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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09화 (109/200)

109화

전투는 계속해서 치열하게 흘러갔다.

정령들이 죽음의 신을 막아 주고 있는 사이에 마교단장들을 전부 제압해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할 일은.

“하트, 날 붙잡아 줘.”

“예, 걱정 마세요.”

하지만 한 사람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자세가 흔들리자 슬쩍 반대편에 끼어 들어오는 쾌쾌한 담배 냄새.

“테리스 선생님?”

“내 환자가 다치면 바로 치료하려고 이렇게 왔다.”

“애들은요?”

테리스가 왔다면 헤니가 왔을 수도 있다. 소녀에겐 이 전장은 지나치게 버거워 걱정했으나 테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미오랑 에딘과 같이 도망치고 있다, 걱정 마라.”

“다행이군요.”

“네놈 걱정이나 해라. 여기서 지면…… 그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것들이 너무 크다.”

묵직함이 담겨 있는 테리스 선생의 한마디에 애써 고개를 끄덕인다.

왼쪽에서 테리스 선생이, 오른쪽에선 하트가 부축해 주어 겨우 안정된 자세로 일어선다.

“약은 언제 복용했지?”

“30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럼 30분 남았다.”

내 모습을 보며 테리스 선생은 안쓰럽게 답해 주었다. 자신이 건넨 약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길.

“내 선택입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천천히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전열이 듄을 버텨 주고 있는 지금이 기회.

아이란을 제압하든, 죽이든 해야 했다.

이런 전장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듄보다 강력했기에.

“후우.”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린다.

순간적으로 마교단장들은 물론이거니와 정령들을 상대하고 있는 죽음의 신조차 내 쪽으로 시선을 둔다.

“어딜 마법을!”

듄은 상처를 각오하면서도 전차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마르코스와 언데드 군대도 거세게 밀어붙여 온다.

“버텨! 라엘을 지켜!”

“뚫리지 마라!”

레온과 에레오나의 외침에 이쪽 역시 기세를 잃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러자 상황은 정체되고.

지팡이는 푸른빛을 뿜어 대며 달빛조차 몸을 숨긴 전장을 환하게 밝혀 왔다.

하늘에서 빛나는 푸른빛의 마력탄.

마력탄은 별자리처럼 예정된 자리를 찾아가더니 곧이어 하나의 형상을 띄우며 아이란에게로 내리꽂혀 들어갔다.

“……!”

“예전부터 너는 직접적인 공격에 취약했지.”

이번 작전을 준비하면서 레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까다로운 마교단장이 누구냐고.

나는 주저 없이 메로아루아를 섬기는 아이란이라고 답했다.

요번의 마르코스 사태처럼 어디의 누가 그녀에게 매혹을 당한 채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전면전에 나섰을 때, 가장 상대하기 쉬운 것도 아이란이었다.

죽은 사람들을 다시 되살려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권능은 까다롭긴 했지만, 본체인 아이란을 쓰러뜨리면 문제 될 건 없다.

“크읍!”

파멸의 창을 들어 가까스로 방어하고 있긴 하지만 그 창은 적을 꿰뚫는 것에 특화되어 있지 방어용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마르코스를 필두로 언데드 군단들이 몸을 날려 유성우를 막아 내긴 했으나, 대부분이 여파에 휩쓸려 사라졌고 전황은 순식간에 이쪽이 유리해졌다.

“대단해요…….”

“이 정도였다고?”

양옆에 있는 두 사람의 놀란 목소리.

확실히 동굴을 처음 나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과 마나의 운용임을 나 역시 무감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경험은 동굴에서는 할 수 없던 성장을 이뤄 내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이 정도를 운용해도 역류는 일어나지 않는다.’

몸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얘기겠지.

물론, 내 유성우에 쓰러졌던 마르코스와 언데드들은 다시금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콰드득.

땅 밑에서 굵은 나무뿌리가 아이란을 속박하기 위해 솟아올라 온다. 몸을 날려서 피해 보지만 그녀의 왼쪽 손목은 결국 묶여 버렸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가져가마.”

“끄아아!”

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뿌리의 압력에 찌부러지며 잘려나간 자신의 왼손을 보며 증오 어린 시선을 쏘아붙이는 아이란.

“아직, 아직이야.”

헛숨을 내쉬며 순간적으로 호흡이 곤란해졌지만, 지팡이는 여전히 불빛을 뿜어 대고 있었다.

아이란이 밟고 있는 땅 밑이 손의 형상으로 변하며 그녀를 압살하려 든다.

피할 장소는 없다.

막아 주는 언데드들도 같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라.

“라엘 텔리즈머어언!”

“200년을 살았으면, 조금 더 값진 유언을 남겨 봐.”

기운은 없지만 마지막 비웃음만은 잊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란의 최후가 코앞인 상황.

무언가가 날아들어 나의 마법을 없애 버린다.

부서졌다던가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과 닿는 동시에 마법은 죽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불길한 일격.

아이란이 바닥에 떨어지며 자신의 언데드들을 불러 몸을 추스르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안, 라엘……

침울한 운디네의 목소리.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낫을 든 죽음.

-이상해, 이상할 정도로 강해.

-아무래도 매개체 말고도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플레임과 테토 역시 꽤나 다친 상태로 내 옆으로 와서 위험을 알린다.

-라엘…… 도망, 치렴.

라푼젤이 바람을 일으켜 막아 보려 하고 있었지만 죽음에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신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힘을 다루고 있는 거지?

아무리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심장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녀 역시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

심장 하나 가지고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건 이치에 어긋났다.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무언가, 내가 깨닫지 못한 무언가가……

“마수왕.”

검은색 비늘 갑주를 입고 있던 붉은 눈의 마수. 허나, 보라색 머리를 흩날리며 결국 기사로서 죽어간 남자.

그렇구나.

-라엘, 도망쳐야 해!

내 어깨를 잡고 운디네가 외쳤지만 나는 계속 생각을 이어 갔다.

하나가 톡 하고 떠오르자 연쇄적인 반응으로 계속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기 시작한다.

어째서 마수왕을 부활시킨 거지?

어째서 다른 신도 아니고 죽음의 신을 강림시킨 걸까?

점처럼 나뉘어 있던 모든 의문이 선으로 연결이 되기 시작했고.

절망적인 현실에 도달한다.

신자는 매개체.

신이 인간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

그런데 이건 조금 두루뭉술한 감이 있다.

신자의 수가 많으면 그 신은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가?

신앙심의 깊이는? 율법을 지키는 신자와 지키지 않는 신자는 모두 동일한가?

신자라는 이름으로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결국엔 그 신과 연관된 무언가가 인간계에 얼마나 퍼져 있느냐로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장마가 오기 시작하면 비의 신 에우노스와 물의 여신 테리사의 영향력이 커진다.

전쟁 탓에 사람들의 절망과 흐르는 눈물이 많아지면 눈물과 절망의 여신 아도리아의 영향력이 강해진다.

그렇다면 지금은?

마수왕의 마수들이 제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평화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던 모두는 갑작스레 자신의 곁에 찾아온 죽음에 눈물짓고 있다.

마수들이 몰고 온 죽음이라는 이름의 유례없는 흑사병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인 아르니티에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마수왕을 부활시켰고, 죽음의 신을 강림시켰다.”

딱딱 들어맞아 가는 퍼즐들.

결국 죽음의 신의 저 강력한 힘은 단순히 심장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제국 전체에 퍼진 비극이 힘의 원동력이었다.

소름이 돋으며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다.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간 죽음이 이번엔 내 차례라면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크흠!”

그뿐만 아니었다.

듄이 기세를 점차 회복해 가고 있었다.

아이란이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모든 인원이 듄에게 달라붙었으나 점점 권능이 차오르며 일당백 그 이상을 해내었다.

“젠장.”

결국엔 다시 한번 신과 싸워야 했다.

슬쩍 발밑을 확인하니 아직 에딘이 그려 놓은 마법진이 남아 있기는 했다. 원래는 마나의 쇠사슬을 만드는 마법에 조금 손을 본다.

“라엘 님, 아직 수가 있으십니까?”

계속해서 듄에게 저격을 하고 있는 텐의 물음에 씁쓸하게 침을 삼키며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버티라고 말하겠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후웁 하고 숨을 고르며 마법진에 집중한다. 크기가 컸지만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순식간에 구조를 변경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마법을 발동한다.

‘우선은 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음의 신의 걸음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아무리 늦춰도 결국 도달하는 게 죽음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행보.

마법진이 다시금 빛이 뿜어 대기 시작했고, 이번엔 하얀빛의 쇠사슬이 철그럭 소리를 내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우욱!”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거렸지만 양옆에서 붙잡아 주고 있는 두 사람 덕분에 가까스로 자세를 유지하며 마법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발처럼 솟아오르는 쇠사슬들은 마치 잡초처럼 땅 곳곳에서 고개를 들며 하늘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허튼수작을 부리는구나!”

이쪽의 의도를 이미 예상했는지 듄이 핏줄을 세우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 씌워지는 검은색 투구.

어깨에는 가죽 보호대에서 검은색 불꽃의 망토가 뿜어져 나온다. 마지막으로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샌들.

로그니다츠 세이야츠의 렐의 의사봉, 아이란이 사용하던 파멸의 창, 체체로가 사용했던 낭아봉과 같은 신기.

가이스의 신기를 착용하는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열기에 이기지 못하고 날아간다. 순간 횅하니 비어 버린 듄의 마크에 그는 그대로 나를 향해 내달렸다.

“또다시 그따위 수작에 걸릴 줄 알았나!”

생각보다 듄의 회복이 빠르다.

설마 신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권능의 재충전이 끝났을 줄은.

쇠사슬 몇 개가 듄의 앞을 막아서 보지만 그는 같잖다는 듯 털어낼 뿐.

“다 피해!”

“꺄앗!”

“야!”

하트와 테리스 선생을 밀쳐낸다.

허약하게도 무너지는 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같이 있어 봤자 듄의 주먹에 두 사람도 휩쓸려 버린다.

‘한 방만 버티자, 한 방만!’

다발의 쇠사슬이 듄의 뒤를 쫓고 있으나 그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방 정도만 버텨 내면 녀석을 구속할 수 있다.

이건 그런 싸움.

지금 몸 상태로 저 남자의 일격을 버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막아선 정령들조차 손쉽게 뚫어낸 듄은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만, 최후를 맞이하라.”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바위가 내리치는 듯한 위압감을 뿜어 대는 듄의 주먹.

거칠 것 없는 놈의 주먹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슴팍을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텐…… 씨?”

사자 혁명군의 보좌인 텐이 어째서 내 앞에 서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퍼져 나간다. 듄의 주먹에 가슴이 뚫린 그는 슬쩍 나를 보더니 희미하게 웃어 주었고.

“우리에게, 자유를.”

텐은 모기를 쫓듯이 휘둘러진 듄의 손에서 뽑혀 바닥을 구르며 날아갔다.

“쓸데없는 발악을!”

다시 한번 듄의 손이 내리쳐지지만, 이번엔 목표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춘다.

뒤따라오던 하얀빛의 쇠사슬들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뱀처럼 그의 양손을 속박하고 있었다.

“…….”

크리스티나 엘리나와 텐 씨.

벌써 두 사람이 듄의 손에 의해 꿰뚫렸다.

놈은 쇠사슬을 끊어내려 발버둥을 쳐 댔지만,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게 만들지 않았다.

“듄.”

뚝 하고 끊긴 듯 내뱉어진 놈의 이름.

내재되어 있던 분노의 실이 툭 하고 끊긴 듯 놈을 노려봤다.

마나가 차오르며 천천히 쓰러졌던 나는 지면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떠오른다.

온몸이 푸른빛의 마나로 점철되어 마인이 되었을 때.

쇠사슬에서는 백색의 불꽃이 점화되어 듄의 전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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