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정말 괜찮아진 거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도대체 어떤 마법을 사용했으면 그렇게 되는 거니?
“일종의 기적이지.”
운디네와 라푼젤이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어 대는 걸 간단히 받아치며 하품을 한다.
너무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한 마음에 바깥에 나와서 바람을 좀 쐬고 있었다.
-여기 앉아라.
“고마워.”
흙으로 만들어 준 의자에 앉자 테토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문양을 넣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재미가 붙은 듯했다.
“플레임은?”
-뭐 하겠니, 구경 갔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운디네지만 목소리는 편안해 보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플레임이 바깥에 나온 게 좋은 듯했다.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면서 왜 아닌 척하나 모른다니까.
-방구석 폐인이 쪽팔리게 사람들 뒤꽁무니나 쫓고 있고!
라푼젤과 운디네의 신랄한 비판에 문득 동굴을 나와서 처음으로 둘을 불렀던 때가 기억났다.
“너희도 내 말 다 무시하고 사람들 뒤만 쫓다가 이상한 정보만 가져왔잖아.”
운디네는 아이들이 어떤 장난을 치고 있고, 누가 엄마한테 혼났으며, 왁자지껄 뛰어노는 아이들에 대해서 설명했었고.
라푼젤은 명품 가방이라든가 예술조각상이나 데코가 된 음식 등에 대한 설명을 해 줬었다.
-……
-……
“그때 그나마 테토 덕분에 마약도 알아챘었지?”
-흠, 가장 유능한 정령을 뽑는 거라면 당연한 선택이군.
-뭐라니! 저 대머리가!
-이건 그냥 흘려들을 수 없구나.
의자에 바위 문양을 새겨 넣고 있던 테토에게 달라붙어 몸싸움을 하는 운디네와 라푼젤.
“제발, 가만히……!”
흙으로 된 의자는 물과 바람이 섞이자 그대로 진흙이 되며 사라졌고 둘은 내 눈치를 보더니 횡 하고 날아가 버렸다.
“저것들이.”
-내 걸작이…….
걸작까지 되는 물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테토가 꽤나 공을 들인 건 알았다. 물론, 비슷한 물건이 몇 초만에 다시 만들어졌지만.
“후우.”
다시 만들어진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내쉰다.
두통은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쓴 것처럼 나를 옥죄여 왔지만 이제 나름대로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군, 도대체 어떤 마법을 썼으면 이런 후유증이 남는 거지?
테토의 물음에 이번엔 가슴팍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슬쩍 입고 있던 겉옷의 단추를 풀자 한 송이 꽃이 튀어나온다.
[말 그대로 기적이지.]
-흠, 우레아인가.
[물이랑 바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평화롭군.]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동의한다.
“둘이 없다고 나온 건 좀 꼴사나워 보이긴 해.”
[크흠.]
이제는 한 식구인 양 우레아와 정령들이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정령들은 여전히 우레아를 싫어하고 우레아 역시 그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 사람에게 묶여 있는 동질감? 일종의 미운 정이 박힌 듯했다.
-그래서 그 마법은 어떤 것이지?
다시 대화 주제를 되돌린 테토에게 우레아는 꽤나 흥분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을 동시에 시작하면서 동시에 끝낸다.
같은 마법이지만 그것은 다른 마법이며 다른 마법이지만 같은 마법이다.
그런 형이상학적인 말을 내뱉어 대는 우레아에게 테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답지 않게 짜증을 냈지만, 우레아는 역으로 답답해하며 이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쩔 수 없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야.”
[단언하지. 그 당시의 너는 크리스티나 엘리나를 뛰어넘었어.]
이번엔 테토의 눈이 또렷하게 커지며 나와 눈이 마주친다. 진심으로 그렇냐고 묻는 눈동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아.”
스승님조차 해내지 못했던 마법을 내가 만들어 냈으니까.
-축하한다.
덤덤하게 말하는 그 한마디의 묵직함을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물론, 중요한 건 그 마법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느냐는 거지만.]
꽃의 형태임에도 이상하게 내 눈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테토 역시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엔 일종의 각성 상태에 돌입했던 것 같아. 다시 한번 그런 마법을 부리기엔 무리겠지.”
-그 여파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가능하면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 쓸 일이 없길 바라기도 하고.
[나는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어린애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우레아에게 테토가 한마디 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푸른 하늘이라.
썩 마음에 드는 광경을 만끽하고 있자니 흑일, 흑이, 흑삼이가 혀를 내밀고 달려온다.
포위라도 하듯이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 녀석들은 놀아 달라며 신을 내고 있었다.
“와, 손바닥만 하던 녀석들이 벌써 이렇게 컸어?”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내 종아리까지는 올 정도로 커져서는 활기도 넘친다.
흑주신의 크기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근육들을 보면 장래성은 분명했다.
-이 녀석들이 전부 흑주신 정도로 큰다면 썩 볼만하겠군.
[아, 얘들이 민속신 새끼구나? 인간은 참 웃겨. 마수한테 신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말의 무게를 한참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너보다는 얘들이 낫다. 적어도 이 아이들은 10살 아이한테 구애를 하지는 않으니까.
“동의한다.”
[그냥 내 권능을 주고 싶은 것뿐이라니까!]
웃기고 있네.
저 음흉한 속내를 누가 모를 줄 알고.
“얘들아, 어디까지 뛰어간 거야!”
“허억! 허억! 빌어먹을, 그러기에 목줄 차자고 했지!”
“목줄을 차면 썰매 타듯이 끌려갈 거야. 그것보다 이쁜 말 쓰기로 했지!”
편히 쉬는 시간은 다 끝났구나.
언덕 밑에서 들려오는 미오와 에딘 그리고 헤니의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턱을 괴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혁명군 삼총사는 언덕으로 올라오더니 나를 보곤 환히 웃으며 다가온다.
“여기 있었네요?”
“라엘 님! 어디 계신가 했습니다.”
“두통에는 자연 바람을 쐬는 게 좋긴 하죠. 잘하셨어요.”
하하 호호 거리며 달려든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어지러웠지만, 아이들 특유의 활기가 햇빛과는 다른 방면으로 내게 쫴왔다.
“슬슬 가요. 점심 먹을 시간이에요.”
미오의 말에 흑주신의 새끼들이 미오에게 달려들며 친근함을 과시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미오를 많이 따르는 게 보인다.
“그래, 가 볼까.”
* * *
식사를 마치고 독서를 할까 생각하여 마르코스의 저택에 방문했다.
두통도 있으면서 무슨 독서냐고 에레오나가 일축했지만, 그냥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언가 집중하고 싶었다.
“마르코스가 없으니까 편하긴 하네.”
“기존의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지만.”
나와 함께 온 에레오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답한다.
마르코스가 떠나고 이제 일주일.
시간상 아직 제도에 도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기에 느긋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마르코스가 전 병력을 끌고 간 바람에 현재 마을을 지키고 있는 건 사자 혁명군과 자벨린 부대뿐.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아직 마을 재건이 안 돼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커.”
큰바위 마을, 아윈 마을, 방아 마을.
자유 혁명군 근처에 있는 마을들이었고 미처 제도로 도망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을 지금 보호하고 있었다.
마르코스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이들은 꽤나 불만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직 주변에 마수들이 들끓고 있고 마을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혁명군 입장에서도 난처한 게, 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 버렸기에 함부로 보내 줄 수도 없는 노릇.
“하아, 마르코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머리를 짚으며 에레오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질문을 한다.
“청색횃불이랑 철거북 쪽은 어때? 연락이 됐어?”
“철거북은 크라켄 때문에 궤멸 직전이지만 청색횃불은 무사한 모양이야.”
“그 난리에서?”
“마수들이 제도로 향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메뚜기 떼처럼 앞에 있는 걸 전부 먹어 치우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습격을 한 마수보다 지나치는 마수가 더 많았다.
아니, 오히려 전부 지나치는 마수였지만 혁명군이 그 앞에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어쨌든 내부 상황이 썩 좋지 않아. 레온과 텐 씨가 잠도 줄여 가면서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한데, 내부 사정이 썩 좋지 않아.”
기존의 주민들은 마르코스가 통치하던 이 마을이 레온에게 넘어간 게 아닌지 혹은 마르코스가 자신들을 버린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고.
다른 마을에서 보호를 위해 데려온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썩 골치 아프겠네 하고 중얼거리며 마르코스의 서재로 들어갔다.
“근데 너는 왜 왔어? 독서랑 전혀 안 어울리는데.”
“분위기 전환할 겸 왔다, 왜.”
무시하냐며 고양이 눈을 뜨고 흘기는 에레오나에게 한 발 물러나며 책장을 훑어본다.
“흠, 썩 마음에 드는 책은 없네.”
“나는 이거.”
에레오나가 꺼내든 건 글과 그림이 섞여 있는, 소위 말하는 만화책이었다.
그것도 1권이 아닌 7권이었는데도 그녀는 그걸 선택했다. 아니 근데 마르코스가 저 책을 읽는 건가?
“분위기 전환한다며?”
“뭐, 먹을 거라도 있는지 확인해 볼까.”
가볍게 무시하며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간 에레오나. 나도 책을 뒤지고 있지만, 솔직히 딱히 흥미가 동하는 제목은 없었다.
“뭐 재밌는 거 없나.”
그렇게 별 감흥 없이 뒤지고 있는데 유난히 손때가 많이 묻은 검은색 커버의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꽤나 아끼는 책인가 보네.”
‘검은색 민들레의 꿈’이라는 제목.
썩 흥미가 동하는 제목은 아니었기에 한 번 스르륵 넘기며 보고 있는데.
팔랑
그림 한 장이 책에서 빠져나온다.
“뭐야.”
책 커버에는 손때가 묻어 있지만, 막상 내용이 적힌 종이는 깔끔한 거로 보아 그림을 숨기는 용도로 썼구나 싶어 히죽 웃으며 그림을 들춰 보니.
“아이란?”
지금이 아닌, 예전.
200년 전의 마교단장, 아이란이 웃고 있는 모습이 그림 속에는 담겨 있었다.