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크아아아!”
절대로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철옹성과도 같은 남자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1분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타들어 가 재가 되었을 터인데, 이 남자는 끈질기게도 버티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더욱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다.
엘리나와 텐을 죽인 듄의 죽음을 바라며 쇠사슬에서는 더욱 세차게 불꽃이 타올랐으나, 녀석은 아직 원형이 남아 있었다.
‘신기 때문인가?’
권능이 부족했기에 전신 갑주를 입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라면 다행. 만약 입었더라면 이 쇠사슬로도 그를 막아 내지 못했을 거다.
“텐! 텐!”
레온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아련히 울려왔다. 슬쩍 확인하니 텐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크아아아아! 라엘 텔리즈머어언!”
“닥쳐.”
쇠사슬이 더욱 조이며 하얀 불꽃이 타오른다. 분명하게 듄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건 반응을 보면 알겠지만, 의식을 잃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다.
이 남자는 어떻게 해야 죽는 건지 답이 안 나올 정도로 견고했으며 단단했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 다 되었다며 소름 끼치는 낫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내 뒤로 와!”
다급한 목소리에 모두 나에게로 달려온다. 동시에 날아드는 검은빛의 초승달 모양의 일격.
어떠한 방어구도 소용없었다.
닿는 순간 공평하게 죽음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반칙과도 같은 공격은 다가올수록 거대해져 결국엔 피할 수 없는 크기가 되어 버렸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건가.’
악취미적이긴.
“레온!”
앞에 보호 마법을 펼치며 레온을 부르자 그는 자신의 권능을 쥐어짜 내며 내 보호 마법을 보조한다.
단순히 내 보호 마법만으로는 종잇장처럼 깨질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빛의 신의 권능이 위에 덮인다.
문득, 예전 태양왕국 라스의 왕자이던 펠디어스와 함께 싸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레온에게도 그가 권능을 사용하던 걸 토대로 가르쳤기에 생각보다 옛 호흡을 맞추는 느낌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한 겹, 두 겹 보호 마법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오십 단위를 넘겼을 때쯤 되어서야 드디어 옅어졌고, 백 단위를 넘기자 완전히 사라졌다.
“잘했어.”
“이거, 정말 힘드네.”
기절할 듯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레온을 받아든 루이나. 아무래도 더 이상 레온에게 힘을 빌리진 못할 듯싶었다.
나도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에레오나에게 말했다.
“에레오나, 사람들 데리고 도망쳐.”
“넌 그 말밖에 할 줄 몰라? 도망칠 거라면 애초에 같이 싸우지도 않았어.”
“듄이랑 같은 줄 알아? 저놈은 신이야, 그것도 죽음을 다루는. 인간에겐 최악의 대적 상대라고.”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다. 어떤 왕은 불로불사의 약을 찾기를 바랐고, 누군가는 자신을 단련함으로써 죽음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구는 신에게 빌었고, 또 누군가는 마나에 그 해답이 있다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왕이든, 귀족이든, 시민이든, 퍼지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
지금 앞에 있는 건 그 죽음이 실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존재였다.
“그치만 넌 싸울 거잖아.”
그럼에도 에레오나는 나와 눈을 맞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도 저 신이라는 놈이 자연히 사라지진 않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좋겠지.
그냥 자연히 사라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럴 리 없다. 여기서 놓친다면 대륙 전역에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전염병이 다시금 퍼져 나간다.
지모신이 움직이면 인간종이 절멸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적당히 해! 저 빌어먹을 제국이랑 싸울 때도, 레펠리아 수용소에 갇혔을 때도,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고!”
“…….”
“적이 강하다고? 이길 수 없는 존재라고? 젠장, 젠장할!”
감정이 북받치는지 에레오나의 눈가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근데 너는 싸우고 있잖아!”
내 어깨를 쥐고 에레오나가 비극에 잠긴 소녀처럼 소리친다.
“잘 들어, 라엘 텔리즈먼. 적이 아무리 강해도 나는 검을 놓지 않아. 신념을 꺾지 않아. 동료를 버리고 간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어.”
“에레오나.”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미 진즉 도망쳤어!”
그녀의 의지를, 아니 모두의 의지를 얕보고 있었던 걸까?
다들 침묵으로 에레오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으며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내게 시위하고 있었다.
“……놈의 약점은 왼손에 쥐고 있는 심장이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에레오나는 손등으로 스윽 눈가를 문지르더니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나의 심장을 매개체로 강림하고 있는 거니까 저 심장만 뺏으면 녀석도 인간계에 오래 있지는 못할 거야.”
불행 중 다행인 건 듄이 사라졌다는 것.
보호 마법을 펼치며 쇠사슬의 구속이 약해졌는지, 놈은 그대로 풀고 도망쳐 버렸다. 피해가 심해서 전투에 다시 합류하진 못할 거고 놓친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 두 마리를 잡을 수는 없으니까.
“레온의 권능은 이제 쓰지 못해. 한마디로 이제부터 모든 공격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말이야.”
닿는 순간, 죽는다.
“무운을.”
그런 소름 끼치도록 아슬아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당연히 내 마법으로 시작되었다.
정령들의 도움으로 원소 마법 위주로 쏴 대기 시작했고, 에레오나의 지휘에 맞춰 마법들 뒤에 숨어서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부대원들.
결국 정정당당하게 싸워선 이길 수 없다.
단순히 소녀의 심장만 가져올 수 있다면 이쪽의 승리.
-상대해 보니까 움직임은 느려. 라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도 있어.
-그래, 그들을 한 번만 믿어 보렴.
운디네와 라푼젤이 곁에서 걱정 말라며 속삭여 준다. 내 마법의 밑이나 뒤에 숨어서 달려들고 있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테토는 테토다웠으며 플레임은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정령들은 나를 도와 세부적인 마법의 조정을 하거나 위력을 높인다.
물론, 허공에 마법을 쏘는 것처럼 녀석의 곁에 닿기만 해도 마법은 원래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리지만, 그래도 시야를 가리기만 해도 충분하다.
가장 처음 죽음의 신에게 도착한 건 에레오나.
“블레스.”
페르난도가 사용하던 축복 마법을 에레오나에게 걸어주자 그녀는 잠시 놀라더니 그 발걸음에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놀라운 속도로 질주한 그녀는 순식간에 코앞에 도착하여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대, 이미 죽음이 찾아왔구나.]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에레오나는 본능으로 몸을 뒤로 뺐고 그녀가 있던 위치에는 신의 낫이 박혀 들어가 있었다.
만약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
하지만 조금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죽음의 신이 가장 위협적인 내게서 시선을 돌려 에레오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어떻게 죽음을 빗겨 갔는가.]
“……나한테 말하는 거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그제야 에레오나는 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듄에게 한 번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던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함께.
그러자 에레오나는 괜히 비웃음을 걸치며 답한다.
“뛰어난 마법사가 있으면 가능하던데?”
처음으로.
처음으로, 죽음의 신에게 감정이라는 게 나타났다.
그것은 고요하지만, 분명했으며.
잔잔하지만, 잔에 가득 찬 물처럼 아슬아슬했다.
[예정된 죽음을 수확하겠다.]
“잘됐네, 이제야 나를 봐 주는구나.”
내게 꽂혀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듯 웃고 있는 에레오나.
“저 멍청이가!”
당연히 그런 걸 두고 볼 리가 없다.
에레오나와 죽음의 신을 가르는 흙벽을 세워 보지만 신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통과해 에레오나를 향해 다가갔다.
“지금이다!”
이 순간에도 왼손의 심장을 노리고 수많은 단원들이 달려들었으나 대부분이 옷자락에도 닿지 못하든가 아니면 눈을 감았다.
신기루와 싸우는 기분.
그러나 신기루에 닿으면 저항다운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다.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는 듯 점차 공포에 물들어 가기 시작한 단원들.
“내가 가야겠어.”
-라엘!
마인화를 해제하고 전신을 강화한다. 붉은빛이 감돌며 두 발로 땅에 서는 기분은 나름의 고양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앞으로 치고 나간 나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지나쳐 죽음의 신 앞에 섰다.
유려한 몸놀림으로 낫을 피하고 있는 에레오나와 잠깐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나의 의도를 읽은 듯 입을 열었다.
“그깟 죽음, 난 극복했어!”
[죽음은, 누구도, 극복할 수 없다!]
훌륭한 도발이다.
어떤 부분에서 죽음의 신을 자극한 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툭 던진 한마디가 분명하게 시선을 끌었고.
왼손에 품고 있는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끈!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이 아니었다면.
“끄윽!”
엄청난 두통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지만, 강렬한 고통은 망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 나를 깨웠다.
“우우욱!”
쏟아지는 토사물.
눈과 코, 귀에서 흐르는 핏줄기.
손끝이 심장의 온기에 살짝 닿았으나 거기서 끝일 뿐.
나는 그대로 죽음의 신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약효 시간이……’
아이란을 상대할 때, 30분 남았었다.
체감으로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긴 한 것 같지만 명확하지 않다.
“라엘!”
에레오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동굴에서 소리쳐 메아리가 울리는 것 같은.
죽음은 자신의 보물을 노린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낫을 높게도 치켜들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게 낫은 내리꽂아 들어왔고.
어지러운 내 시야 속에서 보이는 건 늙은 검객의 등이었다.
‘안 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발, 그러지 마.’
외치고 싶었지만 외칠 수 없었다.
“아…….”
간신히 입을 열어 뗀 비명과도 같은 쉰 신음 소리에 톨레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을 들고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 온 제가, 마지막에 와서는 제 죽음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안…… 돼…….”
“썩 마음에 드는군요.”
가슴팍에 찍혀 들어간 낫은 상관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도 슬며시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본다.
“부디, 당신의 긴 여행길의 마지막이…… 편안한 쉼터이길.”
그렇게, 검객이라 불리던 남자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오랜 세월, 검 한 자루로 세상을 지긋이 바라보던 눈이 감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