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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05화 (105/200)

105화

그렇게 정확히 사흘이 지난 새벽,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강하게 찔러 왔다.

기다리고 있었기에 번뜩 눈이 뜨여지며 지팡이를 챙겨서 바깥으로 나왔다.

“…….”

마을을 습격한 건 해골이 된 말을 타고 어두운 오러를 전신에서 뿜어 대고 있는 기사들.

과거 죽음과 시체에 관한 연구를 하던 마법사가 집필한 책에서 읽었던, 죽음의 기사들과 흡사한 외양.

그들이 대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폭풍이 부는 것처럼 주변 건물들의 기둥이 부러지거나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얘들아.”

내 부름에 바로 응답한 네 정령이 눈앞에 떠오르며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기사처럼 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의 어둠이 눈을 가리는 상황.

어두운 하늘 낮게 깔린 자욱한 안개는 옅은 그믐달의 달빛조차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하늘의 천운을 바라기만 하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번쩍.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어둠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죽음의 기사들에게 빛이 내리쬔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전등들이 동시에 켜지며 나름의 운치와 함께 환하게 마을을 밝히기 시작한다.

에너지는 마을이 사용하던 발전기, 기술의 출처는 전직 신문사와 라디오 국장이던 포르쉔. 제작은 대장장이 로벤.

“기습을 한다면 언제 할까. 뻔하지, 가장 어두운 날의 가장 깊은 새벽.”

각 집의 지붕 위에는 이미 기다렸다는 듯 단원들이 마도총을 들고 겨누고 있었다.

“이젠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지. 불행을 몰고 다니는 죽음의 기사라, 너무 진부해.”

피식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화려한 기다렸다는 듯 총성이 마구잡이로 울려 퍼졌다.

무서울 것 없다는 듯 달려들던 죽음의 기사들은 대검을 들어 올리거나 오러를 두르며 나름 방어를 제대로 해 냈지만.

-정신없는 건 알겠지만 다리 밑을 잘 확인해야지.

죽음의 말이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며 진흙으로 변한다. 하나가 넘어지자 도미노처럼 밀리며 다른 녀석들도 넘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최상위 병종이라던 죽음의 기사들은 꼴사납게 진흙투성이가 되어 일제사격을 맞으며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가 촛불처럼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하는 초라한 말발굽 소리.

맨 뒤에서 어둠에 숨어 상황을 살피려던 남자는 전등 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코스.”

그를 부르자 녀석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춘다.

“전부 네가 준비한 건가?”

어깨를 으쓱하며 허망한 놈의 얼굴을 향해 비웃음을 날려 준다.

“너무 당해 줬어. 반격할 때도 됐단 말이지.”

그동안 마교단장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싸우고, 한계에 봉착하며,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내가 너희보다 빨랐어.”

“기습의 타이밍은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내부에 첩자가 있는 걸 알고 있었지?”

“똑바로 해. 일부러 만든 거야.”

“뭐?”

예상치 못한 답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마르코스.

그렇게 방책을 세웠는데도 죽음의 기사들은 문을 열고 무혈입성을 해냈다.

당연히 내부의 배신자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겐 일부러 친한 사람들끼리 묶어서 일한다고 했지만, 목책을 방비하던 사람들은 다 너를 광적으로 신봉하던 사람들이야.”

“…….”

“일부러 목책 방비의 작업을 과하게 하기만 해도 가볍게 배신할 걸 알고 있었어.”

레온이 각 주택들을 검사했을 때는 걸리지 않았지만, 내부의 배신자들이 요즘답지 않게 전서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은 걸 알고 있다.

이쪽에는 바람의 정령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일부러 우리 측 인원들은 쓸모없는 목책 방벽에나 투입시키고, 정밀 필요한 일은 다른 사람들을 시켰다?”

“그렇지. 뭐 더 궁금한 거 있나?”

여유롭게 웃으며 묻자 헛웃음과 함께 마르코스가 물었다.

“내가 배신할 걸 어떻게 알았지?”

“고작 그런 걸 묻는 거야?”

좀 더 재미있는 질문들이 여러 개 있을 텐데.

뭐, 물었으니 답은 해 주겠지만.

“타란 마을에서의 습격에서부터 시작이었지. 암살자들은 장비는 좋았지만 실력은 형편없었고,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신념은 있었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노력이라는 걸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신념을 가지고 있음에도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신념이 주입된 것처럼.

“실력은 없는데, 신념은 있어. 신은 믿지 않는데 권능은 걸려 있고.”

머릿속에 박혀 있던 권능에 뇌가 타들어 가며 죽어 버린 암살자들.

“모순투성이지? 기묘할 정도로 특이한 특징이고, 이런 신은 내가 아는 바로 한 명밖에 없어.”

“…….”

“메로아루아, 정욕과 음기의 여신.”

사람들을 홀리며 그들을 조종하는 여인.

“그딴 거 나는 모른다.”

마르코스는 담담하게 단언했다.

알고 있다, 마르코스는 신을 믿지 않고 메로아루아를 섬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란은?”

화면이 전환된 것처럼 무표정하던 녀석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며 주먹을 쥔다.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냐고 따지듯.

“원래 그 여자가 그렇게 살아. 많은 사람에게 기생해서, 의지하는 척, 사랑하는 척하면서 실은 단 한 남자만 바라보고 있지.”

그리고 그건.

“네가 아니야.”

“네놈이 뭘 안다고 그러는 거냐!”

쾅 하고 마르코스의 대검이 대지를 울려온다.

아이란의 권능을 받았는지 그 기세는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분께서 내게 주신 손길은, 자비는, 사랑은! 무엇보다 가치 있었고, 따스했으며, 아름다웠다!”

“어리석긴.”

아이란에게 홀린 자들은 대체로 저렇다.

마르코스에겐 미안하지만 200년 전에도 비슷한 대사를 내뱉으면서 눈을 감기 전까지 아이란을 사랑했던 자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여자한테 홀려서, 사람들을 아이란에게 데려가 우리를 암살하게 만들기도 했고, 요번에 데려간 사람들은 죽음의 기사로 만든 거냐?”

“그분께서 필요로 하셨으니까.”

답이 없었다.

마르코스가 군대를 움직여서 간 곳은 제도가 아니라 아이란의 곁이었다.

그리고 저 뒤에서 이제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죽음의 기사들이 바로 그들의 결말.

후우 하고 숨을 고르며 마르코스를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고.

발포음이 새벽 밤을 깨우듯 울려왔다.

“당신, 믿었는데…….”

“마르코스!”

마도총에 구멍투성이가 된 마르코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무릎을 꿇고 주변을 둘러봤다.

보호와 더불어 마르코스의 진실을 보이기 위해서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그에게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고, 자신들의 감정을 토하기 시작했다.

“설마, 마수한테 물려 죽었다고 했던 사냥조가…….”

한 여인이 덜덜 떨며 묻자 마르코스는 최면이라도 걸린 듯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혁명군 대장들을 암살하기 위한 암살조로 사용했지. 그렇게 멋들어지게 실패할 줄은 몰랐지만.”

역시 급조한 암살단으로는 안 되는군 하고 덧붙인 마르코스.

“함께 나갔던 우리 아빠, 아빠는!”

“너희가 죽였지 않나.”

피식 비웃는 마르코스의 시선은 죽음의 기사들에게로 가 있었다.

“웃기지 마! 네가 죽인 거잖아!”

아버지를 잃었다는 진실에 분노한 소녀는 주변의 돌을 집어 마르코스에게 던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돌을 들어 마르코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란의 힘을 받았기 때문인지 마르코스는 이미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고, 쉽게 죽지 않았다.

“하, 하…… 마음껏 깔보아라. 너희는 어차피 다 죽는다.”

마르코스의 비웃음에 일순 소름이 돋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숨기려 뒤로 물러났으나, 그와 반대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희는 실패했어.”

“웃기는군, 200년을 살아 놓고 아직도 그분들의 위대함을 모르는가.”

“…….”

“지금 이곳으로 누가 오시고 계시는지 네가 알고 있다면…….”

“아이란이랑 듄이겠지.”

뜨겁게 타오르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 버린 마르코스. 호선을 그리던 그의 입가가 무참할 정도로 내려갔다.

아주 보기 좋은 표정에 나는 반대로 웃어 주며 답했다.

“말했잖아, ‘너희’는 실패했다니까.”

* * *

마을의 서쪽.

언데드들의 군대가 소리 없이 진군하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숨소리조차 하나 없는 죽음의 군대.

마르코스가 내부에서 시선을 끌고 있으면 목책을 넘어 그대로 덮칠 생각이었다. 내부에 죽음의 기사들이 날뛰고 있으면 서쪽 방벽을 지키고 있을 여력은 없을 테니까.

그래, 그랬어야 했다.

군대의 가장 뒤에서 가마 위에 올라타 상황을 관망하려 샴페인을 따르고 있던 아이란의 눈동자에 비친 건 폭죽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는 하얀색 빛이었다.

평소였다면 보기 좋다고 나름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저 빛이 담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표정이 굳어진다.

팡 하고 빛이 허공에서 터지며 달빛을 가렸던 안개를 거두고, 그 빛은 비처럼 자신의 군대를 향해 쏟아진다.

극상성이라고 불러도 될 힘에 언데드들이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걸음이 느려진다.

“이건…….”

샴페인 잔을 내던지며 아이란은 급하게 목책 위를 바라봤고.

그곳엔 이미 올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드디어 왔군.”

혁명군의 사자라 불리는 남자가 검을 앞으로 내밀자.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 * *

동쪽.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남자는 서쪽에서 떠오른 빛의 신의 권능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지만, 그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그에겐 큰 상관이 없었다.

배신자를 통해서 정면으로 무혈입성한 마르코스와 죽음의 기사들이 실패를 하든.

언데드를 통솔하여 진군하고 있던 아이란이 패배를 하든.

어차피 이 전장에 자신이 서 있으면 승리란 결정된 사안.

마르코스에게 듣기론 라엘 텔리즈먼의 부상도 심각하다고 들었기에 아주 손쉬운 압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거부감이 느껴졌다.

라엘 텔리즈먼이 없다면 이건 전쟁이나 전투가 아닌 단순히 일방적인 학살일 뿐이었으니까.

“흠.”

화악 하고 전등이 켜지며 목책 밖에서 걷고 있던 거대한 남자를 비춘다.

2m는 되는 덩치,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람한 근육. 상체에는 모피코트 하나만 걸치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흐름을 읽은 듯 망설임 없이 코트를 벗어 던졌다.

전신을 두르고 있는 기괴한 문신들은 대부분의 적을 향해 두려움을 유발했으나 적어도 그의 앞에 있는 이들은 한 번 본 적 있었다.

“그때 죽인 줄 알았는데.”

듄의 말에 은발의 여인은 허리춤의 검 자루에 손을 얹으며 답했다.

“졸려서 잠깐 잠들었던 것뿐이야.”

“이 정도 전력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에레오나의 뒤에 있는 건 자벨린 부대원들.

뿐만 아니라 루이나, 톨레스, 텐 같은 사자 혁명군의 에이스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라엘 텔리즈먼을 데려와라. 그래야 조금은 재밌겠군.”

숨을 내쉬며 에레오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들었어, 네가 200년 전 라엘을 패배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치욕스러운 승리였지. 다섯과 하나라니. 이번엔 나 혼자서 녀석과 싸워 지워지지 않는 치욕을 갚겠다.”

눈앞에 서 있는 자신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는 오만한 모습.

“네가 라엘을 볼 일은 없을 거야.”

아름다운 검신이 옅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낸다. 로버트 부자의 역작이며 에레오나의 새로운 검.

그 위에 덧씌워지는 무색의 오러.

“심검인가? 조금은 볼만하군.”

기사의 오러가 아닌, 동방의 검사들이 사용한다는 기술. 베어 넘기지 못했던 바위 같은 앞의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톨레스에게 배운 새로운 무기.

“복수전 시작이다.”

그대로 에레오나가 앞으로 치고 나가자 듄은 흠 하고 주먹을 쥐며 앞으로 휘둘렀다.

“파괴의 심판자, 듄. 심판을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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