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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11화 (111/200)

111화

희생 없이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어제오늘 깔깔거리며 웃고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이더라도 실은 내일이 되면 누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세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크윽!”

슬픔과 분노에 감정이 휩쓸릴 뻔했으나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찾아오는 두통에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진다.

“라엘, 정신 차려!”

“알아.”

오늘 하루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았다. 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그 의미를 퇴색시킬 수 없기에 멍청하게 아프다고 서 있을 순 없었다.

“지금 나는 마법도 뭣도 쓸 수 없어.”

“…….”

하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에 마법을 발동할 수가 없었다. 마나를 끌어올리기만 해도 이 녀석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듯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한 번은…….”

정말 이빨을 꽉 깨물고 죽음을 각오한 기세로 하면 한 번은 가능할 거라고 마음속에서 확신이 차올랐다.

스러져간 이들을 떠올리면 더욱더.

“쓸데없이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에레오나는 머뭇거리다 숨을 갈무리하며 눈앞의 죽음의 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무리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어.”

“무리해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상대야.”

“그래도 이길 거야.”

다시금 검을 강하게 쥐며 일어난 에레오나는 근처에 있던 톰을 불렀다.

“톰, 라엘을 그 아이한테로 데려다줘.”

“존명.”

순간 당황했으나 에레오나는 그대로 앞으로 치고 나갔고, 톰은 쓰러진 나를 둘러업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눈을 감은 아이를 무릎 배게 해 주고 있는 여인.

여인 역시 입에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황금빛 머릿결을 쓸어 주고 있었다.

“여기서 준비해.”

평소답지 않게 진중한 말투로 나를 내려 준 톰은 다시금 전선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도 에레오나와 죽음의 신이 싸우는 건 보였는데, 공격은커녕 도망치는 것에만 급급한 상황.

마리아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애써 나를 불렀다.

“라엘 님.”

“……예.”

무언가 말해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얼마나 엘리나를 사랑했는지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있어 엘리나라는 존재는 딸과 다름없었기에.

듄이 만들고 간 커다란 상처를 옷으로 가려 주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원망을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녀를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이 나 역시도 너무 싫었기에.

하지만 마리아에게서 들린 말은 뜻밖이었다.

“아이의 맥박이 뛰고 있어요.”

“예?”

“제가, 지금 감각이 명확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말에 엘리나에서 마리아로 시선을 돌리니 그녀 역시 상황은 꽤나 심각했다.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없는 게 아무래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리아 님부터 우선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계시다간……!”

“아뇨, 저는 이미…….”

뒷말을 이어 가지 못하고 마리아는 고개를 돌려 각혈을 토했다. 그러면서도 애원하듯 내게 말한다.

“하지만 이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요.”

표정이 어두워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녀의 뇌가 소망하는 걸 보여 주고 있는 걸까. 잔인한 비극에 침울한 목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지만.

두근.

엘리나에게 손을 대보았을 때, 그녀의 맥박은 미세하지만 뛰고 있었다.

너무 놀라 주변을 둘러보며 슬쩍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보니 미약하게, 정말 미약하게 숨이 쉬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불규칙적이고 연약했음에도 희망이 머리를 스쳤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심장은 죽음의 신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심장이 없는 인간은 당연히 살 수 없다.

지금도 상처 부위를 가린 천을 슬쩍 들추면 횡 하니 뚫린 아린 상처가 눈에 들어왔으나…….

“이건?”

그 위에.

상처 위에 피에 젖어 모습을 감추고 있던 붉은색 보석이 잔잔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엄마가 선물해 주셨니?’

‘아뇨, 저 주웠을 때 바구니에 같이 있었대요.’

‘…….’

‘어떻게 보면 엄마가 선물해 준 게 맞긴 하죠. 저 낳은 엄마나 아빠가 두고 간 물건일 테니까.’

목걸이에 대해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엘리나가 버려졌을 때 함께 바구니에 놓여 있던 붉은빛의 보석.

그냥 봐도 고급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렇기에 엘리나를 버린 부모의 최소한의 양심인 줄 알았던.

목걸이가 아이의 심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권능이 사용되진 않았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건 마법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건 그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체체로를 쓰러뜨렸던 기적이라는 이름에 가까운 마법도 이 마법과 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

아무리 봐도 술식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이게 마법이라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교묘한.

“라엘 님?”

나를 부르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두근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피 맛이 나는 침을 한 번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엘리나는 살아 있습니다.”

“아, 아아…….”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마리아.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녀는 강하게 엘리나의 손을 잡아 주며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이 아이를, 제발 살려 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바쳐서라도.”

천천히 목걸이에 손을 댄다.

이대로 두면 결국엔 이 아이는 죽는다. 이 보석을 어떻게든 사용해서 심장에…….

“어…….”

[이럴 수가!]

내 손을 타고 올라오는 붉은빛의 마나에 침묵하고 있던 우레아조차 놀라 탄성을 자아낸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나는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천천히 아이의 뚫린 심장으로 내 반대 손을 타고 넘어간다.

마나가 살아 숨 쉬는 건 우레아라고 부를 수 있었다.

아니꼽지만 어쨌든 그는 마나의 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마법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표현이 올발랐다.

붉은색의 마법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주듯 움직였고.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울려오는 목소리.

‘애썼구나.’

목걸이의 보석이 깨지고 모든 붉은빛의 마나가 사라졌을 때, 천천히 아이의 상처 부위를 감싸고 있는 천을 들어 올렸고 그곳엔 처음부터 상처 따윈 없었다는 듯 매끈한 피부만 보였다.

“허억! 허억!”

엘리나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 왔고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소녀를 안아 준다. 자신의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 터인데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딸을 끌어안아 주었다.

“아, 아아! 엘리나! 사랑하는 딸아!”

“어, 엄마?”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마리아에 처음엔 당황한 엘리나였지만, 금방 호응하듯 마리아를 안는다.

모녀의 재회는 전황 자체를 뒤바꾸었다.

[…….]

죽음의 신이 쥐고 있던 심장은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듯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신조차 당황했는지 멍하니 자신의 왼손을 보거나 주변을 확인하지만 남은 건 신계로 돌아갈 일뿐.

“후퇴! 뒤로 빠져라! 심장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건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에레오나의 빠른 판단으로 바로 뒤로 물러났고, 죽음의 신은 허전하게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원래였다면 그대로 소멸해야 했으나 대륙에 퍼져 있는 짙은 죽음 때문일까.

죽음의 신은 사라지지 않고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들어 올린 낫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꽂았고.

구름을 꿰뚫으며 등장한 검은색의 낫.

땅에 닿는 순간, 일대의 모든 생물에게 공평한 죽음을 선사하는 죽음의 신이 전력을 쏟아낸 마지막 일격.

“아…….”

승리했다고 생각했던 에레오나와 다른 부대원들의 입에서 탄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진정한 힘을 목도하니 자신들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지겠지.

“그렇게는 못 두지.”

다 왔다.

이제 다 왔단 말이다.

어두운 새벽을 은은하게 비추던 달은 이제 모습을 감췄다. 아침을 알리며 하늘은 주황빛으로 변해 갔고 산 너머에서는 태양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길고 긴 새벽.

마지막을 그렇게 억지로 장식하게 두지는 않겠다.

“아아…….”

익숙한 마나가 몸에 용솟음친다.

내 마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마나를 알고 있었다.

붉은 보석을 통해 타고 들어온 마나의 일부는 분명하게 내 안에 남아서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손을 뻗을 뿐이었다.

과격한 두통이 머리를 짓누르려는 듯 강렬하게 찾아왔지만, 이빨을 꽉 깨물고 손을 뻗는다.

내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게 침인지 아니면 피인지 명확하진 않았지만, 뭉텅이로 새어 나오는 것만이 느껴졌다.

딱 한 번.

마나는 발산되고 그것은 알아서 마법을 형성한다.

[…….]

우레아는 마나의 신이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가 마나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목격하고 있을 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붉은빛의 마나는 자신의 손을 떠나 버렸다는 걸.

물론, 나의 마나 역시 아니었다.

마나는 스스로가 마법이 되어 죽음의 신이 날린 최후의 일격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거대한 굉음도, 하늘을 울리는 바람도, 대지를 진동시키는 충격도 없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강제로 들이밀었던 하늘에는 이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빛만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드디어.”

그토록 바랐던 하루가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많은 피해가 있었으며, 절망과 슬픔이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했다.

그들의 희생을 어떠한 의미도 없이 만들지 않았다.

“아아…….”

주르륵 눈물이 흘렀고, 털썩 주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우리에게, 승리를.’

‘부디, 당신의 긴 여행길의 마지막이……. 편안한 쉼터이길.’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넘긴 두 남자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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