음, 이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몸 안의 마나를…….”

육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다루고 있는 엘리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보지만 제대로 이해를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도 동굴에서 혼자서 훈련할 때 저런 감정을 느꼈던 적이 많았기에 공감이 갔지만, 정말 이 이상 설명할 수는 없었다.

자기가 직접 깨달아야지.

한 번 보여 줄 수 있었다면 순식간에 요령을 깨닫고 바로 해낼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일 때도 있기에.

나도 스승에게 마법을 배울 때는 스승님이 직접 마법을 다루는 걸 보여 주시면서 깨달은 적이 잦았으니까.

“으음, 애매하네요.”

“혈관을 타고 마나를 퍼트린다고 생각을 해 봐.”

“일단 해 볼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연습에 몰두한 엘리나.

그녀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옆에 물을 준비한 운디네나 살랑 바람을 불어 주는 라푼젤을 걱정 많은 부모처럼 보여 한심하단 눈으로 봐 준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하아, 어렵네.”

가능하면 나 혼자서 가르치려고 했다.

굳이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겐 역부족이었다.

나중에 레온이나 에레오나가 알면 미쳤냐고 한소리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제자를 위해 뭐든 해주고 싶은 게 스승의 마음인 걸.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엘리나에게도 썩 나쁘지 않은 상황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마침 4월이라 연락은 취해 두긴 했지만, 과연 그분이 제대로 답을 해 주실까 싶었다.

책을 펼쳐는 뒀지만 읽히지는 않고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자니 매 한 마리가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우왓! 저거 뭐야!

-어머, 바람을 뚫고 들어왔구나?

“와! 매다!”

매는 나를 알아봤는지 그대로 내 앞에 착지하더니 발목을 슬쩍 내밀었고, 그곳엔 편지지가 담긴 작은 통이 걸려 있었다.

“아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인 연락 수단을 쓰냐.”

뭐, 그분의 연배를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진화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매는 뭐 문제 있냐는 듯 고개를 팽 하고 흔들더니 그대로 동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뭐예요? 편지?”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온 엘리나.

나 역시 안에 있는 게 편지인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예전부터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고 칼이란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고지식한 부분이 있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그분의 연배를 생각하면 이해해 줄 수밖에 없었다.

매가 가져온 고급스러운 종이는 편지가 아닌 사무적인 말투가 가득 적혀 있는 입학서였다.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내용.

그리고 뒷장에 있는 건 보조 교수로 합격했다는 채용서. 라만 아인이라는 가명으로 만들어진 교수진 전용 카드가 붙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똘망똘망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나에게 말했다.

“학교 갈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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